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이금옥 지음, 박민의 그림 / 보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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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곳에 사는 개구쟁이 ‘청개구리’
 [그림책이 좋다 51] 이금옥(글)+박민의(그림), 《청개구리》



- 책이름 : 청개구리
- 글 : 이금옥
- 그림 : 박민의
- 펴낸곳 : 보리 (2007.3.30.)
- 책값 : 9800원





 (1) 옛이야기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옛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려주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주셨는가 떠올려 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저나 형한테 옛이야기를 얼마나 이야기해 주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형이나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한 자락쯤 들려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한테든 형한테든 옛날 옛적 이야기를 얼마만큼 이야기해 주었나 곱씹어 봅니다.

 형한테는 들려주었는지 모르고, 저도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어머니한테나 아버지한테나, 또 할머니한테나 할아버지한테나 옛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듣고 자란 옛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제 둘레에 책이 얼마 있지 않았으나 옛날이야기를 제법 읽어서 알기도 했습니다.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속삭이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 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4쪽)


 집에는 동화책 한 권 마땅히 없었어도 학교에는 학급문고라고 해서 백 권쯤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국민학교 때에는 학급에 있던 책 백 권도 참 ‘많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가면 그 학급문고하고는 손 흔들며 헤어져야 하는데, 한 해 동안 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거든요. 죽어라 다 읽어내 보자고 부딪혔으나 쉰 권까지 겨우 읽고 두 손을 들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한 반에 그 학급문고를 거의 다 읽은 계집아이가 있어서, 어린 마음에 ‘나도 저 아이처럼 부지런히 읽어야지’ 하는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읽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딱히 책읽기가 좋아서 읽은 책이 아니었기에, 읽기는 징하게 읽었어도 마음에는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아니, 아예 안 남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책읽기에 푹 빠진 동무아이를 보면서, ‘책에 무슨 재미가 있기에 저렇게 얌전하게 앉아서 책에 빠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더운 여름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확 몰려들고 하얀 커튼이 나부끼는 가운데 창가에 앉는 동안, ‘책읽기란 이런 느낌일까?’ 하고 돌아보곤 했습니다. ‘뭐, 오늘 뛰놀지 못한 만큼 내일 신나게 뛰놀면 되지’ ‘오늘 못 논 만큼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동네 동무들하고 숨바꼭질 하고 놀면 되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청구개리 엄마는 부지런한 엄마.
아침부터 늦게까지
어이구, 너무 바빠.
짤까당 가다닥 짤까당 가다닥
쉴새없이 베를 짜고
바느질 하고요. (6쪽)



 그 어릴 때 읽은 몇 가지 책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바로 〈청개구리〉입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인지 모릅니다만, 이제 와서 가만히 돌아보면, 이원수 님이나 이주홍 님이 고쳐쓴 옛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이든 괜찮습니다. 저로서는 〈청개구리〉는 열 번을 읽어도 열 번 모두 그때그때 모습만 눈에 선하면서 새롭게 읽었고, 끝에 이르러 왜 이처럼 눈물겹게 마무리가 되어야 하나 싶어서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내 삶은 얼마나 청개구리인가 하고 뉘우치기도 했는데, 이렇게 뉘우친다고 해 보아야, 그 어린 마음은, 이내 개구쟁이 짓을 뉘우친 일을 잊어버리고는 또 개구쟁이 장난질이 펼쳐졌습니다. 고무줄 끊기는 안 했지만(다른 이 재산을 다치게 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참 짓궂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교단으로 불려가는 아이 엉덩이를 몰래 겨냥해서 똥침 놓기 따위를. 이렇게 하면 그 녀석은 날 때려 주고 싶고 짜증을 부리고 싶어도 못하니까.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면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쫓아올 때 안 잡히려고 교실바닥을 휘저으며 내빼야 했고.


청구개리는 장난꾸러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아, 너무 신나.
연줄 끊기, 편싸움, 돌 던지기.
맨날 동무들을 울리기만 했어요. (8쪽)






 그나저나, 청개구리는 왜 그리도 어머니를 속썩이는 짓만 골라서 했을까요. 어머니는 왜 그리도 청개구리를 다그치지 못했을까요. 하루이틀이 아니고 한 번 두 번이 아닌 장난질은 왜 그리도 깊어만 갔고는지.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 하여도, 아이를 따끔하게 꾸짖거나 나무라지 못할 까닭이 있었을는지.

 처음 〈청개구리〉를 읽던 지난날부터 그림책 《청개구리》를 펼치는 이제까지, 아이와 어머니 사이를 곰곰이 되짚습니다. 어머니도 어릴 때에는 자기 아이처럼 말괄량이였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약도 듣지 못하는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마는 어머니 몸처럼, 아이한테도 어떤 꾸지람이나 타이름은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는지요. 한쪽 어버이가 없이 홀몸으로 살림 꾸리랴 아이 키우며 가르치랴 몹시 고되고 벅찼기에 그만 손을 못 쓰고 말았는지요.

 청개구리네 이웃집 어르신들은 왜 이웃 아이 청개구리를 바르게 다잡아 이끌어 가지 못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제 삶 꾸려 나가기에 바빠서 청개구리네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남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면서 살았는지요.

 열 번 읽고 백 번 읽고 천 번쯤 읽은 〈청개구리〉인데,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이 뻔한 이야기에 뻔한 줄거리가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으면서 언제까지나 무겁게 하는가 싶어서.


엄마의 딱 한 가지 소원은
봄이면 진달래꽃 복숭아꽃 피고
새들이 훨훨 즐겨 찾아오는
양지바른 산언덕에
조용히 잠드는 것이었어요. (21쪽)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밤낮 힘껏 일하며 살림이 조금 피게 되면, 후유 한숨을 돌린 다음 아이를 다독이려고 했을까요. 저 또한 아이 아버지가 되면서 느끼지만, 하루 내내 아이와 어울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노라면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잠은 잠대로 잘 수 없으면서 일거리는 일거리대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인 저와 어머니인 옆지기도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밥벌이 될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자기가 밥벌이할 까닭도, 자기 밥을 자기가 차릴 일도, 자기 옷을 자기가 빨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면. 또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리면. 신나게 놀기를 바라고,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며, 그지없이 뒹굴기를 바랍니다.

 청개구리 장난이 좀 짓궂기는 했어도, 아이 때에는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두 번 했다가 이내 맛이 들리고 재미가 납니다. 또, 또래 동무들이 자기하고 어울려 주지 않으면 부러 못살게 구는 장난을 생각해 냅니다. 청개구리가 저지른 장난은 못된 장난이기는 했어도, 자기와 살갑게 놀아 주는 동무가 없으니, 차츰차츰 마음 한구석이 비뚤어지게 되면서 동무들을 괴롭히고, 또 집에서도 어머니 타이름하고는 어긋난 쪽으로 자꾸자꾸 나아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참된 사랑과 믿음으로 청개구리한테 다가오지 않으니, 청개구리 스스로도 마음을 열지 않을 뿐더러, 더욱 모질게 장난질에 매일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객객, 엄마.
마지막 부탁만은 꼭 들어 드릴게요!”
청개구리는 물이 찰랑거리는 강기슭에
엄마 무덤을
정성껏 만들어 드렸답니다. (26쪽)



 기다림만한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보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에, 자기 기다림을 놓았습니다. 진작에 했어야 할 아이 다스리기를, 숨을 거둘 때에 이르러서야 하고 마니까, 마지막때에 비로소 눈을 뜬 청개구리는 어머니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온삶을 눈물로 보내며 기다리던 어머니도, 온삶을 장난질로 보내며 제 모습을 잃었던 아이도, 또다시 눈물바람으로 뒷삶을 잇게 됩니다.

 “아침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에서 딱 두 식구뿐이지만 오붓하게 살던 청개구리네인데. 비록 가난하고 살림은 팍팍했어도 마음속에 곱고 따뜻한 사랑을 잃지 않으며 살았던 청개구리네인데.





 (2) 재일조선인한테서 받는 선물


 《청개구리》는 재일조선인이 글을 새로 쓰고 그림을 알뜰히 넣으며 이루어낸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를 잃고 딴나라에서 살지만, 딴나라에서 살더라도 똑같은 목숨붙이인 이웃 일본사람한테까지 우리 겨레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 마음이 열매를 맺어서 태어난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 아닌 딴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고유한 우리 옷을 즐겨입을 뿐 아니라, 요즘 삶에 걸맞게 잘 고쳐서 입고 있는 재일조선인들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그림책입니다. 재일조선인도 한국사람이요 한국땅 한겨레도 한국사람이며 중국땅과 러시아땅 한겨레도 똑같은 한국사람임을 깨닫는 한편,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 마음결로 빚어낸 그림책입니다.

 《청개구리》를 보면, 수많은 ‘어른 청개구리’와 ‘아이 청개구리’가 나오는데,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옷차림도 어느 하나 같지 않습니다. 키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얼굴도 다릅니다. 옷차림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를 테고, 즐기는 놀이가 다른 만큼 속에 품은 꿈도 다를 테지요.

 무엇보다도, 〈청개구리〉라는 옛이야기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한겨레들이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물려서 내려온 삶임을 고이 느끼도록 해 주는 글이요 그림이 담긴 그림책 《청개구리》입니다.


.. 아득한 옛적, 어머니께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  (글쓴이 이금옥) / .. 나는 재일 조선인 2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다섯 남매를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는데,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옛이야기를 참 많이 들려주셨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놓인 일은 아직도 생생해요 ..  (그린이 박민의)


 서민이라고도 할 테고, 백성이라고도 할 테며, 낮은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터입니다. 논밭을 일구고 베틀을 밟으며 손으로 빨래를 하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물에서 놀고 고샅에서 놀며 논밭이랑 산과 들에서 노는 사람(아이)들입니다.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덮으며 맨발로 땅을 밟고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라는 이 땅 사람들입니다.

 조용히 꾸리는 삶이며, 호젓하게 가꾸는 삶이고, 다소곳이 닦아 온 삶입니다. 이 삶을 옛이야기라는 틀에 담았습니다. 도란도란 밤을 밝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아비나 지어미가 지은, 또는 지아비와 지어미도 당신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듣고서 자란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사람 일에 눈을 뜨며 제 삶에 눈을 뜹니다.

 옛이야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삶을 가만히 되새기게 해 주는 한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아이들 스스로 짧지만 이제까지 보내 온 삶을 되짚으면서 앞으로 꾸려 갈 삶을 내다보게 해 줍니다.

 퍽 흔히, 꽤 자주 새롭게 고쳐지고 다시 나오는 옛이야기 〈청개구리〉인데, 재일조선인 두 사람이 엮어낸 그림책 《청개구리》는 두 분 재일조선인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뼛속 깊이 맛보는 동안 몸에 아로새기진 눈물과 웃음이 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씨앗은 아프면서 새로 태어나고, 사람도 아프면서 큰다고 하는데, 아픔을 먹은 사람들은 외려 기쁜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참 아름답도록. 거룩하도록. (4341.9.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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