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강병국 글, 성낙송 사진 / 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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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우포늪
- 글 : 강병국
- 사진 : 성낙송
- 펴낸곳 : 지성사(2003.1.15.)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16 ― 내 깜냥대로 살면서 읽는 책
 : 《우포늪》을 차근차근 읽은 뒤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지 두 달이 지나갑니다. 태어나기를 인천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인천에서 지냈으나, 그 뒤로 열 몇 해를 인천을 떠나 서울로, 충주로 옮겨다니며 살았어요. 이렇게 고향과 멀어진 채 지내고 돌아와 보니, 예전 가게가 그대로인 곳도 많지만, 길과 골목이 퍽 많이 바뀌었습니다. 재개발을 한다며 골목집을 싹 밀어붙이고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어떤 골목집은 찻길로 바뀌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인천시장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기까지 중구와 동구에 있는 골목집을 모조리 허물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로 새로 지을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아파트만이 살 길’인가요. 저잣거리에서 사입는 옷보다 20층이나 30층짜리 우람한 쇼핑센터에서 사입는 옷이 우리한테 더 보기 좋거나 아름다울까요. 복닥이는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밥보다 40층이나 50층짜리 주상복합센터 식당거리에서 사먹는 밥이 우리 몸에 한결 좋거나 알맞을까요.

.. 일제시대 때 소벌을 한자로 쓰다 보니 뜻 그대로 우포(牛浦)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우포보다는 소벌로 더 많이 부르고 있지요. 참고로 목포(나무벌)는 비가 많이 오면 주변의 나무들이 떠내려오던 곳이라서, 사지포(모래벌)은 모래가 많아서, 쪽지벌은 크기가 작다고 해서 붙은 이름들입니다 ..  〈13쪽〉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날씨가 알맞게 선선합니다. 이 선선한 저녁나절에 아내와 골목길 마실을 나섭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한켠에 문을 연 도서관은 저녁 여덟 시에 문을 내리니, 밤마실 나가는 때하고 꼭 들어맞아요.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저녁 여덟 시면 사람들이 한창 술마시고 떠들고 노는 때, 또는 헌책방에 손님이 가득할 때입니다만, 인천에서는, 또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는 저녁 일곱 시만 되면 가게 불빛이 하나둘 스러지고 조용해집니다. 뭐랄까요, 이웃나라 일본하고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일본만 해도 저녁 예닐곱 시면 가게마다 문을 닫잖아요. 저녁나절은 자기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 아침에는 일찍 문을 열고요. 이곳도 그래요. 아침 일찍 가게문 열고 저녁에 알맞춤하게 가게문 내리고.

 그래서 동네 골목길이 저녁이나 새벽에 참 조용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이 씽씽 달릴 때 내는 귀따가운 소리를 빼놓고는 시끄러운 소리가 없습니다. 거리 등불은 알맞게 어둡습니다. 이러다 보니 골목길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드물고 술주정으로 떠들썩한 사람 찾아보기 어려워요. 뜨는 해를 보며 하루를 열고 지는 해를 보며 하루를 접으니, 사람몸에는 자연스러움이 배고 더도 덜도 아닌 한가위 보름달 같은 마음을 품으며 산다고 할까요.

 좀더 늦게까지 가게문을 열면 살림돈을 더 벌 수야 있겠지만, 돈 몇 푼 더 벌면서 자기 시간을 빼앗기며 자기 삶을 놓친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조금 더 번 돈으로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요.

..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시연은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로 엄격히 보호되고 있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환경부의 보호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환경은 점차 나빠지고 있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멸종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가시연도 언제 사라질 지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  〈24쪽〉

 보름쯤 앞서였나, 도원동 골목길부터 해서 신흥동과 유동께를 거쳐 경동과 율목동을 지나 싸리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싸리재 언덕길 한켠에 서 있는 길알림판을 보노라니 ‘밤나무골길’이라는 푯말이 보이더군요. ‘밤나무골길’? 이름은 참 좋은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아하, 그렇구나! 율목동 이름이 한자로 ‘밤 栗 + 나무 木’이네. 말 그대로 ‘밤나무골’이었구나, 이 동네가. 지금 같은 도시가 되기 앞서 예전에는, 지난날에는, 그러니까 수백 해, 아니 수천 해 또는 수만 해 동안 이곳 싸리재 둘레에는 밤나무가 많았겠구나.

 하지만 이제는 찾아볼 길이 없는 밤나무. 밤나무 없는 밤나무골 ‘율목동’. 무시무시한 막개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인천시장과 지역개발업자들. 공사는 나날이 끊이지 않으며, 공사비로 들어갈 수 조, 또는 수십 조는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고.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길닦기와 아파트 세우기와 쇼핑센터 짓기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라면 주민복지와 교육복지와 문화생태를 가꾸는 데에 쓰고도 남아, 대중교통에다가 택시까지도 누구나 거저로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테며, 의료혜택도 거의 거저로 받을 수 있을 텐데.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육도 돈없이 마음껏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2킬로미터짜리 길을 닦는 데에 수천 억을 들인다고 하는데, 그런 새길을 닦지 말고, 복지 정책과 문화 정책을 잘 추스른다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터전은 한결 아름답고 넉넉할 수 있지 싶은데.

.. 반딧불이는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입니다. 공기와 물이 많이 오염된 오늘날 자연환경을 되살려 반딧불이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애벌레 시기를 땅위에서 보내건 물속에서 보내건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반딧불이에게 물과 공기가 더러워지는 것은 이들에게서 설 땅을 빼앗는 것과 같답니다 ..  〈55쪽〉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이불과 깔개를 옥상 담벼락에 널어 놓기. 해가 잘 드는 날 이불과 깔개를 내놓아 말리면, 저녁에 걷을 때 뽀송뽀송한 느낌과 햇볕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걸레로 방을 훔친 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좋아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며 깔개와 이불에 골고루 배어든 햇볕을 받아들입니다. 하루 내 고단했던 몸은, 햇볕 머금은 깔개를 깔고 이불을 덮으며 말끔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굳이 이불 빨래를 하지 않더라도 개운하며, 꼭 무슨무슨 세제를 써서 빨아야 깨끗하거나 폭신폭신하게 되지 않습니다. 싱그러운 바람과 따순 햇볕이 있으니 넉넉합니다.

.. 황소개구리가 밤낮없이 우는 데 비해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주로 밤에만 운답니다 ..  〈111쪽〉

 아내가 즐겨먹는 밥은 배추잎과 토마토. 아내가 바꾸어 놓은 제 밥상은 말랑말랑 두부와 선인장채, 때때로 달걀 반 삶은 것. 그동안 된장국에 콩나물 넣어 먹거나 된장국수를 먹곤 했는데, 이렇게 밥상을 바꾸어서 먹어도 몸에서 잘 받습니다. 아니, 이런 밥상이 더 반갑구나 싶어요. 따로 불을 피워서 끓이지 않아도 되는 밥이요 반찬입니다. 불을 피워서 익힌다고 해도 조금만 하면 됩니다.

 배불리 먹기보다는 알맞게 먹으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밥을 차립니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을 수 있으나 두 끼니만 먹어도 나쁘지 않고,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가 넘으면 젓가락질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두 가지 반찬만 올려놓아도 푸짐합니다. 꼭 김치를 담가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배추잎을 물에 씻어서 먹어도 좋아요.

.. 습지는 단순히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보전된 생태계나 먼 미래의 인류의 윤택한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에 습지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139쪽〉

 ‘먹는 게 남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어떻게 먹어야 남을까요. 무엇을 먹어야 남을까요. 누구와 먹어야 남을까요. 돈 많이 벌어 마음껏 쓰며 사는 일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돈 많이 벌어 펑펑 쓰는 삶이라면, 참 딱하거나 불쌍하겠구나 싶어요. 돈을 걱정없이 쓸 수는 있지만, 돈을 쓰며 자기 스스로를 가꾸거나 이웃들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은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요. 이웃사람은 돈 한 푼 제대로 못 쓰는데, 자기 혼자 돈을 마음껏 쓰는 일이란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일이 될까요.

 저도 어릴 적 어느 때인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할 거야’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며 옅어졌어요. 돈벌어서 해야 할 일이 대단히 많더라구요. 우리 세상 어둡고 괴롭고 짓눌리고 고달픈 곳을 찾아서 풀어내려면 수십 조나 수백 조로는 턱도 없고(1980년대 어림셈으로도), 끝없는 돈으로도 안 되겠더라구요.

 일찍부터 철이 들었다기보다, 구구셈을 해 보니 그랬어요. 그래서 ‘돈 많이 벌 생각은 접자’고 마음을 바꾸었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 품은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내 깜냥대로 나누며 살자’였습니다.

 책 하나를 읽어도 그때그때 내 깜냥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속으로 삭여서 몸소 해낼 수 있을 만큼 읽자고, 일 하나를 배워도 내 몸과 마음과 눈높이에 맞게끔만 익혀서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하자고.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하되, 할 수 있는 힘이 없거나 모자라다면, 하는 데까지만 하고 뒷일은 힘과 기운이 되는 이한테 맡기자고. (4340.6.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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