게게게의 기타로 1
Mizuki Shigeru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서운 사람, 두려운 이야기, 끔찍한 삶
 [만화책 즐겨읽기 32] 미즈키 시게루, 《게게게의 기타로 (1)》



 그다지 높지 않으나 멧자락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에서 맞이하는 밤은 몹시 깜깜합니다. 밤에 쉬가 마려 마당으로 나와 텃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 멧기슭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로는 흙이 부스스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러한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서 무섭다 여길 수 있으나, 멧기슭 한켠에서 얌전히 잠들던 자그마한 멧짐승이 훨씬 무섭다 여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 멧자락에서는 사람을 잡아먹을 만하다 싶은 덩치 큰 짐승은 없다시피 하니까요. 그저 조그마한 멧쥐라든지 멧새라든지, 또는 오소리나 너구리나 고라니쯤 돌아다닐 테니까요.

 앞으로 언제까지 우리 나라 도시들이 부피를 키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어느 도시이든 밤이 깜깜한 곳은 없습니다. 조금 깜깜하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등불을 밝힙니다. 후미지다는 골목이나 어둡다는 길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 사는 동네는 하나도 어둡지 않아요. 낮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 같은 데가 밤에 몹시 어둡습니다. 걸어서 오가는 사람이 적고 으레 자가용으로만 오가는 아파트 둘레가 한결 어두컴컴합니다.

 요즈음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깨비불을 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훨씬 많고 흙 한 줌 없으며 풀이나 나무가 깃들 빈틈이 없는 도시인데, 이 도시야말로 도깨비굴이 되거나 도깨비집이 될 만하지 않나 싶어요.

 생각해 보면 무슨무슨 괴담이라 하면서 무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은 오늘날에는 깊은 멧자락이나 시골이나 바닷가 같은 데가 아니라 도시 한복판이라 할 만합니다.


- “아무튼 그 녀석(기타로)이 언제 불쑥 나타날지 생각하면, 도대체 맘 편히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을 수가 없다니까.” (6쪽)
- “너희들이 나쁜 짓을 하니까 기타로한테 지옥 유배를 당한 거야.” “산 채로 지옥에 끌려온 거라구.” (50쪽)
- “기, 기타로 선생님! 지금 밖에 적의 사자가 와 있는데요.” “적의 사자?” “이 섬을 반씩 나누어 평화공존 하잡니다.” “말도 안 돼!” “부탁입니다. 섬사람들을 위해 그 조건으로 휴전하시죠.” “하지만 정말일까?”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모두 굶어죽고 말아요.” “알았어.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지.” (199쪽)


 도깨비이든 귀신이든 요괴이든 착한 사람을 해코지하는 일은 드뭅니다. 아니, 애써 착한 사람을 해코지할 일이란 없습니다. 때때로 애꿎게 착한 사람이 시달린다고도 하는데, 도깨비에 홀리거나 도깨비가 쓰인 사람이란 으레 ‘마음 한켠에 얄궂은 꾐수나 꿍꿍이를 품은’ 이들이기 일쑤입니다. 샘을 내거나 꾀를 부리는 이들이 도깨비를 부릅니다.  이웃한테 사랑을 나누기보다 홀로 배부르기를 꾀하는 이들이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이 요괴를 맞아들입니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님이란 도깨비나 귀신이나 요괴라기보다 우리들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사람들이 있고, 착한 사람을 후린다거나 들볶는 나쁜 사람들이 있어요.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말 그대로 착하게 사랑을 나눌 뿐, 누구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거나 등치려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밥 한 숟가락을 덜어 밥나눔을 하든, 종이 한 장을 맞들든, 이불 한 조각을 나누어 덮든 하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모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낮이고 밤이고 무서워 하지 않는다 했어요. 하늘을 우러러 남부끄러운 짓을 일삼는 사람은 밤보다 낮이 더 무서울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범을 무서워 할 까닭이라든가 늑대를 두려워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범도 늑대도 모두 이웃이나 동무로 삼으면 되니까요. 모두 고마운 목숨이고,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이며, 모두 사랑받을 목숨입니다.


- “이건 작지만 사례란다.” “그런 건 안 받아요. 난 그냥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고 싸우는 것뿐인걸요.” (34쪽)
- “세상에 이게 다 뭐람. 마을 사람들 용케도 참고 사네.” “가난해서 그래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데가 없는걸유.” (60쪽)
- “기타로! 대해수의 피를 내놔!” “웃, 비겁한 녀석! 너의 뒤틀린 마음이 나을 때까진 절대로 대해수의 피를 넘겨줄 수 없어.” (233쪽)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봅니다. 작은 풀벌레한테서 ‘게게게’ 기림노래를 듣는 기타로는 요괴입니다. 요괴를 놓고 착한 요괴와 나쁜 요괴를 나눌 수 있나 모를 일이지만, 기타로라는 요괴는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일삼지 않습니다.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일삼는 요괴가 있으면 이 나쁘거나 못된 짓을 더는 할 수 없게끔 타이릅니다. 그리고,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한테도 이처럼 나쁘거나 못된 짓을 서슴지 않도록 나무랍니다.

 언뜻 보자면, 요괴 기타로는 사람을 아끼거나 좋아한다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기타로는 사람을 아끼거나 좋아한다기보다,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목숨붙이를 괴롭히거나 억누르는 모든 미운 짓을 싫어합니다. 사람이든 요괴이든 여느 짐승이든 푸나무이든,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이 어우러지면서 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기타로 둘레에는 착하며 예쁜 사람이 늘 있습니다. 착하며 예쁜 요괴도 언제나 곁에 있으면서 기타로를 돕고 기타로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어설프거나 어줍잖게 살던 사람들은 기타로한테서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무언가 놓친 대목을 깨닫곤 합니다. 도움을 받으나 하나도 못 깨닫는 사람 또한 꽤 많습니다.

 기타로는 몇 백 해를 거뜬히 삽니다. 여느 사람은 백 해조차 살아내기 힘듭니다. 고작 백 해조차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짧은 나날을 스스로 알차거나 알뜰히 일구기보다는, 무언가를 품에 더 거머쥐려고만 합니다. 기타로는 몇 백 해를 아무렇지 않게 살지만 서두른다든지 조바심을 낸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제 한삶을 즐깁니다.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기에 느긋한 기타로는 아닙니다. 큰집을 쌓는다든지 높은 이름값을 얻는다든지 많은 돈을 그러모은다든지 하는 슬픈 꿍꿍이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노상 느긋한 기타로입니다.

 기타로가 타이르거나 다스리려 하는 요괴들을 보면, 요괴이면서도 무언가 자꾸 꿍꿍이를 부리면서 나쁜 길로 빠져듭니다. 사람한테 물든 나쁜 요괴인지, 사람들이 품는 나쁜 마음이 스며들어 그만 나쁜 길로 빠지고 만 요괴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 어떤 들짐승이나 들풀이나 들나무라 하더라도 혼자 모두 차지하며 배 띵띵 부르도록 살아가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만 혼자 차지하려 합니다. 그예 사람만 잔뜩 짊어진 채 이웃사랑이나 동무사랑을 펼치지 않습니다.


- 기타로를 대해수로 만든 야마다 소년은 기타로의 복수가 두려운 나머지, 강철로 대해수를 만들어 기타로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기타로가 갖고 있던 부족을 보고 야마다의 여동생 게이코는 대해수가 기타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마침 그때 게이코는 어머니한테서 이전부터 여러 가지 신비한 방법으로 기타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아버지가 없는 우리 가족의 은인이었던 거네요.” “그렇고말고.” (282∼283쪽)
- “오빠! 명예만이 다가 아니야. 노벨상이 뭐란 말야! 훈장이 뭐야! 세상에는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훨씬 더 훌륭한 것도 많다구.” (296쪽)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무엇이 훌륭하다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노벨상을 받으면 훌륭하다 할까 헤아려 봅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이 되거나 법관이 되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되뇌어 봅니다. 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번다면, 큰회사에 들어가 젊은 나이부터 이사이니 상무이니 되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곱씹어 봅니다. 장사를 잘해서 끝없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가누어 봅니다. 글을 써서 책을 많이 팔거나 이름을 드날린다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갸우뚱갸우뚱 해 봅니다.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우리가 훌륭하다 할 만한 일이나 모습이나 삶이란 무엇인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려는 이때, 멧자락마다 막 터지려는 꽃망울이 가득합니다. 아직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멧나무도 많으나, 앙상해 보이는 나무라 하더라도 가까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지마다 자그마한 새눈이 힘차게 자라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요. 밤 동안 날이 제법 추워 새벽에 일어나 보면 얼음이 얼지만, 이런 날씨라 하더라도 아침이 되고 낮이 되어 차츰차츰 따뜻해지면 노란빛 첫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온 멧자락을 가득 채우리라 봅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자꾸만 우뚝우뚝 발걸음을 멈춥니다. 혼자 씩씩하게 앞장서서 달리던 아이는 제 아버지가 뭔가를 들여다본다며 한 곳에 가만히 섰으니 후다닥 달려와서 아버지 곁에 섭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자, 여기 보렴. 이 나무들 꽃망울이 곧 터지려 하지? 며칠만 있으면 이제 노란 꽃이 가득 피어난단다. 살살 만져 봐.”


- 그때 아무도 모르는 늪 가운데 있는 섬에서 기타로를 존경하는 두꺼비와 지네들이 기타로의 활약을 칭송하는 노래 ‘게게게’를 합창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타로의 손이 독거미와 전갈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합창은 한층 눞아졌다 ..  (18쪽)
- 기타로는 세상의 원인 모를 사건들을 남모르게 해결하고, 오늘도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81쪽)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는 ‘미즈키 시게루 길’이 있다고 합니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그린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를 기리는 뜻에서 마련한 길이라 합니다. 만화를 그린 햇수는 그리 길지 않고, 이동안 그린 작품도 그렇게까지 많지 않습니다만, 《게게게의 기타로》는 2009년까지 만화영화로 자그마치 다섯 차례 만들어집니다.

 시골자락 작은 마을 작은 사람 작은 요괴 이야기를 다룬 《게게게의 기타로》인데, 미끈하다거나 눈부시다거나 피 튀기는 싸움 모습이라거나 나오지 않는 만화인데, 참 많은 사람들이 참 오래도록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만화작품 한 가지를 기리며 도시 한 곳이 온통 ‘기타로 만화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는 한낱 관광상품으로 만화 거리를 마련하고 만화 전철을 몰며 만화 누리를 마련했을까요.

 역사가 짧거나 없다고 할 만한 일본사람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내세우려고 하는 셈일까요. 일본 요괴 이야기를 다루는 《게게게의 기타로》를 세계에 손꼽히는 작품으로 떠받들려는 셈일까요.

 일본에는 ‘오니’가 있고, 한국에는 ‘도깨비’가 있습니다. 《게게게의 기타로》에는 일본나라 요괴가 잔뜩 나오는데, 가만히 돌아보면 한국나라에도 ‘요괴라 할 만하’든 ‘귀신이라 할 만하’든 온갖 님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 나라 사람들하고 함께 이웃하거나 동무하던 숱한 님을 찬찬히 되새기거나 어깨동무하는 일이 없을 뿐입니다. 너무 틀에 박히고, 자꾸 틀에 갇히며, 끝내 틀에서 맴도는 한국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착한 삶이나 참다운 삶이나 고운 삶하고는 어째 등을 돌리려고만 하는 한국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무서운 사람이 되려 하고, 스스로 두려운 길을 걸으려 하며, 스스로 끔찍한 삶을 붙잡으려 합니다.

 왜 허울을 뒤집어쓰려 할까요. 왜 껍데기를 꾸미려 하나요. 왜 속사랑을 나누지 않는가요. 왜 참사랑을 빛내려 하지 않나요.

 만화쟁이 미즈키 시게루 님은 ‘투박하면서 어여쁜’ 시골자락 요괴 이야기를 ‘투박하면서 어여쁜’ 그림결로 수수하게 담아내어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낳았습니다. (4344.3.29.불.ㅎㄲㅅㄱ)


― 게게게의 기타로 1 (미즈키 시게루 글·그림,AK커뮤니케이션즈,2009.10.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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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7] 낱말책

 오늘날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습니다. 애써 셈틀을 안 켜더라도 손전화로 인터넷을 씁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어도 낱말뜻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셈틀을 켜서 인터넷을 열지 않더라도 손전화로 영어 낱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손전화에는 영어 낱말 찾아보기는 있어도, 우리 낱말 찾아보기는 없기 일쑤입니다. 한국말을 배우거나 한국말을 살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요.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을 모를 까닭이 없으니, 굳이 우리 낱말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가요. 낱말이 가득 적힌 책이기에 낱말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 이야기책입니다. 그림으로 빚어 그림책이요, 동화를 실어 동화책이며, 사진으로 일구어 사진책입니다. 구태여 새로운 낱말을 빚으려고 ‘낱말책’ 같은 이름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글자수를 줄여 ‘말책’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괜히 글자수를 줄이기보다는, “낱말 담은 책”이라는 느낌이 잘 살도록 ‘낱말책’이라 할 때에 한결 알맞으면서 좋다고 느껴요. 이리하여 우리는 한국 낱말책입니다. 일본사람은 일본 낱말책이에요. 중국사람은 중국 낱말책을 쓰겠지요. 책상맡에 종이로 된 낱말책을 여러 가지 올려놓고 뒤적여 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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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과 함께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 지식인들은 러시아사람이 했던 일을 따라 “민중 속으로”를 외치며 일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외침은 되풀이됩니다. “민중한테 다가서야 한다”라느니 “현장 속으로 가야 한다”라느니.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이런 외침말은 너무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이라 하는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다가 어느 날부터 반짝 하면서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다가 머리로만 지식조각을 움직여 여느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품는대서야 여느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과 내가 딴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 스스로 여느 사람이어야 하고, 여느 사람이 나여야 합니다.

 “민중한테 내려가야 한다”느니 “민생을 읽어야 한다”느니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왜 ‘내려와야’ 하고 왜 ‘읽어야’ 하며 왜 ‘함께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내 삶이 바로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려가든 올라가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이 곧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곧 여느 사람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내 삶이 언제나 여느 사람 삶일 때에는 하루하루 내 삶을 일구는 나날이 곧바로 여느 사람과 함께하는 나날입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돌아갈밖에 없습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로서는 ‘여기(여느 사람들 살림터)’가 저희 보금자리나 마을이나 삶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중을 외치고 싶다면, 진보를 외치고 싶다면, 무슨무슨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뭔가를 외치고 싶다면, 그냥 여느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면서 내 하루를 알뜰살뜰 착하며 착다이 일구면 됩니다. 가난하거나 후미진 동네 골목 담벼락에 벽그림을 그린대서 동네가 나아질 까닭이 없습니다. 동네사람들 이야기를 녹음기에 담거나 사진 몇 장 찍는다고 다큐멘터리라든지 지역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지내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면 넉넉히 이루어지는 우리 마을 예쁜 삶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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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27.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리. 

골목고양이 아닌 읍내고양이가 쓰레기터에서 먹이를 뒤진다. 나하고 여러 번 마주쳐서 그런지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으로 찍혀 준다. 아니면, 내 가방에 든 삼치 비린내가 나서 그런지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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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쌓인 눈이 얼음이 되어 쿵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 얼음덩어리 맞으면 무척 아플 테지. 

- 20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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