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우 교수 사진책 <또다른 고향>을 이야기하려고 살피다가, 이 사진책 <광경>이 있는 줄 깨닫는다. 이 사진책은 사진비평을 얼마나 받았을까. <또다른 고향>이라고 하는 1988년에 나온 사진책은 얼마나 눈길을 받았을까. 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는 이가 '사진'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사람들은 얼마나 살가이 마주하면서 들여다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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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
유영우 지음 / 푸른세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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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26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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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살아가는 마음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자다가 꼭 깹니다. 밤오줌을 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꿈을 꾸다가 깹니다. 이때에 가슴을 잘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숨을 고르면서 깊이 잠듭니다. 그러나, 그예 깨어 품에 안거나 무릎잠을 재워야 하곤 합니다.


  아이 하나를 무릎에 누입니다. 아이 하나를 옆에 누입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 아이들을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 품에 바싹 달라붙습니다. 아이가 손을 뻗어 아버지 얼굴이나 몸이나 팔이나 허리나 가슴이나 이곳저곳 만지다가 스르르 힘이 빠지며 곯아떨어집니다.


  무릎잠 자던 아이를 살며시 안아 잠자리로 옮기면 내 몸은 홀가분한데, 막상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고 나면, 밤에 하는 글쓰기가 되레 재미없습니다. 왜 그럴까, 왜 이 홀가분한 몸일 때에 더 바지런히 글쓰기를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방문 조용히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을 바라봅니다. 아마, 나는 집일 아무것 안 하고 집식구하고 하나도 안 얽히면서, 어떤 글방 하나 얻어 호젓하게 글쓰기에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할 적에는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복닥복닥 어수선하고 어지러우며 고단한 나날을 잇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노랫소리랑 웃음소리랑 이야깃소리 들으면서 글빛을 북돋우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내 삶일까요. 어떻게 이러한 내 삶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쓰니,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엮으니, 앞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 아이들 스스로 글을 읽을 때에는 저희 아버지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겠구나 싶습니다. 곧, 내 글은 내 글만이 아니라 아이들 글이요, 내 글에 깃드는 넋은 내 넋만이 아닌 아이들 넋입니다. 내 글은 내 이름으로만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옆지기 이름으로도 함께 쓰는 글이요, 내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이름이 함께 감돌며 쓰는 글입니다.


  내 벗은 누구인가요. 풀이요, 나무요, 새요, 벌레요, 구름이요, 멧자락이요, 숲이요, 논이요, 바다요, 하늘이요, 해요, 별이요, 달이요, …… 모두모두 벗입니다. 고흥 시골마을에도 살아가는 벗이요, 인천이나 서울에도 살아가는 벗입니다. 벗이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매무새가 달라지고, 내가 누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돌아보기에 글뿐 아니라 살림 꾸리는 몸가짐이 바뀝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 곁에 누워 내 손으로 아이들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며 새벽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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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닌 '도서정가제'를 놓고 알라딘책방이 시끄럽게 한 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씨가 '진흙탕 말싸움'을 벌인다.

 

왜 알라딘책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싶다.

그런데, 이번에 알라딘책방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며 쓴 글을 살피니,

일본 북오프를 싸잡아 깎아내리는 글을 몇몇 자료를 들추어 쓴다.

그렇구나.

헌책도 헌책방도 알지 못할 뿐더러,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일본 북오프나 알라딘 중고샵도 똑같이 모를 뿐더러,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느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샵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어느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샵이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책'을 다룰 뿐이기 때문이다.

 

헌책방이 있는 까닭이 있고

새책방이 있는 까닭이 있으며

도서관이 있는 까닭이 있다.

 

매장책방과 인터넷책방은 저마다 길이 다르고,

어린이책전문서점과 인문사회과학책방은 서로 길이 다르다.

 

'도서정가제'가 있기 앞서 '책'이 있었고,

도서정가제 말싸움을 떠나 책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책삶하고 등을 지면서 책소비만 하기에

책방도 작가도 출판사도 힘들지만,

정작 책을 '소비'할 뿐 '읽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힘들다.

 

유기농 곡식을 '소비'한대서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

유기농 곡식을 '즐겁게 먹어'야 몸과 마음이 나아진다.

시골에 '거주'하기만 한대서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

시골에 '즐겁게 뿌리내려 살아'가야 마음이 나아진다.

 

나는 소비자가 아닌 독자이고,

나는 책을 즐기며 살아가는 시골마을 아이들 아버지이다.

 

한기호 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곳저곳 취재받고 글 쓰느라

무척 바쁘신 듯하다.

부디 숨 좀 돌리시기를 빈다.

전화기 끄고 사무실에 며칠 말미를 내어

가까운 숲으로,

자가용 말고 시외버스 타고 천천히 나아가서

여러 날 나무와 하늘과 흙과 냇물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식힌 다음,

다시 이녁 일터로 돌아와서

'책'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빈다.

 

'책'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어느 실마리 하나 풀거나 맺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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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개기 심부름

 


  여섯 살이 된 큰아이는 무슨 집일을 나누어 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가 맡긴다면 무슨 일이든 할 테지요. 호미를 쥐어 주고는 풀을 뽑으라 하면 풀을 뽑을 테고, 연필을 쥐어 주고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라 하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테지요. 빗자루를 주고 방바닥을 쓸라 하면 방바닥을 쓸 테고, 수세미를 쥐어 주고는 설거지를 하라 하면 설거지를 할 테지요.


  일손이 바빠 큰아이를 부릅니다. 방에 옷걸이로 꿰어 널었던 빨래가 다 말라, 큰아이더러 개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나 힘들어서 다 못 해.” 하고 말하는 큰아이한테 “천천히 하면 돼.”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곁에 앉아 다른 일을 합니다. “아버지도 같이 개.” 하고 말하는 아이한테, “응, 이것 좀 다 하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큰아이가 빨래 개기를 끝까지 거듭니다. 다 갠 빨래 가운데 큰아이 옷가지는 큰아이 스스로 제 자리에 가져다 놓습니다. 올 한 해 무르익어 일곱 살로 접어들 즈음이면, 큰아이는 다 마른 제 옷을 아버지나 어머니 말이 없더라도 스스로 건사할 수 있겠지요. 제 옷을 건사하면서 동생 옷도 말없이 개서 건사해 줄 수 있겠지요.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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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아이 -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 10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지음, 강은교 옮김, 에드워드 고리 그림 / 두레아이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1

 


마음속 사랑을 보살펴 주셔요
― 줄어드는 아이
 플로렌스 하이드 글,에드워드 고리 그림,강은교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1978.9.1./6900원

 


  둘째 아이가 처음 우리 식구한테 찾아온 날을 더듬어 봅니다. 둘째 아이가 찾아오고부터 우리 식구 삶은 새삼스레 달라졌습니다. 첫째 아이가 찾아올 적에도 크게 달라졌으니, 둘째 아이가 찾아온 뒤에도 크게 달라질밖에 없습니다만, 아이를 하나 돌볼 때하고 둘 돌볼 때에는 참 다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몸은 비록 꽤나 고되거나 고단하달지라도, 셋째 아이나 넷째 아이도 낳아 갓난쟁이 뒤치닥거리부터 차근차근 다독이면서 함께 살아가면 나 스스로 더 아버지답고 사람다운 몸가짐을 건사하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아이들을 한결같이 귀여워 하거나 예뻐 하는 밑뿌리가 어디에 있을 만한가를 살갗으로 헤아린달까요.


.. “줄어들고 있단 말예요. 점점 작아지고 있다니까요.” 트리혼이 대답했어요. “네가 꼭 줄어드는 체하고 싶다면 맘대로 하려무나.”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그렇지만 식탁에선 그러면 못써.” ..  (12쪽)

 


  첫째 아이는 거의 어머니 곁에 붙어 안 떨어지느라, 밤잠을 재울 적에도 퍽 힘겨웠던 지난일을 떠올립니다. 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젖 물릴 때를 빼고는 으레 아버지가 안고 어르며 돌보듯 지내서 그러한지, 아버지가 낮잠을 재우고 밤잠을 재웁니다. 젖을 거의 다 뗀 요즈음, 밤새 둘째 아이는 아버지한테 찰싹 달라붙어 잡니다. 깊이 잠들었겠거니 여기며 쉬를 하러 일어난다든지, 아버지 일인 글쓰기를 하자며 깊은 새벽에 살그마니 일어난다든지 하면, 둘째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울먹울먹하다가는 으앙 하고 웁니다. 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있는 데로 찾아와서 무릎에 안기거나 눕습니다. ‘녀석아, 반듯한 자리에 누워야 허리도 한결 시원하게 풀리지 않겠니?’ 하고 달래지만, 둘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이 더 좋답니다. 하기는, 첫째 아이도 아직 아버지 무릎에 눕기를 더 좋아합니다. 동생이 아니라면, 첫째 아이는 아마 아버지 무릎을 혼자 차지하면서 놀겠지요.


  한 시간 즈음 둘째 아이를 무릎에 누인 채 글을 씁니다. 허벅지와 무릎이 지릿지릿 저린다 싶으면, 둘째 아이를 가만히 살핍니다. 잠자리로 옮겨도 될 만한가 들여다봅니다. 살살 안아 잠자리로 옮깁니다. 눕히기 무섭게 다시 으앙 하며 보채거나 달라붙으면 하는 수 없이 또 한 시간 더 눕힙니다. 이러기를 두 차례쯤 되풀이하면 글쓰기이고 뭐고 더는 이을 기운이 안 남습니다. 나도 아이 곁에 누워 잠을 부를밖에 없습니다.


  너희 둘 다 아버지 무릎이 그리도 좋니? 그래, 너희 둘 다 아버지 무릎도 좋고 어머니 무릎도 좋지? 아버지 등짝도 좋고 어머니 등짝도 좋지? 아버지 가슴도 좋고 어머니 가슴도 좋지?


  그래, 너희 몸뚱이 아직 조그마할 적에 많이많이 안기렴. 너희 몸무게 아직 가벼울 적에 자주자주 누우렴. 너희한테 침대가 되어 주마. 너희한테 베개가 되어 주마. 너희한테 말이 되어 주마. 참말, 너희 어버이로 살아가마.


.. “의자 위에 올라가는 걸 엄마는 못 참는다는 거 알지, 얘야.” 엄마가 소리치셨어요. 그리고 엄마는 먼지를 닦으러 거실로 가셨어요. 트리혼은 돼지 저금통을 찬장 서랍 맨 아래 칸에 놔두었어요. ‘이렇게 해 두면 내가 아무리 작아지더라도 상관없이 언제나 손이 닿겠지’라고 꼬마는 생각했어요 ..  (24쪽)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늘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함께 놀 때에 서로 즐겁다고 느낍니다. 아이도 어른도 방바닥에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울 만합니다.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할 만합니다. 천천히 숲길이나 들길을 걸을 만합니다. 책을 펼쳐 놀거나, 공책에 글씨쓰기 놀이를 누릴 만합니다.


  내 머리에도 아이 머리에도 지식조각이 깃들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런 사건과 저런 사고 이야기를 머리에 담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런 정치꾼 저런 재벌기업 이야기를 굳이 머리에 넣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운 벗님이 꿈꾸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 즐겁구나 싶습니다.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즐겁습니다. 멧새 노랫소리와 날갯짓을 바라보면 즐겁습니다. 아이랑 신나게 구르며 뛰놀면 즐겁습니다. 노래를 한껏 뽑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면 즐겁습니다.


  꼭 이것을 해야 하지 않아요. 반드시 저것을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갈 길을 걸어가면 즐거워요.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일을 하면 사랑스러워요. 즐거움을 찾아 즐겁게 누리는 삶이고, 사랑을 살피며 사랑을 나누는 삶이에요.


  일곱 살이 되었대서 왜 학교에 가야 할까요. 초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인가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인가요. 교사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나요. 교과서와 수업과 교칙을 넘어, 삶과 사랑과 꿈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나누는 학교는 몇 군데쯤 있나요.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아갈 아이한테 시골살이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나누는 학교는 한국에 한 군데라도 있나요.


.. 텔레비전 위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어요. 트리혼의 얼굴도 연두색이었어요. 귀도 연두색이었어요. 온 몸뚱이가 연두색이어어요. 트리혼은 한숨을 쉬었어요. ‘이건 ……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는 게 낫겠어’라고 꼬마는 생각했어요. ‘내가 아무 소리 않으면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할 거야.’ ..  (62쪽)

 

 


  플로렌스 하이드 님 글하고, 에드워드 고리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줄어드는 아이》(두레아이들,1978)를 읽습니다. 1978년에 처음 한국말로 옮긴 이 작은 그림책은 2007년에 새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납니다. 1978년에도 새삼스럽다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었고, 2007년에도 새롭다 싶은 이야기를 깨우치는 그림책입니다. 그러나, 이 땅 어른들은 이녁 아이가 줄어드는 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이 가슴속에 깃든 빛줄기가 자꾸 줄어들다가 그예 사라지고 마는 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나라 어버이들은 당신 아이가 작아지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 마음속에 서린 꿈이랑 사랑이 자꾸 작아지다가는 그만 없어지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해요.


  아이들은 맑은 빛을 깨워서 환하게 빛날 숨결입니다. 아이들은 따스한 사랑을 북돋우면서 곱게 피어날 꽃송이입니다. 우리 어른은 어릴 적부터 언제나 맑은 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일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 어른은 어린 나날부터 늘 따스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흐드러지는 목숨일 때에 기쁩니다.


  전쟁무기 아닌 호미와 낫과 쟁기를 들어요. 펜대나 컴퓨터 아닌 숲과 밭을 보살펴요. 신문이 아닌 하늘을 바라봐요. 텔레비전이 아닌 옆지기 얼굴과 아이들 얼굴과 이웃들 얼굴을 마주해요. 우리가 선 자리를 환한 눈빛으로 깨달아요.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1978년에 처음 나온 책 모습 (선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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