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사라진 말 17 다르다 2024.9.21.



  같지 않기에 ‘다르다’일 테고, 다르지 않으니 ‘같다’일 텐데, ‘다르다’는 ‘닮다’하고 맞물린다. ‘닮을’ 적에는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는 뜻이요, “같다고 여길 모습이 제법 보인다”를 나타낸다. “같다고 여길 모습이 보인다”고 할 적에는 “안 같다”는 뜻이다. 그저 같다면 ‘같다’라 할 테지. ‘닮다’란, “아무리 같은 모습이 많거나 크거나 깊거나 넓어도, 바탕이나 결이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다르다’라고 할 적에는, 닮은 데가 조금 있거나 많이 있지만 “안 같다”는 뜻도 있고, 이모저모 따져도 “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데가 없다”는 뜻도 있다. 너하고 나는 다르다. 숨결로는 같고, 사람으로는 같되, 넋이 다르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본다. 나하고 남도 다르다. 숨빛은 같고, 목숨으로도 같지만, 얼이 다르다. 나는 남을 보고, 남은 나를 본다. 왼손과 오른손은 다르다. 왼발과 오른발은 다르다. 다르지만 함께 움직인다. 다르기에 나란히 다루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다르다’라는 낱말을 잊은 채, 한자로 ‘차이(差異)·차(差)·격차格差)’나 ‘차별(差別)·구별(區別)·구분(區分)’이나 ‘특별(特別)·특이(特異)·특수(特秀)·특색(特色)’나 ‘독특(獨特)·특징(特徵)·특성(特性)’을 쓰기도 한다. 곰곰이 보면 그저 ‘다르다’를 나타낼 뿐이다. 다르기에 가르거나 가린다. 다르기에 나누거나 노는다. 다르기에 따로 놓고, 다르니까 다가서거나 다가오면서 만난다. 다르기에 ‘유난’해 보이거나 ‘튀’기도 한다. 다르기에 가볍게 톡톡거리고, 달라서 가만히 훨훨 날기도 한다. 다르기에 닮으려고 담기도 하지만, 다르다고 여겨 꾹 닫기도 한다. 다른 너하고 나는 서로한테 다다르려고 찾아오고 찾아가서 닿는다. 부드러이 당긴다. 서로 나답고 너답게 바라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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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4.12.22.

오늘말. 맏


  우리 언니는 어릴 적부터 앞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으레 맏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보다 앞장섭니다. 언니도 나나 마을 동생처럼 그저 어린이일 뿐인데, 비나리를 지내는 집안에서 맏길인 아버지를 이어 맏자리를 물려받아야 하면서 무척 짐스러이 여겼습니다. 비나리는 왜 사내만 물려받아야 할까요?  첫째로 태어났대서 높꽃으로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나 셋째나 막째가 비나리를 해도 넉넉합니다. 굳이 으뜸이나 버금으로 가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때그때 힘이 닿는 사람이 앞꽃이면 되어요. 나이나 집길로만 세며 꼭두로 삼기보다는, 큰집과 작은집이 서로 돌아가면서 꽃자리나 꽃찌를 이어받는다는 마음이라면 더없이 홀가분하면서 즐거울 만하리라 봅니다. 저는 고삭부리여서 자주 앓아눕고 툭하면 쓰러지고 날마다 숱하게 코피를 흘렸습니다. 언니는 언제나 “넌 네가 하고픈 일을 해. 언니 일은 언니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 하면서 달래었습니다. 마루에 서서 온갖 비바람을 받아내는 언니라는 삶이 새넋이면서 새빛으로 포근하기를 빌며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도맡는 짐이 아닌, 함께 나누는 살림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앞·앞길·앞자리·앞자락·앞서다·앞서가다·앞장·앞꽃·앞에서·앞목·앞줄·앞날·앞으로·앞살림·앞삶·새롭다·새·새로·새길·새빛·새넋·새얼·새솜씨·높다·높끝·높곳·높별·높꽃·솟다·솟구치다·솟아나다·빽빽하다·뾰족하다·꼭두자리·꽃자리·맏이·맏·맏자리·맏길·으뜸자리·눈부시다·반짝·뛰어나다·빼어나다·훌륭하다 ← 첨단(尖端)


꼭두·꼭두자리·꼭두벼슬·꽃등·꽃찌·꽃자리·꽃터·꽃칸·높다·높다랗다·높디높다·높직하다·높끝·높꽃·높은끝·높은꽃·높은곳·높곳·높은자리·높자리·높은별·높별·높은벼슬·마루·머드러기·미르·온으뜸·으뜸·으뜸자리·첫손·첫손가락·첫손꼽다·첫자리·첫자락·첫째·첫째가다·첫째둘째·크다 ← 일순위(一順位)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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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21. 못생겼어요



 남한테 물들고 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못생겼어요!”나 “잘생겼어요!” 하고 외친다. 난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으니, 누가 날 보며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말하면 오글거린다. 사람도 새도 나무도 못생겼거나 잘생겼을 수 없다. 벌레에 헤엄이에 도깨비도 말을 못생기거나 잘생길 턱이 없다.


  아이들은 둘레에서 떠드는 말씨를 모조리 살핀다. 무슨 뜻이나 씨앗이 깃드는지 모르는 채 그저 따라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한테 안 물든 아이는 딴 사람처럼 섣불리 못생겼다거나 잘생겼다는 말을 삼간다.


  위아래로 금을 매기려는 얼뜬 버릇으로 아이들을 물들이는 바보짓인 줄 느끼고 알아보아야 함부로 안 물들인다. 처음 보는 얼굴만으로 이러쿵저러쿵 값을 매기는 호들갑을 걷어치우지 않을 적에는 가두리로 간다.


  굳이 어렵게 ‘자본주의’라든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안 붙여도 된다. 몸에 옷이 아닌 플라스틱을 걸치고 바르지 않았는가? ‘수상작’이나 ‘추천작’이라는 이름을 따라다니지 않는가? ‘등단’을 하지 않고서 ‘기자’를 사귀지 않는 사람은 우리나라 글밭에 몇이나 있을까?


  아침에 작은아이가 배웅을 한다. 혼자 부산으로 이오덕읽기모임을 꾸리러 나선다. 시골에서는 면사무소나 읍내 다녀오는 길도 멀고, 큰고장이나 서울은 까마득하다. 그저 여러 이웃이 저마다 그곳에서 스스로 살림길을 찾아가는 하루에 길동무로 서려고 움직인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얀 섣달 스물하루가 흐른다. 이제 해가 높아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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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사랑이란? (2024.10.19.)

― 부산 〈카프카의 밤〉



  가을비가 조금씩 젖어드는 늦은저녁에 〈카프카의 밤〉에 깃듭니다. 오늘은 《울면서 하는 숙제》라고 하는 퍽 묵은 책을 곁에 놓고서 이오덕 어른을 되새기는 이야기꽃을 폅니다. 어느새 밤새 울면서 끙끙거리는 아이는 확 사라집니다. 예전에는 배움터마다 길잡이가 아이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도 난 듯이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이 탓에 오래오래 목소리가 모이고 쌓여 드디어 ‘배움길빛(학생인권조례)’을 세울 수 있어요. 그런데 배움길빛을 세우려는 마음을 차츰 잊습니다. 왜 아이가 사랑받으며 자라야 하는지, 사랑 아닌 굴레를 쓰면 마을과 보금자리와 나라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차츰 잊어버리는 듯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최선’이 없을 적에 ‘차선’을 고르지 말아야 한다고 느껴요. 그저 ‘착함’만 골라야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가장 나은 착함’이나 ‘그다음 착함’으로 가를 수 없어요. 착하면 그저 착하고, 안 착하면 “그저 안 착할” 뿐이에요. 안 착하지만 ‘착한척·착한흉내·착한시늉’을 하는 허울과 껍데기를 모두 내려놓고서 오롯이 ‘착하고 참하고 아름다워 사랑인 길’로 하루를 살아갈 적에 누구나 스스로 빛난다고 느껴요.


  착함에는 으뜸착함이나 버금착함이 없습니다. 참다움에도 으뜸착함이나 꼴찌착함이 없어요. 사랑에도 으뜸사랑이나 딸림사랑이 없습니다. 미움과 부아와 시샘도 그저 미움과 부아와 시샘입니다.


  한자말 ‘의무’는 ‘짐’을 나타냅니다. ‘짐(의무)’을 품고 맡을 적에는 ‘몫(권리)’이 뒤따라요. 몫(권리)을 누리려면 어떤 짐(의무)을 맡아야 하고요. 이와 달리, ‘사랑’은 사람으로서 숲을 품으면서 서로 수수하게 나누는 숨빛인 사이에서 태어나며 맑고 밝은 씨앗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즐겁게 나누면서 서로 아름답게 나아가는 빛씨앗인 사랑에는 아무런 짐이나 몫이 없어요.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나를 나로서 나답게 바라보려면 ‘다른 것(짐·몫·자리·벼슬·돈·이름)’을 모두 내려놓거나 벗거나 씻고서 그저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랑을 하지 않기에 자꾸 ‘다른 것’을 살피느라, 짐과 몫 사이에서 헤매고 무겁고 벅차다가 쓰러진다고 느껴요. ‘좋은책’도 ‘좋은문학’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짐과 몫이 나란하다고 느낍니다.


  짐을 싣지 않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지으면서 어울리는 오늘을 열어야지 싶습니다. 몫을 바라지 않는 길을 그려야지 싶습니다. 몸과 마음이 빛나는 씨앗 한 톨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하루를 살아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진은영, 마음산책, 2024.9.15.)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김영건, 어크로스, 2022.6.10.)

《엄마의 골목》(김탁환, 난다, 2017.3.3.)

《성수기도 없는데 비수기라니》(김택수, 지구불시착, 2021.7.20.)

《여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우치다 타츠루/김석중 옮김, 서커스, 2020.8.5.)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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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8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4.12.21.토. 20시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를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글을 읽는 눈

 ㄱ ‘소년소녀’가 아닌 어린이

 ㄴ 오누이와 언누이

 ㄷ 아이한테서 배우는 길

 ㄹ 아이 곁에 있어야 본다

 ㅁ 낳고 돌보는 아이


나. 글로 잇는 마음

 ㄱ 누구나 아기로 태어난다

 ㄴ 언제나 아이답게 자란다

 ㄷ 어떤 어른으로 서려는가

 ㄹ 어른으로서 물려줄 마음

 ㅁ 낱말을 어떻게 고르는가


다. 글로 새기는 뜻

 ㄱ ‘동심천사주의’를 깬다

 ㄴ ‘색동회’를 벗긴다

 ㄷ ‘권장도서’를 없앤다

 ㄹ ‘글쓰는 형식’을 지운다

 ㅁ ‘문인·작가 흉내’를 버린다


라. 글을 빗질하는 손

 ㄱ 아이어른을 쓰다듬는 길

 ㄴ 잘잘못을 바라보는 길

 ㄷ 좋고나쁨을 넘어서는 길

 ㄹ 씨앗글을 헤아리는 길

 ㅁ 이야기로 피어나는 길


+


일곱걸음 : 이원수가 일깨운 글빗(비평)


  ‘역사’를 배우겠다는 분이 《조선왕조실록》 한글판부터 읽겠다고 하면 얼른 말립니다. 제발 ‘임금놀이’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집안일부터 하라고 말합니다. 다들 으레 “아니, 집안일에 무슨 역사가 있어요?” 하고 되물을 텐데, “먼먼 옛날부터 손에서 손으로 이은 집안일을 해야,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루를 어떻게 그리고 지으며 사랑으로 살림했는지 먼저 몸으로 느끼고, 이내 마음으로 돌아보고, 차분히 이 삶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우리 어린이문학은 거의 일본을 거쳐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색동회’로 자란 방정환 님이 일군 《어린이》라는 잡지는 온통 ‘일본 어린이문학 + 어린이놀이 + 어린이노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뜻깊게 엮은 어린이잡지이기는 하되, 우리 어린이를 헤아린 책하고는 한참 멉니다. 이런 뿌리인 탓에 ‘색동회’는 언제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한테 이바지하면서 거꾸로 어린이한테는 등졌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를 바탕으로 또아리를 튼 ‘동심천사주의’요, 오늘날 ‘창비·문학동네’ 글담(문학권력)입니다.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은 이름부터 일본말일 뿐 아니라, 그냥 일본책을 모조리 베낀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아이’라 했고, 이따금 ‘어린이’라 했습니다. ‘어린이’는 방정환 씨가 새로 지은 말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말입니다. ‘어린이·젊은이·늙은이’처럼 쓰던 말입니다. 방정환 씨는 ‘어린이’라는 이미 있던 낱말에 뜻을 보태었을 뿐이고, 이렇게 보탠 뜻이 깊을 뿐입니다.


  예부터 우리 옛이야기나 온겨레·온나라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나옵니다. ‘소년소녀’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창비·김이구·원종찬으로 손꼽는 어린이문학평론은 ‘소년에 치우친 어린이문학을 소녀한테 돌려준다’는 말을 자꾸 퍼뜨리고 가르칩니다. 모름지기 ‘아이·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어버이’라는 이름에는 ‘남녀’나 ‘여남’을 가리는 뜻이 없습니다. 그저 아이요 어른입니다.


  낳아도 아이요, 이웃에도 아이입니다. 낳으면 낳기 때문에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면서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바로 아이가 가르치거든요. 이웃 아이를 지켜볼 적에는 ‘낳은 어버이’하고 다른 눈이기에, ‘이웃 어른’으로서 아이가 듣거나 보거나 새길 대목을 이웃으로서 새롭게 추슬러야 하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우리 어린이문학에서 제대로 바라본 사람이라면 이원수 님이고, 이원수 님은 이오덕 님한테서 ‘글빗(비평)’을 오롯이 할 만한 빛을 찾아보았습니다. 1950년대에는 웬만한 초등교사는 아이를 욱여내고 닦달하면서 돈을 거두어들이고 흠씬 두들겨패는 망나니였습니다. 이런 망나니는 1990년대까지 꽤 이었는데, 이오덕 님은 유난스레 아이한테서 돈을 욱여내지 않고 닦달을 안 하고 안 때리는 드문, 어쩌면 거의 없던 사람입니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붓종이(필기구)를 선뜻 내주면서 글과 그림을 스스로 펴는 길을 마련하고 북돋았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모든 어린이를 나란히 품고 헤아리면서, 아이가 스스로 제 마음을 제 손으로 종이에 적어 보고 그려 보도록 이끈 어른이자 길잡이인 이오덕 님이기에, 글빗(비평)을 고르면서도 곱게 펼 수 있는 밑바탕을 가꾸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름값이 높다고 해서 이름값에 휘둘린다면 글빗이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드린 책이라고 해서 치켜세운다면 글빗일 수 없습니다. ‘권장도서’가 아닌, 아이하고 함께 읽을 책을 살핀 길을 열려던 이오덕 님이기에, 여러 인문출판사가 어린이책을 제발 꾸준히 펴내기를 그토록 바라고 여쭈고 손수 꾸러미를 모아서 갖다주기까지 했다고 느낍니다.


  글빗은 어느 글이나 책 하나만 쓰다듬지 않습니다. 어느 글이나 책에 깃든 씨앗을 눈여겨보면서 살리는 손길이자 눈길입니다. 아이가 생각을 밝히도록 북돋울 낱말을 하나하나 고르면서 쓸 글이고, 스스로 어른답게 사랑하고 살림하는 오늘을 고스란히 담을 글이고, 누구 흉내를 낼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아이마음(동심)’은 ‘천사’가 아닌, ‘사람마음’은 다 ‘하늘’이라고 해야 알맞습니다.


  된장국을 끓이는데 된장을 안 넣었다면 알려주어야지요. 불을 만지고 칼을 다루는 부엌에서 불이나 칼을 함부로 휘두르거나 다루면 바로바로 따끔하게 멈춰세워야지요. 면허증을 땄더라도 섣불리 자동차를 씽씽 달리지 않도록 타이르고, 천천히 길부터 익히고 사람부터 살피라고 알려야지요. 글빗을 하려면, 누구보다 더 읽고, 누구보다 더 돌아보고, 누구보다 스스로 고요히 마음을 그리면서 이 길을 사랑하려는 하루일 노릇입니다.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며 춤추는 매무새는 도무지 글빗일 수 없고, 몇몇 글담(문단권력)에 기대어 이름을 파는 몸짓도 영 글빗일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읽고서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적에 비로소 글빗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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