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털기


 부평역 계단. 동냥하느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아저씨를 본다. 종이잔 하나 내어놓고 있다. 저러면 천 원짜리 넣기도 어렵겠네. 앞가방 열고 쇠돈 담은 필름통 꺼낸다. 뚜껑을 열고 그대로 쏟아붓는다. 촤르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뭔가 돈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조그마한 종이잔을 내밀고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냥꾼 아저씨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종이잔에 10원 한 닢이나마 보태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필름통에 가득 담겨 있던 쇠돈을 모두 쏟아부은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다. 모쪼록 따순 밥 한 그릇이라도 자시길. 술은 조금만. 오른손이 왼손보다 갑절은 큰 동냥꾼 아저씨야. 무겁던 앞가방이 가벼워졌다.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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