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2.10.

오늘말. 쐐기


다 쓴 그릇은 정갈하게 설거지를 해서 그릇시렁에 놓습니다. 다 읽은 책은 말끔하게 다독여서 꽂습니다. 살림을 한 가지 들일 적에는 두고두고 곁에 놓으면서 아끼려는 마음입니다. 귀퉁이에 박는다면 살림살이가 아닙니다. 기스락이나 끝에 둘 적에도 살림길하고 멀어요. 자주 쓰기에 손에 잘 닿는 데에 놓을 텐데, 이따금 쓰더라도 알맞게 자리를 잡습니다. 새벽이 오고 아침이 밝고 낮을 누리면 어느새 저녁입니다. 마무리를 할 때에 이르면 오늘 어떤 삶을 지었는지 돌아봅니다. 일머리는 가닥을 차분히 잡았는지 되새기고, 일살림을 마치고서 포근히 드러눕자고 여깁니다. 나날이 해가 높으니 곧 봄맞이를 하면서 추위는 끝을 보일 테지요. 밥을 짓고 남은 파뿌리는 손가락으로 땅을 호벼서 가볍게 묻습니다. 언제 마감할는 지 까마득하던 일거리도 드디어 쐐기를 박고서 넘길 수 있을 듯합니다. 한주먹감이 안 될 만하더라도 온마음을 기울입니다. 동무한테 띄울 글월에 마침말 한 줄을 적고서 글자루를 붙입니다. 눈보라가 지나간 밤하늘은 별이 가득하군요. 마당으로 깃드는 별빛을 헤아리다가 등허리를 토닥이고서 꿈길로 갑니다.


ㅍㄹㄴ


꽂다·책꽂기·넣다·집어넣다·놓다·늘어놓다·자리잡다·채우다·차지·잡다·터잡다·깃들다·두다·박다·들이다·들여오다·들어가다 ← 배가(はいか/配架·排架)


가·가장자리·가녘·가생이·기슭·기스락·깃·깃새·끝·칸·셈대·셈자리·셈칸 ← 카운터 ㄱ(counter)


끝말·끝소리·끝주먹·마감말·마감글·마무리·마무리말·마지막말·마침말·마지막 주먹·막말·막주먹·세다·쐐기·쐐기박다·크다·한주먹 ← 카운터 ㄴ(counter), 카운터펀치


대·대롱·가닥·가락·개비·구멍·구녁·오리·오라기·올·줄·자루·작대·장대 ← 노즐(nozzle)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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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의 자두가르 1
토마토수프 지음, 장혜영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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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2.10.

‘그들싸움’과 ‘우리살림’


《천막의 자두가르 1》

 토마토수프

 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6.30.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일’을 합니다. 일이란, 스스로 일으키고 일어서면서 보이는 몸짓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지 않기에 누가 시켜야 움직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심부름’을 합니다.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남이 시키는 대로 고스란히 따를 뿐이라고 여깁니다. 잘하거나 잘못한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똑바로 제대로 똑똑히 해야 한다고만 여겨요. 시키는 길이란, 길들이도록 시키는 틀인데, 시키는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틀어져요. 그래서 남이 시키는 대로 받아서 움직이는 사람은 ‘일’이 아닌 ‘틀’대로 움직이는 결이기에,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난 아무 잘못 없는데?” 하고 여깁니다.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리가 바로 벼슬자리(공무원)입니다. 그래서 벼슬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위(상급자·대통령·장관)에서 시키는 대로 고스란히 합니다. 시키는 틀에서 한 치도 안 어긋나려고 합니다. 예부터 만무방(독재자)은 벼슬자리를 잔뜩 늘렸습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사람을 늘려야 나라를 휘어잡고서 마음대로 부리기 쉽거든요.


  우리나라에 벼슬자리가 아주 많습니다. 나라가 주는 돈을 받아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분들을 보면 ‘사람으로는 착하’지만, ‘스스로 일을 벌이거나 꾀하거나 찾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대로 시키는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숱한 길잡이(교사)는 ‘나라에서 내린 틀(교과서)’대로 아이들을 길들입니다. 가르치지 않고 길들입니다. 숱한 벼슬아치(공무원)도 나라에서 세운 틀대로 사람(민원인)을 마주합니다.


  어떤 모지리가 고삐(계엄령)를 틀어쥐려고 했습니다만, 모지리 한 사람이 고삐를 틀어쥐려고 하기 앞서, 이미 이 나라는 ‘고분꾼’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고분꾼’인 벼슬아치(공무원)는 누가 우두머리(대통령)에 앉든 안 쳐다봅니다. 다달이 삯이 따박따박 들어오면 될 뿐입니다. 벼슬아치는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지요.


  《천막의 자두가르 1》를 읽습니다. 몽골이 여러 겨레와 나라로 쳐들어가서 집어삼키던 무렵, 싸울아비로 나선 이들이 거느리던 ‘순이’ 가운데 여럿이 이 싸움판을 뒤집으려는 꿈을 키우는 줄거리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아무래도 ‘발자취’가 아닌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면, 싸우고 죽이다가 죽고 미워하는 얼거리로 흐르는데, 첫걸음은 ‘발자취’를 짚으려고 했다면, 두걸음부터는 ‘역사’로 기울고, 석걸음과 넉걸음은 그저 ‘역사’에 파묻히는구나 싶어요.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사’란 ‘그들싸움’입니다. ‘그들싸움’이란 ‘힘·돈·이름’을 거머쥔 모든 무리가 끼리끼리 싸운다는 뜻입니다. ‘발자취’란 ‘우리살림’입니다. 발자취를 그릴 적에는 우리가 짓고 가꾸고 나누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사랑을 들려주지요.


  우리는 이제 읽는 눈을 길러야지 싶어요. 왜 “내란 사테에 부당한 명령에 그토록 순종하고 복종하다 못해, 법원에서는 거짓말을 일삼”는가 하는 밑동을 읽어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들(공무원)은 우두머리가 어질게 나라일을 펴면 그야말로 어질게 심부름을 합니다. 그들(공무원)은 우두머리가 모지리로 굴면 똑같이 모지리로 구는 심부름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란 누구일까요?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이지 않을까요?


  그들만 허수아비이지 않습니다. 눈을 안 뜬 우리 누구나 허수아비입니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보다는, ‘달삯을 따박따박 받을 만한 심부름’만 오래오래 하는 우리 모두가 허수아비입니다. 한나 아렌트 님이건, 이오덕 님이건,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건, 송건호 님이건, 일찌감치 눈을 밝게 뜬 모든 사람들은 ‘심부름’이 아닌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고, 바로 우리가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심부름’이 아닌 ‘일’을 맡기면서 함께 ‘살림’을 꾸려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글을 남겼습니다.


  ‘역사읽기’는 언제나 싸움수렁에서 헤맵니다. ‘역사’를 다루는 분은 하나같이 ‘사람’이 아닌 임금과 셈(숫자)에 파묻힙니다. ‘살림읽기’는 언제나 우리가 어제와 오늘과 모레로 잇는 길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길을 찾습니다. 살림을 읽으려고 할 적에 사람을 품고, 사람을 품기에 숲을 품으며, 숲을 품기에 새롭게 사랑씨앗을 심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무엇을 읽고 느낄는지 우리가 스스로 살필 노릇입니다. ‘그들싸움·역사’에 파묻히더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들끼리’ 무슨 짓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요. 다만, 우리가 스스로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이웃과 동무와 아이를 헤아리려는 마음이라면, 이제는 ‘살림읽기·사랑읽기·숲읽기’로 잇는 새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ㅍㄹㄴ


“공부란 이런 게 아닐까? 넌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있어.” (25쪽)


“유목민들이 에우클레이데스를 읽을까요?” “만에 하나라도 읽어버리면 안 돼.” (56쪽)


“어째서? 어째서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사람들은 누구?”(97쪽)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불로불사를 얻기보다 건강한 죽음의 은혜를 얻는 게 낫다는 그런 교훈이죠.” (157쪽)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작의 책이야. 이 초원에는 없는 서역의 지혜를 얻기 위한.” (170쪽)


#天幕のジャードゥーガル

#トマトスープ


《천막의 자두가르 1》(토마토수프/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

손 안에 있는 운명의 크기도 기하학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 손에 쥔 삶도 자로 잴 수 있을까

→ 손에 쥔 살림도 헤아릴 수 있을까

3


광대한 대륙을 농락한 한 마녀의 이야기

→ 드넓은 땅을 갖고 논 바람아씨 이야기

→ 가없는 들을 주무른 숲아씨 이야기

4


지(知)를 추구하는 것은

→ 알려고 한다면

→ 배우려고 한다면

11


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고 싶어

→ 빛나는 분을 찾아가고 싶어

→ 이름난 어른을 찾아가고 싶어

34


아마 도시 밖을 정찰하러 가는 걸 거야

→ 아마 마을 밖을 둘러보러 갈 테지

44


충분한 교양을 몸에 익혔다

→ 밑바탕을 몸에 고이 익혔다

→ 밑동을 몸에 넉넉히 익혔다

46


내 고향에는 유목민이 자주 나타나서 피난이 일상이었거든

→ 내가 살던 데엔 떠돌이가 자주 나타나서 늘 달아났거든

→ 우리 마을엔 바람새가 자주 나타나서 으레 내뺐거든

57


독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읊는 소리가 들려온다

92


누군가가 나에게 화살을 쏘아 줄까

→ 누가 나한테 화살을 쏘아 줄까

112


내 또래 남자들은 징발병이라고 해서 원정군 맨 앞에 세우고 방패막이로 써먹어

→ 또래 사내는 붙들려서 먼길 싸울아비 맨앞에 세우고 가로막이로 써먹어

123


말씀드린 영애입니다

→ 말씀한 딸입니다

→ 여쭌 딸아이입니다

130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불로불사를 얻기보다 건강한 죽음의 은혜를 얻는 게 낫다는 그런 교훈이죠

→ 하늘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멀쩡하기를 바라기보다 튼튼히 죽는 사랑을 얻어야 낫다는 가르침이죠

157


당신도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현자입니다

→ 그대도 우리가 바라는 밝은길입니다

→ 이녁도 우리가 바라는 참꽃입니다

159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작의 책이야

→ 그러나 우리한테는 첫책이야

→ 그런데 우리한테는 첫걸음책이야

170


그건 미래의 황후인 나의 소임이야

→ 앞으로 꼭두인 내가 맡을 일이야

→ 머잖아 미르인 내가 할 일이야

174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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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3부 : 영지에 책을 보급하자! 6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원작, 나미노 료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문기업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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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2.10.

굶어도 읽는다


《책벌레의 하극상 3-6》

 카즈키 미야 글

 나미노 료 그림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4.9.30.



  즐겁게 일하다 보면 굳이 끼니를 이어야겠다는 마음이 안 피어나곤 합니다. 몸을 살리는 빛이란, 덩이를 이룬 밥뿐이 아니니까요. 즐겁게 누리는 일도 언제나 우리 몸을 살리고 북돋아요.


  다만 아무리 즐겁게 하는 일이어도 해를 쬐고 바람을 마시고 빗물이며 냇물을 곁에 두면서 맡을 적에 몸을 북돋웁니다. 해가 떴는지 졌는지 모르는 데에 틀어박혀서 하는 일은 오히려 몸을 갉아요. 하루 내내 땡볕에 있더라도 몸은 땀을 안 흘릴 수 있고, 온통 해를 가린 곳에 가두어도 몸은 까무잡잡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몸을 돌보려면 언제 어디에서나 해바람비를 그릴 줄 아는 눈빛일 노릇이에요.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부터 ‘책’이 있습니다. 책이라는 꾸러미를 챙기고 채워서 아이들한테 물려준 뜻이 있어요. 기쁘게 온땀으로 일군 씨앗을 두고두고 나누면서 누구나 즐거이 삶을 노래하기를 바라거든요.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책에는 거짓이나 허울이나 길미가 없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책이 아닌, 더 많이 팔아서 더 많이 이름을 날리고 목소리를 높이고 돈과 힘도 거머쥐려는 속뜻을 숨긴 책은, 그야말로 한동안(또는 오랫동안) 잘팔리거나 잘나가기도 합니다. 참다운 책이 아닌, 거짓스런 책이 오히려 사람들 눈을 사로잡곤 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돌아본다면, 서울(도시)이라는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땅뙈기를 건사할 수 없으나, 돈과 이름과 힘을 손쉽게 많이 빨리 얻을 수 있다고 여겨서 몰려들거든요. 서울에서 돈을 많이 빨리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책을 안 읽거나 멀리하거나 ‘돈버는 책’만 찾습니다. 서울에서조차 슬금슬금 빈터에 씨앗을 심고 텃밭을 돌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틈이 밭아도 ‘살림하는 책’을 쥡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안 무너졌다면, 시골에서 해바람비라는 책을 곁에 두는 일꾼이 있고, 서울에서 돈바라기·이름바라기·힘바라기가 아닌 살림바라기·사랑바라기·사람바라기를 그리는 어린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책벌레의 하극상 3-6》을 읽습니다. 철없는 오라버니를 부드러우면서 따끔하게 나무라서 배움길로 이끄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힘과 돈과 이름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굳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힘과 돈과 이름을 누리려는 얕은 오라버니가 왜 얕고 얼마나 얕은지 보드라우면서 매섭게 꾸짖는군요.


  적잖은 사람은 스스로 타고난 집안에 스스로 갇힙니다. 가난한 집이면 가난하다는 마음에 갇히고, 가멸찬 집이면 가멸차다고 갇혀요.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건 ‘내 삶’은 스스로 지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가난하기에 글을 못 배우거나 책을 못 읽지 않습니다. 가멸차기에 글을 익히거나 책을 사읽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배우고, 마음을 일으켜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꾸면서 책을 써서 둘레에 나눕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은 ‘배우고 일으키고 가꾸는 마음’이 아니라 ‘힘과 돈과 이름을 쥐려는 속셈’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내더군요. 우리는 이렇게 엇갈린 두 마음과 속셈을 가리는 눈이 있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길을 가는가요? 마음을 돌보고 일군다면, 책이나 글이 없어도 아름답고 알찹니다. 마음을 안 돌보고 안 일군다면, 아무리 책을 읽거나 글을 쓰더라도 후줄근하고 추레합니다.


  햇볕 한 줌과 바람 한 줄기와 빗물(또는 이슬) 한 방울을 손에 얹어 보셔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웃나라에서도,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 세 가지를 바라보고 헤아리고 품을 적에, 시나브로 마음 가득히 사랑이라는 이야기씨앗이 싹트고 자라리라 느껴요.


ㅍㄹㄴ


“저에게는 그런 자유시간이 없는데요? 아침 식사가 끝나면 페슈빌 연습, 그리고 점심부터는 페르디난드 님의 집무 보조, 점심 식사 후에는 공방과 고아원 일, 그게 끝나면 의식에 관한 공부를 하거나 마력 훈련을 받아야 하거든요.” (45쪽)


“우리 고아원의 아이들은 어네 청색 신관이 되어 일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엄격하게 훈련받고 있어요. 평민 아이들도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어려우니까요. 그런 아이들과 항상 도망만 치고 노력도 하지 않는 빌프리트 오라버니를 비교하다니, 다른 아이들에게 실례예요.” (56쪽)


“신분을 책임에서 도망치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자를 영주 자리에 앉힐 수는 없다. 영주의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노력해서 결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57쪽)


“빌프리트의 교육은 모두 제가 다시 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더는 당신에게 그 아이를 맡길 수 없어요.” (73쪽)


“어리석은 사람은 빌프리트 혼자가 아니다. 너희 측근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주인을 위한다면 의자에 묶어 두고서라도 공부를 시켜라.” (148쪽)


#鈴華 #香月美夜 #椎名優 #本好きの下剋上


《책벌레의 하극상 3부 6》(카즈키 미야·카즈키 히카루·시이나 유우/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4)


가르치는 선생님도 문제가 있구나

→ 가르치는 사람도 말썽이구나

→ 가르치는 쪽도 틀렸구나

31쪽


저에게는 그런 자유시간이 없는데요

→ 저한테는 그럼 틈이 없는데요

→ 저한테는 그럼 짬이 없는데요

→ 저한테는 그럼 말미가 없는데요

45쪽


아이들도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아이들도 뜻을 세우고 거듭 애씁니다

→ 아이들도 꿈을 그리며 거듭 힘씁니다

56쪽


너희 측근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주인을 위한다면 의자에 묶어 두고서라도 공부를 시켜라

→ 너희 곁일꾼도 마찬가지다. 참말로 님을 섬긴다면 걸상에 묶어 두고서라도 가르쳐라

→ 너희 옆사람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님을 모신다면 걸상에 묶어 두고서라도 가르쳐라

148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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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3.


《우리들의 선거》

 보리스 르 루아 글·엘렌 조르주 그림/김지현 옮김, 큰북작은북, 2012.3.21.



아침 일찍 고흥읍으로 나간다. 달콤이(케익)를 하나 장만한다. 10:40 시골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이 버스를 타려는 할매할배가 10:24부터 줄을 선다. 이 버스에는 워낙 타는 어르신이 많아서 2012년 뒤로는 아예 안 타다시피 했는데, 지죽으로 들어가는 길에 타는 어르신은 언제부터 줄을 섰을까. 고흥에서 열다섯 해를 살며 “시골버스를 타려고 줄을 선 할매할배” 모습은 오늘 처음 본다. 《우리들의 선거》를 읽었다. 매우 잘 쓴 푸른글이라고 느끼되, ‘서로 좋아하는 순이돌이 두 아이’라는 대목을 좀 덜어내면 훨씬 훌륭하리라 본다. 굳이 왜 끼워넣을까? ‘선거·민주·토론·정치’를 푸름이 눈길로 어질면서 새롭게 마주하는 줄거리에만 힘을 쏟아도 들려줄 이야기가 그득그득할 텐데. 아무튼, ‘그놈들’이 그야말로 못난이처럼 보이더라도 ‘그놈’이라는 말부터 걷어낼 줄 알아야 ‘민주·평등·평화’이다. ‘그놈들’이 뽑기(선거)를 거쳐서 자리(벼슬·권력)를 차지했는데, 그놈들이 왜 뽑혀야 하느냐고, 그놈들을 뽑은 사람은 다 얼간이로 여겨 깎아내리려 한다면, 이때에도 아무런 ‘민주·평등·평화’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로 이놈저놈 가르며 싸울 뿐이고, 이긴 쪽도 진 쪽도 ‘일’은 팽개치고서 내내 싸우기만 한다.


#Quand J'etais Petit Je Voterai (2007년)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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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4.


《이 책을 훔치는 자는 1》

 후카미도리 노와키 글·소라 카케루 그림/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4.8.15.



새벽별을 보며 하루를 연다. 별은 늘 우리 곁에서 빛나지만 막상 두멧시골이 아니고서야 맨눈으로 미리내를 볼 수 있는 고을은 다 사라진 판이다. 늘 있는 별을 하나도 못 느낄 적에 우리 삶은 얼마나 빛날 만할까? 흙날에 서울 가는 시외버스는 빈자리가 없다. 빽빽한 틈에서 바지런히 노래를 쓴다. 전철로 갈아타고서 부천으로 간다. 사람물결이 대단하지만,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둘레에 아무도 없다. 〈용서점〉에 닿는다. 책 곁에 ‘작은책집 빛꽃(사진)’을 놓은 모습이 어울린다. “마음을 노래하기(우리말로 시쓰기)” 0걸음을 가볍게 편다. 다음달부터 다달이 ‘노래하기(시쓰기)’를 함께 누리려고 한다. 《이 책을 훔치는 자는 1》를 읽고 두걸음을 읽었다. 석걸음으로 매듭짓는 얼거리인데 그다지 당기지 않아 미적미적한다. ‘책을 다루는 그림꽃’이라면 눈여겨보려 하지만, 책이나 책읽기나 책집이나 책마을이나 헌책을 고루 헤아리면서 책빛이 어떤 빛씨앗인지 짚는 줄거리를 찾기는 몹시 어렵다. 다들 책이 아니라 ‘딴청’으로 흐르더라. 책을 지은 손길이 무엇을 말하는지 못 짚는다면 글감이나 그림감만 책일 뿐, 조금도 책이야기일 수 없다. 몸은 시골에서 살되 시골일을 안 다루면 시골이야기일 수 있겠는가.


#この本を盜む者は #深綠野分 #空カケル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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