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나무가 자라면 2025.4.22.불.
아직 나무씨가 깃들지 않으면 둘레가 메마르고 뜨겁기만 해. 이제 나무씨가 깃들면, 나무씨는 꿈을 그리지. “이곳으로 비가 한 줄기 내리고서 구름이 드리워서 싹이 틀 틈이 있기를!” 나무씨는 기다리고 기다려. 한 해를 기다리고, 두 해 닷 해 열 해 쉰 해를 가만히 자면서 기다린단다. 마침내 저(나무씨)한테 맞게 비구름이 찾아드는 줄 느끼면 잠을 깨서 일어서지. 이때부터 “싹튼 나무씨” 둘레가 바뀌어. 까슬까슬 거칠고 메마르던 흙이었지만, 나무싹으로 거듭나면서 이슬이 맺히는구나. 작은 잎 밑으로 이슬방울이 흘러내려. 그야말로 조그마한 푸른그늘이 드리우고, 이 작은 푸른그늘로 쉬러 찾아오는 작은벌레가 있구나. 나무싹은 자라며 줄기가 굵고 가지를 뻗어. 잎을 조금씩 더 내고, 작은 벌레가 좀더 찾아와. 이제는 작은풀씨가 날아와서 쉬기도 하는구나. 작은풀씨는 조촐하니 퍼진 ‘작은푸른그늘’을 누리면서 하나씩 돋아나고, 어느새 조그맣게 풀밭을 이루네. 풀밭으로 바뀐 땅에서 어린나무는 기쁘게 자라. 벌나비에 새가 찾아오거든. 가끔 개구리도 만나.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면서, 이제는 어린나무가 아닌 오롯이 ‘나무’로 자라. 그리고 ‘나무’인 숨결은 꽃을 피우고 씨앗과 열매를 내놓지. 지난날 어미나무가 저를 낳았듯, 바야흐로 나무씨를 새로 내놓을 만큼 듬직하게 서는구나. 나무씨가 새로 퍼지고 나무가 자꾸자꾸 자라면서 둘레가 새롭게 빛나. 온갖 숨결이 수북수북 우거지는 ‘숲’이 된단다. 아직 작은숲이지만 나무는 무척 기뻐. 어떻게 이곳이 숲이 되었는지 둘레에서 모를 수 있지만, 나무는 늘 그저 웃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