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Silver Spoon 2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20

 


맛있는 밥 나누는 삶
― 은수저 2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8.25./5500원

 


  맛있게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맛없게 먹는 밥은 맛없습니다. 참 마땅한 노릇인데, 내가 밥을 먹을 때에 어떤 마음과 생각인가에 따라 밥맛이 달라집니다. 제아무리 애써서 차린 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느긋하거나 한갓지거나 사랑스럽지 않으면, ‘맛있는’ 줄 못 느껴요. 마음이 느긋하거나 한갓지거나 사랑스러울 때에는 ‘맛있는’ 줄 느낍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맛을 못 느끼며 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처음 태어나면서 어머니젖을 맛보고, 죽을 맛보며, 비로소 수저질을 하면서 밥을 맛보아요.


  갓난쟁이가 마구마구 젖을 빨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아무렇게나 입에 우겨넣지 않습니다. 놀이 삼아서 우겨넣을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놀면서 밥을 먹습니다. 어른들처럼 다소곳하게 앉아 차분히 밥을 먹는 아이들은 아닙니다. 떠들고 뛰고 뒹굴면서 밥을 먹어요.


  도토리 한 톨을 먹습니다. 잣 한 톨을 먹습니다. 능금 한 알을 먹고, 오얏 한 알을 먹어요. 먹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먹습니다. 풀을 뜯어서 한 입 씹습니다. 나물을 캐고 물에 헹구어 천천히 씹습니다. 내 몸으로 스며드는 풀 한 포기는 어떤 햇살을 얼마나 머금으면서 저 풀밭에서 푸르게 자랐을까요. 날마다 어떤 바람이 풀포기를 쓰다듬었고, 날마다 어떤 숨결이 풀포기에서 샘솟았을까요.


- “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는 법이지.” (18쪽)
- “갈팡질팡한다는 건,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뜻이야. 생각이 멈춘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걸 몸으로 체험하고 스스로 출구를 찾아야 그게 진짜 자기의 피와 살이 되지.” (30쪽)


  나는 물오징어를 먹고, 갑오징어를 먹으며, 게를 먹습니다. 새우를 먹고, 매생이를 먹으며, 조개를 먹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물오징어나 갑오징어나 게나 새우나 매생이나 조개한테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나물을 캐거나 풀을 뜯을 적에도 ‘풀이름’ 알면 풀이름 떠올리며 캐거나 뜯지만, 풀이름 모르면 그냥 캐거나 뜯어요. 풀이름을 알더라도 ‘조개를 가리켜 조개라 하’듯 ‘쑥을 가리켜 쑥이라 할’ 뿐입니다.


  닭고기를 먹을 적에 닭이 무슨 이름이었는가 하고 떠올리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면서도 돼지와 소가 어떤 이름으로 살았던가 하고 되새기지 않아요. 달걀을 먹으며 이 달걀 낳은 암탉이 어떤 이름으로 새끼를 부르려 했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 몸으로 스며드는 밥이 된다면, 따로 다른 이름이 없는 셈일까요. 내 몸으로 스며드는 먹을거리란, 나와 같은 몸이요 넋이라는 뜻일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살아갈 힘을 얻는 까닭은 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쌀밥을 먹으면 ‘쌀로 지은 밥’이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입니다. 배추나 무를 먹으면 배추나 무가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이에요. 과자나 빵을 먹으면 과자나 빵이 내 숨결이요 기운이며 몸이 될 테지요.

 

 


- “아, 놀랐다. 정말 맛있는 걸 먹으면 웃음밖에 안 나는구나.” (38쪽)


  삶은 밥에서 비롯할까요. 삶은 어떤 밥을 먹으며 이룰까요. 우리는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나 네 끼를 먹는다고 하는데, 끼니에 맞추어 먹는 밥은 내 몸을 얼마나 살찌우고, 내가 어떠한 힘을 쓰도록 북돋울까요.


  생각을 더 이으면, 밥을 제때 안 먹으면 배고픈 나머지 굶주린다 하는데, 숨을 조금이라도 들이켜지 않으면,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곧장 죽어요. 곧, 사람은 숨을 늘 마시며 살아가요. 바람을 늘 먹으며 살아갑니다. 게다가 이 바람은 한꺼번에 먹어치우지 못해요. 언제나 알맞게 고르게 천천히 마십니다. 허둥지둥 마실 수 없는 바람입니다. 혼자 잔뜩 먹어치울 수도 없는 바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르게 마시는 바람이요, 누구라도 골고루 마시는 바람이에요.


- “하치켄은 혹시 농가의 맏아들이니?” “아뇨, 회사원 집의 둘째인데요.” “어머나, 이 산중에 잘 왔다.” “할머니셔.” “안녕하세요.” “그래, 뭐? 농사 안 짓는 집 둘째?” (79쪽)
- “이 소는 왠지 친근하게 구네.” “늙은 소들뿐이라 사람을 잘 따라.” “늙은 소?” “엄마가 하나하나 개성을 파악해서 귀여워하며 기르니까, 웬만한 일로는 소를 처분하지 않거든.” (116쪽)


  옆지기와 아이들이 시골에서 지낼 적에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씩씩한 모습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차려서 먹는 밥이 시골과 도시가 다르기도 할 텐데, 밥을 차리며 쓰는 물 또한 시골과 도시가 달라요. 도시에서 정수기를 쓰거나 먹는샘물을 쓴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졸졸 흐르는 냇물이나 땅밑물만큼 싱그럽지 못합니다. 맑은 바람 흐르는 시골에서 얻는 물처럼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물을 얻을 수 없는 도시예요. 무엇보다, 바람이 달라요.


  그래요, 바람맛입니다. 시골과 도시는 바람맛이 달라요. 사람은 누구라도 늘 숨을 들이켜니까, 늘 들이켜는 바람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 할 만해요. 늘 들이켜는 바람이 가장 맛나고 싱그러우면서 좋은 데에서 살아가야, 비로소 내 몸이 튼튼해요. 맑은 바람이 깃드는 물을 마셔야 내 몸이 살아날 테고, 맑은 바람 나란히 먹고 자라는 풀을 뜯어야 내 몸이 씩씩할 테지요.


  새삼스레 바람내음을 곱씹습니다. 바람맛처럼 바람내음을 맡을 줄 알아야 내 삶내음을 알 수 있겠군요. 바람맛을 즐기듯 바람내음을 즐길 때에 내 삶맛을 깨달을 수 있겠군요.


  밥을 먹는 사람이기 앞서 바람을 먹는 사람이네요. 밥을 나누는 사람이기 앞서 바람을 나누는 사람이네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친환경이라는 테두리에 앞서 ‘삶을 살찌우는 사랑스러운 바람’이 흐르도록 마음을 기울일 줄 알아야겠네요.

 


- “저더러 하라고요?” “그래, 해 봐라.” “아니아니, 못해요! 무리! 저한테는 무리예요! 사슴 해체하는 법은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데!” “하치켄. 네 인생은 교과서에 다 나와 있냐?” (129쪽)
- “어쩐지 이 업계는 가혹하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구나, 수치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답은 하나가 아니라도 좋다,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163∼164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2) 둘째 권을 읽으며 하나하나 짚습니다. 맛있는 밥 나누는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하나 차근차근 짚습니다. 어떻게 지어야 맛있는 밥이 되고, 밥은 어떠한 먹을거리일 때에 맛있다 할 만할까 하고 되돌아봅니다.


  내가 맛있게 먹고 싶은 밥이라면, 내 이웃도 맛있게 먹고 싶은 밥입니다. 내가 즐거이 마시고 싶은 바람이라면, 내 동무도 즐거이 마시고 싶은 바람입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아름답게 누릴 삶이요 밥이자 바람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슬프게 다투거나 치고받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겠군요. 서로 따사로이 나눌 바람맛을 모르고, 함께 넉넉히 나눌 바람내음을 모르는 나머지, 자꾸 쇠밥그릇만 흔들잖아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요. 해를 보고 구름을 보고 달을 보고 별을 봐요. 왜 오늘날 한국땅에 무지개와 미리내가 자취를 감추려 하는지 생각해요. 왜 오늘날 한국땅에 눈부신 햇살이 좀처럼 드리우지 않는가를 생각해요. 왜 자꾸 모래바람과 먼지바람과 스모그바람이 휘휘 몰아치면서 몸앓이를 하는가를 생각해요. 의과대학은 수없이 생기고 병원 또한 높직하게 올라서지만, 막상 사람들은 더 앓고 더 끔찍한 병이 생기며 더 모진 암덩이가 불거지는가를 생각해요. 4346.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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