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27 : -의  것 솔직함 적나라함


가슴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꺼내 보여주는 것은 솔직함이 아닌 적나라함이 될 수도 있다

→ 가슴 깊은 이야기까지 보여주면 꾸밈없기보다는 발가벗을 수도 있다

→ 가슴 깊은 이야기까지 들려주면 고스란보다는 민낯일 수도 있다

《심심과 열심》(김선희, 민음사, 2020) 71쪽


“가슴 깊은 곳의 이야기”에서 ‘-의’는 군더더기 일본말씨입니다. ‘-의’를 털면 단출히 “가슴 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가슴 깊거나 속으로 깊이 들려주거나 보여주는 이야기가 왜 ‘발가벗기’라고 여겨야 할까요? 얼핏 벌거벗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만, 속빛을 가만히 밝혀야 비로소 삶글이요 살림글이자 사랑글입니다. 그대로 적고 고스란히 옮길 줄 알 적에는 ‘까밝히’지 않아요. 민낯과 맨몸을 드러내면서 티없이 빛나는 숲글로 깨어나는 셈입니다. ㅍㄹㄴ


솔직하다(率直-) :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적나라하다(赤裸裸-) : 1. 몸에 아무것도 입지 아니하고 발가벗다 2.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어 숨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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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26 : 루틴 습관 원고 기간 매일 양


어느새 이 루틴에 습관이 붙어서 책 원고를 쓰는 기간이 되면 매일 비슷한 양을 일하고

→ 어느새 이런 버릇이 붙어서 책을 쓸 적에는 날마다 비슷하게 쓰고

→ 어느새 이렇게 길을 들여서 책을 쓸 때에는 나날이 비슷비슷 일하고

《심심과 열심》(김선희, 민음사, 2020) 86쪽


“루틴에 습관이 붙어서”는 영어랑 한자말을 나란히 겹쳐쓴 말씨입니다. “버릇이 붙어서”나 “몸에 붙어서”나 “길을 들여서”로 바로잡습니다. “책 원고를 쓰는 기간이 되면”도 겹말씨예요. “책을 쓸 적에는”이나 “책을 쓸 때이면”으로 고쳐씁니다. “비슷한 양”에서 ‘양’이라는 외마디한자말은 군더더기입니다. 늘 비슷하게 쓰니 ‘비슷하게’라 하면 되어요. 늘 비슷비슷 일하니 ‘비슷비슷’이라 합니다. ㅍㄹㄴ


루틴(routine) : [정보·통신]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르는 경우에 쓴다

습관(習慣) :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원고(原稿) : 1. 인쇄하거나 발표하기 위하여 쓴 글이나 그림 따위 2. = 초고

기간(其間) 어느 때부터 다른 어느 때까지의 동안

매일(每日) : 1. 각각의 개별적인 나날 2. 하루하루마다

양(量) : 1. 세거나 잴 수 있는 분량이나 수량 2. 분량이나 수량을 나타내는 말 3. 음식을 먹을수 있는 한도 4. = 국량(局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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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9.15.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하현 글, 빌리버튼, 2019.2.25.



어제그제 부산에서 편 이야기를 돌아보며 고흥으로 돌아간다. 이웃님 한 분이 “도서관에서 달마다 잡지를 버리는데, 지나간 잡지도 나중에 읽을거리가 많은데 왜 버려야 하는지 안타까워요.” 하고 말씀하시기에 문득 ‘책품책숲’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책을 품는 책숲”이라는 뜻이면서 “책으로 품고서 책으로 이룬 숲”이라는 얼개이다. 부산서 완도까지 가는 07:05 시외버스는 순천을 거친다. 순천까지 타고서 고흥버스로 갈아탄다. 고흥읍에서는 옆마을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로 갈아탄다. 함박비가 시원스레 쏟는다. 큰아이가 옆마을까지 마중을 나왔다. 둘이 빗길을 가만히 걷는다. 빗소리가 말소리를 잡아먹는 즐거운 논둑길이다. 작은아이도 논둑길에서 만난다. 우리는 오늘 논둑에서 벼락도 구경한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를 읽었다. 끝내 에스파냐말을 품지는 못 했다는 줄거리이되, 너무 애써서 이웃말을 품지 않아도 되는 줄 받아들였다는 삶이다. 우리는 거침없이 말할 줄 알 까닭이 없다. 마음을 밝히고 생각을 펼 낱말을 혀에 얹으면서 이야기로 여미면 넉넉하다. 경상사람이 전라말을 빈틈없이 익혀야 하지 않지. 전라사람이 경상말을 훌륭히 써야 할 까닭이 없다. 서로 만나서 마음을 읽으면 어질고 반가울 뿐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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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9.14.


《한나 아렌트의 말》

 한나 아렌트 글/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6.1.25.



연산동 길손집에서 새벽을 맞는다. 등허리를 잘 폈다. 100-1 버스를 타고서 〈책과 아이들〉로 건너간다. 어제에 이은 ‘말닿기 마음닿기’ 모임을 꾸린다. 마음이 있어야 말이 있고, 마음이 없으면 꾸밈소리만 있다. “마음에 없는 말”이란 “겉으로 치레하는 소리”일 뿐이니, 마음에도 없지만 삶으로도 없이 생각조차 안 하는 채 흘러나오는 소리이기에 ‘이야기’나 ‘노래’로 안 뻗는다. 마음으로 지핀 말이기에 이야기와 노래로 피어난다. 마음을 살찌우는 말이란, 이미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노래한 말인 셈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는다. 우리는 한나 아렌트를 어떻게 읽는 오늘일까? ‘듣기 좋은’ 말만 고르면서 ‘나를 살피는 도움말’은 영 ‘듣그럽다’고 꺼리는 나라이지 않나? 피와 살이 되는 말과 밥과 바람과 볕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 쓰고 시고 맵고 짠 숱한 맛이 어울리기에 ‘나를 살리는 말·밥·바람·볕’인걸. 갈수록 온나라가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로 기울고 흔들린다. “쓰니 삼키고 달면 놓는다”라는 배움길을 알아보는 이웃을 그린다. 모든 다 다른 낟알과 잎과 남새와 열매가 다 다르게 푸른물인 줄 알아채는 동무를 그린다. 등짐을 묵직하게 짊어지고 걸으면 땀방울이 단내 같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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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토마토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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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4


어린이는 좀처럼 못 알아듣는 한자말과 영어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숱한 어른은 어린이가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들으니 잘못”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른’이라면, 철들고 어진 사람이라는 뜻인 ‘어른’이라면, 바로 알아들을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들려주는 낱말과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날개를 펴면서 새말을 손수 엮도록 북돋우는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벼락을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서 아이들한테 들려주어야 어울릴까요?



벼락바늘

어릴적에 어머니하고 마을길을 걷다가 “어머니, 저기 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 뭐예요?” 하고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는 “뭐? 어디?” 하셨고, 나는 “저기 지붕에 길게 솟은 뾰족한 바늘 같은 작대기요.” 하고 여쭌다. 어머니는 “아, 저거? 저거는 ‘피뢰침’이라고 해.” “네? 뭐라고요?” 하며 선뜻 알아듣지 못 했다. 이제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는 우리 아이가 묻는 똑같은 말을 들었고, 나는 우리 어머니하고 다르게 들려준다. “아, 저 뾰족한 바늘? 저 바늘은 벼락을 모아. 벼락을 받아들이거나 모아서 땅밑으로 흘려보내는 작대기이지. 그래서 ‘벼락바늘’이라고 해. ‘벼락작대’라고 해도 될 테고.”


벼락바늘 (벼락 + 바늘) : 벼락·번개를 모으거나 받아들이는 바늘이나 작대. 벼락·번개가 칠 적에 받아들여서 땅밑으로 곧장 내려가거나 흘러가도록 놓은 길다랗게 끝이 뾰족한 쇠작대. 지붕에 놓곤 한다. (= 벼락작대·벼락막대·번개바늘·번개작대·번개박대·뾰족하다·뾰족이. ← 피뢰침)



잎뜰

잎을 우려서 마시기에 ‘잎물’일 테고, 한자로는 ‘차·다(茶)’라 한다. 해바람비와 이슬과 흙을 푸른숲에서 머금는 잎에 깃드는 기운을 우리거나 내리기에 ‘잎물’일 텐데, 잎내음과 잎빛을 누리는 자리라고 한다면 ‘잎자리’요, ‘잎마당’이면서 ‘잎뜰’이라 일컬을 만하다.


잎뜰 (잎 + 뜰) : 잎을 우리거나 내리는 물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하거나 쉬거나 즐기는 뜰이나 자리나 모임. (= 잎뜨락·잎마당·잎자리·잎놀이·잎맞이·잎길. ← 차회茶會, 다회茶會)



손밥

먼먼 옛날 옛적부터 누구나 모든 일을 스스로 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고 스스로 쉬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바라보았다. 오늘날은 조그마한 집일이나 살림조차 스스로 안 하는 굴레로 내딛는다. 어느 틀(기계)에 넣어 단추만 누르면 그만인데, 이제는 단추조차 안 누르면서 말로 시키는 틀까지 나온다. 그런데 우리말을 보면, “집에서 하는 일”을 ‘집일·집안일’이라고도 하되, 이보다는 ‘살림·집살림’으로 나타내곤 한다. 누구나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집·밥·옷’을 놓고서 ‘집일·밥일·옷일’이라 안 했다. ‘집살림·밥살림·옷살림’이라 했다. 수수한 말씨인데, 요새는 ‘건축문화(집문화)·음식문화(밥문화)·복식문화(옷문화)’처럼 한자를 붙여서 나타내기도 하더라. 일본말 ‘문화(文化)’는 우리말로 옮기면 ‘살림’이다. 사람으로서 사랑을 하며 살리는 길이니 ‘살림’이다. 지난날에는 언제나 누구나 ‘손일·손살림’이었기에 손수 짓고 가꾸고 빚고 차리고 일구었다. 이러한 결을 새삼스레 되새기며 ‘손밥’을 차리고 ‘손수밥’을 짓고 ‘스스로밥’을 하는 오늘을 누려 본다.


손밥 (손 + 밥) : 손수 짓거나 하거나 차려서 누리는 밥. 남이 차려주기를 바라지 않거나, 밖에서 돈으로 사먹지 않으며, 스스로 밥살림을 하면서 누리는 밥. (= 손수밥·스스로밥. ← 자취自炊, 자취생활, 백반白飯, 가정식家庭食, 가정식 백반, 가정식 요리, 가정요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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