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 한림 저학년문고 1
키르스텐 보예 지음, 스테파니 샤른베르그 그림, 유혜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9

 


서로 재미있게 놀자
― 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
 키르스텐 보이에 글,스테파니 샤른베르그 그림,유혜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6.4.30./9000원

 


  시골에서 살아가든 서울에서 살아가든, 우리들은 재미있게 살아갈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든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든, 저마다 재미있게 삶을 일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면 시골사람답게 시골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서울사람답게 서울을 누리면 돼요. 살림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 집안살림 곱게 누리면 되고, 살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 집안살림 넉넉히 누리면 됩니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입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하루하루 맞아들이려 하는가에 따라 바뀌는 생각입니다. 마음자리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마음빛에 따라 생각이 거듭나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파랗게 눈부신 하늘과 푸르게 뒤덮인 들과 숲을 누리면 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기에 마당을 돌보고 텃밭이나 꽃밭을 가꾸며, 빈 터가 보이면 나무씨앗 한 톨 심어 씩씩하게 자라기를 빌 수 있어요. 시골에서는 시골숲을 보살피고, 서울에서는 서울숲을 돌보면 즐겁습니다.


..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쓰기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수산네라는 동창생 이야기를 하는 게 차라리 잘 된 일인 것도 같았다 ..  (12∼13쪽)


  정치를 꾀하는 이들은 진보나 보수 같은 이름을 만듭니다. 아마 오늘날 정치에서는 진보하고 보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금긋기를 하며 싸워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일까요. 시골에서는 정치를 안 하고 몽땅 서울에서만 정치를 하는데, 서울에서 정치꾼이 꾀하는 진보나 보수란 서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가요.


  정치꾼이든 기업꾼이든 으레 ‘일자리 만들기’를 얘기해요. 우리 시골집으로도 ‘국회의원 의정보고서’가 날아와요. 시골 국회의원이 정치꾼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가 죽 돌아보니, 하나같이 ‘토목건설 사업’을 이래저래 벌이며 몇 억이나 수십 억 돈을 타내었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니까, ‘일자리 만들기’라 한다면, 우리 여느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여 ‘토목건설 일자리’를 만든다는 셈이고, 토목건설 일꾼들이 무언가 짓고 부술 적에 곁에서 밥을 팔거나 술을 팔거나 기계를 팔거나 부속품이나 장비를 팔아 돈이 돌고 돌게 한다는 뜻입니다.


  백 해쯤 앞서를 생각합니다. 오백 해나 천 해나 만 해쯤 앞서를 생각합니다. 한국말에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서양 학문을 일본 학자가 옮기며 ‘진보’나 ‘보수’ 같은 한자말을 지었습니다. 문명 사회가 되었다 하기에, 서양 학문이 한국으로도 흘러들어 이런 이름으로 정치나 사회나 문화를 읽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흙을 만지는 일꾼한테 진보가 있을까요. 갯벌에서 바지락 캐고 고깃배 몰아 고기를 낚는 일꾼한테 보수가 있을까요.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어머니한테 진보가 있을까요. 아이들 똥바지 오줌기저귀 손빨래하는 아버지한테 보수가 있을까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은 진보나 보수를 알까요. 노래를 부르며 놀고, 마당에서 뒹구는 아이들한테 진보나 보수라는 금을 가를 까닭이 있을까요.


  봄꽃에 진보가 있을까요. 여름숲에 보수가 있을까요. 가을걷이에 진보가 있을까요. 낫질이나 써레질이나 갈퀴질에 보수가 있을까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물 맞추는 데에 진보가 있을까요. 겨우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고구마 쪄서 먹는데 보수가 있을까요.

 

 


.. “알렉산드라라는 애야. 줄여서 알렉스라고 한대. 네가 직접 읽어 봐.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면.” “정말 글씨 되게 못 쓴다.” 발레스카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착한 아이일지도 몰라. 글씨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  (36쪽)


  우리 시골마을 고흥에서는 군청에서 앞장서서 ‘비전 5000 프로젝트’를 꾀한다고 밝힙니다. 시골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마다 한 해에 5000만 원 넘게 돈을 벌도록 무언가 한다는 뜻인데, 흙을 만지거나 고기를 낚거나 갯일을 하며 꼭 5000만 원 넘게 벌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500만 원을 번다든지 3900만 원을 벌면 안 될는지요. 2000만 원을 벌면 먹고살기 힘들는지요. 흙을 일구어 거두는 푸성귀나 곡식을 굳이 내다 팔아 돈을 만져야 할는지요. 스스로 살림 꾸릴 만큼 흙을 일구어 식구들 밥을 차리는 삶으로 나아가면 어떠할는지요.


  5000만 원을 벌어 무엇을 하면 즐거운 삶이 될까요. 5000만 원 넘게 벌어 누구하고 이 돈을 나눌 때에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5000만 원 못 되게 벌어 살림은 어떠하게 꾸릴 때에 재미난 삶이 될까요.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다만, 돈벌이에만 마음이 사로잡히면 슬프거나 안쓰럽다고 느껴요. 시골마을 군청에서 할 몫이라면, 시골마을 사람들이 ‘돈을 더 벌라’고 부추기거나 채찍질을 하기보다는, 돈을 적게 벌거나 아예 안 벌더라도, 하루하루 재미나게 삶을 누리는 길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우리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울로 가서 지내는 딸아들’이 손자를 낳아 돌보는데 아토피 때문에 유기농 곡식이며 약값이며 무어며 하면서 다달이 백만 원이나 이백만 원씩 쏟아붓는다고 걱정해요. 한 해에 5000만 원을 벌든, 또는 1억 원을 벌든, 아토피를 비롯해 온갖 몸앓이를 한다면, 이렇게 버는 돈은 어디에 뜻이 있을까요. 돈벌이를 하느라 막상 삶을 누리지 못하거나, 느긋한 겨를이 없다면 어떤 보람이 있을까요.


  돈을 벌고 싶으면 벌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돈을 벌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누구나 ‘삶을 재미있게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 “이런 바보 같은 애를 뭐 하러 만나러 가요? 축구도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썼다고 그 애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너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는 애니? 설마 온 세상 사람들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49∼50쪽)


  시골마을 고흥은 ‘비전 5000 프로젝트’를 외치면서 다른 한켠에서는 ‘하이 고흥 해피 고흥’을 외쳐요. 높고 즐거운 고흥이라는 소리인데, 돈을 많이 번대서 높고 즐거운 시골살이가 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아이들 웃음꽃이 흐드러지고, 마을에서 사람들 노랫소리 흐드러지며, 숲과 들에 맑은 바람 산들산들 불 때에 높고 즐거운 시골살이가 이루어집니다.


  멧새와 들새가 농약에 시달리지 않을 때에, 도랑물과 냇물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을 때에, 바닷가에 관광객 쓰레기가 넘치지 않을 때에,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두 다리를 믿고 들길과 시골길 거닐 수 있을 때에, 멧골짝 시냇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놀이가 아니라 멧골짝 시냇물에서 발 벗고 찰방찰방 노닐며 노래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운 시골살이입니다.


.. 다시 거실로 돌아간 로빈은 알렉스의 회색 눈빛을 보면서 역시 북해 출신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  (76쪽)


  키르스텐 보이에 님 글이랑 스테파니 샤른베르그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책 《발레하는 남자 친구의 편지》(한림출판사,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내가 발레를 해도 스스로 즐거우면 재미난 삶입니다. 가시내가 축구를 해도 스스로 즐거우면 재미난 삶입니다. 발레에도 축구에도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집안일이나 들일이나 바닷일에도 진보나 보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리는 삶에서 스스로 무엇을 찾고 생각하며 나눌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어른부터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이 땅 어린이와 푸름이가 아름다운 빛을 실컷 누리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기를 바랍니다. 서로 재미있게 놀기를 빕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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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놀이 3

 


  큰아이는 할머니 장갑을 얻어 눈놀이를 하고, 작은아이는 그냥 맨손으로 눈놀이를 한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일찍 눈놀이를 하느라 손이 빨갛게 꽁꽁 얼어 할머니 장갑을 얻고, 작은아이는 뒤늦게 나와 누나 곁에서 누나처럼 눈을 만지며 노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눈발 거의 안 날리는 고흥에서 살아가느라 너희가 눈 만질 겨를 거의 없네. 어쩐지 미안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러 나들이를 할 적에 눈 실컷 만나면 되지. 언손은 녹이면 되니까 질릴 때까지 놀다가 들어가자.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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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맨손 눈놀이

 


  고흥에서는 눈 구경조차 힘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음성으로 오니 눈이 수북수북 쌓인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눈놀이를 하염없이 즐긴다. 맨손으로 거침없이 눈을 만진다. 손을 넣으면 폭폭 들어가니 재미나는가 보다. 눈밭에 손바닥 자국 내면서 옆으로 걷는다. 산들보라야, 네 손 빨갛게 어는구나.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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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2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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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20

 


맛있는 밥 나누는 삶
― 은수저 2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8.25./5500원

 


  맛있게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맛없게 먹는 밥은 맛없습니다. 참 마땅한 노릇인데, 내가 밥을 먹을 때에 어떤 마음과 생각인가에 따라 밥맛이 달라집니다. 제아무리 애써서 차린 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느긋하거나 한갓지거나 사랑스럽지 않으면, ‘맛있는’ 줄 못 느껴요. 마음이 느긋하거나 한갓지거나 사랑스러울 때에는 ‘맛있는’ 줄 느낍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맛을 못 느끼며 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처음 태어나면서 어머니젖을 맛보고, 죽을 맛보며, 비로소 수저질을 하면서 밥을 맛보아요.


  갓난쟁이가 마구마구 젖을 빨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아무렇게나 입에 우겨넣지 않습니다. 놀이 삼아서 우겨넣을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놀면서 밥을 먹습니다. 어른들처럼 다소곳하게 앉아 차분히 밥을 먹는 아이들은 아닙니다. 떠들고 뛰고 뒹굴면서 밥을 먹어요.


  도토리 한 톨을 먹습니다. 잣 한 톨을 먹습니다. 능금 한 알을 먹고, 오얏 한 알을 먹어요. 먹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먹습니다. 풀을 뜯어서 한 입 씹습니다. 나물을 캐고 물에 헹구어 천천히 씹습니다. 내 몸으로 스며드는 풀 한 포기는 어떤 햇살을 얼마나 머금으면서 저 풀밭에서 푸르게 자랐을까요. 날마다 어떤 바람이 풀포기를 쓰다듬었고, 날마다 어떤 숨결이 풀포기에서 샘솟았을까요.


- “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는 법이지.” (18쪽)
- “갈팡질팡한다는 건,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뜻이야. 생각이 멈춘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걸 몸으로 체험하고 스스로 출구를 찾아야 그게 진짜 자기의 피와 살이 되지.” (30쪽)


  나는 물오징어를 먹고, 갑오징어를 먹으며, 게를 먹습니다. 새우를 먹고, 매생이를 먹으며, 조개를 먹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물오징어나 갑오징어나 게나 새우나 매생이나 조개한테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나물을 캐거나 풀을 뜯을 적에도 ‘풀이름’ 알면 풀이름 떠올리며 캐거나 뜯지만, 풀이름 모르면 그냥 캐거나 뜯어요. 풀이름을 알더라도 ‘조개를 가리켜 조개라 하’듯 ‘쑥을 가리켜 쑥이라 할’ 뿐입니다.


  닭고기를 먹을 적에 닭이 무슨 이름이었는가 하고 떠올리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면서도 돼지와 소가 어떤 이름으로 살았던가 하고 되새기지 않아요. 달걀을 먹으며 이 달걀 낳은 암탉이 어떤 이름으로 새끼를 부르려 했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 몸으로 스며드는 밥이 된다면, 따로 다른 이름이 없는 셈일까요. 내 몸으로 스며드는 먹을거리란, 나와 같은 몸이요 넋이라는 뜻일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살아갈 힘을 얻는 까닭은 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쌀밥을 먹으면 ‘쌀로 지은 밥’이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입니다. 배추나 무를 먹으면 배추나 무가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이에요. 과자나 빵을 먹으면 과자나 빵이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이 될 테지요.

 

 


- “아, 놀랐다. 정말 맛있는 걸 먹으면 웃음밖에 안 나는구나.” (38쪽)


  삶은 밥에서 비롯할까요. 삶은 어떤 밥을 먹으며 이룰까요. 우리는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나 네 끼를 먹는다고 하는데, 끼니에 맞추어 먹는 밥은 내 몸을 얼마나 살찌우고, 내가 어떠한 힘을 쓰도록 북돋울까요.


  생각을 더 이으면, 밥을 제때 안 먹으면 배고픈 나머지 굶주린다 하는데, 숨을 조금이라도 들이켜지 않으면,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곧장 죽어요. 곧, 사람은 숨을 늘 마시며 살아가요. 바람을 늘 먹으며 살아갑니다. 게다가 이 바람은 한꺼번에 먹어치우지 못해요. 언제나 알맞게 고르게 천천히 마십니다. 허둥지둥 마실 수 없는 바람입니다. 혼자 잔뜩 먹어치울 수도 없는 바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르게 마시는 바람이요, 누구라도 골고루 마시는 바람이에요.


- “하치켄은 혹시 농가의 맏아들이니?” “아뇨, 회사원 집의 둘째인데요.” “어머나, 이 산중에 잘 왔다.” “할머니셔.” “안녕하세요.” “그래, 뭐? 농사 안 짓는 집 둘째?” (79쪽)
- “이 소는 왠지 친근하게 구네.” “늙은 소들뿐이라 사람을 잘 따라.” “늙은 소?” “엄마가 하나하나 개성을 파악해서 귀여워하며 기르니까, 웬만한 일로는 소를 처분하지 않거든.” (116쪽)


  옆지기와 아이들이 시골에서 지낼 적에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씩씩한 모습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차려서 먹는 밥이 시골과 도시가 다르기도 할 텐데, 밥을 차리며 쓰는 물 또한 시골과 도시가 달라요. 도시에서 정수기를 쓰거나 먹는샘물을 쓴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졸졸 흐르는 냇물이나 땅밑물만큼 싱그럽지 못합니다. 맑은 바람 흐르는 시골에서 얻는 물처럼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물을 얻을 수 없는 도시예요. 무엇보다, 바람이 달라요.


  그래요, 바람맛입니다. 시골과 도시는 바람맛이 달라요. 사람은 누구라도 늘 숨을 들이켜니까, 늘 들이켜는 바람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 할 만해요. 늘 들이켜는 바람이 가장 맛나고 싱그러우면서 좋은 데에서 살아가야, 비로소 내 몸이 튼튼해요. 맑은 바람이 깃드는 물을 마셔야 내 몸이 살아날 테고, 맑은 바람 나란히 먹고 자라는 풀을 뜯어야 내 몸이 씩씩할 테지요.


  새삼스레 바람내음을 곱씹습니다. 바람맛처럼 바람내음을 맡을 줄 알아야 내 삶내음을 알 수 있겠군요. 바람맛을 즐기듯 바람내음을 즐길 때에 내 삶맛을 깨달을 수 있겠군요.


  밥을 먹는 사람이기 앞서 바람을 먹는 사람이네요. 밥을 나누는 사람이기 앞서 바람을 나누는 사람이네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친환경이라는 테두리에 앞서 ‘삶을 살찌우는 사랑스러운 바람’이 흐르도록 마음을 기울일 줄 알아야겠네요.

 


- “저더러 하라고요?” “그래, 해 봐라.” “아니아니, 못해요! 무리! 저한테는 무리예요! 사슴 해체하는 법은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데!” “하치켄. 네 인생은 교과서에 다 나와 있냐?” (129쪽)
- “어쩐지 이 업계는 가혹하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구나, 수치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답은 하나가 아니라도 좋다,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163∼164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2) 둘째 권을 읽으며 하나하나 짚습니다. 맛있는 밥 나누는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하나 차근차근 짚습니다. 어떻게 지어야 맛있는 밥이 되고, 밥은 어떠한 먹을거리일 때에 맛있다 할 만할까 하고 되돌아봅니다.


  내가 맛있게 먹고 싶은 밥이라면, 내 이웃도 맛있게 먹고 싶은 밥입니다. 내가 즐거이 마시고 싶은 바람이라면, 내 동무도 즐거이 마시고 싶은 바람입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아름답게 누릴 삶이요 밥이자 바람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슬프게 다투거나 치고받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겠군요. 서로 따사로이 나눌 바람맛을 모르고, 함께 넉넉히 나눌 바람내음을 모르는 나머지, 자꾸 쇠밥그릇만 흔들잖아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요. 해를 보고 구름을 보고 달을 보고 별을 봐요. 왜 오늘날 한국땅에 무지개와 미리내가 자취를 감추려 하는지 생각해요. 왜 오늘날 한국땅에 눈부신 햇살이 좀처럼 드리우지 않는가를 생각해요. 왜 자꾸 모래바람과 먼지바람과 스모그바람이 휘휘 몰아치면서 몸앓이를 하는가를 생각해요. 의과대학은 수없이 생기고 병원 또한 높직하게 올라서지만, 막상 사람들은 더 앓고 더 끔찍한 병이 생기며 더 모진 암덩이가 불거지는가를 생각해요.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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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네 8권을 샀을까 안 샀을까. 장바구니에 담아 보면 알겠지. 내가 떠올리지 못해도 장바구니는 알려주니까 @.@ 게다가 지난해 9월에 8권이 나왔다니. 시골에서 살아가니 그렇기는 하다만, 나는 참 느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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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8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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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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