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 찻길을 달리더라도, 길가에 함부로 대놓은 차와 부대낄 수밖에 없다)

 

4/26 - 서울에서 인천으로 46번 국도


- 어제 홍제동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길바닥 두 군데가 길쭉하게 꺼져서 쿵 하고 두 번 찧었다. 불빛 없는 어두운 데라서 깜짝 놀랐는데 넘어지지는 않았다. 뭘 하기에 길을 저렇게 파 놓았을까 싶었다. 낮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서며 비로소 무엇인가 알다. 여기 비탈길 접어들기 바로 앞서 너른 자리에 홍제3동 사무소를 새로 지었는데, 동사무소 앞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서, 헌 아스팔트를 파내려고 미리 파 놓았던 것.

 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온다. 동사무소 건물 짓는다며 떠들썩거리기 앞서까지는 길이 엉망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아니, 동사무소가 새로 들어선다고 해도 아스팔트를 굳이 새로 깔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편인데. 패인 곳 한두 군데만 때우면 되는데. 오늘은 새 아스팔트 깐다고 길을 다 막아서고 난리법석. 돌아가는 길도 없는 외통수인데 하염없이 길을 막고 있다. 허 참. 그러면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라고? 지나갈 길 하나 마련하지 않고, 거기다가 알림판 하나 세워 놓지 않고, 더구나 이런 공사를 한다고 미리 알리지도 않고. 이 공무원 년놈들 나라밥 처먹고 한다는 짓거리가 이 따위인가.

- 아스팔트 까는 길을 아슬아슬 지나오는 동안 까만 찌끄러기 돌이 바퀴에 잔뜩 달라붙다. 바퀴 안 녹나 모르겠네.

- 찻길을 달리며 내 뒤나 앞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자기 줄로 가지런히 안 달리는 자동차가 으레 있다. 이웃 줄과 자기 줄에 엉성하게 걸쳐서 두 줄을 차지하며 달린달까. 이렇게 달리는 자동차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다른 자동차한테 짜증스러운 경적 울리기를 하곤 한다. 자기들 달리는 모양새는 생각도 않고.

- 무어 그리 갈 길이 바빠서 들쑥날쑥 줄을 바꾸어 가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무어 그리 빨리 가야 해서 그렇게 경적질을 하며 앞지르기를 하실까. 문득, 자동차 경적은 자전거한테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끼리도 참 많이 한다고 느끼다.

- 네거리 신호가 바뀔 듯하면, 페달질을 더 빨리 밟지 않는다. 멀찍이 200∼300미터쯤 앞에서 신호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헤어 본다. 넉넉히 건널 만하지 않다면, 아슬아슬하므로 빠르기를 조금 늦춘다. 이렇게 하면 목적지에 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할 수 있지만, 시내에서는 어차피 신호에 자주 걸리는 터. 이렇게 해도 달리는 시간은 그다지 안 벌어지지 싶다.

- 양화다리로 가는 길. 합정동 버스정류장 앞에 버젓이 서 있는 자가용 한 대와 짐차 한 대. 여기에다가 새로 멈추어 서는 작은 자가용 한 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한테 한 마디 할 생각은 없는가. 이런 차는 사진으로 찍어서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들은 정류장을 턱 막고 서 있는 자동차한테 빵빵거리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대충 버스를 세우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타고내리도록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한테는 빵빵거린다. 괘씸한 것들. ‘동업자’ 정신인가?

- 양화다리 건너고 대림동 지날 무렵부터 자동차가 줄다. 한숨을 놓다.

- 송내까지 다른 탈 없이 차분하게 달리다. 몇몇 버스하고는 사이좋게 달리다. 네거리 신호가 바뀔 때 자전거를 옆으로 빼서 버스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니,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 자전거 지나갈 틈을 조금 넓게 마련해 준다. 서로서로 이렇게 해 주면 더 홀가분하고 즐겁게 자전거나 자동차를 몰 수 있겠지.

 그런데, 송내에서 거침없이 막 달리는 아저씨 한 분 보다. 네거리 신호가 막 바뀌어 건너가는데 불쑥 내 왼쪽으로 튀어나와 앞지르려는 아저씨. 아마 뒤에서 줄곧 달려오신 듯. 내 자전거가 슬슬 탄력을 받아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즈음, 뒤에서 버스가 큰소리로 울리는 빠앙 빵. 깜짝 놀라다. 저 버스는 몇 초만 기다려 주면 될 터인데, 또는 옆으로 살짝 비껴 가면 될 텐데.

 거침없는 아저씨 자전거는 네거리 신호가 빨간불이건 푸른불이건 따지지 않고 그냥 건넌다. 너비 이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넓은 네거리도 그냥 달린다. 아저씨는 목숨을 내놓고 달리시는가. 그래, 아저씨 한 분이 그렇게 목숨 내놓으시는 건 당신 뜻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먼길을 오가는 사람이 똑같이 욕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 오류동부터였을까. 거의 부평에 다다를 때까지 88번 버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다. 나는 버스한테, 버스는 나한테 마음을 쓰면서 달리다. 내가 버스정류장 앞을 지날 때면 외려 버스가 빠르기를 늦추며 나보고 얼른 지나가라고 해 준다. 그 다음에는 내가 길섶에 바싹 붙어 자전거를 세우며 버스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따로 손을 흔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또 저 버스기사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마음좋은 사람을 만났다. 혼자 달리는 이 길이 88번 버스 한 대로 외롭지 않았다.

- 달리다가 페달질이 좀 이상하다 싶어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피니, 체인에 무언가 끼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운다. 체인을 살살 돌려 본다. 누군가 길에 버린 휴지가 체인에 감겼군.

- 간석오거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빠졌는데, 엉뚱한 데로 길이 이어진다. 그대로 가야 했군. 백운역을 고가도로 위로 지나갔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골똘히 생각하다. 인천 시내 달려 본 일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길이 아직 잘 안 잡힌다. 자칫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다. 표지판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음. 아무래도 동암역을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할 듯.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낯익은 길. 석바위 쪽 알림판과 동암역 알림판으로 나뉘어지다. 석바위 쪽으로 가다. 주안역 알리는 알림판 나오다. 조금 달리다 보니 고가도로 하나. 아차차. 이걸 타야 했나? 알쏭달쏭. 길을 거슬러 고가도로를 넘다. 넘으면서 보니 고가도로 밑 오른쪽 길은 ‘인천대학교’ 가는 길이란다. 어, 저쪽으로 그냥 갔어도 되었나?

 고가도로 내려오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주안역. 아, 내가 가려던 길은 이 길이다. 제대로 왔네. 하지만 다음에는 고가도로 밑으로 이어지는 주안역 뒷길로 가도 되겠구나. 그 길이 한결 낫지.

- 어린이집 노란 봉고차, 내 옆을 바싹 스치며 달리면서 빵빵거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저렇게 거칠게 달려도 좋은가. 저 봉고차를 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 주안역 앞. 빨간 자동차 한 대가 깜빡이 안 켜고 갑자기 내 앞으로 확 끼어들며 주안역 안쪽으로 들어섬. 살짝 급브레이크 밟으며 차와 안 부딪힘. 심장이 벌렁벌렁. 그 차를 좇아가 따끔하게 쏘아 줄까……. 아니다, 말자, 저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자, 그냥 가자.

- 제물포를 지나고 도원역에 이를 즈음. 기찻길 오른쪽 골목으로 갈까 하다가 그만둠. 기찻길 오른쪽 동네길은 다음에 지나가기로.

-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이고. 이제 다 왔군. 계단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가방을 3층에 올려놓고 디지털사진기 들고 내려와 자전거 사진 한 장.

 자전거님, 애 많이 쓰셨어요. 이제부터 인천과 서울을 오갈 짐바리가 될 터이니, 살뜰히 아끼고 사랑하고 고이 보듬어 드릴게요. 오늘 하루는 푹 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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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 이야기 산하작은아이들 15
로랑 고데 외 지음, 백선희 옮김, 마르탱 자리 그림 / 산하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다섯 손가락 이야기
- 글 : 카미유 로랑스, 장 드베르나르, 미카엘 글뤽, 로랑 고데, 엠마뉘엘 다를레
- 그림 : 마르탱 자리
- 옮긴이 : 백선희
- 펴낸곳 : 산하(2007.5.5.)
- 책값 : 8500원


― 다섯 사람한테는 다섯 빛깔이
 : 《다섯 손가락 이야기》를 읽으며



 다섯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발걸음 너비며 팔 젓는 매무새며 얼굴빛이며 다섯 모습입니다. 열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열 가지 모습이고, 백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사람 눈에는 비슷하다고 할지 모르나, 참새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면 다섯 모습이고, 열 마리가 모이를 쪼면 열 가지 모습이며, 백 마리가 모이를 쪼면 백 가지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잖은 그림쟁이나 만화쟁이들은 천 마리도 아니고 백 마리도 아닌 열 마리나 스무 마리 개미나 잠자리를 그릴 때 틀에 박힌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들에 핀 꽃들이 같은 갈래라 해도 백 가지 꽃이 피었으면 꽃잎 크기부터 모양새까지 하여 똑같은 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이 다름을 느끼고 있을까요.

 초등학교 적부터 제도권 입시교육으로 치달으며 우리 생각과 마음을 좀먹는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줏대를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니까 자꾸만 다 다름(다양성)을 잃고 어슷비슷 뻔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요. 자기 줏대를 가꾸지 못하니 유행에 휩쓸리게 되면서,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을 알맞게 사서 쓰거나 손수 마련해서 쓰지 못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되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에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연고대나 이화여대에 안 가면 사람 구실을 못할까요. 서울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천도 안 되는데, 팔십만∼백만에 이르는 수험생들은 서울대에 못 들어갔다는 까닭 하나로 사람 대접을 못 받아도 될는지요.

 키가 큰 동무는 키가 큰 대로 반갑고, 키가 작은 동무는 키가 작은 대로 좋습니다. 오른손잡이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왼손잡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고, 나라살림이 한껏 부풀어올라 세계 몇 손가락에 들 만큼 부자나라가 되더라도 가난한 사람과 거지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잘산다고 다른 모든 나라가 잘살 수 있을까요. 우리들 모두는, 자기 깜냥대로 자기 발걸음대로 자기 몸피와 마음밭대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야기책 《다섯 손가락 이야기》는 사람마다 두 손에 걸쳐 열씩 있는 손가락이 모두들 어떤 노릇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엄지는 엄지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새끼는 새끼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검지는 검지이기 때문에 훌륭하고 가운데는 가운데이기 때문에 멋지다고 이야기해요.


..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 연극은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연극을 해 보면, 손잡고 함께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거든요. 어른이 되더라도 말예요 ..  〈68쪽 / 미카엘 글뤽〉


 미국이 참말로 평화를 사랑하며 우리 나라하고도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면, 한국에서 ‘보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끔찍한 피울음을 울게 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억지로 맺으려고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태여 한국땅에 수만 미국 군대를 앉힐 까닭이 없는 한편, 미국에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공장을 ‘생필품 공장’으로 고칠 테고요. 뭐, 미국만입니까. 러시아도 프랑스도 영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일본과 북조선과 남한 모두 마찬가지예요. 중국과 대만과 인도와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4340.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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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5일 자정을 넘길 무렵,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아저씨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 오늘 조금 전까지 수사를 받고 나오는데, 벌써 네 번째, 아니 다섯 번째예요. …… 강남 가는 버스 기다리는데, 너무 기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술 한잔 했습니다.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는데요. …… 지문도 찍고,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 용공사범으로 등록이 되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사회 상황을 만들어 가는 이 사회가 참 미쳐 버리겠다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최종규 씨, 참말, 내가 전화 안 하고 싶은데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 하다가 전화를 끊으십니다. 그리고 십 분 뒤 전화가 한 통 더 왔고, 이십 분쯤 지나서 다시 한 통 옵니다.


 이번에는, “지금 메모하실 수 있어요? 적어 주세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심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철학사》. 이제 끝났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문 받다가. 아주 승질이 나게, 아주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은 아침 아홉 시부터. 그리고 《이성과 혁명》이라고 마르쿠제 있잖아요. …… 검찰 측에서, 공안부에서 하는 게……, 내가 오늘 어디까지 간 줄 알아요? 증말 미쳐버리고 싶다는 게, 경기지방검찰청 과학수사대, 과학수사대에서 지금, 좀전에, 지문검색을 하고 범법자로, 국가비밀누설, 좌경용공사범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선동화, 선동 있잖아요……. 고무 찬양으로. 지금 완전히 국가사범으로, 김종웅, 죄명, 국가사범, 딱 이렇게 되어 버렸어. 예, 사람 완전히 미쳐버리겠어요. 안 미치겠어요? 나 아까 전에 나오면서 소주 두 병 혼자 까 버렸어요.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하고 덧붙입니다. 이 다섯 가지 책에다가 《김현-문학사회사》, 《이병주-지리산》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듯.


 그리고 삼십 분 뒤, 네 번째 전화가 옵니다. “지금 거리에 주저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가기는 가야겠는데, 어떻게 할까 해서 전화도 하고 골몰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애타며 기다리고 있고, 나는 택시를 못 타요. 내가 왜 택시를 타요? 택시비도 만 원 이상 나오고. 나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입장이고, 내가 …… 증말, 딱 한 마디, 죽을 지경입니다. 지금 현재. 앞으로도 딱 그 하나만. 차소리 들리죠? 엄청난 소음과 공해와 사회에 대해 찌들은 우리 삶이 얼마나 핍박받고 있는 걸 누가 알까요? 이 새벽에, 이 새벽에, 이 새벽 공기를 마시는 사람만이 알고 있지요? 이 새벽 공기, 새벽이라는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 어떻게든 집에 가야겠지요. 걸어가든 어떻게든 암담하네요. 난 지금 너무 어려워요.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렵고, 너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4340.6.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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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사슬은 헌책방까지 짓밟는다
 - 나쁜법은 ‘나쁜’ 법입니다



 - 1 -

 국어사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을 찾아봅니다. 풀이를 읽으니,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도록 제정한 법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행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 나라 안전을 흔들거리게 한다는 ‘나라를 거스르는 짓’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을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며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일이란 또 무엇일까요. 벌써 다섯 해가 지난 일입니다만,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서 개죽음으로 사라져 버렸을 때 ‘국가보안법’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녀린 어린 목숨이 꽃을 피우지 못했는데. 지금도 파주며 철원이며 군부대가 득시글거리는 시골마을 길가에서는, 미군 장갑차와 탱크가 군사훈련이라면서 논둑을 무너뜨리고 ‘말리는 곡식’을 죄 짓이겨 놓아도 ‘못 봤다’는 말 한 마디로 둘러대고 아무런 피해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으면 수십 억, 으레 수백 억, 때때로 수천 억을 빼돌리는 어마어마한 ‘경제사범’들이 곧잘 언론매체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제사범이 얼마나 엄청난 돈을 빼돌렸어도 구속이 되어 심문을 받고 그동안 빼돌린 돈을 뱉어내는 일이란 볼 수 없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 또한 아직까지 추징금을 안 내고 있으나 국가보안법은 이 두 사람을 붙잡아 가두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살림을 엉터리로 꾸려 간다고 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을 헐뜯는 사람이 ‘나라를 거스르는’ 셈인가요,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나라를 거스르고’ 있으니 국가보안법에 따라 벌을 주어야 하는 셈인가요.

 자전거를 탈 때든 걸어서 다닐 때든 늘 겪는 일입니다만, 건널목 푸른불이 바뀌면 사람들이 다 건널 때까지 잘 기다려 줄 뿐 아니라, 걸음이 느린 아이나 어르신이 빨간불에도 미처 못 지나갔어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리면서 뒷차가 빵빵대는 소리를 고이 받아 주는 운전자가 퍽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푸른불이 되어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건너고 있는’ 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치건 말건 밀어붙이는 운전자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운전자한테 손가락질을 하며 “야 임마! 그 따위로 운전하면 돼! 사람 죽이려고 해!” 하고 큰소리를 치면, 차 유리창을 내리며 “니가 뭔데 지랄이야?” 하면서 되받는 운전자를 쏠쏠히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릴 때면 95/100쯤 되는 운전자는 아무 말 없이 자전거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지나가 주지만, 5/100쯤 되는 운전자는 갑자기 밀어붙이거나(진짜로 칠 때도 있습니다) 골목길로 꺾어들거나 길가에 차를 댄다며 홱 앞으로 끼어들거나 귀따갑게 빵빵거리며 비키라고 합니다. 자전거를 괴롭히는 다섯 사람 말고, 자전거를 지켜주는 아흔다섯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 2 -

 국가보안법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때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과 함께 사라졌으나, 1950년대 끝무렵에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끄집어내어 날치기로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독재정권 몸부림이 하늘을 찌르던 그때, 자기를 반대하는 세력을 ‘합법이라는 올가미’로 씌우고자 만든 국가보안법이었던 만큼, 그때 야당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매체가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했지만, 이 법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맞이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군사쿠테타. 1960년 4월 19일 학생혁명을 일으킨 우리들이지만, 젊은 피로 얻어낸 민주와 평화를 ‘장면 민주당 정권’은 제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골똘한 나머지 국가보안법이며 다른 나쁜법이며 쓰레기통에 던져넣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장면 민주당 정권은, 자기 정권이 능력없고 썩어문드러지는 꼴을 비판하며 집회하는 사람들을, 바로 이 ‘국가보안법’ 올가미로 묶어서 입을 막으려고 휘둘렀는지 몰라요. 이런 휘두름은 여태까지도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하여 2007년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우리들 생각과 움직임을 꽁꽁 붙들어 맨 국가보안법입니다. 이 법을 처음 만든 일본 제국주의자, 이 법을 살려낸 이승만 독재정권, 이 법을 마음껏 휘두르며 또다른 독재정권을 이어간 박정희 정부, 그 뒤로 이어진 군사독재자인 전두환과 노태우, 이들을 이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대통령, 모두들 국가보안법이 권력자한테 얼마나 훌륭한(?) 무기인 줄 잘 깨닫고 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는 국가보안법이거든요.

 《우승규-나절로 만필》(탐구당,1978)이라는 책을 보면, 〈동아일보〉에 오랫동안 주필로 글을 쓴 우승규 님이 1959년인가 1960년에 〈‘보안법’과 언론인의 분기〉라는 이름으로 실은 글이 있습니다.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 ‘새 국가보안법안’―자유당 정권은 이 법을 고쳐 만들려고 바둥바둥 애를 썼다. 자초의 목적은 딴 데 있었다. 그들이 표방한 것은 ­‘간첩죄의 개념’을 보다 명백히 정립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천만의 말이다. 그 속엔 그보다도 ‘언론규제’를 한층 철저하게 강화하겠다는 엉큼한 속셈이 숨어서였다. 북괴의 도발로 시국이 긴박한 준전시 상태도 아니었건만 이렇듯 흉물스런 낌새를 알아챈 신문ㆍ방송ㆍ잡지 등 매스컴과 야당에선 연합전선을 펴고 반대하는 횃불을 들었다. ‘신문편집인협회’가 앞장서서 들고 일어났다. “민주국가로서의 가장 큰 악법”이라고 규탄했다. 각 신문들의 공동성명에서 적극 배격한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그 성명에서 “6ㆍ25 뒤 언론계가 반공방첩을 위해 피눈물나는 동일보조의 투쟁공적은 추호도 계산에 넣지 않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노염에 가득찬 반박을 했다. 그것은 어느 날 자유당의 어떤 간부가 솔직하게 “국가보안법의 개정 의도는 뭣보다도 방종한 언론을 견제하고 단속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실토한 때부터 더욱 흥분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더라도 자유당의 ‘새 군가보안법안’이란, 언론자유 봉쇄의 다섯 번째 시도였다. 앞섯번에도 수차나 말했듯이 ‘광무신문법’의 폐기 뒤를 이어 ‘출판물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려다가 움찔, 둘쨋번엔 ‘새 출판물법안’이 그러했고, 셋째번엔 ‘국정보호임시조치법안’이 또 그러했는가 하면, 넷째번엔 ‘협상선거법’ 중의 언론조항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번번 고개를 들다간 언론계로부터 되게 얻어맞고 수그러졌던 ‘고물단지’를 거듭 들고 나섰으니, 언론인들의 지탄을 안 받을 수 없었다 …… 그러나 이어서, “그렇던 자유당이 오늘엔 여론을 전혀 깔아뭉개고 ‘방공 철저’에 이름을 빌어 나라의 일년지계인 예산안의 심의마저 월년을 시키면서까지 ‘국가보안법안’을 기어이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은 무슨 소리냐”고 비난했다.
 신문들의 논조가 뜻밖으로 강경해지자 자유당은 어거지를 쓰면서 신문에 맞섰다. 매스컴에선 “언론억압 조항”만을 반대했건만, 마치 그 법 전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덮어씌우려 했다. 즉 “동법의 개정이나 강화를 방해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들(공산도배)의 간악한 계략과 술책에 빠지는 것”이라고, 우리 언론인들을 ‘간첩동조자’처럼 몰아쳤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젖내나는 억설이 아니던가 ..  〈550∼551쪽〉



 이 책에서 우승규 님은 “문제는 ‘인심을 혹란케 하여 적을 이롭게’라는 점에 있었다. 그것은 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언론인들의 숨통을 틀어막자는 것이었다. 중앙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지방 언론동지들의 분기는 당연했다. 특히 시골서 고립무원한 그들에게 만일 ‘언론규제’의 그 조항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가뜩이나 푸대접받는 그들은 손과 발을 결박당하게 되므로 안 그럴 수 없는 절박한 문제점이었다. 다른 한편, 지방 각처로부터 “동법의 빠른 통과를 촉진토록 진정한다”는 연판장이 각 신문사로도 날아들었다. 이것은 묻지 않아도 부산에서 정치파동 때에 있었던 ‘우의마의’ 따위의 조작된 민의다. 나는 두 번째로 〈인권옹호가 구두선에 그치지 말라〉는 사설로 언론조항의 삭제를 극력 주장했다.”고 덧붙입니다.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국가보안법입니다. 그리하여,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 가두려는 공안 경찰들은 ‘자기 스스로 읽어 보지도 않은 책(그래서 줄거리가 어떤 줄 모르면서 딱지만 붙어제낍니다. 공안 경찰이 불온이념도서라고 한 책에는 《노자와 21세기》조차 들어 있으니까요)’에 빨간딱지를 붙이며 ‘불온 이념도서’라고 못박습니다. ‘불온 이념도서’란 “나쁜 생각을 품고 나라를 뒤엎으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독재정권을 뒤엎던 젊은이들이 읽던 책, 썩은 나라를 뒤엎으려고 한 그분들이 읽던 책도 ‘나쁜 책’인가요. 나라(일제 식민지)를 뒤엎으려고 했던 분들 책이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가 쓴 글을 담은 책과 장지연 님이 쓴 글을 담은 책마저도 ‘불온 이념도서’ 목록으로 집어넣는가요?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래서 나라 안팎 경제학과 대학교수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파헤친 보고서나 학습자료나 연구결과서’를 책으로 묶어냅니다. 공안 경찰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썼다는 자본론’을 나쁜 책으로 삼는데, 이 두 사람이 쓴 책이 들어간 ‘자본’하고는 아주 다른 ‘자본’을 이야기하는 책까지 ‘불온 이념도서’ 목록에 넣은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겉핥기로 대충 수사를 하며 공무원 실적을 올리려는 꾐수로만 느껴집니다. 아니, 겉핥기 꾐수 수사만이 아니라, ‘민중을 지키는 지팡이’로 일할 경찰이 아닌 ‘민중을 때려잡아 자기들 쇠밥그릇만 지키면 된다는 못된 몽둥이’로 백성을 짓밟고 올라탄 나쁜 놈들입니다.

 헌책방 일꾼은 책을 팔아 장사를 할 뿐입니다. 공안 경찰이 말하는 ‘불온 사상 유포죄’라면, ‘공안 경찰 당신들이 빼앗아 간 책으로 대학교 경제학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붙잡아 갈 일이 아닐까요. 이 일이 먼저가 아닐까요. 그보다는 이런 책을 써내는 사람들과 펴내는 사람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요(그런데 이렇게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이니까요. 그 어떤 사상과 철학과 믿음까지도 자유롭게 펼치고 나눌 수 있어야 하는 나라니까요.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기독교 믿는 이는 다 죽어야 합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이슬람교 믿는 사람은 다 없어져야 합니까?).

 헌책방에 들어와서 팔리는 사회과학책은 몇 권 안 됩니다. 2003년 여름부터 장사를 한 〈가자헌책방〉은 네 해가 조금 못 되는 동안 16000권이 넘는 책을 팔았고, 이 가운데 500권이 채 안 되는 책이 ‘불온 이념도서’ 딱지를 받았습니다. 딱지를 받을 만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책을 ‘불온 이념도서’라고 쳐 봅시다. 그러면 1만6천 권 가운데 500권이면 몇 %입니까. 5/160이면 %로 얼마입니까?

 %로 치면 거의 안 팔렸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책, 실제 새책으로도 첫판 3000권은커녕 1000권도 잘 안 팔리는 이 책들입니다. 그동안 헌책방에서 이런 책이 팔렸다고 해 보아야 몇 권이나 팔렸을까요. 헌책방 일꾼들도 ‘사회과학 책들은 요새 안 팔리기 때문에, 중간상인이 팔러 와도 잘 안 사고 그냥 버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다 사 놓고 책꽂이에 갖추어 놓아도 오래도록 먼지만 먹고 있기 때문에 틈틈이 갈무리해서 폐휴지로 버립니다. 팔리는 부수나 가짓수로 따진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따를 수 없겠지요. 그런데 왜 헌책방 일꾼이 붙잡히고 구속이 되고 구속적부심을 받아야 하나요?


 - 3 -

 국가보안법은 이름만 좋은(?) 법이라고 느낍니다.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름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이 법으로 지키겠다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나라는 어떻게 있어야 ‘안전하게 지켜지’는가요.

 저는 이달 6월 1일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개인 도서관입니다. 한 자리를 마련해 책꽂이를 착착 들여놓고 책도 갈래에 따라 나누어 꽂아 놓는 동안 ‘도서관등록’을 신나게 알아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도 뒤지고 구청과 문화관광부 서식과 알림글도 꼼꼼이 챙겨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사서자격증을 따고, 열 사람이 넘는 도서관위원회를 꾸미고 도서관 크기와 시설을 어떠어떠하게 갖추고 이밖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채워서 허가를 받지 않는다’면 ‘도서관 등록’이 안 될 뿐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조항들. 이름은 ‘도서관과 독서를 진흥한다는 법’입니다. 그러나 실제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2006년 여름까지 도서관으로 등록한 곳들이 나라에서 뒷배(돈 얼마쯤)를 독차지하고자, 그 뒤로 새로 문을 열 도서관을 막아 주는 장치, 이른바 쇠밥그릇이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이었습니다. 참 웃기는구나 싶고, 저는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제 도서관에 어떤 뒷배를 안 해 주어도 상관없기 때문에 한 푼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 책과 힘과 돈으로 여는 사진책 도서관은 ‘도서관’으로 등록할 수도 없지만 ‘도서관’ 이름조차 쓰면 안 되도록 못박혀 있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등록은 ‘출판사 등록’을 했습니다.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을 보면, 15조 1항에 “자전거의 운전자는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여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보행자에게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2항에는 “자전거의 운전자는 자전거도로를 통행하여야 한다. 다만,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다른 법령에 통행방법이 따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행자에 주의하면서 도로(차도와 보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를 말한다)의 우측가장자리 부분으로 통행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고, 3항에는 “자전거운전자가 자전거에 탑승한 채로 도로를 횡단하고자 할 때에는 자전거횡단도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전거이용 활성화’라고 하지만, 자전거는 ‘자동차 통행에 방해되는 물건’으로 여겨집니다. 정작 ‘활성화’를 할 어떤 조항도 들어 있지 않은 법령이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입니다.

 자전거는 자전거길로 다니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 ‘정식 자전거길’ 가운데 98% 넘는 길은 ‘일반 거님길을 반으로 뚝 갈라서 돌을 다른 빛깔로 깔고 페인트 죽 그은 길’입니다. 지금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자전거길을 만든다’면서 수십 수백 수천억 원까지 들여서 짓는다는 자전거길은 ‘사람들 다니는 거님길’을 반으로 뚝 자르는 것으로 잡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고는 건널목도 건널 수 없지요. 찻길을 달리면서도 네거리 신호에 따라 달릴 수도 없지요. 건널목이나 네거리에 ‘자전거횡단도’가 페인트로 그려진 길은 눈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없으니까요.


 - 4 -

 헌책방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가운데 지금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은 일로 ‘헌책방 일꾼을 장물아비로 보는 경찰들 눈길’이 있습니다. 열 해 스무 해 넘게 헌책방 살림을 꾸려 온 분들은 몸으로 익혀서 ‘훔쳐 와서 팔려는 책’을 가려보는 눈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훔친 책’을 솎아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때때로 ‘훔쳐 온 책을 멋모르고 사들였다’가 ‘책을 도둑맞았다는 임자가 신고해서 붙들려 가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어이없이 장물아비로 몰려서 더러더러 경찰서에 끌려가서 하루 동안 장사를 못하는 일, 그리고 몰래 사전이며 비싼 책을 훔쳐가는 책도둑한테 시달리는 일, 여기에 헌책방 일꾼은 ‘재주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밑바닥 인생이나 하는 모자란 일감’으로 여기는 사회 눈길, 거기에 국가보안법 위반 딱지까지.

 이렇게 해 놓고 헌책방 일꾼보고 어떻게 일하라는 소리일까요. 헌책방은 이 땅 이 나라에서 죄다 사라져 버려야 속이 시원합니까? (4340.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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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어느 곳이든 찾아가던 삶을 2007년 4월 22일로 끝마쳤다. 4월 15일에 끝마치려 했으나 이삿짐 옮기기 벅차고 22일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4월 23일부터 쓰는 자전거 나들이 이야기는 새로운 [자전거쪽지]로 이어나가려 한다.

[자전거쪽지]는 다른 곳에 꾸준히 올려놓고 있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로 펼쳐 나가게 되는 만큼, 따로 자리를 나누고 싶기도 해서, 이 자리에 걸쳐 본다. 먼저 예전 글을 틈틈이 옮겨놓아야겠군. 예전 글이라 하면, 4월 23일부터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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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반겨 준 것이란


- 네 시쯤, 도서관 책 갈무리를 그럭저럭 마치고 길을 나선다. 4월 한 달 동안 책짐 옮기느라 책 묶고, 인천으로 와서 책 풀고 하는 일밖에 못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싶어 서울로 책방 나들이를 떠난다. 먼걸음이라고 해도 늘 가는 책방만 찾아가는 나인 터라, 또 자전거집도 늘 가는 데만 가는 터라,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적잖이 먼 거리를 오가곤 했다. 자전거 크랭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표를 끊고 자동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용산 가는 전철이 들어와 있다. 부랴부랴 뛰어서 들어가니 이내 문이 닫힌다. 히유. 휠체어 자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앞바퀴를 뗀다. 동인천에서 용산 가는 전철 맨 앞 칸은 사람이 안 많은 편이지만, 앞바퀴 떼어놓기는 예의라고 느낀다. 또 앞바퀴를 떼어놓을 때 흔들림이 적다. 부피 차지도 적다.

- 책을 읽다. 느긋하게 책 읽어 본 게 얼마만이냐. 신나게 자전거 타 본 게 또 언제 적 일이냐. 자전거도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서울 가는 길에 읽는 《캐시 호숫가 숲속 생활》(갈라파고스,2006). 139쪽에 “날이 따뜻해져서 요새는 거의 밤마다 늪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난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개구리를 본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 책은 1947년에 나왔다. 그런데 1947년 미국에서도 ‘개구리를 직접 본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2007년 우리들은 어떨까? 개구리 우는 소리를 ‘개골개골’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참말 개구리를 본 적 없는 사람, 만져 본 적 없는 사람이 많을까? 아무래도 그렇겠구나 싶다.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개구리가 살 수 없으니까. 그림이나 텔레비전으로만 보겠지.

 그러고 보면, 자전거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정책을 꾸리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몸소 타지 않기 때문에, 그저 운동이나 소일거리쯤으로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뿐, 출퇴근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쓰는 자전거로 타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싶다. 또는 어릴 적 어렵게 자전거 빌리거나 얻어서 타 본 추억만 간직하고 있어서.

- 용산에서 내리다. 내리기 앞서 앞바퀴를 붙이다. 전철 칸에서는 앞바퀴를 떼는 편이 여러모로 낫고, 전철에서 내린 뒤에는 붙이고 다니는 편이 옮기기에 좋다.

 밖으로 나오다. 기나긴 계단을 내려오다. 이곳을 오갈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데, 나야 자전거를 이렇게 들고 내려오면 된다지만, 몸이 힘든 사람은 어찌하면 좋을꼬. 기차역이라는 걸 이렇게 지어 놓으면, ‘구경꾼이 멀리서 보기에는 멋들어진’ 건물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정작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로서는 다리힘이 많이 들고 고달프다. 휠체어로는 이곳을 어떻게 오르내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동계단을 타라고? 꼭 전기를 먹는 그런 설비만 써야 하는가.

- 4월 들어 서울 시내에서 처음으로 몰아 보는 자전거. 신촌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삼각지 네거리에서 꺾을 생각으로, 거님길로 달리다. 거님길에 물건 내놓고 간판 만드는 이들이 보인다. 자전거로 이 옆을 지나가기 까다롭다. 걷는 사람도 번거로우리라.

- 삼각지 네거리. 신호가 바뀌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느라 맞은편 차가 빵빵거리게 하는 자동차가 꼭 보인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왔으나 그냥 지나가며 사람들 발걸음을 우뚝 서게 하는 자동차 또한 꼭 있다.

- 마을버스고 시내버스고 자전거 곱게 지나가는 꼴을 못 보시는 듯. 아무 대꾸를 않고 조용히 왼쪽으로 비껴서 지나간다. 어차피 신호에 걸리고 정류장마다 멈춰야 하는 버스들이 왜 저렇게 거칠게 버스를 몰까. 저 버스에 탄 사람들 마음은 어떠할까.

- 큰길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으로 나와서 부릉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자전거를 오토바이 앞으로 끌고 간다. 내가 오토바이 차방귀를 고스란히 맡고 있어야 할 까닭이 없으므로.

- 동교동을 지나 홍대 전철역 둘레. 마을버스와 무단주정차 자가용과 택시 때문에 언제나 복닥이는 이 자리. 청기와주유소까지 아주 젬병. 버스들은 버스길에 차를 세우지 않고 꼭 비스듬하게 세워서 자전거가 지나가기 어렵게 한다.

- 서교동 안쪽 길.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

- 서교동 단골 자전거집. 가게 앞에 닿아 가방을 내리니 등판에 땀이 흠뻑. 자전거 크랭크 말썽 생긴 곳 이야기를 하다. 크랭크 축을 이루는 곳 나사가 풀려 있다고 한다. 연장 몇 가지로 뚝딱뚝딱 맞춰 주신다. 덤으로 체인이 잘 돌아가는가 점검까지. 자전거집 아저씨 동무가 생활자전거 한 대를 짜맞추고 있다. 두 시간째 하고 있단다. 얼마 앞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뒤, 다시 일자리 알아보기 힘들어, 무엇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와서 자전거 조립을 배운다고.

 요 몇 해 사이에 서교동과 망원동 둘레에 새로 생긴 자전거집이 열 군데쯤이란다. 뜻이 있어 연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에서 명퇴를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게 된 뒤 남다른 솜씨나 재주 없이 차린 사람이 많단다. 고급자전거를 다루는 사람들도 많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거품이라고, 기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익힌 다음에 자전거집을 차려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많단다. 내가 가는 단골집은 당신 아버지를 이어서 2대째 꾸려 가는 곳. 이곳 아저씨는 열 해 남짓 꾸리고 있다. 아저씨 동무가 낑낑대며 “히야, 이거 하나 조립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네.” 하니까, “야, 십 년 차이를 하루아침에 뛰어넘으려고 하냐?” 하고 퉁.

 자전거집 아저씨가 일삯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발목띠 다섯 개 사다. 이곳 아저씨는 ‘공임 받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 뚝딱 손보면 될 일은 그냥 해 주는 편이 낫다고.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삯을 받아야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씀 덕분에 동네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잘되는 동네 자전거집을 가만히 보면, 작은 마음씀 하나로 더 큰 마음씀을 돌려받는구나 싶다.

 튜브에 바람 넣는 장비를 늘 길에 깔아 놓고 누구나 쓰도록 내놓고 있는 이 집. 언젠가 어떤 자동차가 바람 넣는 장비를 밟고 지나가서 망가진 적이 있다고. 바람을 넣은 누군가 길에다 그냥 팽개쳐 놓고 가는 바람에.

- 자전거집에 있는 동안, 이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사내아이가 자전거 사러 오다. 그동안 두 대를 도둑맞고 세 번째로 사는 거란다. 부모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잘도 사 준다. 아이는 자전거 간수를 제대로 못하고 잘도 잃어버린다. 이렇게 잃어버린 자전거는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까.

 자전거집 아주머니한테, “저런 아이들이라면 제가 타는 바퀴작은자전거가 더 낫지 않아요? 이런 자전거는 꼬맹이 때에도 타고 어른이 되어도 탈 수 있는데.” 하고 말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그래요. 쟤네들은 친구들끼리, 그런 거 타면 쪽팔리다고, 이거 이거(손가락으로 숫자를 펼쳐 보이신다) 돼야 해요.” 하고 한 마디. 앞에 3단 기어, 뒤에 7∼8단 기어가 있어야 한단다. 바퀴가 크고 기어가 많아야 서로 주눅들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는 소리.

 아이는 자전거 몸통에 자기 이름 알파벳 앞글자를 매직으로 적는다. 저렇게 적어도 훔쳐갈 놈들은 훔쳐갈 테지. 스프레이 뿌려서 저 글씨를 지운 다음.

- 손질을 마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다. 서교동 헌책방 〈모아북〉으로. 그런데 가게가 사라졌다. 엥? 자리를 옮겼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봐야겠군.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옮겨 가다니(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증산동 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골목길을 달리다가, 지난해 12월 2일 문을 닫은 헌책까페 〈캘커타〉 앞을 지나다. 텅 빈 건물.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이 4월. 그렇다면 이 가게는 다섯 달째 빈 가게라는 셈. 건물임자 생각이 달랐겠지. 또 건물임자는 달세 제대로 못 내는 이 집을 두기보다는 다른 가게 들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이런 골목길 안쪽에 무슨 가게가 들어올 수 있으랴. 가게세를 좀 낮춰 주고, 좀더 안정성 있게 이 골목을 지켜 주도록 하는 편이 서로한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음에 이 자리에 들어올 가게한테는 좋게 마음을 써 줄 수 있기를.

- 홍대 앞 〈한양문고〉에 들러 만화책 한 꾸러미 사다. 동교동 헌책방 〈글벗서점〉에 들러 가방에 책 채울 빈자리가 없도록 책을 고르다. 이제 가방에 책이 더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책방 나들이는 끝이네.

- 홍제동 선배네 집으로 가는 길. 동교동 헌책방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나오는데, 나올 때 내 뒤쪽 정류장에 가만히 멈춰 있던 버스가 빵빵거리기를 두 차례. 린나이 건물 앞 세거리. 내가 당신 버스가 못 가게 막기를 했나, 내 옆으로 돌아가면 길을 못 가나. 자전거가 조막만 해 보여서 그렇게 윽박질러 주고 싶으신가. 당신이 모는 버스보다 큰 덤프나 대형짐차가 더 큰 경적소리로 빵빵거리면 당신은 기분이 좋으신가. 당신은 당신보다 훨씬 큰 차 앞에서도 그렇게 경적을 울리실 수 있는가. 찻길 한쪽 구석에 얌전히 붙어서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를 고이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님길을 아장아장 걷는 아이한테 ‘뷁!’ 하고 소리 지르며 깜짝 놀래키는 마음결이라고 느낀다.

- 연남동께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달리는 자전거를 보고 빵빵거리는 저 버스들은, 버스정류장 앞에 무단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한테도 빵빵거리는가?

- 홍제동 유진상가 옆을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미치겠군. 당신들은 빵빵거리지만, 당신들 차가 아닌 다른 차들은 내 옆을 아뭇소리 없이 잘도 지나가 주는데. 또 어떤 차는 일부러 내 뒤에서 멈춰 준 뒤, 내가 조금 넓은 길섶에 접어들었을 때 앞질러 가 주는데. 귀를 솜으로 틀어막고 다녀야 할까 싶은 생각.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니, 나를 반겨 주는 건, 버스기사들 귀따가운 빵빵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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