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토마토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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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4
어린이는 좀처럼 못 알아듣는 한자말과 영어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숱한 어른은 어린이가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들으니 잘못”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라면, 철들고 어진 사람이라는 뜻인 ‘어른’이라면, 바로 알아들을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들려주는 낱말과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날개를 펴면서 새말을 손수 엮도록 북돋우는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벼락을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서 아이들한테 들려주어야 어울릴까요?
벼락바늘
어릴적에 어머니하고 마을길을 걷다가 “어머니, 저기 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 뭐예요?” 하고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는 “뭐? 어디?” 하셨고, 나는 “저기 지붕에 길게 솟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요.” 하고 여쭌다. 어머니는 “아, 저거? 저거는 ‘피뢰침’이라고 해.” “네? 뭐라고요?” 하며 선뜻 알아듣지 못 했다. 이제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는 우리 아이가 묻는 똑같은 말을 들었고, 나는 우리 어머니하고 다르게 들려준다. “아, 저 뾰족한 바늘? 저 바늘은 벼락을 모아. 벼락을 받아들이거나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이지. 그래서 ‘벼락바늘’이라고 해. ‘벼락작대’라고 해도 될 테고.”
벼락바늘 (벼락 + 바늘) : 벼락·번개를 모으거나 받아들이는 바늘이나 작대. 벼락·번개가 칠 적에 받아들여서 땅밑으로 곧장 내려가거나 흘러가도록 놓은 길다랗게 끝이 뾰족한 쇠작대. 지붕에 놓곤 한다. (= 벼락작대·벼락막대·번개바늘·번개작대·번개박대·뾰족하다·뾰족이. ← 피뢰침)
잎뜰
잎을 우려서 마시기에 ‘잎물’일 테고, 한자로는 ‘차·다(茶)’라 한다. 해바람비와 이슬과 흙을 푸른숲에서 머금는 잎에 깃드는 기운을 우리거나 내리기에 ‘잎물’일 텐데, 잎내음과 잎빛을 누리는 자리라고 한다면 ‘잎자리’요, ‘잎마당’이면서 ‘잎뜰’이라 일컬을 만하다.
잎뜰 (잎 + 뜰) : 잎을 우리거나 내리는 물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하거나 쉬거나 즐기는 뜰이나 자리나 모임. (= 잎뜨락·잎마당·잎자리·잎놀이·잎맞이·잎길. ← 차회茶會, 다회茶會)
손밥
먼먼 옛날 옛적부터 누구나 모든 일을 스스로 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고 스스로 쉬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바라보았다. 오늘날은 조그마한 집일이나 살림조차 스스로 안 하는 굴레로 내딛는다. 어느 틀(기계)에 넣어 단추만 누르면 그만인데, 이제는 단추조차 안 누르면서 말로 시키는 틀까지 나온다. 그런데 우리말을 보면, “집에서 하는 일”을 ‘집일·집안일’이라고도 하되, 이보다는 ‘살림·집살림’으로 나타내곤 한다.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집·밥·옷’을 놓고서 ‘집일·밥일·옷일’이라 안 했다. ‘집살림·밥살림·옷살림’이라 했다. 수수한 말씨인데, 요새는 ‘건축문화(집문화)·음식문화(밥문화)·복식문화(옷문화)’처럼 한자를 붙여서 나타내기도 하더라. 일본말 ‘문화(文化)’는 우리말로 옮기면 ‘살림’이다. 사람으로서 사랑을 하며 살리는 길이니 ‘살림’이다. 지난날에는 언제나 누구나 ‘손일·손살림’이었기에 손수 짓고 가꾸고 빚고 차리고 일구었다. 이러한 결을 새삼스레 되새기며 ‘손밥’을 차리고 ‘손수밥’을 짓고 ‘스스로밥’을 하는 오늘을 누려 본다.
손밥 (손 + 밥) : 손수 짓거나 하거나 차려서 누리는 밥. 남이 차려주기를 바라지 않거나, 밖에서 돈으로 사먹지 않으며, 스스로 밥살림을 하면서 누리는 밥. (= 손수밥·스스로밥. ← 자취自炊, 자취생활,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식 요리, 가정요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