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강병국 글, 성낙송 사진 / 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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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우포늪
- 글 : 강병국
- 사진 : 성낙송
- 펴낸곳 : 지성사(2003.1.15.)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16 ― 내 깜냥대로 살면서 읽는 책
 : 《우포늪》을 차근차근 읽은 뒤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지 두 달이 지나갑니다. 태어나기를 인천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인천에서 지냈으나, 그 뒤로 열 몇 해를 인천을 떠나 서울로, 충주로 옮겨다니며 살았어요. 이렇게 고향과 멀어진 채 지내고 돌아와 보니, 예전 가게가 그대로인 곳도 많지만, 길과 골목이 퍽 많이 바뀌었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골목집을 싹 밀어붙이고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어떤 골목집은 찻길로 바뀌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인천시장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기까지 중구와 동구에 있는 골목집을 모조리 허물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로 새로 지을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아파트만이 살 길’인가요. 저잣거리에서 사입는 옷보다 20층이나 30층짜리 우람한 쇼핑센터에서 사입는 옷이 우리한테 더 보기 좋거나 아름다울까요. 복닥이는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밥보다 40층이나 50층짜리 주상복합센터 식당거리에서 사먹는 밥이 우리 몸에 한결 좋거나 알맞을까요.

.. 일제시대 때 소벌을 한자로 쓰다 보니 뜻 그대로 우포(牛浦)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우포보다는 소벌로 더 많이 부르고 있지요. 참고로 목포(나무벌)는 비가 많이 오면 주변의 나무들이 떠내려오던 곳이라서, 사지포(모래벌)은 모래가 많아서, 쪽지벌은 크기가 작다고 해서 붙은 이름들입니다 ..  〈13쪽〉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날씨가 알맞게 선선합니다. 이 선선한 저녁나절에 아내와 골목길 마실을 나섭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한켠에 문을 연 도서관은 저녁 여덟 시에 문을 내리니, 밤마실 나가는 때하고 꼭 들어맞아요.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저녁 여덟 시면 사람들이 한창 술마시고 떠들고 노는 때, 또는 헌책방에 손님이 가득할 때입니다만, 인천에서는, 또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는 저녁 일곱 시만 되면 가게 불빛이 하나둘 스러지고 조용해집니다. 뭐랄까요, 이웃나라 일본하고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일본만 해도 저녁 예닐곱 시면 가게마다 문을 닫잖아요. 저녁나절은 자기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 아침에는 일찍 문을 열고요. 이곳도 그래요. 아침 일찍 가게문 열고 저녁에 알맞춤하게 가게문 내리고.

 그래서 동네 골목길이 저녁이나 새벽에 참 조용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이 씽씽 달릴 때 내는 귀따가운 소리를 빼놓고는 시끄러운 소리가 없습니다. 거리 등불은 알맞게 어둡습니다. 이러다 보니 골목길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드물고 술주정으로 떠들썩한 사람 찾아보기 어려워요. 뜨는 해를 보며 하루를 열고 지는 해를 보며 하루를 접으니, 사람몸에는 자연스러움이 배고 더도 덜도 아닌 한가위 보름달 같은 마음을 품으며 산다고 할까요.

 좀더 늦게까지 가게문을 열면 살림돈을 더 벌 수야 있겠지만, 돈 몇 푼 더 벌면서 자기 시간을 빼앗기며 자기 삶을 놓친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조금 더 번 돈으로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요.

..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시연은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로 엄격히 보호되고 있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환경부의 보호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환경은 점차 나빠지고 있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멸종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가시연도 언제 사라질 지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  〈24쪽〉

 보름쯤 앞서였나, 도원동 골목길부터 해서 신흥동과 유동께를 거쳐 경동과 율목동을 지나 싸리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싸리재 언덕길 한켠에 서 있는 길알림판을 보노라니 ‘밤나무골길’이라는 푯말이 보이더군요. ‘밤나무골길’? 이름은 참 좋은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아하, 그렇구나! 율목동 이름이 한자로 ‘밤 栗 + 나무 木’이네. 말 그대로 ‘밤나무골’이었구나, 이 동네가. 지금 같은 도시가 되기 앞서 예전에는, 지난날에는, 그러니까 수백 해, 아니 수천 해 또는 수만 해 동안 이곳 싸리재 둘레에는 밤나무가 많았겠구나.

 하지만 이제는 찾아볼 길이 없는 밤나무. 밤나무 없는 밤나무골 ‘율목동’. 무시무시한 막개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인천시장과 지역개발업자들. 공사는 나날이 끊이지 않으며, 공사비로 들어갈 수 조, 또는 수십 조는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고.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길닦기와 아파트 세우기와 쇼핑센터 짓기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라면 주민복지와 교육복지와 문화생태를 가꾸는 데에 쓰고도 남아, 대중교통에다가 택시까지도 누구나 거저로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테며, 의료혜택도 거의 거저로 받을 수 있을 텐데.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육도 돈없이 마음껏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2킬로미터짜리 길을 닦는 데에 수천 억을 들인다고 하는데, 그런 새길을 닦지 말고, 복지 정책과 문화 정책을 잘 추스른다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터전은 한결 아름답고 넉넉할 수 있지 싶은데.

.. 반딧불이는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입니다. 공기와 물이 많이 오염된 오늘날 자연환경을 되살려 반딧불이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애벌레 시기를 땅위에서 보내건 물속에서 보내건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반딧불이에게 물과 공기가 더러워지는 것은 이들에게서 설 땅을 빼앗는 것과 같답니다 ..  〈55쪽〉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이불과 깔개를 옥상 담벼락에 널어 놓기. 해가 잘 드는 날 이불과 깔개를 내놓아 말리면, 저녁에 걷을 때 뽀송뽀송한 느낌과 햇볕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걸레로 방을 훔친 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좋아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며 깔개와 이불에 골고루 배어든 햇볕을 받아들입니다. 하루 내 고단했던 몸은, 햇볕 머금은 깔개를 깔고 이불을 덮으며 말끔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굳이 이불 빨래를 하지 않더라도 개운하며, 꼭 무슨무슨 세제를 써서 빨아야 깨끗하거나 폭신폭신하게 되지 않습니다. 싱그러운 바람과 따순 햇볕이 있으니 넉넉합니다.

.. 황소개구리가 밤낮없이 우는 데 비해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주로 밤에만 운답니다 ..  〈111쪽〉

 아내가 즐겨먹는 밥은 배추잎과 토마토. 아내가 바꾸어 놓은 제 밥상은 말랑말랑 두부와 선인장채, 때때로 달걀 반 삶은 것. 그동안 된장국에 콩나물 넣어 먹거나 된장국수를 먹곤 했는데, 이렇게 밥상을 바꾸어서 먹어도 몸에서 잘 받습니다. 아니, 이런 밥상이 더 반갑구나 싶어요. 따로 불을 피워서 끓이지 않아도 되는 밥이요 반찬입니다. 불을 피워서 익힌다고 해도 조금만 하면 됩니다.

 배불리 먹기보다는 알맞게 먹으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밥을 차립니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을 수 있으나 두 끼니만 먹어도 나쁘지 않고,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가 넘으면 젓가락질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두 가지 반찬만 올려놓아도 푸짐합니다. 꼭 김치를 담가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배추잎을 물에 씻어서 먹어도 좋아요.

.. 습지는 단순히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보전된 생태계나 먼 미래의 인류의 윤택한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에 습지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139쪽〉

 ‘먹는 게 남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어떻게 먹어야 남을까요. 무엇을 먹어야 남을까요. 누구와 먹어야 남을까요. 돈 많이 벌어 마음껏 쓰며 사는 일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돈 많이 벌어 펑펑 쓰는 삶이라면, 참 딱하거나 불쌍하겠구나 싶어요. 돈을 걱정없이 쓸 수는 있지만, 돈을 쓰며 자기 스스로를 가꾸거나 이웃들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은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요. 이웃사람은 돈 한 푼 제대로 못 쓰는데, 자기 혼자 돈을 마음껏 쓰는 일이란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일이 될까요.

 저도 어릴 적 어느 때인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할 거야’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며 옅어졌어요. 돈벌어서 해야 할 일이 대단히 많더라구요. 우리 세상 어둡고 괴롭고 짓눌리고 고달픈 곳을 찾아서 풀어내려면 수십 조나 수백 조로는 턱도 없고(1980년대 어림셈으로도), 끝없는 돈으로도 안 되겠더라구요.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기보다, 구구셈을 해 보니 그랬어요. 그래서 ‘돈 많이 벌 생각은 접자’고 마음을 바꾸었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 품은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내 깜냥대로 나누며 살자’였습니다.

 책 하나를 읽어도 그때그때 내 깜냥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속으로 삭여서 몸소 해낼 수 있을 만큼 읽자고, 일 하나를 배워도 내 몸과 마음과 눈높이에 맞게끔만 익혀서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하자고.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하되, 할 수 있는 힘이 없거나 모자라다면, 하는 데까지만 하고 뒷일은 힘과 기운이 되는 이한테 맡기자고. (4340.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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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고향을 내발로 걸어 못가고 - 일본군 '위안부' 조윤옥, 역사의 증언 3
안이정선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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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책이름 : 일본군 ‘위안부’ 조윤옥, 가고 싶은 고향을 내 발로 걸어 못 가고
- 글 / 정리 : 안이정선
- 펴낸곳 : 아름다운사람들(2006.1.31.)
- 책값 : 12000원



 조용히 지내고 있던 동네 한복판으로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뚫겠다는 인천시장 정책에 반대하고자, 지난주에 인천시청하고 무슨 개발공단에 집회를 하러 갔을 때입니다. 이곳 공무원들은 두 가지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첫째, 모른 척. 둘째, 낯찌푸리며 길 막기와 입 막기.

 시청뿐 아니라 구청 공무원들, 시골에서는 읍사무소와 면사무소 공무원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려고 움직일 때, 정작 그 일(정책)로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나서며 이야기를 듣거나 묻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공무원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여태 한 번도 없으니까요.

 경찰은 예나 이제나, 또 앞으로나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릴 목적으로. 경찰 사진에 찍힌 사람은 나중에 ‘일반 회사나 공무원 사무소’에 일자리를 얻으려고 할 때 피해를 받습니다. 어떤 집회에 왜 나갔느냐는 따지지 않고.

 공무원들은 우리들이 내는 세금으로 달삯을 받습니다. 공무원들이 쓰는 모든 물품과 시설, 그리고 공무원이 깃드는 건물 또한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고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한테 우리들이 소리내어 말할 자리란 없습니다. 우리들이 소리내어 말한다 해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한두 번 듣는다고 해도 서류에 몇 글자 끄적이고 말 뿐.


.. 이 책은, 그러니까 조윤옥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위안부’ 피해자의 일대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에 의해 해체된 가족으로 살다가 6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사흘 밤을 함께 보내고 다시 기약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 가족에 대한 슬픈 기록이기도 하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평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고향방문이라는 간절한 소원을 위해, 부끄럽게도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점기에 무력했듯이 해방 후 50년이 지난 뒤에도 수수방관, 속수무책으로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  〈22쪽〉


 일본군 성노예로 몸과 마음이 피멍든 분들은 정부가 아닌 바로 우리들 손으로 보듬고 껴안았습니다. 실태조사와 현지조사부터 아픔을 달래고 피해보상을 외치는 목소리까지도. 한편, 일본군 성노예로 다친 분들한테 등을 돌리거나 눈길을 안 두는 이들 또한 바로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4340.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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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정보뿐 아니라, 책으로 세상을 보는 눈길을 가다듬을 때 늘 도움을 많이 주고받는 선배네 ㅇ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다가, 이래저래 가지를 친 다른 사람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본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예전에, 그러니까 2004년에 낸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내 문장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책소개 글을 썼던 사람이 쓴 글이다. 이분 글에 내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잠깐이 아닌가? ^^;;;;;;;). 죄송스럽지만, 이분 글 뒤에 묶음표()를 치며 짤막짤막 내 느낌을 달아 보고 싶다.


..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헌 책방에 관해 쓴 어떤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부터다 책 리뷰에 대해서는 굉장히 솔직한 편이고 내가 주례사 비평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한테 잘 보일 아무런 의무도 없기 때문에 작가 생각에 반대하거나 특히 작가의 문장력이 떨어질 때는 가감없이 비판하는 편이다(저도 독자한테 잘 보일 마음 없어요 ㅋㅋㅋ 그리고 독자들 생각에 굳이 반대를 하거나 꼭 동의를 할 까닭도 없구요 ㅋㅋ). 내가 보기에 그 책의 저자는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저도 잘 압니다. 죄송하옵니다). 솔직히 책 내용도 상당히 지루했고 뭐랄까, 수필을 쓰기엔 상당히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다(저는 늘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니까요. 더구나 저는 수필을 쓴 게 아니걸랑요. 수필 아닌 글을 수필로 읽으셨다니 너무 황송스럽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람 독자가 많았는지, 어떤 사람이 댓글로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그런 일이 있었나요? 제 글 독자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문제삼은 것은 작가의 문장 실력이었는데, 그 사람은 내 글을 제대로 안 읽었는지 헌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본주의에 경도된, 뭐, 어쩌고 하면서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 어떤 분이 어떤 글을 썼는지 저로서는 모르는 일이라서 이것 참 죄송하게 되었군요.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으셨네요). 책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나는 늘 지나치게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문제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공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몸에 안 좋습니다. 햇볕을 보고 사셔야지요 ^^;;;;;). 또 웃긴 건 책을 좋아하면 그게 헌 책이든 새 책이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맞습니다. 부디 헌책방도 있는 그대로 봐주셔요) 더군다나 나는 한 번도 헌 책방 문화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다문화주의에 입각해 여러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특히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내가 미쳤다고 헌 책방 문화를 비난하겠는가(근데, 헌책방은 소수자 문화가 아니걸랑요? 그리고 띄어쓰기를 엉터리로 하지는 말아 주셔요. ‘헌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입니다. 책방이 ‘헐어서’ ‘헌 책방’인가요?)? 더 재밌는 건 그 책의 저자가 내 리뷰에 대해 길고 긴 댓글을 달았다는 점이다(죄송하게 되었네요). 저자가 댓글을 달면 감동해야 하는데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저런, 어째서 그랬을까요. 근데, 저는 독자가 감동하라고 댓글 달지는 않아요. 글쓴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껴서 댓글을 달 뿐입니다). 과연 저자가 인터넷 리뷰에 대해서 자기 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거기에 대해 리뷰어를 반박하는 댓글을 다는 게 옳은 일일까(저는 제 책을 비판했다고 댓글을 달지 않아요. 섣부른 칭찬을 해 주어도 댓글을 달아요. 의사소통이잖아요. 글쓰는 사람은 의사소통을 하면 안 되나요?)? 그렇게 되면 리뷰어 역시 이 글을 쓰면 저자가 기분나빠 하겠구나, 자제해야지 하면서 자기 검열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리뷰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지나친 생각이시네요)? 저자의 댓글은, 처음에 댓글 단 사람과는 달리 예의를 갖춘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글이라 기분나쁘지 않게 잘 마무리 됐으나 솔직히 그 저자에게도 실망스러운 점은 있었다(실망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의 갖추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예의를 안 갖추었으면 사고가 날 뻔했네요 ^^;;;;). 그 사람 역시 내가 헌책방 문화를 경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글쎄요, 저는 님께서 ‘헌책방이라는 곳을 가 보지 않고 헌책방을 책으로만, 또는 글로만 읽고 말하는구나’ 하고 느껴서, ‘부디 헌책방에 한 번이라도 몸소 나들이를 해 주셔요’ 하고 말씀드렸을 뿐인걸요. 이 댓글을 달면서 예전 글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님께서 ‘제발 헌책방에 가 본 다음 이야기를 해 주셔요’ 하고 적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지 세 해가 지났는데, 님께서는 아직 헌책방 나들이는 안 해 보셨나 보네요 ^^;;;;;). 책의 수준과 책의 주제는 엄연히 다른 얘기인데 그 사람도 자기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를, 본인의 글솜씨에서 찾은 게 아니라, 내가 헌책방 문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쁘게 평가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저는 제 책이 나쁘게 평가되건 좋게 평가되건 마음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헌책방이라는 곳을 편견으로 보느냐,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느냐로 살필 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헌책방 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람은 모두 그 책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건가(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 그럴 수 없는 법임은 님께서 잘 알잖아요? 그쵸?)? 그 저자와는 별 다른 감정 없이 잘 끝났지만, 처음에 댓글 단 사람과는 계속 논쟁을 하다가 정말 기분이 확 상해서 리뷰 자체를 안 쓸 정도로 잠시 알라딘을 떠났었다(누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참 죄송합니다). 회의가 들어서 내 일기장에 쓰고 말자, 내가 미쳤다고 이런 곳에 리뷰를 올려서 이런 얼토당토 않는 비난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기가 막혀서였다. 지금 같으면 그런 공격적이고 비난적인 댓글에는 가볍게 농담으로 받아치고 넘어가 버릴텐데 그 때만 해도 인터넷 악플에 별로 당해 본 적이 없어서 일일이 대응하다 보니 나중에는 쌍욕이 오가는 것이다. 하여튼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서 상대적으로 페이퍼는 잘 안 쓰게 되고, 설사 비판적인 리뷰를 쓰더라도 아예 알라딘에는 올리질 않거나 아니면 좀 순화시켜서 개제하게 됐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주제가 옳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백 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  〈어느 분 ㅇ블로그에 올라온 글에서 따옴〉


 책을 낸 사람으로서, 내 책을 읽는 이가 내 마음을 모두 다 받아들인다거나 헤아린다고 느끼지 않는다. 또한 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적는 이 마음을 내가 다 헤아리거나 살필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다. 헌책방을 한 번이라도 몸소 찾아가서 즐겨 보지 않고서 ‘헌책방 문화’를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뭐, 나는 일본에 딱 한 번 겨우 가 보았지만, 일본책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한다. 일본말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읽기는 하지만 번역은 못한다. 그래도 사전 보면서 번역하면 초벌 번역은 할 수 있다) 그런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면 ‘헌책방을 안 가더라도 헌책방 문화를 생각하거나 걱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헌책방을 말하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덧붙여 나는 ‘헌책방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헌책방 삶을 꾸리는 사람’, ‘헌책방으로 사는 사람’, ‘헌책방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늘 우러르고 섬기지만, 꼭 우러르거나 섬기지 않는 다짐이 한 가지 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뒤에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 맞는 소리이다. 옳은 소리이다. 그이를 내가 얼마나 잘 알기에 어디에서 주워들은 뒷이야기 한두 가지를 놓고 함부로 호박씨를 깔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호박씨를 깔 자유는 있다. 호박씨를 까며 일어나는 모든 책임을 자기 스스로 짊어질 수 있다면. 호박씨를 까되, 엉터리 소문이나 잘못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그래, 이 글을 쓰신 분은, 여러 가지를 잘못 짚고 있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이분은 ‘책을 늘 가까이하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자기가 가까이하는 책을 얼마나 자기 마음으로 곰삭이고 받아들이면서 자기 삶을 가꾸는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 느낌이라는 소리다. 이분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고 했으며 어느 지역에 산다고 했으나 어디인지는 모른다. 시골(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세 해 남짓 살면서 느꼈는데, 웬만한 지역도시에서조차 헌책방 문화를 맛보거나 즐기기란 참 어렵다. 충주 시내에는 헌책방이 하나 있지만 참고서와 가벼운 연애소설만 가득할 뿐이다. 더욱이 충주 산골에 있던 내가 시내로 가는 시간보다는 서울로 고속버스 타고 나가는 시간이 더 짧으니 원……. 어쨌거나, 자기가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일 줄 안다면, 헌책방 문화 맛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 나라는 모든 것이 서울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쯤 짬을 내어 서울 나들이를 하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몇 군데 훌륭한(?) 헌책방’을 찾아가며 ‘헌책방이 이렇구나’, ‘헌책방에 이런 책이 있구나’, ‘헌책방에서는 이런 책을 만날 수 있구나’ 하고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나는 책 많이 읽는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고, 반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머리에 수많은 지식을 담아 놓기는 하되, 그 지식을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는 않으나, 으레 그런 편이라 참 힘들다. 말하기 힘들고, 술을 마셔도 괴롭기 일쑤다. 지식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지만, 자기 몸으로 곰삭여서 그 좋은 책에서 펼쳐 선사해 준 슬기를 자기 나름대로 가다듬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태ㆍ환경 책을 많이 읽고,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읽히는 사람들이 ‘강남-일산-분당-성남-용인’ 같은 아파트마을에 산다는 일은 얼마나 뒤틀린 모습, 모순인가? 이런 아파트마을은 부산과 대구와 인천과 대전에도 엄청나게 있다. 같은 아파트라고 해도 허물없이 살가운 이웃마음을 느끼고 나누는 곳이 있지만, 세콤 경비원이 지키며 카드를 대야 문이 열리는 메마른 아파트도 있다. 요새 아파트는 거의 모두 메마른 아파트 아닌가?


 나는 내 책을 비평하든 비판하든 누구나 자유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일은 반드시 아주 홀가분하게, 언제 어디서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한편, 내 책을 읽고 든 느낌을 펼치는 사람한테, ‘책을 쓴 사람으로서 내 책을 읽어 준 사람한테 드리는 말’을 적는 일 또한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의무나 책임이라고 느낀다. 첫째, 내 책을 기꺼이 사거나 빌려서 읽으며 자기 시간을 써 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가.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둘째, 사람마다 읽는 눈길이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최종규는 〈아〉라고 말했으나 읽는이는 〈어〉라고 읽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대목은 찬찬히 짚으며 서로 다르게 보던 눈길과 눈높이를 맞추며 ‘글에 담은 뜻과 줄거리와 마음’을 깊이 살피도록 맞추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물건 하나를 사도 ‘A/S’라고 해서 품질보장을 해 주는데, 책을 쓴 사람이나 만든 사람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느껴서 읽는이가 느끼거나 생각한 대목에 댓글을 달아주어야지. 넷째, 의사소통이요 이야기나눔이다. 이 세상 수많은 책이 있는데 똑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을 나누며 좀더 나은 쪽으로 생각을 추스르거나 가꿀 수 있지 않을까. 다섯째, 글쓴이가 읽은이한테 쓰는 댓글은 ‘글쓴이로서는 지난번 책에 미처 못 느끼거나 몰라서 제대로 못 담은 대목을 깨달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되는 만큼, 더 애쓰거나 힘써서 다가서야 할 대목이라고 느낀다.


 아무튼, 이분이 쓴 글을 어찌어찌하여 읽게 되면서 새삼스러운 벽을 또다시 느낀다. 늘 되뇌이기도 하고 글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나는 내 ‘글솜씨(문장력)’ 키울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나는 못난쟁이로 살고플 뿐이다. 낱말 하나, 말투 하나까지도 가장 낮은 자리로 맞추고플 뿐이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대로 글을 쓸 뿐이다. 나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지만, 내가 쓰는 글은 내 말 그대로일 뿐이다. 말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속으로 말을 한다. 입으로 말하면 침이 너무 말라서 힘드니까 속으로 말한다. 속으로 말을 하며 높낮이를 주기도 하고, 짧게 끊기도 하며, 때때로 잠깐 숨을 돌리기도 한다. 글을 쓰며 줄을 바꿀 때는 숨을 돌릴 때이다. 줄을 바꾸지 않고도 잠깐 자판 치기를 멈추며 히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을 쐬기도 한다.
 

 나한테 중요한 대목은 ‘글솜씨’가 아니니까. 나한테 중요한 대목은 ‘내가 얼마나 내 삶을 나 스스로한테 즐겁고 신나면서 아름다울 수 있게, 그러는 가운데 내 이웃들한테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느냐’에 있으니까. 이 나라에 ‘헌책방’이라는 곳이 생긴 뒤로 여태까지 제대로 대접 한 번 못 받아 온 헌책방 일꾼들이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좀더 힘차게 일해 주실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내 글이니까. 내 글솜씨 자랑이 아니라, 헌책방 일꾼들과 헌책방 책손과 헌책방 책시렁에 묻히는 책이 좀더 잘 드러나 보이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게 내 글이니까. 되도록 ‘최종규’라고 하는 개인은 드러나지 않고 묻힐 수 있도록, ‘헌책방 어느 곳’하고 ‘헌책방 어느 곳을 찾아가는 책손’하고 ‘헌책방 어느 곳에 묻혀 있는 어떤 책’이 앞에 드러나면서 사람들한테 환히 보이도록 해 주는 게 내 몫이라고 느끼니까.


 나는 헌책방 일꾼들 이야기를 할 때, 헌책방 책손 이야기를 할 때, 헌책방 헌책 이야기를 할 때 기쁘다.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배운다. 언제나 내 자신이 새로워지고 내 눈길은 새로 태어나며 내 마음은 밭갈이가 된다. 그러고 보니, 내 책 때문에 마음앓이를 한 그분은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헌책방은 ‘헌책방’이지 ‘헌 책방’이 아니다. 왜 ‘헌 책방’이라고 쓰는가? 책방이 헐었는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이런 낱말 하나하나가 헌책방을 잘못 받아들이고 잘못 보는 첫 단추가 됨을 생각하지 못하나?


 뭐, 어쩔 수 없지. 기자들도 거의 똑같으니까. 적어도 ‘국어사전에서 헌책방이라는 낱말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았다’면 이 따위 어이없는 글잘못을 저지르는 법은 없다. 기자들한테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셨어요? 헌책방은 띄어서 ‘헌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 한 낱말입니다.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다루지요? 헌책을 다루니까 ‘헌책방’이잖아요. 새책을 다루면 ‘새책방’이고요. 새책방은 ‘새 책방’이라고 쓰실 겁니까? 굳이 띄어서 쓰고 싶으시다면 ‘헌책 방’으로 쓰셔야지요. 이렇게 쓰는 낱말에 헌책방을 바라보고 느끼는 속깊은 편견과 선입관이 있다는 걸 부디 느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헌책방 이야기로 200번 넘게 취재를 당해(?) 온 1995년부터 이날 이때까지, 어느 한 번도 이런 말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고칠게요’ 하고 말해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뭐, 이분은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내가 미쳤다고 헌 책방 문화를 비난하겠는가?” 하고 말한다. 헌책방은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일까? 글쎄, 그렇게 본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저 슬플 뿐이다.


 “책의 수준과 책의 주제는 엄연히 다른 얘기인데 그 사람도 자기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를, 본인의 글솜씨에서 찾은 게 아니라, 내가 헌책방 문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쁘게 평가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는 그분. 누가 뭐라든가. 나는 그 책을 낼 때 ‘나는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요!’ 하고 내세울 마음도 없었지만, 내 문장력을 보여줄 목적 또한 없었고, 내 책을 읽으며 내 문장력을 보라는 소리를 ‘머리말이든 꼬리말이든 그 어느 대목에서건 안 적었’으며(이 따위 짓을 하려면 책을 내지 말아야지) ‘내 문장력이 아닌 “제발 헌책방에 가서 헌책방 좀 있는 그대로 봐 주셔요!!!!!!”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헌책방 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람은 모두 그 책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건가?”라는 말을 보면 기운이 다 빠지고 어깨가 축 처진다. 나는 내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서 ‘최종규라는 사람이 헌책방을 다니고 헌책방을 이야기하면서 헌책방을 잘못 보거나 잘못 이야기하거나 잘못 느낀 대목을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 글솜씨가 모자라다는 도움말은 언제나 고맙다. 이런 소리는 예나 이제나 늘 듣고 있으니까. 또한, 내 글솜씨가 모자람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남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내 글을 며칠 지난 뒤 다시 읽어도 부끄럽다. 한두 해 흐른 뒤 읽으면 얼굴이 붉어진다. 대여섯 해 지난 뒤 읽으면 다 찢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나는 이 대목을 허투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깊이깊이 되새기고 곱씹을 노릇이다. 날마다 헌책방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사람으로서, 늘 똑같은 목소리와 줄거리로 주절주절 떠든다면 어느 누가 내 이야기를 좋다고 들어 주겠는가. 헌책방 삶과 헌책방 일꾼들 모습이 얼마나 있는 그대로 사람들한테 다가갈 수 있겠는가.


 나는 ‘헌책방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헌책방으로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없이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즐기기를 바라는 한편, ‘헌책방을 오래도록 다니고 있는 내 자신’부터 곧은 중심을 잡아서 흔들림없이 살아가면서 나를 꾸준히 가꾸어야 한다. 가꾸고 또 가꾸어도 언제나 모자란 내 자신을 돌보고 닦아세워야 한다.


 그래서 주절주절 이런 글 하나를 써갈기고 있다. 첫째, 내 자신을 가다듬으며 뒤돌아보려고. 둘째, 제발 헌책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찾아간 다음 헌책방 이야기를 해 달라고. 그러고 보니, 딱 한 마디만 적으면 되었을 글인데, 참말 길게 늘어뜨리고 말았네. (4340.6.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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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6-16 09:56   좋아요 0 | URL
최종규님, 이런 식으로 또 댓글을 달게 되서 매우 유감입니다 정말 님과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이런 식으로 제가 쓴 글의 문장을 저도 모르게 퍼오는 것, 유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님이 평범한 알라딘 서재인이라면 나와 감정이 상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 같아요 지난 번 "프리챌" 에서인가? 님이 운영하는 동호회에 제 리뷰를 제 동의도 없이 퍼서 올려 놓은 걸 보고 기분이 적잖이 상했지만 그냥 넘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님은 작가이고 저는 독자입니다 어쨌든 님은 파급력을 가진 사람이고 이런 식으로 제 글을 퍼 나르는 건 저로서는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님이 원하는 의사소통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독자가 본인이 쓴 리뷰에 대하여 일일이 해명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좀 의문스럽습니다 어쨌든 님과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제 글을 저도 모르게 퍼 가시는 건 저로서는 불쾌한 일이고 예의도 아니라는 걸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숲노래 2007-06-16 17:56   좋아요 0 | URL
논쟁을 하려고 쓴 글이라면, 이 자리에 이렇게 쓰지 않았을 테지요.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려고 이 글을 썼을 뿐입니다.
글을 따와서 쓰는 것은 제 이야기를 펼치는 데에 도움을 삼으려고 따올 뿐이지,
누군가를 해코지한다거나 논쟁을 하고자 따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쓴 어디에 있는 글이냐 하는 서지사항 또는 판권사항이라 할 것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이 글은 `논쟁'이나 `의사소통'을 하고자 쓴 글조차도 아닌 한편,
저는 제 자신이 `파급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이 글에 붙인 제목부터 "나는 작가가 아니다"인걸요.
(군더더기로 붙이면, 제 알라딘 서재 방문자 평균은 하루 4~5사람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에서인지 벌써 40명이 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만.
평균 방문자 숫자가 4~5명이 채 안 되는 사람이
어쩌다가 한두 번 글 올리는 서재 글에 무슨 파급력이 있을까요?)

한 마디 덧붙여 보면, 제가 "평범한 알라딘 서재인"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평범'이라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가 쓴 이 글은 `해명'할 목적이 없는 글입니다.

한편으로, 제가 어떤 글에 해명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제 자유이지 누가 뭐라고 할 대목이 아닌 줄 압니다.
해명을 하건 말건, 해명을 할 사람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나귀'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글을 따와서
"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라든지,
"나는 그 대목에서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해명'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글이 어떻게 `논쟁'이 될까요?

marine 2007-06-16 20:54   좋아요 0 | URL
OK~~ 님의 의견이 그렇다면 뭐~~ 다만 제 리뷰를 동호회 같은데 가져가서 올리지는 말아주세요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함 자기 글이 자기도 모른 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호의적이지 않은 곳에서 말이죠)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숲노래 2007-06-17 15:53   좋아요 0 | URL
님께서 그런 생각이라면, "자기와 다른 자리에서 다른 생각으로 살면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책을 읽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참과 다르게 풀어내면서 비틀지 않아 주실 수 있어야겠지요. 영화나 만화를 안 보는 사람도 영화나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영화나 만화를 안 보면서 펼치거나 생각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속깊이 살피며 참맛을 즐기는 가운데 서로한테 도움이 되도록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헌책방 이야기와 문화는, 책 몇 권 읽는 것으로는 겉핥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헌책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가 하루하루 줄어들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만.

marine 2007-06-17 22:50   좋아요 0 | URL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쓴 글을 다른 곳에 옮기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동호회에 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올린 리뷰는 삭제해 주세요 답변주세요

숲노래 2007-11-06 10:04   좋아요 0 | URL
안티 댓글 부지런히 올려 주시는 분들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
올렸다가 지우고, 다시 와서 다시 올렸다고 또 지우시고...
 
 전출처 : marine님의 "가난의 실체"

조지 오웰 님 이야기는, 이분 책 번역을 곧잘 하고 있는 박경서 님이 낸 <조지 오웰>(살림,2005)을 살펴보시면, 퍽 낱낱이 아실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아늑한 삶하고는 평생 거리가 있는 채로 살다가 죽은, 그러니까 죽은 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빛을 본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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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2일 화요일,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아저씨는 수원에 있다는 공안 부서로 또 불려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주어진 죄란 ‘이적표현물 소지 및 판매’. 〈가자헌책방〉 아저씨는 공안 부서 경찰한테 어떤 책이 ‘이적표현물’에 들어가느냐 묻기도 하고, 공안 부서 경찰이 내민 ‘이적표현물 목록’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 ‘레닌’, ‘혁명’, ‘민족’, ‘통일’이 들어가면 거의 모두 이적표현물. 여기에 ‘리영희’라는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은 가장 끔찍한(?) 이적표현물.

 공안 부서 경찰은 변두리 헌책방 아저씨 재산(책)을 함부로 빼앗아(압수) 간 것으로 모자라 영업방해(출두명령ㆍ심문)에 공갈협박(구속적부심에 소환하겠다)까지 일삼습니다. “현재 출판이 되어 있고, 왜 헌책방에서 약한 사람이나 데리고 와서 그러느냐, 교보나 영풍이나 출판사에 가서 그런 책 출판하지 못하게 해야지, 그런 책이 처음부터 출판 판매가 되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왜 무조건 헌책방에 와서 이런 책들 압수해 가고, 책들 팔지 말라고 그러느냐고. 헌책방이 힘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이런 책들 다 새책으로 팔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하고 한숨을 쉬는 〈가자헌책방〉 아저씨. 공안 부서 경찰은 2차로 빼앗아(압수) 가려는 책을 헌책방 한켠에 따로 쌓아 놓았습니다. 어떤 책이 걸려들었는지 죽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돌베개), 《인도차이나 현대사》(여래), 《경제학개론》(풀빛), 《80년대 학생운동사》(형성사), 《필리핀 사회와 혁명》(공동체), 《일본 제국주의의 현실》(한마당), 《사회구조와 삶의 질서》(학문과사상사), 《한국자본주의와 사회구조》(한울), 《새로운 사회학의 이해》(나남),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창작과비평사), 《4월 혁명 자료집, 혁명재판》(학민사), 《소련공산당의 해체와 북한사회주의의 진로》(한울), 《장지연,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동아일보사), 《사회과학개론》(백산서당), 《미국재계를 움직이는 9명의 한국인들》(한언), 《일본의 지성이 본 안중근》(경운출판사), 《서양경제사강의》(한울), 《새계공산주의운동입문》(청년사),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이론과현실사), 《사회과학과 철학》(서광사), 《20세기 혁명사상》(동녘), 《대중문학이란 무엇인가》(평민사), 《거대 기계 지식》(생각의나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연구》(친구), 《과학기술혁명시대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중원), 《한국언론의 신뢰도》(한국언론재단), 《정치경제학개론》(한), 《사회계급론》(백산서당), 《자본주의 이행논쟁》(광민사), 《문화의 유형》(종로서적), 《현대 정치와 군부》(현암사), 《사회사상사》(사계절), 《정치적 커뮤니케이션론》(명문당), 《아리랑》(해냄), 그리고 《노자와 21세기》(통나무). (4340.6.13.물.ㅎㄲㅅㄱ)

========[ 다음 사진은, 공안 부서 경찰들이 압수한다는 `불온 이념 도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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