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어느 곳이든 찾아가던 삶을 2007년 4월 22일로 끝마쳤다. 4월 15일에 끝마치려 했으나 이삿짐 옮기기 벅차고 22일까지 이어졌다. 그리하여 4월 23일부터 쓰는 자전거 나들이 이야기는 새로운 [자전거쪽지]로 이어나가려 한다.

[자전거쪽지]는 다른 곳에 꾸준히 올려놓고 있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로 펼쳐 나가게 되는 만큼, 따로 자리를 나누고 싶기도 해서, 이 자리에 걸쳐 본다. 먼저 예전 글을 틈틈이 옮겨놓아야겠군. 예전 글이라 하면, 4월 23일부터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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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반겨 준 것이란


- 네 시쯤, 도서관 책 갈무리를 그럭저럭 마치고 길을 나선다. 4월 한 달 동안 책짐 옮기느라 책 묶고, 인천으로 와서 책 풀고 하는 일밖에 못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싶어 서울로 책방 나들이를 떠난다. 먼걸음이라고 해도 늘 가는 책방만 찾아가는 나인 터라, 또 자전거집도 늘 가는 데만 가는 터라,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적잖이 먼 거리를 오가곤 했다. 자전거 크랭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표를 끊고 자동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용산 가는 전철이 들어와 있다. 부랴부랴 뛰어서 들어가니 이내 문이 닫힌다. 히유. 휠체어 자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앞바퀴를 뗀다. 동인천에서 용산 가는 전철 맨 앞 칸은 사람이 안 많은 편이지만, 앞바퀴 떼어놓기는 예의라고 느낀다. 또 앞바퀴를 떼어놓을 때 흔들림이 적다. 부피 차지도 적다.

- 책을 읽다. 느긋하게 책 읽어 본 게 얼마만이냐. 신나게 자전거 타 본 게 또 언제 적 일이냐. 자전거도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서울 가는 길에 읽는 《캐시 호숫가 숲속 생활》(갈라파고스,2006). 139쪽에 “날이 따뜻해져서 요새는 거의 밤마다 늪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난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개구리를 본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 책은 1947년에 나왔다. 그런데 1947년 미국에서도 ‘개구리를 직접 본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2007년 우리들은 어떨까? 개구리 우는 소리를 ‘개골개골’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참말 개구리를 본 적 없는 사람, 만져 본 적 없는 사람이 많을까? 아무래도 그렇겠구나 싶다.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개구리가 살 수 없으니까. 그림이나 텔레비전으로만 보겠지.

 그러고 보면, 자전거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 가운데 하나도, 정책을 꾸리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몸소 타지 않기 때문에, 그저 운동이나 소일거리쯤으로 가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탈 뿐, 출퇴근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쓰는 자전거로 타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싶다. 또는 어릴 적 어렵게 자전거 빌리거나 얻어서 타 본 추억만 간직하고 있어서.

- 용산에서 내리다. 내리기 앞서 앞바퀴를 붙이다. 전철 칸에서는 앞바퀴를 떼는 편이 여러모로 낫고, 전철에서 내린 뒤에는 붙이고 다니는 편이 옮기기에 좋다.

 밖으로 나오다. 기나긴 계단을 내려오다. 이곳을 오갈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데, 나야 자전거를 이렇게 들고 내려오면 된다지만, 몸이 힘든 사람은 어찌하면 좋을꼬. 기차역이라는 걸 이렇게 지어 놓으면, ‘구경꾼이 멀리서 보기에는 멋들어진’ 건물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정작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로서는 다리힘이 많이 들고 고달프다. 휠체어로는 이곳을 어떻게 오르내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동계단을 타라고? 꼭 전기를 먹는 그런 설비만 써야 하는가.

- 4월 들어 서울 시내에서 처음으로 몰아 보는 자전거. 신촌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삼각지 네거리에서 꺾을 생각으로, 거님길로 달리다. 거님길에 물건 내놓고 간판 만드는 이들이 보인다. 자전거로 이 옆을 지나가기 까다롭다. 걷는 사람도 번거로우리라.

- 삼각지 네거리. 신호가 바뀌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느라 맞은편 차가 빵빵거리게 하는 자동차가 꼭 보인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왔으나 그냥 지나가며 사람들 발걸음을 우뚝 서게 하는 자동차 또한 꼭 있다.

- 마을버스고 시내버스고 자전거 곱게 지나가는 꼴을 못 보시는 듯. 아무 대꾸를 않고 조용히 왼쪽으로 비껴서 지나간다. 어차피 신호에 걸리고 정류장마다 멈춰야 하는 버스들이 왜 저렇게 거칠게 버스를 몰까. 저 버스에 탄 사람들 마음은 어떠할까.

- 큰길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앞으로 나와서 부릉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자전거를 오토바이 앞으로 끌고 간다. 내가 오토바이 차방귀를 고스란히 맡고 있어야 할 까닭이 없으므로.

- 동교동을 지나 홍대 전철역 둘레. 마을버스와 무단주정차 자가용과 택시 때문에 언제나 복닥이는 이 자리. 청기와주유소까지 아주 젬병. 버스들은 버스길에 차를 세우지 않고 꼭 비스듬하게 세워서 자전거가 지나가기 어렵게 한다.

- 서교동 안쪽 길.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

- 서교동 단골 자전거집. 가게 앞에 닿아 가방을 내리니 등판에 땀이 흠뻑. 자전거 크랭크 말썽 생긴 곳 이야기를 하다. 크랭크 축을 이루는 곳 나사가 풀려 있다고 한다. 연장 몇 가지로 뚝딱뚝딱 맞춰 주신다. 덤으로 체인이 잘 돌아가는가 점검까지. 자전거집 아저씨 동무가 생활자전거 한 대를 짜맞추고 있다. 두 시간째 하고 있단다. 얼마 앞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뒤, 다시 일자리 알아보기 힘들어, 무엇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와서 자전거 조립을 배운다고.

 요 몇 해 사이에 서교동과 망원동 둘레에 새로 생긴 자전거집이 열 군데쯤이란다. 뜻이 있어 연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에서 명퇴를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게 된 뒤 남다른 솜씨나 재주 없이 차린 사람이 많단다. 고급자전거를 다루는 사람들도 많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거품이라고, 기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익힌 다음에 자전거집을 차려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이 많단다. 내가 가는 단골집은 당신 아버지를 이어서 2대째 꾸려 가는 곳. 이곳 아저씨는 열 해 남짓 꾸리고 있다. 아저씨 동무가 낑낑대며 “히야, 이거 하나 조립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네.” 하니까, “야, 십 년 차이를 하루아침에 뛰어넘으려고 하냐?” 하고 퉁.

 자전거집 아저씨가 일삯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발목띠 다섯 개 사다. 이곳 아저씨는 ‘공임 받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 뚝딱 손보면 될 일은 그냥 해 주는 편이 낫다고.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삯을 받아야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씀 덕분에 동네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잘되는 동네 자전거집을 가만히 보면, 작은 마음씀 하나로 더 큰 마음씀을 돌려받는구나 싶다.

 튜브에 바람 넣는 장비를 늘 길에 깔아 놓고 누구나 쓰도록 내놓고 있는 이 집. 언젠가 어떤 자동차가 바람 넣는 장비를 밟고 지나가서 망가진 적이 있다고. 바람을 넣은 누군가 길에다 그냥 팽개쳐 놓고 가는 바람에.

- 자전거집에 있는 동안, 이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사내아이가 자전거 사러 오다. 그동안 두 대를 도둑맞고 세 번째로 사는 거란다. 부모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잘도 사 준다. 아이는 자전거 간수를 제대로 못하고 잘도 잃어버린다. 이렇게 잃어버린 자전거는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까.

 자전거집 아주머니한테, “저런 아이들이라면 제가 타는 바퀴작은자전거가 더 낫지 않아요? 이런 자전거는 꼬맹이 때에도 타고 어른이 되어도 탈 수 있는데.” 하고 말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그래요. 쟤네들은 친구들끼리, 그런 거 타면 쪽팔리다고, 이거 이거(손가락으로 숫자를 펼쳐 보이신다) 돼야 해요.” 하고 한 마디. 앞에 3단 기어, 뒤에 7∼8단 기어가 있어야 한단다. 바퀴가 크고 기어가 많아야 서로 주눅들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는 소리.

 아이는 자전거 몸통에 자기 이름 알파벳 앞글자를 매직으로 적는다. 저렇게 적어도 훔쳐갈 놈들은 훔쳐갈 테지. 스프레이 뿌려서 저 글씨를 지운 다음.

- 손질을 마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다. 서교동 헌책방 〈모아북〉으로. 그런데 가게가 사라졌다. 엥? 자리를 옮겼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봐야겠군.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옮겨 가다니(나중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증산동 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골목길을 달리다가, 지난해 12월 2일 문을 닫은 헌책까페 〈캘커타〉 앞을 지나다. 텅 빈 건물.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이 4월. 그렇다면 이 가게는 다섯 달째 빈 가게라는 셈. 건물임자 생각이 달랐겠지. 또 건물임자는 달세 제대로 못 내는 이 집을 두기보다는 다른 가게 들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이런 골목길 안쪽에 무슨 가게가 들어올 수 있으랴. 가게세를 좀 낮춰 주고, 좀더 안정성 있게 이 골목을 지켜 주도록 하는 편이 서로한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음에 이 자리에 들어올 가게한테는 좋게 마음을 써 줄 수 있기를.

- 홍대 앞 〈한양문고〉에 들러 만화책 한 꾸러미 사다. 동교동 헌책방 〈글벗서점〉에 들러 가방에 책 채울 빈자리가 없도록 책을 고르다. 이제 가방에 책이 더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책방 나들이는 끝이네.

- 홍제동 선배네 집으로 가는 길. 동교동 헌책방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나오는데, 나올 때 내 뒤쪽 정류장에 가만히 멈춰 있던 버스가 빵빵거리기를 두 차례. 린나이 건물 앞 세거리. 내가 당신 버스가 못 가게 막기를 했나, 내 옆으로 돌아가면 길을 못 가나. 자전거가 조막만 해 보여서 그렇게 윽박질러 주고 싶으신가. 당신이 모는 버스보다 큰 덤프나 대형짐차가 더 큰 경적소리로 빵빵거리면 당신은 기분이 좋으신가. 당신은 당신보다 훨씬 큰 차 앞에서도 그렇게 경적을 울리실 수 있는가. 찻길 한쪽 구석에 얌전히 붙어서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를 고이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님길을 아장아장 걷는 아이한테 ‘뷁!’ 하고 소리 지르며 깜짝 놀래키는 마음결이라고 느낀다.

- 연남동께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달리는 자전거를 보고 빵빵거리는 저 버스들은, 버스정류장 앞에 무단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한테도 빵빵거리는가?

- 홍제동 유진상가 옆을 지나는데 다른 버스가 또 빵빵. 미치겠군. 당신들은 빵빵거리지만, 당신들 차가 아닌 다른 차들은 내 옆을 아뭇소리 없이 잘도 지나가 주는데. 또 어떤 차는 일부러 내 뒤에서 멈춰 준 뒤, 내가 조금 넓은 길섶에 접어들었을 때 앞질러 가 주는데. 귀를 솜으로 틀어막고 다녀야 할까 싶은 생각.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니, 나를 반겨 주는 건, 버스기사들 귀따가운 빵빵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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