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읽는 “이응모임” 8걸음

―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때 : 2024.12.21.토. 20시

곳 :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 밤〉

님 : 숲노래 × 곳간출판사

곁 :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를 미리읽기, 또는 〈카프카의 밤〉에서 사기



줄거리

가. 글을 읽는 눈

 ㄱ ‘소년소녀’가 아닌 어린이

 ㄴ 오누이와 언누이

 ㄷ 아이한테서 배우는 길

 ㄹ 아이 곁에 있어야 본다

 ㅁ 낳고 돌보는 아이


나. 글로 잇는 마음

 ㄱ 누구나 아기로 태어난다

 ㄴ 언제나 아이답게 자란다

 ㄷ 어떤 어른으로 서려는가

 ㄹ 어른으로서 물려줄 마음

 ㅁ 낱말을 어떻게 고르는가


다. 글로 새기는 뜻

 ㄱ ‘동심천사주의’를 깬다

 ㄴ ‘색동회’를 벗긴다

 ㄷ ‘권장도서’를 없앤다

 ㄹ ‘글쓰는 형식’을 지운다

 ㅁ ‘문인·작가 흉내’를 버린다


라. 글을 빗질하는 손

 ㄱ 아이어른을 쓰다듬는 길

 ㄴ 잘잘못을 바라보는 길

 ㄷ 좋고나쁨을 넘어서는 길

 ㄹ 씨앗글을 헤아리는 길

 ㅁ 이야기로 피어나는 길


+


일곱걸음 : 이원수가 일깨운 글빗(비평)


  ‘역사’를 배우겠다는 분이 《조선왕조실록》 한글판부터 읽겠다고 하면 얼른 말립니다. 제발 ‘임금놀이’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집안일부터 하라고 말합니다. 다들 으레 “아니, 집안일에 무슨 역사가 있어요?” 하고 되물을 텐데, “먼먼 옛날부터 손에서 손으로 이은 집안일을 해야,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루를 어떻게 그리고 지으며 사랑으로 살림했는지 먼저 몸으로 느끼고, 이내 마음으로 돌아보고, 차분히 이 삶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우리 어린이문학은 거의 일본을 거쳐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색동회’로 자란 방정환 님이 일군 《어린이》라는 잡지는 온통 ‘일본 어린이문학 + 어린이놀이 + 어린이노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뜻깊게 엮은 어린이잡지이기는 하되, 우리 어린이를 헤아린 책하고는 한참 멉니다. 이런 뿌리인 탓에 ‘색동회’는 언제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한테 이바지하면서 거꾸로 어린이한테는 등졌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를 바탕으로 또아리를 튼 ‘동심천사주의’요, 오늘날 ‘창비·문학동네’ 글담(문학권력)입니다.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은 이름부터 일본말일 뿐 아니라, 그냥 일본책을 모조리 베낀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아이’라 했고, 이따금 ‘어린이’라 했습니다. ‘어린이’는 방정환 씨가 새로 지은 말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말입니다. ‘어린이·젊은이·늙은이’처럼 쓰던 말입니다. 방정환 씨는 ‘어린이’라는 이미 있던 낱말에 뜻을 보태었을 뿐이고, 이렇게 보탠 뜻이 깊을 뿐입니다.


  예부터 우리 옛이야기나 온겨레·온나라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나옵니다. ‘소년소녀’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창비·김이구·원종찬으로 손꼽는 어린이문학평론은 ‘소년에 치우친 어린이문학을 소녀한테 돌려준다’는 말을 자꾸 퍼뜨리고 가르칩니다. 모름지기 ‘아이·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어버이’라는 이름에는 ‘남녀’나 ‘여남’을 가리는 뜻이 없습니다. 그저 아이요 어른입니다.


  낳아도 아이요, 이웃에도 아이입니다. 낳으면 낳기 때문에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면서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바로 아이가 가르치거든요. 이웃 아이를 지켜볼 적에는 ‘낳은 어버이’하고 다른 눈이기에, ‘이웃 어른’으로서 아이가 듣거나 보거나 새길 대목을 이웃으로서 새롭게 추슬러야 하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이러한 얼거리를 우리 어린이문학에서 제대로 바라본 사람이라면 이원수 님이고, 이원수 님은 이오덕 님한테서 ‘글빗(비평)’을 오롯이 할 만한 빛을 찾아보았습니다. 1950년대에는 웬만한 초등교사는 아이를 욱여내고 닦달하면서 돈을 거두어들이고 흠씬 두들겨패는 망나니였습니다. 이런 망나니는 1990년대까지 꽤 이었는데, 이오덕 님은 유난스레 아이한테서 돈을 욱여내지 않고 닦달을 안 하고 안 때리는 드문, 어쩌면 거의 없던 사람입니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붓종이(필기구)를 선뜻 내주면서 글과 그림을 스스로 펴는 길을 마련하고 북돋았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모든 어린이를 나란히 품고 헤아리면서, 아이가 스스로 제 마음을 제 손으로 종이에 적어 보고 그려 보도록 이끈 어른이자 길잡이인 이오덕 님이기에, 글빗(비평)을 고르면서도 곱게 펼 수 있는 밑바탕을 가꾸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름값이 높다고 해서 이름값에 휘둘린다면 글빗이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드린 책이라고 해서 치켜세운다면 글빗일 수 없습니다. ‘권장도서’가 아닌, 아이하고 함께 읽을 책을 살핀 길을 열려던 이오덕 님이기에, 여러 인문출판사가 어린이책을 제발 꾸준히 펴내기를 그토록 바라고 여쭈고 손수 꾸러미를 모아서 갖다주기까지 했다고 느낍니다.


  글빗은 어느 글이나 책 하나만 쓰다듬지 않습니다. 어느 글이나 책에 깃든 씨앗을 눈여겨보면서 살리는 손길이자 눈길입니다. 아이가 생각을 밝히도록 북돋울 낱말을 하나하나 고르면서 쓸 글이고, 스스로 어른답게 사랑하고 살림하는 오늘을 고스란히 담을 글이고, 누구 흉내를 낼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아이마음(동심)’은 ‘천사’가 아닌, ‘사람마음’은 다 ‘하늘’이라고 해야 알맞습니다.


  된장국을 끓이는데 된장을 안 넣었다면 알려주어야지요. 불을 만지고 칼을 다루는 부엌에서 불이나 칼을 함부로 휘두르거나 다루면 바로바로 따끔하게 멈춰세워야지요. 면허증을 땄더라도 섣불리 자동차를 씽씽 달리지 않도록 타이르고, 천천히 길부터 익히고 사람부터 살피라고 알려야지요. 글빗을 하려면, 누구보다 더 읽고, 누구보다 더 돌아보고, 누구보다 스스로 고요히 마음을 그리면서 이 길을 사랑하려는 하루일 노릇입니다.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며 춤추는 매무새는 도무지 글빗일 수 없고, 몇몇 글담(문단권력)에 기대어 이름을 파는 몸짓도 영 글빗일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읽고서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낼 적에 비로소 글빗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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