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에서 볼일을 본 어제 낮, 자전거를 몰고 남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보라매공원을 스쳐서 영등포에 이릅니다. 영등포역을 웃지르는 고가도로를 탑니다. 영등포역 둘레에 조용히 자리한 지붕 낮은 집이 몇 군데 보입니다. 비바람에 지붕 날아가지 말라며 벽돌로 꾹꾹 눌러놓았네요. 어느덧 여의도를 지나 당산역. 한강시민공원으로 잠깐 접어듭니다. 여섯 달 만에 지나가 봅니다. 그때나 이제나 자전거 타고 시민공원 들어가는 길은 참 알쏭달쏭입니다. 길이 익숙한 사람 아니고는 들어갈 구멍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길알림판이란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파른 구름다리 계단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올라갑니다. 차라리 들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까. 한강다리를 건너고 합정동으로 나옵니다. 자전거가 안쪽 길로 들어가도록 마음써 주는 자동차가 좀처럼 없었으나 그예 한 대가 살살 멈춰 줍니다. 고개 꾸벅. 홍대전철역 앞을 지날 무렵,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을 듯 마구 모는 스포츠카 한 대. 버스는 정류장에 반듯하게 대지 않아 뒷차는 하는 수 없이 길에 뻘쭘하게 서고. 차방귀와 자동차에서 내는 뜨거움을 옴팡 뒤집어쓰며 동교동에 닿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다른 곳에서 달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기 딸아들이 자전거를 몰고 볼일을 보러 다녀도 앞뒤옆에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갑자기 끼어들까요. 당신한테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는 사람이, 또는 살가운 벗님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와 놀래킬까요.

 동교동 헌책방에서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책을 구경합니다. 제 뒤로 지나가다가 툭 치는 책손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구경하는 자리에 밀치고 들어오는 책손도 있군요. 마침 그림책을 살피고 있는데, 책방 문을 열자마자 제 옆자리로 밀치고 들어온 분은 아이들 영어 그림책을 고릅니다.

 신촌에 있는 헌책방 한 군데 더 들릅니다. 오늘은 몸이 찌뿌둥해서 책 구경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신촌닷거리에서 애오개로 내닫습니다. 덩치 큰 버스는 자전거한테 1미터를 내주기보다는 빵빵거림으로 주눅들게 합니다. 노란 학원버스는 어디에서나 신나게 내달립니다. 저 버스에는 틀림없이 아이들이 타고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뒷날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게 될 때에 어떤 매무새일까요.

 어린이책은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고 아버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좋은 책’을 많이 사 주십니다. 비록 중학교 들어가는 때부터는 ‘좋은 책’은 뚝 끊어지고 ‘학습지와 참고서’로 바뀌긴 해도. 그나저나 우리 어버이들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책을 읽고 삭이고 되뇌인 뒤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있을까요. 어린이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보다 가난하거나 힘없는 이를 돕고, 잔꾀 부려 남을 괴롭히지 말며, 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살라’일 텐데. (4340.9.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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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야누스 코르착 지음, 송순재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 글 : 야누쉬 코르착
- 옮긴이 : 송순재ㆍ손성현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2000.3.15.)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20 ― 아이들아, 교과서는 책이 아니야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을 읽으며


 2000년 봄에 사둔 책을 2007년 여름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처음 손을 대기는 2006년 여름. 그러니까 책 하나 사둔 채 일곱 해나 그냥 보내다가 겨우 손에 댄 뒤에도 한 해에 걸쳐서 읽은 셈. 마지막은 깊은 밤에 읽었습니다. 마무리에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잠이 절로 달아났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날짜를 적어 넣은 뒤 덮습니다. 불을 끄고 눕습니다.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머리속에서 빙빙 돕니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불은 켜지 않고 책 앞자리에 몇 마디 끄적입니다. ‘이 훌륭한 책을 펴낸 이는, 이 책을 제대로 알아보고 즐기는 사람이 없어서 그예 판이 끊겨 버릴 판에다가 아예 사라져 버릴 판인 이 책을 놓고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플까. 아니, 판이 끊어지게 되더라도 누군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이 책을 끄집어내어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슬기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되지 하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홀가분했을까.’


.. 선생님, 비록 아이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잘해 주셔요. 우리 어린이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정말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몰라요 ..  〈182∼183쪽〉


 1979년, 한국에서는 ‘세계 아동의 해’ 기념우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세계 아동의 해’를 유네스코가 외쳤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는 여태까지 이어져 옵니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부자나라로 물건을 팔아야만 되도록 다국적기업이 벌써부터 주리를 틀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물건 씀씀이가 보통 헤프지 않은 남녘땅 사람들 살림살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게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해마다 5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만, 어린이날에서조차 아이들을 꼭둑각시나 어른들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행사만 보일 뿐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도 이날을 누가 왜 기리는지 돌아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1979년이 ‘세계 아동의 해’였으나 기념우표를 만들어 팔 줄만 알지, ‘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리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남녘땅 사람은 없습니다.


 ○   ○


 지난주 낮입니다. 은행에 볼일이 있어 길을 가다가 도원야구장(인천 숭의동) 쪽에서 무슨 큰소리가 들리기에 기웃기웃 살펴봅니다. 학교옷 입은 아이들 무리가 제법 보입니다. 깃발이 펄럭이고 경기장 둘레에 적잖은 사람들이 웅성댑니다. 뭘까? 이곳에서 무슨 경기라도 하는가?

 얼핏 넘겨다보이는 전광판을 보니 8회를 치르는 경기. 오호, 경기가 참말 있네. 옆지기와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갑니다. 문이 열린 지정석으로 들어가니 3루 응원자리는 빈틈없이 꽉 찼고 지정석도 거의 빈자리가 없습니다.

 무슨 야구 경기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만히 둘러보고 바닥에 흩어진 유인물을 찬찬히 살피니 ‘미추홀 야구대회’ 마지막날 경기입니다. 인천고등학교와 화순고등학교가 펼치는 경기. 3루 응원자리는 인천고등학교 학생으로 꽉. 1루 응원자리는 썰렁. 나중에 알았지만 화순고등학교는 전라도 학교였고, 거리가 멀어 응원을 한 사람도 못 왔구나 싶더군요.


.. 그 중에서도 카이투스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굽 높은 여자 뾰족구두, 나일론 스타킹, 레이스 달린 옷을 입은 경찰관들이 계속 넘어지면서 허둥지둥 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관들은 외국인 백만장자들을 이 끔찍한 긴급사태에서 보호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 공원의 멋과 자랑이었던 고목들이 덜덜 몸을 떨더니 땅 위로 뽑혀져 나왔다 …… 카이투스는 완전한 무질서를 원했고, 그것을 이루어냈다.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55쪽〉


 쭈뼛쭈뼛 둘러보며 빈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앞으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 야구장 옆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로 보입니다. 옆지기가 한 마디 합니다. “쟤네들 너무 귀엽지 않아요?” 중학교 아이들은 앞머리가 3센티미터도 안 되어 보일 만큼 짧은 머리, 아니 까까머리입니다. 옆지기는 이런 까까머리가 귀엽다고 합니다.

 아직도 중학교 아이들은, 인천 쪽 중학교 아이들은 까까머리여야 하나? 고등학교 아이들은 조금은 길지만, 학교에서 머리 길이 검사하는 틀에 얽매여 있음이 훤히 보입니다. ‘학생다운 머리 길이’란 있나? ‘단정한 머리 길이’란 있는가? 아이들을 모두 저렇게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로 만들어 놓으며 무슨 개성을 키우고 창의성을 기른다고. 아니, 이 나라 교육 얼거리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몸피에 매무새에 지식에다가 생각틀마저 판박이처럼 짓눌러 버리도록 맞추고 있지. 대학교에 가서도 피말리는 겨루기를 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세상과 담을 쌓고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매달리도록 몰아붙이고 있지.


.. 카이투스는 자기가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실험했다 ..  〈16쪽〉


 인천고를 응원하는 학부모들을 봅니다. 1,2,3학년 모두가 응원하는 소리보다 조금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몸짓이나 소리나 장난이 아닙니다. 저 학부모들은 왜 저렇게까지 응원을 해야 하는지.


.. “이 유리병들과 뼈다귀는 또 뭐 하는 데 필요한 거냐?” 할머니가 물어 보셨다. “안 그래도 네 방은 쓰레기 천지 아니냐?” “그냥, 필요한 거예요.” 카이투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른들은 자기하고 관련된 말이 아니면 다 허튼 소리라고 하고,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는 것은 전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  〈37쪽〉


 경기는 인천고가 이기면서 대회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화순고 선수들 솜씨가 떨어진다고까지 느끼지 않았으나, 응원 하나 받지 못한 채 주눅이 들어서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니 뭐. 안방경기(?)라지만, 대회우승을 거머쥐어야 나중에 프로지명 받기에도 좋다고 하지만.


.. “그게 아줌마하고 무슨 상관 있어요.” 카이투스가 투덜댔다. “얘야, 버릇없에 말투가 그게 뭐니?” 아저씨가 말했다. “왜 남의 일에 끼어들고 그러세요! 귀찮단 말이에요!”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 특히 어린이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견하고, 큰소리를 치고, 쓸데없는 질문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62쪽〉


 아이들은 왜 학교옷을 입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는 교사들은 무슨 교육 효과를 바라는가요. 학교옷을 입어야 하는 아이들은 이 옷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아이들은 왜 머리가 짧아야 하나요. 남자는 까까머리, 여자는 짧은머리, 이런 잣대는 누가 만들었나요. 초등학교 다니며 곱게 길렀던 머리를 눈물을 흘리며 자르고 마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교사나 교육 공무원은 없는가요. 남자는 모두 머리 길이가 짧아야만 ‘품행이 방정한 모범생’이 된다고 어느 누가 논문으로 증면해 보였는가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아주 오랜만에, 아니 학교 안까지 들어가 보기는 1994년 2월에 졸업식을 하고 나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느냐 싶을 만큼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난 유월에. 저는 그 학교 4회 졸업생인데, 어느덧 20회 졸업생이 될 아이들이 다니고 있군요. 그런가? 세월이란 참 무섭구나 생각을 하며 예전 선생님들을 한 분 두 분 뵈었습니다.


.. 조슈아의 엄마는 다 큰 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조슈아하고 의논하셨다. 아이들을 믿고 존중하는 어른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카이투스는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  〈94쪽〉


 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몇 살 많지 않은 형’으로 느끼던 젊은 교사들입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나 이때나 마찬가지로 동네 형’으로만 느껴집니다. 달라져 보이지 않네요. 새로 학교 교사가 된 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 이들 동네 형이나 동생으로 보이는 교사들 손에는 크고작은 몽둥이가 들려 있습니다. 설마 지금도 그러려고.


.. “나도 몰라. 난 어렸을 때 참 행복한 아이였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에겐 좋은 부모님과 환하고 편안한 집, 따뜻한 옷과 많은 책들, 놀이기구가 있는데 왜 다른 애들에겐 먹을것도 없고 자꾸 나쁜 일이 생길까 하고. 시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거든.” “도시에도 마찬가지야.” 카이투스가 한마디 했다 ..  〈161∼162쪽〉


 옛 국어 선생님이 마음을 써 주어서, 20회 졸업생이 될 1학년 아이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1학년 가운데 공부를 잘한다 싶은 아이들을 모아서 ‘글쓰기(논술) 보충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 보충수업을 받는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퍽 …… 퍽 …… 퍽 ……’ 하는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창가에 다가가 어디짬에서 나는 소리인가 헤아려 봅니다. 투박하지만 굵고 힘찬 소리. 밀걸레 자루인가? 야구방망이는 아닐 테고. 골프채는 아니겠지. 골프채는 소리가 안 나니까. 각목인가?


.. “……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니? 내 수업시간은 너무 시끄럽고 진도도 너무 느리다는 거야. 선생님이 무섭게 하고 벌을 많이 주면 학생들은 그 선생님 말을 잘 듣지.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싶었어. 그리고 학생들이 그걸 이용하지 않기를 바랐던 거야.” ..  〈177쪽〉


 “선생님, 남녀공학 학교로 하겠다는 (설립자) 약속은 안 지켜지나요?” “남녀공학? 아, 요새는 남녀공학 하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반대할 거야. 여학생하고 한 반이 되어 수업을 하면 자기들(남학생)이 내신이 딸리거든.”

 거의 모든 학교(중고등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인천.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채 받는 중고등학교 수업은 서로서로 무엇을 남길까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어 줄까요.


.. 서커스 단장은 전보를 쳐서 카이투스를 위해 엄청나게 큰 정원이 딸린 멋있는 집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것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원에서 놀아도 안 되고, 다른 친구들을 불러들여도 안 되고, 축제를 벌여도 안 되고, 집안을 뛰어다녀도 안 되고 ..  〈122쪽〉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학교에 붙들어매인다면, 집을 나서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따질 때, 자기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다스릴 짬이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새벽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도록 집을 나서야 하는 아이들이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양말이나 속옷을 손수 빨아서 입을 겨를이 있을까요. 아니, 빨래할 힘이나마 남아 있을지.

 저녁 열 시에나 끝나는 학교인데,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를 만한 쉼터가 있을까요. 인천에 있는 어느 책방이 저녁 열한 시나 열두 시까지 할 테며(서울에도 없지만), 어느 문화시설이 그 늦은 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따습게 안아 줄까요.


.. 우린 부자는 아니지만, 너에게 항상 좋은 충고와 친절한 마음을 줄 수 있을 거야 ..  〈95쪽〉


 아이들 마음밭을 뿌리깊이 다지는 풋풋한 나이 열셋∼열여덟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이 ‘이팔청춘’이 무엇인지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쏟아지는 소낙비를 몸으로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눈부신 햇살이 어떤 느낌인지 발끝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침저녁으로 어머님이 차려 주는(아버님들이 함께 밥상을 차려 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도 꿈같은 소리로만 느껴집니다) 밥상에 오르는 곡식이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자기들이 내딛는 땅에서, 자기들이 바라보는 ‘집과 학교 둘레’ 골목집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톺아볼 수 있을까요.


.. 손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인간들은 짐작도 못할 거야 ..  〈169쪽〉


 열여섯 어린 후배들을 한 사람씩 일으켜세우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자리에서 일어나기도 멋쩍어하는 가운데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대학교라도 말해 보라고 하나, 가고 싶은 대학교나 학과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이 교실에 갇혀서 무엇을 자기들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지요. 점수에 맞추어 아무 대학교에나 가면 그만인지.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이 고등학교 교사들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대학교까지 마치게 하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나면, 이 아이들을 낳은 어버이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 그렇게 사람들은 티격태격 싸웠다. 걱정거리가 많은 인간들이란 늘 그런 모양이다. 서로서로 도와주기보다는 모두 자기 일에만 바쁘다 ..  〈69쪽〉


 인천에서 썩 공부를 잘하는 학교 축에 못 들어가는 곳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한 곳에 들어갔으나 더 배울 거리가 없다고 느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둔 뒤 여태껏 그렁저렁 살아온 열여섯 살 많은 선배를 보는 이 아이들 마음속에는 무슨 느낌과 생각이 오갔을까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가야 할 곳은 대학교만이 아니다’는 제 말을 이 아이들은 무슨 느낌으로 헤아릴까요.


.. 늘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주 씩씩하고 끈질기게 말야 ..  〈5쪽〉


 아이들한테 한 가지 이야기를 굵직하게 했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으로 들어갈 엄청난 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너희들은 머리 좋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찬찬히 생각해 보라고, 그 많은 돈을 너희들한테 대고 있는데, 너희들이 대학교까지 마치자면, 요즘 돈으로는 2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러면 너희 부모님들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해야겠느냐고, 또 너희들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이며 대학교까지 보내게 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부모님한테는 버거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학교를 간다 만다 생각하지 말고,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에 이르는 돈을 빌려 달라고 해 보라고, 그 돈으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해서 꼭 한 해 동안 전국여행이든 세계여행이든 해 보라고. 나라안 여행이든 나라밖 여행이든 알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밥값과 잠값으로 2만 원 안팎밖에 쓰지 않으니(더 아낄 수도 있고) 한 해 동안 퍽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온몸으로 세상을 부대낄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더 나아지려고 사는 사람이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내는 완벽꾼이 되려고 경쟁판이나 싸움판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너희들 이런 자리에서도 쭈뼛쭈뼛 말을 못하는데 여자친구 한 사람 사굴 수 있겠느냐고. 너희들한테 한 번 주어진 삶이기에 너희들 스스로 길을 골라서 가야겠지만,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다부지게 거부하고 너희들 하고픈 일이나 이루고픈 꿈을 찾아서 훨씬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 학교 선생들이 몽둥이 들고 뚜들겨팰 때면 그 몽둥이를 한 손으로 붙잡고 더는 못 때리게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법이란 사람들이 살기 좋도록 하고자 만들지, 사람을 옭아매거나 짓누르려고 만들었으면 그때부터는 법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보고 있는 그 교과서나 참고서는 책이 아니라고. (4340.9.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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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찾는 방법 1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제가 느끼기로는 자기한테 좋을 책을 저마다 하나하나 살피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지 싶습니다. 제가 읽어 본 어느 책이 참 좋다고 해서, 다른 분들한테까지도 그 책이 좋을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어느 분이 참 즐겁게 읽은 책이라 해서, 이 책이 저한테까지 즐겁지는 않겠지요. 이를테면, 저는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야구단을 응원했지만, 어떤 분은 MBC 청룡-LG 트윈스로 이어지는 야구단을 응원하겠지요.

 한때는 야구를 좋아할 수 있고, 한때는 춤추고 노래하며 놀기를 좋아할 수 있고, 한때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할 수 있으며, 한때는 사랑하고 사귀는 일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다른 일을 좋아할 수 있고 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차츰차츰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며 거듭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참 좋다’고 느끼는 책도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느낄 수 있으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하면서 새삼스레 값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 저한테 “책을 많이 보셨으니까,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을 잘 아실 것 같은데, 한 말씀 해 주시지요?” 하고 곧잘 묻는 분들 앞에서, 딱히 어떤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늘 이렇게 대꾸합니다. “글쎄요. 자기가 읽어서 좋으면 좋은 책이지 싶은데요. 따로 좋은 책을 찾거나 나쁜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책 저 책 하나하나 살피면서, 가만히 책 하나를 맛본다는 생각으로 살펴본다면, 자연스럽게 자기한테 좋거나 반가운 책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남들이 읽었다고 하는 좋다고 하는 책을 자기도 사서 읽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책방에 가득 꽂혀 있는 온갖 책을 두루 살피고 읽어 보는 일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박지성 선수한테 ‘축구 잘하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이승엽 선수한테 ‘야구 잘하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이창호 씨한테 ‘바둑 잘 두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박수근 님한테 ‘그림 잘 그리는 법’을 묻는다고 해 봤자, 어떤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는지요?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고, 자신한테 좋다고 느껴지는 책은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라고 느낍니다. (4339.6.21.물.ㅎㄲㅅㄱ)


 좋은 책을 찾는 방법 2


 “알려고 하니까, 진짜 알아지는 기회가 오는데. 알아진 것 같지만, 고기 안에서 안주하려고 하면 알 수 없어.”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 말, 2007.9.5.)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을 나누는 잣대 또한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한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지, 또 자기 이웃한테도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지, 자기 식구와 동무들한테 어떤 책이 좋을지를 깊이깊이 헤아리고 꾸준하게 살피고 두고두고 살피노라면, 저절로 눈이 트여서 책이 보입니다. 아니, 책이 우리 눈앞에 와서 엥깁니다. (4340.9.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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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ㅎ출판사에 원고뭉치를 보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책 한 권 내기로 합니다. 그렇지만 ㅎ출판사 분들은 이 일에 치이고 저 일에 바빠서 제 원고뭉치를 책으로 묶어낼 낌새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반 해가 지나도록 제 원고를 살펴볼 틈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먹고살 돈이 바닥을 칩니다. 이 원고뭉치로 책 하나 묶어내면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애가 타고 혀가 타고 입술이 타고 온몸이 바싹바싹 마릅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예전 원고뭉치는 없애기로 하고 새 원고꾸러미를 마련하기로 이야기합니다. ㅎ출판사 분들은 제 원고를 읽어 보지 않으셨으니 그 글 그대로 책 하나 묶어도 좋은지 모자란지 모르실 테지요. 반 해가 지나고 한 해가 되어 가는 동안 제 스스로 느낍니다. 예전에 쓴 제 글이 참 엉성하다고, 어줍잖다고, 어설프다고. ㅎ출판사에서 제 원고뭉치를 곧바로 책으로 묶어 주었다면, 저는 적잖은 글삯에다가 책 하나 세상에 더 내놓았다는 훈장을 가슴에 달 수 있었겠지요. 어쩌면 어렵지 않게 살림이 펴지면서 제 글을 좀더 단단하게 여미거나 튼튼하게 추스르는 쪽으로는 마음을 덜 기울여 버렸겠지요.

 프랑스 만화가 ‘기 들릴’이라는 분이 일 때문에 평양 나들이를 하게 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만화로 담아낸 《평양》(문학세계사,2004)을 보고 있습니다. 평양 시내에 큼직하게 걸린 포스터 하나를 17쪽에 옮겨 그렸는데, 포스터 아래쪽에 적힌 ‘한글’을 한국사람이 못 알아볼 만큼 옮겼습니다. 프랑스사람한테 한글은 낯설고 어렵고 꼬불탕꾸불탕거리는 지렁이 움직임이었을까요.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박병태란 분 글조각을 모아 엮은 《벗이여, 흙바람 부는 이곳에》(청사,1982)를 읽다가 “만약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발전을 막고, 인간으로서의 가치의 발현을 제거해 버렸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 자를 벌해야 할까.(82쪽)” 하는 물음에 잠깐 책을 덮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람은 법에 따라 죄를 물린다지만,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고 그지없는 꿈을 짓밟은 사람은 어떤 법으로 죄를 물릴 수 있을까요.

 서울 대방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서울의 양심》(시인사,1988)이라는 시모음 하나 만납니다.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어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제자리에 놓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 책꽂이에서 《서울의 양심》을 찾아내어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습니다. 세상은 정희수 시인을 절름발이라고 가리키지만, 정희수 시인을 가리켜 절름발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눈매가 바로 ‘절름발이’ 아니겠느냐고, “자네가 만든 그 팻션 중에 / 장애자가 입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증인신문 4―앙드레 김에게)”라는 말처럼 비장애인들이야말로 절뚝절뚝 걷고 있지 않느냐고 되뇌입니다. 〈시민사회신문〉 18호 1쪽에 실린 광고를 봅니다. “20년 간 안심할 수 있는 신개념 주택”이 “사기 위한 집이 아닌 살기 위한 집”이랍니다(SH공사가 지은 아파트). (4340.9.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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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대한민국 1호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이 걸어온 30년 군 생활의 기록
피우진 지음 / 삼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글 : 피우진
- 펴낸곳 : 삼인(2006.11.21.)
- 책값 : 9000원



 이 책 하나 19 ― 사람이 땅개 되어 뒹구는 군대
 :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읽고



 인천으로 살림뿌리를 내리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다기보다 만나기 어렵다고 느꼈던 고향 동무를 다시 만납니다. 예전에는 어깨동무였다면 이제는 옆동네에 사는 사람, 이웃입니다. 인천공설운동장 건너편에 자리한 체육사에서 일하는 고향동무는 제가 펴내는 1인 잡지를 읽고 한 마디 합니다. “야, 조정래 씨 소설이 금서야?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태백산맥》하고 《아리랑》 읽었는데. 보안과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도장 찍어 달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고 그냥 찍어 주더라. (내무반 검사할 때) 도장 찍혀 있으니까 아무 문제 없고.”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잦아들었지만, 한동안 헌책방 일꾼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못살게 굴고 구속까지 시키려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지난달입니다. 그리고 그때 ‘불온도서’로 찍힌 책들 목록에는 ‘조정래 씨 소설’이 빠짐없이 올라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내용 안 봐. 도장 찍혔는가 안 찍혔는가만 봐.” 고향동무 말마따나 보안검열을 하는 사람은 ‘불온도서가 왜 불온도서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와 있으니까 불온도서’일 뿐입니다. 세월이 달라졌다면, 사회가 거듭난다면 ‘불온도서라는 목록이 있어야 한다고 해도 이 목록에 실릴 책은 달라져야’ 합니다. 아니, 불온도서라는 책이 있을 수도 없지만, 억지로라도 불온도서가 있다고 한다면.


.. 전역 심사를 하기 위해 상이 등급 판단을 위한 전공유무심사도 다시 했는데, 나의 상이 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왔다. 근무 여부를 결정짓는 장애 등급은 상위의 2급으로 판정되어 전역 대상이 되었는데, 막상 연금 액수가 걸린 상이 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전공상심사를 주관한 의무부서에 항의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지금 활동하는 데에 아무 이상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상이 없다면 장애 등급은 왜 2급이란 말인가. 전역은 시키되 연금은 많이 줄 수 없다는 말인가? ..  〈244쪽〉


 지지난달, 헌책방 일꾼을 국가보안법 잣대로 들볶고 괴롭히던 때,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2007년 여름, 헌책방 일꾼은 ‘조정래 씨 소설을 팔았다는 까닭’으로 구속이 될 뻔했지만, 1997년 봄,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부대에 있던 스물세 살 젊은이는 ‘조정래 씨 소설을 불사르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한 줌 재가 될 뻔했습니다.

 ○   ○

 1997년 봄, 강원도 양구군 동면, 대우산 선점중대에서 내무반검사를 하던 중대장은 1소대부터 화기소대까지 사병 캐비넷을 샅샅이 뒤지면서 ‘불온도서 색출’을 합니다. 이때 불온도서로 찍힌 책 들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겨레신문사에서 찍은 책’ 들과 몇 가지 섹스소설. 얼추 쉰 권 남짓 걸려든 불온도서를 불사르는 몫은 저한테 떨어집니다. 낑낑대며 책을 들고 소각장으로 갑니다. 몇 가지 책을 찢어서 태우다가 《태백산맥》과 《아리랑》까지 태우는 일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백산맥》까지만 태우고 《아리랑》은 소각장 한쪽 구석에 잿더미를 쌓아서 안에다 숨겨 놓습니다.

 하지만 중대장은 남김없이 찢어서 태웠는가를 알아보려고 몰래 소각장에 왔고, 불쏘시개로 하나하나 뒤적이다가 한쪽 구석에 안 태우고 숨겨 놓았던 《아리랑》을 보고 맙니다. “너 이 새끼, 간첩이지!” “…….” “너 같은 새끼들 죽이는 거는 아무것도 아냐! 그냥 총질해서 죽인 다음에 철책 안쪽에 집어던져 놓고 월북했다고 하면 그만이야!” “…….”


..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취급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선택한 길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고들 있습니다 …… 그나마 저마저 항공병과를 떠나면 우리 후배들은 어찌 될는지요. 규정을 운운하며 여군들에게만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그들은 과연 규정을 얼마나 지키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들 있는지 ..  〈234쪽〉


 1997년 12월 31일, 함박눈이 쉬지 않고 쏟아지던 도솔산을 내려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차가 내려갈 수 없으니 하룻밤 더 자고 가라는 대대장 말에, “걸어서라도 가겠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눈밭에서 뒹굴다가 골짜기에서 떨어지더라도 군막사에서는 1분도 더 있기 싫었던 전역동기들. 그예 대대장은 억지로 작은 군짐차 하나 바퀴에 쇠사슬 감아서 내려보내도록 했고, 걸어서 한 시간 길이던 곳을 덜덜덜 천천히 달리는 짐차가 두 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산밑마을, 팔랑리에 닿습니다. 속속옷과 깔깔이는 후임병한테 빼앗겼고 장갑까지 빼앗긴 동기들도 있어서 두 시간 동안 벌벌 떨어야 했지만, 부처님오신날까지 녹지 않는 도솔산과 대우산 눈을 올려다보면서 ‘이제 눈은 참말 싫어’ ‘이 차에서 얼어죽더라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테야’ 하고 이야기하던 우리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닿아 전철을 타고 한강다리를 지나며 인천 부모님 집으로 갈 때는 저녁 여섯 시가 넘어갈 무렵. 붉게 노을지는 햇살이 전철에 깃들었고, 저녁햇살은 머리 희끗한 아저씨 얼굴로도, 꾸벅꾸벅 졸다가 떨어뜨린 생활정보지로도 비추었습니다. 저 아저씨가 이런 시간에 왜 전철에서 생활정보지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줄은 한 주쯤 지난 뒤 알았습니다. 아이엠에프.


.. 나는 그 여군 장교를 고소하고 문제를 공론화시키라고 여군 하사관에게 충고했지만 본인이 주저하였다. 실상 그런 일은 아주 흔하다곤 할 수 없지만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여군들은 대개 혼자 눈물을 흘리며 잊어버린다. 군 생활을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부사관이나 하급 장교들이 여군 고위직 간부와 정면 대립하기는 힘든 것이다. 자기 부하를 남군의 노리개로 전락시키는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대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  〈201쪽〉


 아이엠에프는 전역하고서 한 주가 지나서 알았으나, 열 해가 지나도록 몰랐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군대에서 ‘멀쩡히 있던 짐차 엔진이 한낮에 과열로 터져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와 ‘대인지뢰를 밟고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뜻했는지를. 대인지뢰를 밟고 둘이 죽었다고 하던 그날 밤, 저도 밤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지뢰 터지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지오피 옆옆 소초에서 있던 일이었는데.


.. 언론은 그런 행사에 참석한 여군 장성, 전투기 조종사, 수석 졸업자 등등 성공한 여군들에게만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50년 넘는 세월 동안 남성 중심의 군 문화 속에서 여성의 자리를 찾기 위해 피땀 흘려온 사람들은 이름 없는 대다수의 여군들과 사회 각지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와준 분들이다 ..  〈6쪽〉


 그제 밤마실을 하다가 옆지기한테 군대 적 이야기 하나 들려줍니다. 마침 빵집 옆을 지나가고 있었기에 그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첫 휴가를 나와서 친구들한테 크림 잔뜩 있는 케익을 하나 사 달라고 했어요. 생일도 아닌데 무슨 케익이냐는 친구들한테, 그냥 크림케익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군대에 가서 첫 훈련으로 혹한기훈련을 뛰었는데,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만큼 배고프지, 행군은 끝나지 않지, 그때 중대장이 뭔 일로 앵돌아져서 열여덟 시간 동안 못 쉬게 하고 산악행군을 했는데, 이등병이라고 처지면 미움받고 까이는 거 뻔하고, 밥도 안 멕이고 무거운 군장 멘 채 걷기만 하자니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데 내 앞에 가는 고참이 숲길에서 눈을 떠서 먹더라고요. 옳거니 나도 눈이라도 먹자 싶어서 자꾸자꾸 눈을 퍼먹었어요. 속으로 생각했지요. 난 진짜 케익 싫어하는데, 이 눈을 케익으로 생각하며 먹자. 그러니까 뒤에서 걷던 고참이 불쑥 한 마디 했어요. ‘야, 너무 많이 먹지 마. 탈난다.’”


.. 우리 사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원칙과 예의를 들먹이며 항의하는 나를 대견하게 보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가 늘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학교 선생에게 100대까지 맞아 보기도 했다 ..  〈35쪽〉


 첫 휴가 받고 세상바람을 쐬게 되던 날(1996년 2월) 고향동무들이 고기를 사 주었습니다. 불쌍한 군인은 고기도 못 먹을 테니 고기 잔뜩 먹으라고. 저는 한손으로는 크림케익을 먹고 한손으로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혼자서 케익 한 통 다 먹었습니다. 맛은 없더라구요.


.. 군대라서 남녀 차별이 없을 거라는 건 나 혼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제도적으로 이미 여군은 남군을 보조하는 것으로만 정해져 있었다 ..  〈46쪽〉


 군대에서 벗어난 지 열 해가 지났습니다. 몸은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마음이나 몸이나 군대에서 못 벗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군대에서 못 벗어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몸짓이나 말투나 생각이나 마음까지도.

 군대에서 벗어나서 대여섯 해가 지난 때였나, 어릴 적부터 저를 알던 고향동무들이 ‘너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하냐?’고들 물었습니다. ‘왜?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했습니다만, 군대에 있을 적 아침부터 밤까지 욕이란 욕은 죄 주워섬기면서 모든 말마다 욕을 달았던 버릇이 씻기지 않았어요. 잠자리에 들 때만은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았지만,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눈알을 부라리며 미친년 개잡놈 씨부랄새끼 들을 주워섬기며 살던 말짓과 몸짓을 도무지 털어내지 못했어요. 저만 못 느끼고, 제 둘레사람들은 다 느끼고 있었어요. 이제는 그나마 욕설은 조금만 내뱉도록 추슬렀지만, 마주한 사람을 칼로 후비는 듯한 말투나 말씨까지는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 군기를 잡는 것과 기를 죽이는 것은 다르다 ..  〈61쪽〉


 살아남자고, 죽을 수 없다고, 나를 골로 보낸 뒤 군대 의문사로 지워버리겠다는 그 중대장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고, 주먹질이면 주먹질 욕질이면 욕질 삽질이면 삽질, 그 온갖 이야기가 그저 숨죽인 채 대물림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아직도 살아남아야 하나요. 아직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나요.

 머리에 별이란 것을 단 녀석이 부대방문을 한다는 계획이 연중행사 가운데 하나로 잡혀 있으면 ‘도로보수’라는 이름으로 한 달 동안 산골짜기 부대 흙길을 도톰하게 메우는 일을 합니다. 별 단 개새끼가 탄 찌프가 잔돌에라도 튕겨서 움찔하면 대대장한테 불호령이 떨어진다나, 중대장이 진급을 못한다나……. 연대에서도 설설 기면서 덤프를 지원해 주며 어디선가 모래를 퍼 옵니다. 덤프가 지나가면서 모래를 술술 뿌립니다. 그러면 주특기 100 우리들 땅개는 삽 한 자루씩 들고 조르르 서서 고 흙길이 올록볼록 하나 없이 반반하게 되도록 두들기고 밟습니다. 행정보급관은 옆에 서서 삽질이 어수룩한 땅개를 발로도 차고 주먹으로 배를 어루만져 주기도 합니다. 땅개니까,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이라면 10종이고 개라면 9종이었으니까.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낮이고 밤이고 모든 훈련과 행사를 접어두고 ‘비상 출동’이 내려졌지요. 모래 다 쓸려내려간다고. 모래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출동해서 물골을 트고 모래를 잡아 두라고.


.. 함께 조종사가 되었던 여군 동료들은 모두 정조종사가 되어 보지 못하고 항공단을 떠났다. 우선 후배가 가장 먼저 군을 떠났다. 출산 때문이었다. 여군도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전역을 해야 했다. 그것이 규정이었다. 참 우스꽝스런 제도이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여군이 무슨 성직자도 아닌데 결혼까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 말도 안 되니까 결혼은 허용한 듯한데 막상 출산을 하면 강제 전역시킨다. 결국 결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건 비합리적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제도다 ..  〈79쪽〉


 괴로워하는 후임병을 보면서, 익살쟁이 고참병 한 사람이 “야, 북한 애들은 천삽뜨기 운동(천 번 삽질을 한 다음 허리 한 번 펴기) 하잖아. 그러면 우리는 만삽뜨기 운동 하자. 헤헤헤.” 저도 따라 웃었지요, 헤헤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스물, …… 서른, 어 허리 폈네. 허리 왜 펴? 죽을래? 헤헤헤. 다시 만 번. 하나, 둘, 셋, ……”

 삽질을 해 보면 백 번을 뜨고 허리 한 번 펴도 힘든 판인데.

 그런 우리를 보며 행정보급관이 힘을 북돋워 준다면서 하는 말, “야, 늬들은 말야, 군대에서 좋은 거 배운다는 거 잊으면 안 돼. 늬들이 전역해서 뭐 할 일 있겠어? 공사판에나 가서 일해야지. 그때 우리 부대 야상 입고 나가란 말이야. 야상에 백두산 그려진 거(제가 나온 부대에서 쓰는 사단 무늬) 입고 가면 오천 원을 더 받아, 오천 원을, 알아?”


.. 어느 날 밤이었다. 10시 반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내가 비행학처로 오기 전의 처장이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처장들하고 술 한잔 했는데, 2차로 여기서 한잔 더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취침중이라 안 된다며 문을 열어 주지 않자, 그는 “왜? 술이 없어서 그래? 술하고 안주는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어서 문이나 열어” 하면서 …… “여자 아니라도 취침중인데 취해서 찾아와 무조건 문 두드리는 건 결례 아닙니까?” “결례? 남자들은 상관이 술 마시자고 찾아오면 황공해 하면서 얼른 문 열어 줘. 내 부하 중에 너 같은 앤 하나도 없어. 알아?” “그럼, 그런 부하 찾아가세요. 왜 싫다는 사람에게 그러십니까?” ..  〈144쪽〉


 적으면 열아홉, 많으면 스물여섯이었던 젊은이들. 저도 젊은이였을까요. 제 입영동기인 또래 동무는 소대 배속을 받은 첫날부터 고문관으로 찍혀서 전역하는 날까지 눈치밥과 미움밥과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병장 때 들어온 스물여섯 살짜리 후임병은 열아홉 살밖에 안 된 이등병 고참한테도 뒷간으로 끌려가서 얻어맞고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고 있는 스물여섯 살짜리 고참(그때 제 나이는 스물셋)한테, “○○○ 이등병, 밖에 나가면 형이었을 텐데, 다들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 나도 그 꼴 보기 싫어서 남들보다 군대 일찍 들어온 편이지만, 내 바로 위에 동갑내기가 있었거든. 그 자식 생각만 하면 전역하고 대구에 가서 그놈 찾아내서 족치고 싶은데, 어쩌겠어. 살아야지. 진짜 힘들겠지만, 일 년 참아야지. 3소대 ○○○도 스물네 살에 들어와서 진짜 고생했는데, 이제 일병 달고 나니 많이 나아졌잖아. 이 좆 같은 곳에서 개죽음 당할 수 없잖아. 미쳐버릴 수 없잖아.” 하고 이야기하며 담배 한 개비 내밀었습니다. 이런 달래기가 몇 번 이어졌습니다. 아니, 거의 날마다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전역할 사람, 스물여섯 살짜리 이등병, 중대장보다 한 살 어리고 모든 소대장들보다 나이 많은 이등병은 앞으로 스물넉 달을 군대에서 견뎌내야 할 사람.


.. 입맞춤을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 한 번의 일로 그 여군 장교가 사단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노라고 군 검찰에 바로 고소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모든 여군들이 그러기를 바라고, 나라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대개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일개 소위가 자기 부대의 사단장을 고소하여 그것이 제대로 처리될지 자신할 수 없고, 만약 흐지부지 끝나면 그 후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196쪽〉


 저보다 열한 살 어린 고향후배 한 사람이 지난주에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훈련소에서 한창 설설 기고 있겠군요. 그 어린 넋은, 아니 그 젊은 넋은 군대에서 얼마나 젊디젊은 넋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옛날과 견주면 ‘좋아졌다’고 하는 군대이지만, 군대가 아무리 좋아진다한들, 남과 북이 총부리 맞들고 싸우는 지금 형편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미국한테 식민지처럼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며 온갖 무기를 사들여야 하는 쇠사슬을 끊지 않는다면, 나라가 아닌 권력을 지키는 군대 조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다면, 총이 아닌 낫과 연필을 들고 평화를 가꾸는 마음으로 우리 삶을 돌려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랄 젊은 넋들은 어찌 될는지요. 아이를, 사내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4340.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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