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흙놀이 좋아

 


  함께 마실을 다니다 보면,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저희 눈길과 마음길 가는 대로 움직인다. 마땅한 노릇이리라. 어버이 눈길과 마음길 가는 대로만 따라다녀야 할 까닭이 없잖니. 흙놀이가 마실보다 더 좋은 산들보라는 걷다가 자꾸자꾸 길바닥 흙을 만지며 놀고 싶다. 그래, 너한테는 걷기보다 쪼그려앉아 흙 만지며 놀기가 훨씬 즐겁겠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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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기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크니까 멀찌감치 앞장서서 달리곤 하지만, 곧 다시 달려와서 함께 걷는다. 작은아이 곁에서 작은아이 걸음에 맞추어 나란히 걷는다. 그래, 먼저 저 앞으로 달려가도 되지.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너는 더 신나게 달리고 싶으니, 앞으로 달려가고는 뒤로 달려오면 되지. 나란히 걷다가 또 신나게 달리고, 다시 신나게 달려서 돌아오며, 새삼스레 함께 걸으면 되지.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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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와 고무신과 책

 


  아이들과 도시에서 살아갈 적에는 ‘자연·생태 그림책’을 바지런히 장만했습니다. 시골로 옮겨 한동안 지낼 적에도 ‘자연·생태 그림책’을 이럭저럭 장만했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여러 해 지내며 ‘자연·생태 그림책’을 거의 장만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늘 마주하는 숲과 들과 메와 바다를 바라볼 때만큼 가슴을 울렁울렁 뛰도록 북돋우는 ‘자연·생태 그림책’은 좀처럼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이나 땅속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돕는 몇 가지 그림책은 여러모로 볼 만하지만, 이 또한 아이들과 온몸으로 흙과 물을 부대끼면 훨씬 깊고 넓게 흙이랑 물을 느끼면서 알 수 있어요.


  내가 도시에서만 살아갔으면, ‘자연·생태 그림책’ 이야기를 줄기차게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시에는 자연도 생태도 없으니까요. 도시에는 숲도 들도 메도 내도 바다도 없으니까요. 부산은 코앞에 바다가 있다지만, 막상 부산사람 스스로 바닷물을 ‘너른 목숨 살아가는 터’로 받아들인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바다가 코앞에 있을 뿐이에요.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고, 바다 앞에 아파트 높이 세울 뿐이에요. 자연이 있어도 자연을 느끼지 못하고, 숲이 있어도 숲을 돌보지 못해요.


  풀 한 포기를 아낄 때에 숲을 아낍니다. 꽃 한 송이를 사랑할 때에 이웃을 사랑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보살필 때에 내 살붙이를 보살핍니다.


  비록 우리한테 땅뙈기 하나 아직 없지만, 대문을 열고 마실을 다니면, 온 마을 어디에나 논이고 밭입니다. 이웃논 이웃밭을 들여다보며 벼포기를 쓰다듬고 마늘잎을 어루만집니다. 들풀을 간질이고 들나무를 마주합니다. 벼포기 하나가 책이 되고, 들꽃 한 송이가 사전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가 도감이 되며, 구름 한 자락이 다큐멘터리가 됩니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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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물놀이 1

 


  빨래터는 아이들한테 좋은 놀이터가 된다. 마을 집집마다 집에 물꼭지가 생긴 뒤 빨래터 쓸 일은 사라지고, 따로 빨래터 옆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쓸 일조차 없다. 그렇다고 마을에 아이들이 있지는 않으니까, 이 빨래터는 고스란히 놀이터 노릇을 한다. 두 아이는 서로 물을 튕기며 놀고, 그러다가 샘터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마신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 빨래터는 우리 아이들 놀이터가 된다.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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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으로 비룡소의 그림동화 205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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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5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아
― 거울 속으로
 이수지 그림
 비룡소 펴냄,2009.12.15./15000원

 


  거울을 들여다보며 놀이를 즐기는 예쁜 아이가 거울을 그만 깨뜨리고 말아 어둠이 드리우는 이야기를 찬찬히 펼치는 이수지 님 그림책 《거울 속으로》(비룡소,2009)를 읽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거울놀이를 곧잘 즐겼는데, 자칫 잘못해서 거울을 깨뜨린 적 있지 싶어요. 작은 거울이 깨질 적에는 바삭 하고 작은 소리가 나고, 큰 거울이 깨질 적에는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나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노는 동안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또 다른 누리를 맞이하는 느낌인데, 거울이 깨지고 나면 아이쿠 하면서 흠씬 두들겨맞으며 꾸중 들을 근심이 찾아듭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집에 거울이 있으니 거울놀이도 합니다. 아이들은 거울 들여다보기를 꽤 즐깁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는 없는 거울인데, 이웃집에 간다든지 읍내나 다른 데로 마실을 가면, 곳곳에 거울이 있습니다. 유리로 바깥을 막은 가게에서는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어 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거울이나 유리벽 앞에 서서 저희 모습을 쳐다보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스스로 바꾸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니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집에서 물을 받아 손빨래를 합니다. 지난날 어버이들은 냇가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때로는 마을에 빨래터를 따로 마련해서, 한쪽에서는 물을 긷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래를 했지요. 아이들은 어버이 일손을 거들며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합니다. 퍽 어린 아이들은 어버이와 빨래터에서 놉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하는 동안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빨래를 주무르는 모양을 구경합니다. 이윽고 저희도 빨래 복복 주무르는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이러다가 빨래터 흐르는 물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지요. 헹구고 비비느라 물결이 찰랑찰랑거릴 적에는 내 얼굴이 물무늬 따라 흔들리고, 물결이 가라앉으면 내 얼굴이 또렷이 보입니다.


  옛사람도 거울을 보았다고 합니다. 청동거울도 있고 무슨무슨 거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사람한테는 따로 거울과 같은 무언가 없어도 넉넉했으리라 느껴요. 냇물에 얼굴을 들이밀면 또렷하고 맑게 내 얼굴이 드러나는걸요.


  냇물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내밀어 손가락으로 톡 찍습니다. 내 얼굴이 찰랑찰랑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머잖아 물결이 가라앉으며 내 얼굴은 다시 살아납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어떤 슬픈 일이 닥쳐 흔들리고, 슬픈 일이 닥쳐 흔들려도 이윽고 고요히 가라앉으며 내 얼굴에 웃음이 돌아옵니다. 기쁨과 슬픔이 갈마든다고 할 수도 있는데, 따로 무엇과 무엇이 갈마든다기보다는, 삶이 움직인다고 느껴요. 삶은 늘 움직이고, 나는 늘 그대로입니다. 물결이 일며 내 얼굴이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겉보기로 흔들릴 뿐, 정작 내 알맹이는 가만히 있어요. 내가 느낄 내 모습은 한결같이 드러나는 낯빛이요 언제나 짓는 웃음입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집에서 냇물놀이를 즐기면 참 예쁘리라 생각해요. 어버이도 아이도 집 가까이 냇물을 두면서 숲과 들을 사귀면 서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바삭 깨지거나 와장창 무너지는 것 말고, 한결같은 햇살과 언제나 고운 나무처럼 정갈한 삶동무를 곁에 두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맑은 냇물 들여다보고, 맑은 냇물 마시며, 맑은 냇물 지킬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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