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이광수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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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서도 다소 어려웠다.

힌두교가 정확히 어떤 신을 숭배하고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는지 막연한 느낌은 들지만 분명하게 이해는 다 못했다.

그래도 힌두교의 시작부터 발전 과정을 인도 역사와 더불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마치 인도사 한 권을 읽은 기분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교회에서는 강조하는데 힌두교는 앎이 바로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상숭배로 보는 신상을 향해 절을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내제된 신의 뜻을 갈구하는 것이다.

힌두교라고 하면 잡다한 신을 섬기는 다신교라고 폄하했던 것도 무지의 소치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의례 행위 자체가 곧 종교 그 자체라는 게 신기하다.

또 불교와 힌두교의 연관성도 신선했다.

사실 불교 교리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보살이었는데 이 보살의 존재가 힌두교의 여러 신들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또 소승불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대승불교가 대중의 구원을 추구하는 반면, 소승은 자기 자신의 해탈만 원하는 약간은 이기적인 분파라고 알고 있었는데 왠걸, 책에 따르면 소승불교야 말로 부처가 처음에 추구했던 본질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 공덕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나는 노력과 각성을 통해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속을 떠나는 모양이다.

재가신자의 후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대승불교는 오히려 힌두교와 매우 비슷하다고 본다.

불교와 힌두교 또 인도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힌두교가 단순히 갠지스강에서 영성을 찾는 다신교라 여겼던 게 얼마나 피상적인 생각이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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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풍요의 강 - 아프리카의 물줄기에서 바라본 이집트 역사의 파노라마 문명의 강 시리즈 4
베이징대륙교문화미디어 엮음, 한혜성 옮김 / 산수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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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도나우강 편은 유익하고 재밌었던 것 같은데 이번 나일 강 편은 솔직히 아쉽다.

중국에서 교양서로 펴낸 책들은 독자의 수준을 다소 낮게 잡는 느낌이다.

고대 이집트 5천 년 역사를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은 좋은데 투탕카멘의 비밀 같은 음모론이 마치 진짜 역사처럼 끼어들어 황당했다.

어찌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의 영화가 끝난 후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때부터 로마와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는 셈인데 이 점이 연속성을 가진 중국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사라지고 중국의 한자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슬람이 다스린 7세기부터의 역사는 소략되어 아쉽지만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류>

24p

수많은 자녀들이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람세스 2세가 60세가 되고서야 아들 메르넵타가 왕위를 이었다.

-> 메르넵타가 6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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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탄생 - 고대 올림피아부터 현대 올림픽까지
볼프강 베링거 지음, 강영옥 옮김 / 까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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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고 독일책이라 지루하면 어쩌나 긴장했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아주 유익했다.

서양에서 발간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동아시아 사회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육체에 대한 과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포츠 문화도 없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스포츠 문화도 결국은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전통을 받아들인 셈이다.

올림픽이라는 전지구적인 행사에서 상상의 공동체 즉 국가의 역량을 뽐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 스포츠의 확산에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전 국민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미친 듯이 몰입하고 온 나라가 축구에 들떠 있는 게 약간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지금은 어떤 의미로든 국민들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축제의 장이고,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이 바뀌긴 했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도 안 봤던 축구 경기를 10여 년이 지나 유튜브로 보다 보니 축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운동인지 확 빠져 버린 탓도 있다.

아마도 그 때는 국민적인 열광에 반감이 생겼던 것 같다.

솔직히 스포츠, 더 정확히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정말이지 1도 관심이 없지만 프로 선수들이 보여주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책에서는 21세기의 스포츠가 거대한 쇼 비지니스라고 하지만, 근대 올림픽 창시자들이 추구했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중가수에 대한 편견도 최근에 깨지긴 했다.

전에는 단순히 연예인, 딴따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감동을 주는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 그들 역시 대중 예술가이고 아마추어와는 다른 기량을 가진 프로구나 인정하게 됐다

역시 엘리트 선수와 박수를 치는 관중은 구별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스포츠의 기원, 곧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제전부터 시작해 21세기 스포츠의 역사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흥미롭게 풀어 쓴 좋은 책이다.


<오류>

113p

1513년,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레오 10세)로 선출되었고, 그의 조카 줄리오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주교로 선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기경에 올랐다.

-> 줄리오 데 메디치, 즉 훗날의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의 조카가 아니라 사촌 동생이다.

208p

카를 5세 황제가 영국을 방문한 이유는 그의 이모인 캐서린의 딸, 즉 당시 6세에 불과했던 조카 메리 튜더와의 약혼 때문이었다.

-> 카를 5세가 약혼한 이는 이모 캐서린의 딸인 훗날의 메리 여왕이 아니라,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공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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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경관 - 전통유산과 기억, 그리고 장소
조지프 L. 스카파시 & 아르만도 H. 포르텔라 지음, 이영민.김수정.조영지 옮김 / 푸른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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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 대한 책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은 되야 출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양질의 책보다는 오히려 종이 공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용은 빈약한데 그럴 듯한 사진과 편집 기술, 마케팅으로만 승부를 보려 하니 안타깝다.

제목은 매우 건조하고 재미가 1도 없게 생겼는데 내용은 정말 알차고 흥미롭다.

여러 학자들이 쓴 책인데도 주제에 수렴하는 통일성이 훌륭하고 지루하거나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쉽고 흥미롭다.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막연한 찬양이나 비판이 아니고, 쿠바라는 나라의 인문 자연 경관에 대해 풀어 쓴 좋은 책이다.

쿠바의 현재 경관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요소는 1959년의 혁명도 아닌 바로 설탕 산업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쿠바가 설탕 산업의 선두 주자였다니 처음 알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고 철도가 뚫리고 미국 자본이 들어와 거대한 공장이 세워지자 쿠바의 설탕 산업은 나라의 근간이 된다.

스페인 지배 시절에 노예들이 유입된 것도 이 설탕 농업을 위함이었다.

혁명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으나 90년대 소련이 무너지자 보조금에 의존하며 방만하게 운영된 설탕 산업은 몰락하게 된다.

여전히 미국과의 무역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무상 의료, 무상 주택, 무상 교육 같은 무상 복지 정책은 그럴 듯하게 들리면서도 정작 국가가 그러한 부를 창출해 낼 여력이 없으니 결국은 가난의 공평한 나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국에도 맨발의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였던가? 코로나 시대에 집집마다 방문하여 의료 서비스를 해주는 쿠바 정부에 매우 감격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선도적인 의료 기술은 결국 자본이 투입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인민이 다같이 공평하게 못사는 것과 이른바 양극화라는 불평등을 감수하면서 좀더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 것, 어떤 쪽을 민중은 선호할까?

국가는 정말로 모든 국민을 보듬어 안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대중을 지키는 것이 좌파 사회주의 쪽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빅브라더는 아닐까?

무주택자로서 이번 정권을 견디다 보니 분노가 폭발하는 건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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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1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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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 역사는 언제나 모호한 느낌이다.

바빌론은 어떤 나라인가?
현재의 이라크 민족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르크의 후손은 누구인가?
이집트처럼 폐쇄된 지역의 오래 존속된 왕국이 아니라 그런지 명확히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잘 쓰여진 책이다.
이 책 정도로는 안 되고 더 많이 읽어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바빌론은 하나의 혈통으로 이어진 왕국이라기 보다는 도시 국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문 신이나 호루스 등을 섬겼듯 이들은 마르두크를 섬겼다.
마르두크의 대리인이 곧 왕이기 때문에 신전의 사제들에게 인정받으면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테베의 신전 사제들 권한이 셌던 것처럼 마르두크 신전의 사제들은 외국인 왕을 승인하는 역할을 했다.
엘람이나 아시리아 왕들은 모두 마르두크 신전의 사제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특권을 인정해 줬던 반면, 기원전 6세기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 왕들은 더이상 바빌론 신의 권위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바빌론을 세금을 걷는 피정복지로 봤을 뿐이고 이런 배경에서 성경에 나온 유대인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에 수도가 안티오키아로 옮겨 가면서 바빌론은 지방 도시로 전락했고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이 퍼지면서 결국 마르두크 신전은 문을 닫게 됐고 신을 찬양하던 쐐기문자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19세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다시 폐허가 발굴된 것이다.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바빌론의 역사에 대해 쉽게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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