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지음, 설찌 설지혜 그림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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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30.

노래책시렁 496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김륭

 창비

 2018.9.7.



  예부터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을 적에는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난 어른이 아닌걸?” 하고 둘러대고 아무 말이나 뱉으면서 마구 할퀴는 사람이 잔뜩 있습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어른이 아냐. 난 못난이야.”라든지 “난 어른이 못 돼. 난 못난 사람이야.” 하고 내세우면서 막말을 일삼거나 이웃을 할퀴는 사람이 자꾸 나타납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이 마치 아이들한테 ‘너희도 나처럼 어른이 안 되어도 돼!’ 하고 외치는 듯한 꾸러미입니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안 되어도 된다’고 이런 글을 내놓아도 되는지요? 스스로 어른이 아닌 줄 안다면, 창피해서라도 글을 안 쓸 노릇이지 싶고, 더더구나 어른이한테 들려줄 글은 안 쓸 일이라고 봅니다. 막말(욕)이란 ‘스스로 더럽힌 마음으로 남도 더럽히고 싶어하는 끔찍한 덫’입니다. 막말을 아무리 한들 후련하거나 개운할 수 없습니다. 막말을 할수록 마음을 스스로 옥죄고 할퀴고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만 먹는 사람’으로는 안 갈 노릇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고 집안일을 기쁘게 맡으면서 어깨동무라는 사랑을 새롭게 배워서 나눌 사람’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제발 철부터 들고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뭐가 나올지 모르고 / 땅을 파헤치는 두더지처럼 / 나는 그 애 마음속에 / 굴을 팠지 내 마음대로 /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느라 /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지 // 그 애가 누구냐고? / 학교 운동장을 다 파헤쳐 봐라 / 그 애 그림자라도 나오나 / 하지만 열심히 파다 보면 / 세상 모든 두더지를 / 만날 수는 있을 거야 (모든 첫사랑은 두더지와 함께/13쪽)


안경 쓴 나무늘보 같은 / 우리 선생님 손에 잡히는 여자는 / 여자가 아니겠지 // 1학년이겠지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학년 2/22쪽)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하물며 몸통까지 우리에게 다 주고도 (달과 돼지/30쪽)


시골 외할머니 집에 누워 있는데 / 감나무가 아직 익지도 않은 / 감을 자꾸 던진다 // 감보다 큰 혹이 머리에 /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 기분이 나쁘다 //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참지만 / 좀 심하다 //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던지는 땡감이 무슨 질문 같다 / 개똥 같다 (땡감/54쪽)


욕을 하고 싶은 날이 있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착한 아이는 욕을 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착하다고 소문난 문방구 아저씨도 욕을 하는 날이 있지.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홱 뱉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 그런 날은 욕을 사러 가지.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어떤 욕이 좋을까?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나는 혀 위에 욕을 올려놓고 생각하지. (초콜릿/104쪽)


+


가끔씩 하늘에서 내려온다

→ 가끔 하늘에서 내려온다

23


거미줄을 타고 공중을 내려오듯

→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듯

23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 식탁으로 초대하면

→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밥자리로 부르면

→ 우리 마을 가장 가난한 집으로 모시면

30


달은 잔칫상 위의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 달은 잔칫자리 돼지머리, 네 다리 떼어 주고

30


집에 누워 있는데

→ 집에서 눕는데

54


혹이 머리에 생기는 것 같아 자꾸 손이 간다. 기분이 나쁘다

→ 혹이 나는 듯해 자꾸 손이 간다. 싫다

54


감나무도 화나는 일이 있을 거라고

→ 감나무도 싫은 일이 있다고

→ 감나무도 들끓는 일이 있다고

→ 감나무보 발끈할 일이 있다고

54


교감 선생님처럼 떠억 개폼을 잡고서는

→ 버금어른처럼 떠억 멋을 부리고서

→ 꼰대처럼 떠억 잘난 척하고서

54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지

→ 마구 뱉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지

→ 까대지 않으면 죽을 듯한 날이 있지

104


욕은 생일 선물을 고르듯 신중하게 골라야 해

→ 막말은 곱게 차분히 골라야 해

→ 꾸지람은 곱게 찬찬히 골라야 해

104


어떤 욕을 골라야 걔 기분이 더 나쁠까

→ 어떻게 할퀴어야 걔가 더 싫어할까

→ 어떻게 깎아내려야 걔가 더 아플까

104


욕을 잘 고를수록 나는 기분이 좋아지지

→ 나는 거칠게 말할수록 즐겁지

→ 나는 마구마구 뱉을수록 신나지

10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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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멈춰서고 일어서는 (2025.3.25.)

― 부천 〈용서점〉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라 여길 수 있고, 해마다 봄이 새롭다고 여길 수 있고, 해마다 오는 봄이어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다 다르게 바라보면서 받아들입니다. 봄이지만 아직 춥다고 여길 수 있고, 봄이기에 반갑게 볕바라기를 누릴 수 있고, 봄이어도 해를 안 쳐다볼 수 있습니다.


  어쩐지 머리가 안 돌기에 생각이 안 난다고 여길 만하고, 오늘은 쉬어가는 때로구나 하고 여길 만합니다. 바닥을 치기에 바닥치는 나를 받아들이면서 사랑하고, 저 밑바닥으로 가든 이제부터 솟구치는 길로 바꾸든 모두 우리 모습입니다.


  차츰 낮이 깁니다. 낮이 긴 만큼 밤이 짧습니다. 해를 쬐고 누리고 즐기면서 부천 〈용서점〉에 깃들고, 사뿐사뿐 자리에 앉아서 ‘마음꽃―마음을 노래하기’ 모임을 꾸립니다. 오늘은 ‘불꽃’과 ‘이 빛깔을’을 글감으로 삼습니다. 불타오르면서 잿더미로 가려는 마음으로 설는지, 아니면 불꽃을 멈춰세운 뒤에 풀꽃이나 품꽃으로 가다듬어서 일어서려는 마음으로 갈는지, 누구나 으레 갈림길입니다.


  불은 따뜻하다고도 여기되, 불이기에 활활 태웁니다. 품은 아늑하다고 여길 뿐 아니라 고즈넉하고 느긋해서 가만히 잠들며 쉴 만합니다. 그저 타오르는 불길이 된다면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태우고 말지만, 불빛을 추스르면 ‘붓’으로 바뀌기에, 우리 손으로 우리 오늘을 이야기로 갈무리할 만합니다.


  책집으로 오가는 골목길을 거닐 때면 늘 생각합니다. 쉼터(공원)에는 널찍한 긴걸상이 넉넉히 있을 노릇입니다. 햇볕을 쬘 걸상과, 그늘에서 쉴 걸상, 이렇게 둘 다 있을 노릇이에요. 걸어다녀야 쉼터를 꾸미는 길을 제대로 알 테지만, 요사이는 뚜벅이가 너무 줄어서 쉼터도 마을도 못 보는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골목집이며 길나루이며 일터이며 누구라도 다리를 쉴 쪽걸상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세운다면, 이 마음씨앗이 찬찬히 둘레에 퍼질 수 있어요.


  걷다가 멈추기에 둘러봐요. 달리다가 멈추기에 바람을 느껴요. 바쁜 일손을 멈추기에 새가 노래하는 줄 알아채요. 툭탁거리는 몸짓을 멈추기에 눈망울을 마주해요. 잇고 읽으면서 부드러이 다독여서 바꿉니다. 익히고 일구면서 보드랍게 풀어내어 짓습니다. 말 한 마디를 짓고, 글 한 줄을 짓고, 마음그릇을 짓고, 생각날개를 짓고, 살림씨앗을 짓고, 사랑꽃을 짓기에, 어느새 오늘 하루라고 하는 삶을 지어요.


  작은책집에 다가와서 책을 읽다가 글 한 줄을 짓는 이웃을 그립니다. 마을책집으로 스며들어서 책을 들추다가 노래 한 가락을 짓는 동무를 그립니다. 한 손에 책 한 자락을 쥐고서 집으로 사뿐사뿐 돌아가는 너와 나를 그립니다.


ㅍㄹㄴ


《일본어와 한국어로 만나는 은하철도의 밤》(미야자와 겐지/오다윤 옮김, 세나북스, 2025.2.20.)

《일본어와 한국어로 만나는 어린왕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오다윤 옮김, 세나북스, 2025.1.20.)

《한 달의 오사카》(김에녹, 세나북스, 2025.3.24.)

《앎과함 10 꿈을 비는 마음》(문익환, 화다, 1978.4.20.첫/1980.4.20.재판)

《끝나지 않은 전쟁》(조지 풀러/신광수 엮음, 눈빛, 1996.6.3.)

《서양식 예절》(엘리자베드 엘 포스트/박홍석 옮김, 브리태니커, 1982.10.30.첫/1986.10.30.2벌)

《韓國民族運動史論》(강만길, 한길사, 1985.3.2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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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3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천 용서점은 새책방인가 보네요.이졔는 헌책방순례는 더이상 안하시나 보네요.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넌 몰라 2025.4.20.해.



네가 누구를 보면서 “넌 몰라.” 하고 말한다면, 너부터 어느 누구를 모르겠지. 누가 너를 보면서 “넌 몰라.” 하고 말한다면, 어느 누구부터 너를 모를 테고. 너나 남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더러 “넌 몰라.” 하고 말을 하지 않아. 너나 남이 알 적에는 “넌 어떻게 여겨? 넌 어떻게 봐?” 하고 묻겠지. 누구나 스스로 살아온 대로 보고 듣고 겪어서 받아들여. 다만 ‘보기 + 듣기 + 겪기 + 받아들이기’일 뿐이야. 보거나 듣거나 겪거나 받아들였어도 아직 알지는 않아. ‘알’려면, 스스로 틈을 두어서 여태 보고 듣고 겪고 받아들인 바를 마음에 녹이고 풀어서 바라보아야 한단다. 열매가 익듯 ‘삶’을 익혀야 비로소 알아. 배나 능금이나 감이 ‘열매 모습’이 되었어도 ‘열매’가 아닌 ‘풋열매’야. 풋열매는 안 익었기에 씨앗이 안 여물었어. 새로 태어날 숨빛이 깃든 씨앗으로 굵으려면 열매가 고르게 두루 깊이 익어야 한단다. 누구나 다른 열매이자 씨앗인데, 익히고 익을 틈을 누려야 스스로 알아. 남이 익혀 주지 않거든. 남이 ‘알려’주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스스로 받아들여서 돌아보는 틈을 누릴 노릇이란다. 겉모습이 사람이기에 사람이지 않고, 겉보기에 돌이라서 돌이지 않아. 겉모습이 자동차이더라도 장난감이나 인형이면 안 굴러가. 겉으로 보기만 한다면, 막상 너는 하나도 안 보았다는 뜻이야. 눈을 감고서 속을 보고 느껴야 알 수 있어. 마음을 열고서 그윽히 받아들여 녹이고 풀어야 비로소 눈뜨면서 알아차리지. 너는 “너(나) 스스로 모르는 줄 모를” 수 있어. 너는 “너(나) 스스로 아는 줄 모를” 수 있어. 알려면 기다리고 지켜봐야지. 알고 싶다면 먼저 물어보고서 듣고 돌아볼 노릇이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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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어른곁 2025.4.21.달.



‘어른곁’은 ‘나무곁’과 같아. ‘아이곁’은 ‘바다곁’이나 ‘하늘곁’과 같지. ‘어른곁’이라면 ‘숲곁’에 ‘들곁’일 테고, ‘아이곁’은 ‘별곁’에 ‘샘곁’ 같고. 아이도 어른도 나무곁으로 다가간단다. 어른도 아이도 바다곁이나 하늘곁으로 다가서. 누구나 하나이고 혼자인데, 저마다 빛나는 숨이고 밝은 꽃이라서,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다가서지. 어른곁이란 놀면서 자랄 만한 자리야. 어른곁은 누구나 스스로 하면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마당이야. 어른곁은 느긋이 잠들면서 기운이 차오르는 집이고, 어른곁은 한결같이 푸르게 노래하는 곳이야. 누구나 어른곁에서 태어났어. 어느 어른곁은 높다란 봉우리라면, 어느 어른곁은 뛰놀 들판이고, 어느 어른곁은 아기자기한 뒤꼍인데, 어느 어른곁은 왁자지껄 놀이터야. 고즈넉이 나무로 우거진 어른곁이 있고, 봄 같거나 여름 같거나 가을 같거나 겨울 같은 어른곁이 있어. 모든 어른곁은 달라.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는 틀이란 없지. 다 다른 어른곁은 다 다르게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마을이야. 너는 어른곁에서 두고두고 느긋하게 자라나지. 이윽고 너는 어른하고 어깨동무하며 ‘새어른’으로 서더니, 이제는 아이곁에 나란히 서는 즐거운 사람으로 깨어난단다. 사람이 왜 사람일까? 사람은 늘 어른곁이면서 아이곁에 서는 ‘하나인 두 빛’이거든. 아이답기에 어른스러워. 어른답기에 아이스러워. 아이하고 놀기에 어른이야. 어른하고 얘기하기에 아이야. 어른한테서 듣기에 아이요, 아이한테서 들으니 어른이지. 너는 아이들이 찾아오는 ‘어른곁’으로 살림을 하니? 너는 몸소 ‘어른곁’으로 찾아가는 아이로서 사랑을 하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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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나무가 자라면 2025.4.22.불.



아직 나무씨가 깃들지 않으면 둘레가 메마르고 뜨겁기만 해. 이제 나무씨가 깃들면, 나무씨는 꿈을 그리지. “이곳으로 비가 한 줄기 내리고서 구름이 드리워서 싹이 틀 틈이 있기를!” 나무씨는 기다리고 기다려. 한 해를 기다리고, 두 해 닷 해 열 해 쉰 해를 가만히 자면서 기다린단다. 마침내 저(나무씨)한테 맞게 비구름이 찾아드는 줄 느끼면 잠을 깨서 일어서지. 이때부터 “싹튼 나무씨” 둘레가 바뀌어. 까슬까슬 거칠고 메마르던 흙이었지만, 나무싹으로 거듭나면서 이슬이 맺히는구나. 작은 잎 밑으로 이슬방울이 흘러내려. 그야말로 조그마한 푸른그늘이 드리우고, 이 작은 푸른그늘로 쉬러 찾아오는 작은벌레가 있구나. 나무싹은 자라며 줄기가 굵고 가지를 뻗어. 잎을 조금씩 더 내고, 작은 벌레가 좀더 찾아와. 이제는 작은풀씨가 날아와서 쉬기도 하는구나. 작은풀씨는 조촐하니 퍼진 ‘작은푸른그늘’을 누리면서 하나씩 돋아나고, 어느새 조그맣게 풀밭을 이루네. 풀밭으로 바뀐 땅에서 어린나무는 기쁘게 자라. 벌나비에 새가 찾아오거든. 가끔 개구리도 만나.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면서, 이제는 어린나무가 아닌 오롯이 ‘나무’로 자라. 그리고 ‘나무’인 숨결은 꽃을 피우고 씨앗과 열매를 내놓지. 지난날 어미나무가 저를 낳았듯, 바야흐로 나무씨를 새로 내놓을 만큼 듬직하게 서는구나. 나무씨가 새로 퍼지고 나무가 자꾸자꾸 자라면서 둘레가 새롭게 빛나. 온갖 숨결이 수북수북 우거지는 ‘숲’이 된단다. 아직 작은숲이지만 나무는 무척 기뻐. 어떻게 이곳이 숲이 되었는지 둘레에서 모를 수 있지만, 나무는 늘 그저 웃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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