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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의 자두가르 1
토마토수프 지음, 장혜영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2.10.
‘그들싸움’과 ‘우리살림’
《천막의 자두가르 1》
토마토수프
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6.30.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일’을 합니다. 일이란, 스스로 일으키고 일어서면서 보이는 몸짓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지 않기에 누가 시켜야 움직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심부름’을 합니다.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남이 시키는 대로 고스란히 따를 뿐이라고 여깁니다. 잘하거나 잘못한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똑바로 제대로 똑똑히 해야 한다고만 여겨요. 시키는 길이란, 길들이도록 시키는 틀인데, 시키는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틀어져요. 그래서 남이 시키는 대로 받아서 움직이는 사람은 ‘일’이 아닌 ‘틀’대로 움직이는 결이기에,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난 아무 잘못 없는데?” 하고 여깁니다.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리가 바로 벼슬자리(공무원)입니다. 그래서 벼슬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위(상급자·대통령·장관)에서 시키는 대로 고스란히 합니다. 시키는 틀에서 한 치도 안 어긋나려고 합니다. 예부터 만무방(독재자)은 벼슬자리를 잔뜩 늘렸습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사람을 늘려야 나라를 휘어잡고서 마음대로 부리기 쉽거든요.
우리나라에 벼슬자리가 아주 많습니다. 나라가 주는 돈을 받아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분들을 보면 ‘사람으로는 착하’지만, ‘스스로 일을 벌이거나 꾀하거나 찾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대로 시키는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숱한 길잡이(교사)는 ‘나라에서 내린 틀(교과서)’대로 아이들을 길들입니다. 가르치지 않고 길들입니다. 숱한 벼슬아치(공무원)도 나라에서 세운 틀대로 사람(민원인)을 마주합니다.
어떤 모지리가 고삐(계엄령)를 틀어쥐려고 했습니다만, 모지리 한 사람이 고삐를 틀어쥐려고 하기 앞서, 이미 이 나라는 ‘고분꾼’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고분꾼’인 벼슬아치(공무원)는 누가 우두머리(대통령)에 앉든 안 쳐다봅니다. 다달이 삯이 따박따박 들어오면 될 뿐입니다. 벼슬아치는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지요.
《천막의 자두가르 1》를 읽습니다. 몽골이 여러 겨레와 나라로 쳐들어가서 집어삼키던 무렵, 싸울아비로 나선 이들이 거느리던 ‘순이’ 가운데 여럿이 이 싸움판을 뒤집으려는 꿈을 키우는 줄거리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아무래도 ‘발자취’가 아닌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면, 싸우고 죽이다가 죽고 미워하는 얼거리로 흐르는데, 첫걸음은 ‘발자취’를 짚으려고 했다면, 두걸음부터는 ‘역사’로 기울고, 석걸음과 넉걸음은 그저 ‘역사’에 파묻히는구나 싶어요.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사’란 ‘그들싸움’입니다. ‘그들싸움’이란 ‘힘·돈·이름’을 거머쥔 모든 무리가 끼리끼리 싸운다는 뜻입니다. ‘발자취’란 ‘우리살림’입니다. 발자취를 그릴 적에는 우리가 짓고 가꾸고 나누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사랑을 들려주지요.
우리는 이제 읽는 눈을 길러야지 싶어요. 왜 “내란 사테에 부당한 명령에 그토록 순종하고 복종하다 못해, 법원에서는 거짓말을 일삼”는가 하는 밑동을 읽어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들(공무원)은 우두머리가 어질게 나라일을 펴면 그야말로 어질게 심부름을 합니다. 그들(공무원)은 우두머리가 모지리로 굴면 똑같이 모지리로 구는 심부름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란 누구일까요?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이지 않을까요?
그들만 허수아비이지 않습니다. 눈을 안 뜬 우리 누구나 허수아비입니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보다는, ‘달삯을 따박따박 받을 만한 심부름’만 오래오래 하는 우리 모두가 허수아비입니다. 한나 아렌트 님이건, 이오덕 님이건,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건, 송건호 님이건, 일찌감치 눈을 밝게 뜬 모든 사람들은 ‘심부름’이 아닌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고, 바로 우리가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심부름’이 아닌 ‘일’을 맡기면서 함께 ‘살림’을 꾸려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글을 남겼습니다.
‘역사읽기’는 언제나 싸움수렁에서 헤맵니다. ‘역사’를 다루는 분은 하나같이 ‘사람’이 아닌 임금과 셈(숫자)에 파묻힙니다. ‘살림읽기’는 언제나 우리가 어제와 오늘과 모레로 잇는 길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길을 찾습니다. 살림을 읽으려고 할 적에 사람을 품고, 사람을 품기에 숲을 품으며, 숲을 품기에 새롭게 사랑씨앗을 심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무엇을 읽고 느낄는지 우리가 스스로 살필 노릇입니다. ‘그들싸움·역사’에 파묻히더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들끼리’ 무슨 짓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요. 다만, 우리가 스스로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이웃과 동무와 아이를 헤아리려는 마음이라면, 이제는 ‘살림읽기·사랑읽기·숲읽기’로 잇는 새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ㅍㄹㄴ
“공부란 이런 게 아닐까? 넌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있어.” (25쪽)
“유목민들이 에우클레이데스를 읽을까요?” “만에 하나라도 읽어버리면 안 돼.” (56쪽)
“어째서? 어째서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사람들은 누구?”(97쪽)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불로불사를 얻기보다 건강한 죽음의 은혜를 얻는 게 낫다는 그런 교훈이죠.” (157쪽)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작의 책이야. 이 초원에는 없는 서역의 지혜를 얻기 위한.” (170쪽)
#天幕のジャードゥーガル
《천막의 자두가르 1》(토마토수프/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
손 안에 있는 운명의 크기도 기하학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 손에 쥔 삶도 자로 잴 수 있을까
→ 손에 쥔 살림도 헤아릴 수 있을까
3
광대한 대륙을 농락한 한 마녀의 이야기
→ 드넓은 땅을 갖고 논 바람아씨 이야기
→ 가없는 들을 주무른 숲아씨 이야기
4
지(知)를 추구하는 것은
→ 알려고 한다면
→ 배우려고 한다면
11
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고 싶어
→ 빛나는 분을 찾아가고 싶어
→ 이름난 어른을 찾아가고 싶어
34
아마 도시 밖을 정찰하러 가는 걸 거야
→ 아마 마을 밖을 둘러보러 갈 테지
44
충분한 교양을 몸에 익혔다
→ 밑바탕을 몸에 고이 익혔다
→ 밑동을 몸에 넉넉히 익혔다
46
내 고향에는 유목민이 자주 나타나서 피난이 일상이었거든
→ 내가 살던 데엔 떠돌이가 자주 나타나서 늘 달아났거든
→ 우리 마을엔 바람새가 자주 나타나서 으레 내뺐거든
57
독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읊는 소리가 들려온다
92
누군가가 나에게 화살을 쏘아 줄까
→ 누가 나한테 화살을 쏘아 줄까
112
내 또래 남자들은 징발병이라고 해서 원정군 맨 앞에 세우고 방패막이로 써먹어
→ 또래 사내는 붙들려서 먼길 싸울아비 맨앞에 세우고 가로막이로 써먹어
123
말씀드린 영애입니다
→ 말씀한 딸입니다
→ 여쭌 딸아이입니다
130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불로불사를 얻기보다 건강한 죽음의 은혜를 얻는 게 낫다는 그런 교훈이죠
→ 하늘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멀쩡하기를 바라기보다 튼튼히 죽는 사랑을 얻어야 낫다는 가르침이죠
157
당신도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현자입니다
→ 그대도 우리가 바라는 밝은길입니다
→ 이녁도 우리가 바라는 참꽃입니다
159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작의 책이야
→ 그러나 우리한테는 첫책이야
→ 그런데 우리한테는 첫걸음책이야
170
그건 미래의 황후인 나의 소임이야
→ 앞으로 꼭두인 내가 맡을 일이야
→ 머잖아 미르인 내가 할 일이야
174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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