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이금옥 지음, 박민의 그림 / 보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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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곳에 사는 개구쟁이 ‘청개구리’
 [그림책이 좋다 51] 이금옥(글)+박민의(그림), 《청개구리》



- 책이름 : 청개구리
- 글 : 이금옥
- 그림 : 박민의
- 펴낸곳 : 보리 (2007.3.30.)
- 책값 : 9800원





 (1) 옛이야기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옛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려주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주셨는가 떠올려 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저나 형한테 옛이야기를 얼마나 이야기해 주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형이나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한 자락쯤 들려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한테든 형한테든 옛날 옛적 이야기를 얼마만큼 이야기해 주었나 곱씹어 봅니다.

 형한테는 들려주었는지 모르고, 저도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어머니한테나 아버지한테나, 또 할머니한테나 할아버지한테나 옛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듣고 자란 옛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제 둘레에 책이 얼마 있지 않았으나 옛날이야기를 제법 읽어서 알기도 했습니다.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속삭이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 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4쪽)


 집에는 동화책 한 권 마땅히 없었어도 학교에는 학급문고라고 해서 백 권쯤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국민학교 때에는 학급에 있던 책 백 권도 참 ‘많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가면 그 학급문고하고는 손 흔들며 헤어져야 하는데, 한 해 동안 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거든요. 죽어라 다 읽어내 보자고 부딪혔으나 쉰 권까지 겨우 읽고 두 손을 들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한 반에 그 학급문고를 거의 다 읽은 계집아이가 있어서, 어린 마음에 ‘나도 저 아이처럼 부지런히 읽어야지’ 하는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읽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딱히 책읽기가 좋아서 읽은 책이 아니었기에, 읽기는 징하게 읽었어도 마음에는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아니, 아예 안 남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책읽기에 푹 빠진 동무아이를 보면서, ‘책에 무슨 재미가 있기에 저렇게 얌전하게 앉아서 책에 빠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더운 여름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확 몰려들고 하얀 커튼이 나부끼는 가운데 창가에 앉는 동안, ‘책읽기란 이런 느낌일까?’ 하고 돌아보곤 했습니다. ‘뭐, 오늘 뛰놀지 못한 만큼 내일 신나게 뛰놀면 되지’ ‘오늘 못 논 만큼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동네 동무들하고 숨바꼭질 하고 놀면 되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청구개리 엄마는 부지런한 엄마.
아침부터 늦게까지
어이구, 너무 바빠.
짤까당 가다닥 짤까당 가다닥
쉴새없이 베를 짜고
바느질 하고요. (6쪽)



 그 어릴 때 읽은 몇 가지 책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바로 〈청개구리〉입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인지 모릅니다만, 이제 와서 가만히 돌아보면, 이원수 님이나 이주홍 님이 고쳐쓴 옛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이든 괜찮습니다. 저로서는 〈청개구리〉는 열 번을 읽어도 열 번 모두 그때그때 모습만 눈에 선하면서 새롭게 읽었고, 끝에 이르러 왜 이처럼 눈물겹게 마무리가 되어야 하나 싶어서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내 삶은 얼마나 청개구리인가 하고 뉘우치기도 했는데, 이렇게 뉘우친다고 해 보아야, 그 어린 마음은, 이내 개구쟁이 짓을 뉘우친 일을 잊어버리고는 또 개구쟁이 장난질이 펼쳐졌습니다. 고무줄 끊기는 안 했지만(다른 이 재산을 다치게 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참 짓궂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교단으로 불려가는 아이 엉덩이를 몰래 겨냥해서 똥침 놓기 따위를. 이렇게 하면 그 녀석은 날 때려 주고 싶고 짜증을 부리고 싶어도 못하니까.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면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쫓아올 때 안 잡히려고 교실바닥을 휘저으며 내빼야 했고.


청구개리는 장난꾸러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아, 너무 신나.
연줄 끊기, 편싸움, 돌 던지기.
맨날 동무들을 울리기만 했어요. (8쪽)






 그나저나, 청개구리는 왜 그리도 어머니를 속썩이는 짓만 골라서 했을까요. 어머니는 왜 그리도 청개구리를 다그치지 못했을까요. 하루이틀이 아니고 한 번 두 번이 아닌 장난질은 왜 그리도 깊어만 갔고는지.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 하여도, 아이를 따끔하게 꾸짖거나 나무라지 못할 까닭이 있었을는지.

 처음 〈청개구리〉를 읽던 지난날부터 그림책 《청개구리》를 펼치는 이제까지, 아이와 어머니 사이를 곰곰이 되짚습니다. 어머니도 어릴 때에는 자기 아이처럼 말괄량이였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약도 듣지 못하는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마는 어머니 몸처럼, 아이한테도 어떤 꾸지람이나 타이름은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는지요. 한쪽 어버이가 없이 홀몸으로 살림 꾸리랴 아이 키우며 가르치랴 몹시 고되고 벅찼기에 그만 손을 못 쓰고 말았는지요.

 청개구리네 이웃집 어르신들은 왜 이웃 아이 청개구리를 바르게 다잡아 이끌어 가지 못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제 삶 꾸려 나가기에 바빠서 청개구리네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남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면서 살았는지요.

 열 번 읽고 백 번 읽고 천 번쯤 읽은 〈청개구리〉인데,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이 뻔한 이야기에 뻔한 줄거리가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으면서 언제까지나 무겁게 하는가 싶어서.


엄마의 딱 한 가지 소원은
봄이면 진달래꽃 복숭아꽃 피고
새들이 훨훨 즐겨 찾아오는
양지바른 산언덕에
조용히 잠드는 것이었어요. (21쪽)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밤낮 힘껏 일하며 살림이 조금 피게 되면, 후유 한숨을 돌린 다음 아이를 다독이려고 했을까요. 저 또한 아이 아버지가 되면서 느끼지만, 하루 내내 아이와 어울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노라면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잠은 잠대로 잘 수 없으면서 일거리는 일거리대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인 저와 어머니인 옆지기도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밥벌이 될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자기가 밥벌이할 까닭도, 자기 밥을 자기가 차릴 일도, 자기 옷을 자기가 빨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면. 또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리면. 신나게 놀기를 바라고,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며, 그지없이 뒹굴기를 바랍니다.

 청개구리 장난이 좀 짓궂기는 했어도, 아이 때에는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두 번 했다가 이내 맛이 들리고 재미가 납니다. 또, 또래 동무들이 자기하고 어울려 주지 않으면 부러 못살게 구는 장난을 생각해 냅니다. 청개구리가 저지른 장난은 못된 장난이기는 했어도, 자기와 살갑게 놀아 주는 동무가 없으니, 차츰차츰 마음 한구석이 비뚤어지게 되면서 동무들을 괴롭히고, 또 집에서도 어머니 타이름하고는 어긋난 쪽으로 자꾸자꾸 나아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참된 사랑과 믿음으로 청개구리한테 다가오지 않으니, 청개구리 스스로도 마음을 열지 않을 뿐더러, 더욱 모질게 장난질에 매일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객객, 엄마.
마지막 부탁만은 꼭 들어 드릴게요!”
청개구리는 물이 찰랑거리는 강기슭에
엄마 무덤을
정성껏 만들어 드렸답니다. (26쪽)



 기다림만한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보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에, 자기 기다림을 놓았습니다. 진작에 했어야 할 아이 다스리기를, 숨을 거둘 때에 이르러서야 하고 마니까, 마지막때에 비로소 눈을 뜬 청개구리는 어머니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온삶을 눈물로 보내며 기다리던 어머니도, 온삶을 장난질로 보내며 제 모습을 잃었던 아이도, 또다시 눈물바람으로 뒷삶을 잇게 됩니다.

 “아침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에서 딱 두 식구뿐이지만 오붓하게 살던 청개구리네인데. 비록 가난하고 살림은 팍팍했어도 마음속에 곱고 따뜻한 사랑을 잃지 않으며 살았던 청개구리네인데.





 (2) 재일조선인한테서 받는 선물


 《청개구리》는 재일조선인이 글을 새로 쓰고 그림을 알뜰히 넣으며 이루어낸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를 잃고 딴나라에서 살지만, 딴나라에서 살더라도 똑같은 목숨붙이인 이웃 일본사람한테까지 우리 겨레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 마음이 열매를 맺어서 태어난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 아닌 딴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고유한 우리 옷을 즐겨입을 뿐 아니라, 요즘 삶에 걸맞게 잘 고쳐서 입고 있는 재일조선인들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그림책입니다. 재일조선인도 한국사람이요 한국땅 한겨레도 한국사람이며 중국땅과 러시아땅 한겨레도 똑같은 한국사람임을 깨닫는 한편,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 마음결로 빚어낸 그림책입니다.

 《청개구리》를 보면, 수많은 ‘어른 청개구리’와 ‘아이 청개구리’가 나오는데,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옷차림도 어느 하나 같지 않습니다. 키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얼굴도 다릅니다. 옷차림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를 테고, 즐기는 놀이가 다른 만큼 속에 품은 꿈도 다를 테지요.

 무엇보다도, 〈청개구리〉라는 옛이야기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한겨레들이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물려서 내려온 삶임을 고이 느끼도록 해 주는 글이요 그림이 담긴 그림책 《청개구리》입니다.


.. 아득한 옛적, 어머니께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  (글쓴이 이금옥) / .. 나는 재일 조선인 2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다섯 남매를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는데,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옛이야기를 참 많이 들려주셨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놓인 일은 아직도 생생해요 ..  (그린이 박민의)


 서민이라고도 할 테고, 백성이라고도 할 테며, 낮은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터입니다. 논밭을 일구고 베틀을 밟으며 손으로 빨래를 하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물에서 놀고 고샅에서 놀며 논밭이랑 산과 들에서 노는 사람(아이)들입니다.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덮으며 맨발로 땅을 밟고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라는 이 땅 사람들입니다.

 조용히 꾸리는 삶이며, 호젓하게 가꾸는 삶이고, 다소곳이 닦아 온 삶입니다. 이 삶을 옛이야기라는 틀에 담았습니다. 도란도란 밤을 밝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아비나 지어미가 지은, 또는 지아비와 지어미도 당신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듣고서 자란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사람 일에 눈을 뜨며 제 삶에 눈을 뜹니다.

 옛이야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삶을 가만히 되새기게 해 주는 한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아이들 스스로 짧지만 이제까지 보내 온 삶을 되짚으면서 앞으로 꾸려 갈 삶을 내다보게 해 줍니다.

 퍽 흔히, 꽤 자주 새롭게 고쳐지고 다시 나오는 옛이야기 〈청개구리〉인데, 재일조선인 두 사람이 엮어낸 그림책 《청개구리》는 두 분 재일조선인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뼛속 깊이 맛보는 동안 몸에 아로새기진 눈물과 웃음이 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씨앗은 아프면서 새로 태어나고, 사람도 아프면서 큰다고 하는데, 아픔을 먹은 사람들은 외려 기쁜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참 아름답도록. 거룩하도록. (4341.9.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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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와 빨래와 책읽기


 - 1 -

 아기가 8월 16일에 태어났습니다. 한가위 명절인 오늘은 9월 14일. 한 달이 서른 날이기도 하고 서른한 날이기도 하니, 오늘은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갓 태어난 아기, 갓난아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절에 어디로 가지 못합니다. 아니,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옆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전거는 잘 타지만, 제 자전거 짐수레에는 아이만 둘 태울 수 있지 어른은 태울 수 없습니다. 옆지기만 시외버스를 타고 부모님 댁에 찾아갈 수 있을 터이나, 옆지기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서 회음부를 자르는 바람에 몸이 많이 다치고 아파서 자리에 앉지도 못합니다. 서기는 하되 걷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든데 시외버스에서 자리를 얻어 앉는다고 하여도 두 시간 넘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자가용을 몰 줄 알고, 자가용을 끌고 간다고 해도 못 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세 식구는 한가위 명절을 우리 살림집에서 조용하게 보냅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고 사니까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한들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길러 본 분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는 데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옆에 붙어서 아기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디 텔레비전에 눈이 갑니까. 더구나, 갓난아기한테 텔레비전 전자파를 쏘이게 하면 안 되지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는, 시간마다 옆지기와 나란히 누워서 젖을 빱니다. 이동안 저는 씻는방에서 아기 기저귀와 옆지기 기저귀와 우리 옷가지를 빱니다. 오늘은 아기와 옆지기가 덮는 담요까지 석 장 빨아냅니다.

 손빨래는 제가 혼자 살림을 하던 1995년부터 이제까지 줄곧 이어왔습니다. 여태껏 모든 빨래는 손빨래로 너끈히 해냈고 이불빨래든 뭐든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기 기저귀 빨래 앞에서는 두 손을 듭니다. 청바지를 한 날에 여러 장 빨았어도, 추운 겨울날 군대에서 얼음물로 야상을 빨았어도 아프지 않던 손바닥이요 손가락인데, 기저귀 빨래 한 달 만에 손가락 마디마디 저리지 않은 데가 없고, 팔뚝과 어깨죽지까지 몹시 결립니다. 씻는방 바닥에서 비빔질을 하는데 이거야 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억지로 억지로, 온몸을 던져서 겨우 비빕니다.

 엊그제부터 손가락이 다시 아픕니다. 기저귀 빨래 며칠 만에 손가락과 손바닥이 아프더니 새 굳은살이 돋았는데, 이번에는 세 번째로 아픔이 찾아오면서 세 번째로 새로운 굳은살이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바닥에 배입니다. 맨손으로 온갖 일을 하고, 책을 수만 권 나르고, 자전거를 열 몇 시간을 타면서도 이렇게까지 굳은살이 박인 적이 없습니다. 신문딸배를 하면서도 이렇게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습니다. 새 목숨을 부여받고 태어난 아기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지아비한테 이런 어마어마한 빨래감을 선사하면서 ‘여태까지 해 온 빨래는 웃음거리밖에 아녀라. 내 기저귀 빨래쯤 치러내야 참 빨래지.’ 하고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 2 -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생각을 새삼스레 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꼭 여쭐 생각인데, 우리 아버지가 우리 형이나 내 기저귀를 손빨래로 빨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집에 세탁기를 들인 때는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가운데 무렵.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 집은 손빨래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떠올리기로는, 집안 빨래는 모두 어머니가 하셨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제 국민학교 때 본 우리 어머니 손입니다. 그때 저는 열 살 남짓이었고 어머니는 서른 가운데무렵이었지 싶은데, 그때 제 생각으로는 어머니가 나이가 참 ‘많았’습니다. 제 또래동무들 어머님이 퍽 젊었기에 우리 어머니는 서른 가운데무렵밖에 안 되었어도 나이가 많다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때 우리 어머니 나이는 지금 제 나이와 얼추 비슷했을 텐데, 어머니 손은 아주 누랬습니다. 핏기를 찾아볼 수 없도록 누랬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손은 왜 이렇게 누래?” 하고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말씀이 없이 쓴웃음인지 빙긋웃음인지 웃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어머니 나이쯤 되면 우리 어머니 손 빛깔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올해 나이 서른넷. 아기가 백 일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서른다섯. 날마다 하루 1/4쯤 빨래하는 데에 들이면서 제 손은 지난날 우리 어머니 손마냥 거칠고 누런 빛을 띄면서 굳은살이 몇 겹으로 박입니다. 자잘한 생채기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칼질을 하며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비비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아기 낳기 앞서까지는 날마다 방바닥을 걸레질로 훔쳤는데, 요사이는 방바닥 걸레질도 못합니다. 걸레질할 짬도 안 나지만, 힘도 없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옛날, 내 어릴 적에 온갖 집안일을 다하시면서도 방바닥을 꼬박꼬박 날마다 걸레질을 하면서 훔치셨다고. 그러는 가운데 바람이 들어 자리에 누워 꼼짝을 못하는 할아버지 똥오줌 받아내기에다가 수발까지 다 하셨고.





 - 3 -

 아침나절, 아기가 죽어라 울어댑니다. 왜 우는지는 우리 두 사람이 알 길이 없습니다. 하두 똥을 지려서 똥구멍이 아파 우는지, 날이 많이 더워 우는지, 동네 공기가 나빠(동네에 공장이 많고 차도 많으니) 코가 막혀 우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씻기는 동안, 아기가 배고파서 울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두 시간에 한 번 젖을 먹는 아기이지만, 꼭 두 시간 만이 아닌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만에도 젖을 먹고 싶을 테니까요.

 낮나절, 아기는 아주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도 깨지 않습니다. 하긴, 두 시간에 한 번 젖을 먹는다고 해서 꼭 두 시간을 맞추지는 않고, 세 시간에 한 번 먹기도 하니까요.

 옆지기는 아기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모처럼 이루어진 평화로운 때, 책장을 가만가만 넘깁니다. 그러나 잠도 자야 할 텐데. 밤에 아기가 오줌이나 똥을 눈 다음 보채면 젖을 물려야 하는데,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이렇게 책을 읽어도 되나.

 그러나 지아비 된 사람은 또 지아비 된 사람대로 낮나절에 잠들지 못합니다. 지아비 된 사람도 책을 펼치고 글을 몇 줄 끄적입니다. 그러다가는 밤 사이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해치웁니다. 다른 빨래도 확 해 버립니다.

 졸린 몸이었어도 이렇게 빨래를 해치우고 보면 졸음이 싹 달아납니다. 그러면서 보리술 생각이 납니다. 흘린 땀방울만큼 뭔가 속으로 집어넣고 싶습니다. 맨마음으로는 잠이 오지 않고, 보리술 한두 잔 몸속에 집어넣어야 달게 잠이 듭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나마 달게 잠을 자야 비로소 밤에도 아기하고 신나게 기저귀 다툼을 치를 수 있습니다.


.. 그러다가 2003년에 이라크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친구들은 온통 이라크에서 전쟁을 중단하자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보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매달려 있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써야 할 자원까지 고갈시키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환경보호란 있을 수 없으며 파괴만이 있을 뿐이다. 기후변화 같은 중요한 문제와 산업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부는 국가 안보가 위협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 방위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석유 같은 자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정부의 책임인가? 석유회사의 책임인가? 군수산업체의 책임인가? 자동차회사의 책임인가? 자동차 판매상의 책임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의 책임인가?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그물코,2008) 282∼283쪽


 모든 빨래와 일거리를 끝낸(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만 끝낸) 다음,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멍가게로 찾아가서 보리술 석 병을 사 옵니다. 몸을 씻고 나서 한 병씩 꺼내어 마십니다. 한 병씩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아기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싱긋 웃으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 병으로 괴로워하다 죽었기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병이 낫도록 그것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낫지 않은 것은 사실상 실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병을 그대로 인정하고 마지막을 신에게 맡기기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괴로움 속에서도 감사로 가득 찬 마음과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고맙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제이북,2003) 41쪽


 오늘은 모처럼 꽤 많이 읽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아기가 이처럼 오래도록 조용히 잠든 때, 저나 옆지기나 퍽 오래 책읽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고, 저도 자전거를 타고 구멍가게 마실을 할 수 있으며, 잠깐이나마 밀린 일거리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기가 오래도록 젖을 물지 않으니 옆지기는 젖이 불어서 괴롭습니다. 얼른 아기가 깨어나서 젖을 물어야 할 텐데 하면서 아픔을 참습니다. 잘 잠든 아기를 억지로 깨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보채도 걱정이지만, 보채지 않아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누구를 닮았겠습니까. 지아비와 지어미를 닮았을 테지요. 그리고 지아비와 지어미가 살아가는 대로 물려받아서 자기도 그처럼 살아갈 테지요. 우리 두 사람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부대끼고 껴안느냐에 따라서, 이 아이도 제 나름대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부대끼고 껴안을 테지요.

 이제 저녁을 먹고 밤새워 새벽까지 아기하고 신나게 기저귀 다툼을 치를 때가 다가옵니다. 읽던 책을 모두 덮습니다. (4341.9.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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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책


 아기 낳아 기르면서 육아책 말고는 볼 겨를이 없더라는 어느 분.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육아책을 곧잘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큰 깨우침과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던 때에도 즐겨 찾으면서 읽었고, 기쁘게 받아들이며 마음에 담았다. (4341.9.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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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통 털기


 부평역 계단. 동냥하느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아저씨를 본다. 종이잔 하나 내어놓고 있다. 저러면 천 원짜리 넣기도 어렵겠네. 앞가방 열고 쇠돈 담은 필름통 꺼낸다. 뚜껑을 열고 그대로 쏟아붓는다. 촤르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뭔가 돈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조그마한 종이잔을 내밀고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냥꾼 아저씨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종이잔에 10원 한 닢이나마 보태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필름통에 가득 담겨 있던 쇠돈을 모두 쏟아부은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다. 모쪼록 따순 밥 한 그릇이라도 자시길. 술은 조금만. 오른손이 왼손보다 갑절은 큰 동냥꾼 아저씨야. 무겁던 앞가방이 가벼워졌다.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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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으며 다니기


 자전거로 달려도 울퉁불퉁.
 두 다리로 걸어도 울퉁불퉁.
 버스 타고 움직여도 울퉁불퉁.
 울퉁불퉁이 싫어
 구석진 한 자리에 서서 책을 읽을라치면
 툭툭 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 나라 길은
 책 읽으며 다니지 말라 하는 길.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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