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75] 자료찾기·찾아보기·검색

 디지털도서관에서 ‘자료찾기’라는 데를 들어가면 ‘찾아보기’라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곳 찾아보기에서는 ‘자료검색’을 해야 하고, ‘검색항목’이나 ‘상세검색’에 따라 ‘자료찾기’를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니까, ‘찾기’를 하려면 ‘검색(檢索)’을 하라는 소리가 돼요. 이럴 바에는 모조리 ‘검색’이라고만 하든지, ‘찾기’나 ‘찾아보기’ 같은 우리 말을 잘 살리겠다면 모든 곳에서 잘 살리든지 해야 할 노릇 아닌가 생각합니다. (4344.6.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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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가 갖고 싶어 그림책은 내 친구 3
무라카미 쓰토무 그림, 사토 사토루 글, 이선아 옮김 / 논장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사랑씨에서 태어난 예쁜 목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6] 무라카미 쓰토무·사토 사토루, 《커다란 나무가 갖고 싶어》(논장,2003)


 올봄에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하나만 살구나무로 하고 다른 하나는 다른 나무로 심을 수 있었지만 살구나무 두 그루로 했습니다. 씨를 받아서 자라도록 한 나무는 아니고, 몇 해 자란 어린나무를 마련해서 심었습니다. 씨앗에서 싹이 트며 천천히 자라는 나무를 바라본다면 훨씬 애틋할 텐데, 사람은 그리 오래 못 살기 때문에 일 미터 즈음 자란 어린나무로 심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사월 오일을 두고 나무 심는 날로 삼습니다. 따로 나무를 심는 날이 달력에 적힙니다. 아무래도 이런 기림날 때문이 아니랴 싶은데, 나무는 나무를 심어야 자란다고 으레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무는 나무에서 비롯하여 자라지 않습니다. 풀이든 나무이든 똑같이, 씨앗 하나에서 새 목숨이 비롯합니다. 풀씨에서 풀이 자라고, 나무씨에서 나무가 자라요. 곧, 모든 풀은 꽃을 피고 열매와 씨앗을 맺습니다. 모든 나무 또한 꽃을 피우며 열매와 씨앗을 맺어요.

 나라에서 기리는 날을 여느 사람 힘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생각을 할 수 있고, 내 나름대로 내 살림집에서 요모조모 고치거나 새롭게 돌보면서 지낼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꼭 사월 오일에 나무를 심어야 하지도 않습니다만, 굳이 나무를 심으면서 살아야 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나무를 심는 사람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기도 합니다만, 나로서는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에 앞서 씨앗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곧, 나무심기보다 씨앗심기를 하고, 나무사랑에 앞서 씨앗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느낍니다.


.. 엄마도 예전에 가오루만 한 꼬마 여자 아이였을 무렵, 나무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  (5쪽)


 사람도 씨앗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 하나가 고운 살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납니다. 풀이나 나무 또한 씨앗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참으로 자그마한 씨앗 하나가 고운 흙밭에서 튼튼하게 자라납니다.

 사람은 어머니 고운 속살로 이루어진 밭에서 자라납니다. 풀과 나무는 지구별 고운 흙으로 이루어진 밭에서 자라나요.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다 자란 나무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어린 씨앗이 싹이 틀 만한 빈터가 거의 없는데다가, 빈터가 있더라도 이 빈터에 뿌리를 내린 씨앗이 기쁘게 자라나기는 어렵거든요. 대여섯 해를 지나고 일고여덟 해를 지나며 열 몇 해를 지나야 여느 사람 눈으로 보기에 ‘아, 나무로구나.’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열 해나 스무 해쯤 사람 손길을 타지 않을 만한 빈터가 없어요. 빈터를 놀리지 않는 도시예요. 무언가 건물을 세워야 하고, 하다못해 자동차를 세우는 자리로 쓰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우람하게 다 자란 나무를 몇 천만 원씩 들여서 장만한 다음 땅에 박아야 해요. 시골마을 어디에선가 크게 키운 나무를 사오든, 멧자락 어디에선가 씩씩하게 살아가던 나무를 따로 파내야 합니다.

 문득, 인천에서 살던 일 하나 떠오릅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로 오던 해 봄날이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인데, 인천 도화동에 자리한 인천대학교를 송도에 새로 마련한 도심으로 옮긴다고 하면서, 도화동 옛 도심에 깃든 인천대학교 안팎에 우람하게 자라며 흐드러진 꽃을 피운 벚나무를 모조리 뽑더군요. 학교도 옮기고 벚나무도 옮긴다 했어요.

 학교를 옮기며 텅 비고 마는 건물은 버려지는 셈입니다. 어쩌면 헐어 없앨 수 있어요. 이때에 옛 건물과 함께 옛 건물을 둘러싼 오래된 나무를 싹둑 베어낼 만합니다. 도시 개발업자 눈썰미로는 우람한 나무를 파내어 옮기는 값보다 새로 사들여 박는 데에 들이는 값이 적게 들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나무를 베어 없애지 않고 파내어 옮기는 일이 고맙다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옛 도심 대학교를 새 도심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옛 도심에 살던 사람이 모조리 새 도심으로 옮겨 살지 않아요. 옛 도심 사람은 그대로 옛 도심에서 살아갑니다. 옛 도심 사람들 터전에 오래오래 삶벗으로 있던 나무를 몽땅 파내어 옮기면, 옛 도심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뜻이 될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서 가까운 곳이라, 전망대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훤히 보입니다. 바람이 살랑 불어와 가오루의 머리칼을 흩뜨립니다. 나뭇잎도 사삭사삭 소리 내고요 ..  (19쪽)


 그림책 《커다란 나무가 갖고 싶어》(논장,2003)를 아이와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커다란 나무가 없지만 커다란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는 카오루라는 아이가 마음속으로 펼치는 이야기를 담는 그림책입니다. 커다란 나무에 사다리를 받치고 영차영차 높이높이 올라가서 마을을 휘 내려다보기도 하고, 퍽 높은 자리에 오두막을 지어 이 오두막에서 빵도 굽고 살림도 꾸리며 어린 동생까지 불러 함께 지내면 참으로 좋겠다고 꿈을 꾸는 이야기를 살며시 들려줍니다.

 카오루라는 아이는 커다란 나무에 오두막을 지은 다음 우듬지까지 신나게 기어 올라가서 우듬지에 앉은 곤줄박이한테 인사를 할 뿐 아니라, 이곳에서 지내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참 좋겠지요. 커다란 나무에 오두막을 지어 마을을 멀리까지 바라보면서 탁 트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꿈은 어린 카오루뿐 아니라, 카오루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카오루만 한 나이에 똑같이 품던 꿈이라고 합니다. 어린 날 곧잘 나무타기를 했고, 나무타기를 하며 맛보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아는 카오루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카오루가 꿈꾸는 나무놀이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이윽고, 카오루한테 선물 하나를 살포시 건넵니다. 카오루네 어버이가 카오루한테 건네는 선물이란 곧 ‘나무심기’입니다.


.. 다음 일요일, 아빠와 가오루는 정말로 나무를 심었습니다. 돌참나무라는 건데, 아주아주 커다랗게 자라는 나무라고 합니다. 지금은 가오루 키만 한 나무지만요 ..  (32쪽)


 어린 카오루가 심은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자면 카오루가 어른으로 한참 커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어린 카오루는 어린 카오루가 심은 나무에서 못 놀는지 몰라요. 어린 카오루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어린 카오루만 한 아이를 낳을 무렵에야 어린 카오루가 낳은 어리디어린 아이가 이 나무를 타면서 놀 수 있으리라 봅니다. 또는 카오루가 낳은 아이가 자라 새롭게 낳은 아이 때부터 우람한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놀는지 모르지요.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무는 사람처럼 기껏 백 살도 못 살다가 죽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종이를 만드느니 옷장을 만드느니 무어를 만드느니 하면서 베지 않는다면, 나무는 백 살도 안 되어 죽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열매를 더 빨리 더 많이 얻으려고 나뭇가지를 억지로 휘어 난쟁이 나무가 되도록 하며 열매만 주렁주렁 맺도록 들볶는다면, 이러한 열매나무는 고작 열 해밖에 못 살고 죽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나무다이 살면서 열매를 맺을 때에는 열 해가 아니라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나 거뜬히 살아갑니다. 오백 해쯤 살아가는 감나무에서 얻은 감알이라면, 즈믄 해쯤 살아온 능금나무에서 얻은 능금알이라면, 만 해쯤 살아낸 포도나무에서 거둔 포도알이라면 어떤 맛 어떤 느낌 어떤 기운일까 궁금합니다.

 참말 사람은 고작 백 살을 살아내지 못합니다. 나무한테 백 살 나이란 아무것 아닙니다. 사람들이 눈먼 싸움을 일으키거나 바보스러운 막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삼천 살이나 오천 살뿐 아니라 만 살이나 십만 살도 살아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래오래 씩씩하게 자라던 나무숲은 때때로 벼락을 맞아 숲이 통째로 불타 사라지기도 해요. 송두리째 불타 잿더미가 된 자리에는 새로운 나무씨가 바람을 타고 하나둘 찾아듭니다. 천천히 어린 싹이 자라나며 쉰 해가 지나고 백 해가 지나면 새삼스러이 우거지는 놀라운 새 나무숲이 이루어지고요.

 시골자락 묵정밭에서 여러 해 살아낸 어린 단풍나무를 바라봅니다. 백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어른 단풍나무 몇 그루 있는데, 이 단풍나무에서 봄철에 맺힌 꽃이 지며 씨앗을 맺을 때에, 이 씨앗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꽤 떨어진 곳까지 날아와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렸구나 싶습니다. 이 어린 단풍나무는 너덧 해는 좋이 자란 듯한데 너덧 해는 좋이 자란 듯한 어린 단풍나무 키는 어른 무릎 높이만큼도 안 됩니다. 줄기는 야물딱지게 굵고 잎새는 어른 단풍나무하고 똑같이 생깁니다. 다만, 잎사귀 크기는 어른 단풍나무만큼은 안 돼요.

 어른 단풍나무가 자라는 둘레로도 어린 단풍나무가 몇몇 고개를 내밉니다.수만 수십만 씨앗이 맺혀 땅으로 떨어질 텐데, 이 가운데 몇몇이 용케 뿌리를 내고 줄기를 올립니다.

 버드나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떡갈나무이든 잣나무이든 꿀밤나무이든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자그마한 씨앗 하나 흙땅에 떨어져 기운차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줄기를 올립니다. 줄기를 올린 다음에는 잎을 틔웁니다. 어린나무는 아직 꽃까지 피우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니 열매나 씨앗을 맺지 못합니다. 아직 어리니까 줄기를 굵고 단단히 올리는 데에 온힘을 쏟습니다.

 어린이 카오루는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데에는 힘을 쏟지 못하거나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배웁니다. 제 몸을 씩씩하고 튼튼하게 가꾸는 데에 힘을 쏟습니다. 어린나무도 제 어린 줄기와 가지를 튼튼히 올리거나 뻗는 데에 힘을 쏟겠지요.

 작은 사랑씨 하나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어린 카오루는 ‘커다란 나무 오두막 살림’을 혼자 예쁘게 꾸리는 꿈을 꿉니다. 아직 이렇게 할 수 없으나 예쁘게 꿈을 키우며 몸을 다스립니다. 작은 사랑씨 하나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어린나무는, 햇볕을 듬뿍 쬐고 바람을 실컷 받으며 빗물을 잔뜩 마시는 나날을 보내면서 머잖아 커다란 나무가 되겠지요. (4344.6.1.물.ㅎㄲㅅㄱ)


― 커다란 나무가 갖고 싶어 (무라카미 쓰토무 그림,사토 사토루 글,이선아 옮김,논장 펴냄,2003.8.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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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빨래와 기계빨래


 나는 기계빨래를 하지 않는다. 빨래하는 기계를 다룰 줄 모르기도 하지만, 빨래기계를 장만할 살림돈이 없다. 그러나 빨래기계를 장만하려고 돈을 모은다든지, 빨래기계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빨래기계를 얻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조차 없다.

 나는 두꺼운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얇고 가벼운 옷을 좋아한다. 두꺼운 옷은 빨래하기 힘들다. 물을 짜거나 털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말리기 참 고단하다. 두꺼운 옷 못지않게 두꺼운 이불을 안 좋아한다. 두껍고 무거운 이불이 한결 따뜻할는지 모르지만,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어떻게 빨래하는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얇고 가벼운 이불을 여러 채 덮으며 지내고플 뿐이다.

 아이를 씻긴다. 내 몸을 씻을 때에는 찬물만 쓰지만, 아이를 씻길 때에는 보일러를 돌려 따순 물을 받는다. 첫째는 네 살로 자랐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온몸을 구석구석 문질러 때를 벗긴다. 빼를 벗긴 물은 버리지 않는다. 첫째를 씻기며 벗긴 옷을 옆에 담가 놓는다. 첫째를 다 씻기고 물기를 닦아 새 옷을 입혀 방으로 들이고 나서 빨래하며 헹굴 때에 헹굼물로 쓴다.

 둘째는 갓난쟁이인 만큼 첫째하고는 사뭇 달리 천천히 보드라운 손길로 씻겨야 한다. 둘째를 씻기고 나서 나오는 빨래감은 둘째를 씻길 때에 쓴 물로 헹군다. 따순 물이기 때문에 똥기저귀나 오줌기저귀를 빨기에 좋다. 옆지기 핏기저귀를 이때에 함께 빨면 핏물이 잘 빠진다.

 오늘 새삼스레 기계빨래를 헤아려 본다. 둘째가 태어난 뒤 빨래거리가 다시금 곱배기로 늘었다. 첫째가 태어난 뒤에도 빨래거리는 곱배기로 늘었다. 옆지기와 함께 살기로 한 뒤부터도 빨래거리는 곱배기로 늘었다. 그러니까, 요즈음 내 빨래는 내가 혼자 살던 때하고 견주면 두 곱이 두 곱이 되었다가 다시 두 곱이 된 셈이다. 모두 해서 세 곱이 아니다. 두 곱이 되었다가, 이 부피에서 두 곱이 되었고, 다시 이 부피에서 두 곱이 되었다. 차츰차츰 곱배기로 늘어나는 빨래일이기 때문에, 내 손목이 남아나지 못한다. 첫째가 세이레를 날 무렵에도 손목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둘째 때에는 더욱 고단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나이를 네 살 더 먹었기 때문일 테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지난날에는 아이를 참 많이 낳았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집안 빨래거리를 나누어 주었다. 다른 집안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면서 집안에서 훌륭한 일꾼 몫을 한다. 옆지기가 몸이 튼튼해서 셋째도 낳고 넷째도 낳는다면, 첫째가 크면서 빨래일을 나누어 줄 테며, 둘째도 나누어 줄 테지. 앞으로 우리 집 둘째가 대여섯 살이 되고 예닐곱 살이 될 때까지는 이 아이들 옷가지는 아버지가 다 빨아야 한다고 느낀다. 둘째가 예닐곱 살이 되자면 아버지는 마흔서넛이 된다. 아마 마흔서넛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는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아야 할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열 살을 지나고 열두어 살쯤 되면 저희 옷가지는 저희가 맡아서 빨겠지. 저희 이불도 저희가 빨겠지. 이쯤 되면 아버지도 나이값을 하느라 손아귀 힘이 많이 줄어 빨래하는 힘도 꽤 빠질 테지만, 아이들이 나누어 맡을 일손을 살핀다면, 마흔이건 쉰이건 예순이건 즐거이 집빨래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손빨래를 하면서 늘 생각한다. 어버이 된 나부터 손빨래를 즐기고, 아이 된 우리 집 두 어린이가 손빨래를 즐길 수 있기를 꿈꾼다. 저마다 제 옷을 아끼고, 제 삶을 사랑하며, 제 몸뚱이를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튼튼한 몸뚱이와 물과 비누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손빨래를 할 수 있다. 돈이나 전기나 뭐가 없더라도 내 몸을 믿고 살아가면 아름답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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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뻐?


 네 살 아이를 씻길 때에, 아버지는 네 살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긴다. 네 살 아이는 이제 꽤 무겁다.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기면 팔과 무릎이 꽤 뻑적지근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선 채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고픈 마음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무릎에 누여 머리를 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곯아떨어져 잠자리에 드러누울 때에 이불을 여미며 바라보면 키가 제법 컸다고 느낀다. 마당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 가만히 바라보면 발과 다리와 손과 팔과 허리와 등과 몸을 곧게 잘 편다. 예쁘고 아름답다.

 아버지 무릎에 누운 채 머리를 맡긴 아이가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면서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첫째, “벼리 예쁘지. 벼리 착하지. 벼리 예쁘고 착하지.” 다음으로, “예쁜 벼리인데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예쁜 벼리 맞는지 모르겠네.”

 오늘 저녁 아이를 씻길 때에 아이는 어김없이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둘째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는 “말 잘 들어야 해?” 하고 거듭 묻는다. “말 잘 들어 주셔요. 너무 힘들어요.” 하고 이야기를 한다.

 첫째 아이를 다 씻기고, 할머니와 함께 둘째를 씻긴다. 첫째 아이는 둘째를 씻길 때에 옆에서 요모조모 거들려 한다. 그러나 아직 무척 어린 네 살이기 때문에 제대로 못 거들곤 한다. 보드라운 말씨로 예쁘게 타이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는 씩씩하고 다부지게 일손을 거들려고 애쓴다. 다 씻기고 씻는통을 내갈 때에, 둘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로 바닥을 훔치는 몫을 첫째한테 맡긴다. 첫째는 신나게 바닥 물기를 훔쳐 아버지한테 건넨다.

 아이가 “나 예뻐?” 하고 묻기 앞서, 아이한테 “예쁘구나.” 하고 자주 이야기하면서 오래오래 꼬옥 안으며 지내지 못한다면,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뜻이 없다.

 아이는 꾹 참고 기다린다. 아이는 요사이 새벽마다 코피를 쏟으면서 야무지게 견디며 기다린다. 아이는 제 아버지를 닮아 새벽잠이 없고, 졸려도 애써 참으며 더 개구지게 놀려고 용을 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그야말로 예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픈 옆지기 몫까지 도맡아서 집일과 집살림을 건사하는 어버이 구실을 하나도 못하는 셈이다. 아이도 옆지기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예쁘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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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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