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15] 숲읽기
― 밥과 옷과 집

 


  고등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 대목을 배운 적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얼거리’에 맞추어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으려 했을 뿐, 내 삶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으면서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점수가 어떠한가에 따라 몽둥이찜질과 줄세우기를 함부로 했습니다(1991∼1993년).


  중학교를 마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나는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이 대목을 배운 적 없습니다.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서처럼 ‘중학교 교육 얼거리’에 맞추어 교과서 지식을 집어넣기만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우리한테 할 수 있던 일이라면 ‘고등학교에 보내기’였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고등학교가 하는 일도 ‘대학교 보내기’에 머무는구나 싶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니라면 ‘공장 보내기’나 ‘회사 보내기’가 될 테지요. 그러면, 인문계 고등학교는 왜 대학교에 보내려 하는가요. 대학교에 보내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또, 대학교를 여러 해 다녀서 마치는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대목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가르치는 고등학교를 마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다른 대목보다 ‘먹고 입고 자는’ 대목을 생각했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학교에 붙들린 채 입시교육만 받는데, 밥하기와 바느질부터 빨래나 집일 어느 하나 익히거나 배울 틈이 없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혼자 김치를 담그셔도 도우러 갈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문제집 한 번 더 들추어야 한다고 말할 뿐, 김치가 어쩌고 자시고 아랑곳하지 않아요. 설이나 한가위를 앞둔대서 수험생이 집일을 거들 틈이 없습니다. 명절 코앞까지 밤늦도록 입시교육을 시키니까요.


  그러니까, 고등학생이 대입시험을 치러 붙지 않으면, 그야말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책상맡에서 문제집 들여다보기 빼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짐을 나를 줄 아나, 연장을 고칠 줄 아나, 삽질을 할 줄 아나, 망치질을 할 줄 아나, 도무지 어느 하나 스스로 하도록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는 학교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고추포기를 고추나무로 잘못 알고, 벼 또한 벼나무라도 되는 줄 잘못 안다고 나무라는데, 도시 아이들은 곁을 둘러볼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 아이들한테 둘레를 살펴볼 틈을 안 줍니다. 도시에는 논도 밭도 없어요. 고추이든 벼이든 구경할 수 없어요. 사내도 가시내도 스스로 밥상 차릴 일이 없습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제 옷을 스스로 빨아서 입을 일이 없습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제 방을 스스로 쓸고 닦을 일이 없습니다. 이 얼거리는 대학생이 되어 여러 해 지난 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다음에도 늘 매한가지입니다. 대학생이 된대서 집일을 배우거나 집살림을 배우는 아이는 없어요.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니까 집일하고 집살림을 익히려는 젊은이는 없어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어린이집에 한 번 들어가고 나면, 그 뒤로 집일하고 집살림하고는 아예 등을 지고 맙니다.


  과학 수업에서 별이름을 배웁니다. 원소가 어떠하고 화학조합물이 어떠하고 배웁니다. 옛 임금들 이름과 이런저런 옛 제도와 정책 줄거리를 외웁니다. 때때로 나무이름도 외우지요. 그러나, 학교 언저리에 심은 나무가 소나무인지 향나무인지 알 턱이 없습니다. 알려주는 교사가 없고, 푯말이 붙지도 않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떻게 다른지 배울 길 없고, 가르치는 교사가 없습니다. 참나무는 왜 참나무이고, 참나무 열매가 왜 도토리이며, 도토리를 열매로 맺는 참나무 갈래는 어떻게 되는가를 배울 수 없고, 알려줄 만한 교사가 없어요. 대나무조차 못 알아보는 동무가 있습니다. 감이 열린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불그스름한 알이 무언지 모르는 동무가 있습니다. 포도가 나무에 열리는지, 능금꽃이나 배꽃이 어떠한지 생각하거나 헤아리거나 아는 동무가 거의 없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도 숲을 마주하거나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시골자락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길목’이거나 ‘공장하고 골프장하고 발전소 짓는 터’이거나 ‘관광지’로 꾸미는 데가 됩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건물 늘리느라 바빠, 그나마 도시 바깥쪽에 있던 논밭이나 뒷동산조차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는 자가용 몰아 ‘수목원’이라 따로 이름을 붙이는 데로 찾아가야 나무내음 맡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나비박물관 아니고서야 나비조차 볼 수 없습니다. 참새나 비둘기가 더러 도시에서도 살아간다지만, 멧새나 들새를 볼 수 없는 도시예요. 소쩍새나 참수리가 살 터가 없는 도시요, 들쥐나 멧쥐조차 살 터가 없는 도시예요.


  입시공부에 찌들리던 지난날, 나는 무엇보다 ‘숲을 모른다’는 대목이 부끄럽습니다. 매캐한 자동차 냄새는 그만 맡고 싶습니다. 갑갑하고 어두운 시멘트 교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 어디에나 수두룩하게 많은 공장마다 내뿜는 매연덩어리에서 홀가분하고 싶습니다. 송전탑과 전봇대하고 헤어지고 싶습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바람에 실리는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고 싶어요. 바람결에 살랑이는 햇살을 쬐고 싶어요.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싶어요. 창밖을 바라보아도 잿빛투성이일 뿐이었지만, 창밖으로 숲이 있기를 빌었어요. 나무그늘에서 책을 펼치고, 풀밭에 앉아 도시락을 즐기며, 나무타기를 하며 쉬다가는, 싱그럽고 푸른 맛난 풀 뜯어먹고 싶었어요.


  밥과 옷과 집은 어디에서 얻을까요. 바로 숲에서 얻지요. 숲이 있어야 밥을 얻지요. 숲이 있어야 옷을 얻지요. 숲이 있어야 집을 얻지요. 공장에서 가공식품 찍어낸대서 배부르지 않아요. 공장에서 천을 짜고 옷을 짓는대서 예쁘지 않아요. 공장에서 시멘트와 플라스틱과 쇠붙이 얽어 높다란 아파트 짓는대서 반갑지 않아요. 숲에 푸른 숨결 가득한 나무가 있을 때에 먹을거리가 나와요. 숲에 푸른 숨소리 가득한 나무가 있어 비로소 입을거리를 빚어요. 숲에 푸른 숨빛 해맑은 나무가 있기에 튼튼히 기둥 세우고 서까래 얹으며 집을 지어요.


  학교는 모름지기 숲학교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모두 숲배움터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숲배움터가 되면서, 아이들이 나이와 눈높이에 맞게 ‘밥·옷·집’ 스스로 건사하는 슬기와 넋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이든 실업계 고등학교이든 예체능계 고등학교이든, 모두 너른 숲 한복판에 깃들어, 숲내음 맡고 숲살이 익히면서 차근차근 자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운전면허증은 아예 안 따거나 나중에 따도 돼요. 굳이 열아홉 살이나 스무 살에 대학생 되어야 하지 않아요. 대학생 애써 안 되어도 즐겁지요. 삶을 누릴 수 있을 때에 즐겁고,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숲이 곧 살림터요 배움터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나는 숲배움터를 조금도 누리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숲배움터를 실컷 누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숲에 깃들 때에 시나브로 사람다움과 참다움과 나다움을 다스릴 수 있구나 싶어요. 4346.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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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셋

 


유채꽃이 핍니다.
봄날 시골 들판은 온통 노란빛 잔치입니다.

 

유채꽃에 앞서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광대나물꽃이 피어요.
들쑥갓꽃이 피고 냉이꽃이 피어요.
그런데
유채꽃쯤 되어야
매화꽃이나 벚꽃쯤 되어야
진달래꽃이나 개나리꽃쯤 되어야
동백꽃이나 산수유꽃쯤 되어야
요즈음 사람들이 알아봅니다.

 

돗나물이 자라고
질경이와 씀바귀가 자라고
꽃다지와 민들레가 자라고
쇠비름과 미나리가 자랍니다.
봄 들판은 온통
상큼하며 싱그러운 풀빛 잔치입니다.

 

풀씨는
사람이 따로 안 심어도

풀씨 스스로
씨앗을 맺고
씨앗을 퍼뜨려
겨울을 난 다음
봄맞이 노래를 부르지요.

 

기쁜 봄날
봄노래 부르면서
봄바람과 봄볕 누려
봄사랑을 헤아립니다.

 

봄마음이 되면서
봄날 봄빛을
사진 하나로 살그마니
옮기고 즐기고 나누고 생각합니다.

 

 

(4346.2.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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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찬바람은 겨울에 불고
따순바람은 봄에 불어요.
봄날 따순바람
새싹 새눈 깨우지만,
겨울날 찬바람
흙 품 안긴 씨앗들
튼튼하고 씩씩하게 여물어
천천히 뿌리내리라고
노래부릅니다.

 

봄은 겨울에 베푸는 사랑
겨울은 가을이 꾸는 꿈
가을은 여름이 띄운 쪽글
여름은 봄이 품는 빛.

 

오늘은
내가 나를 살리는
보드라운
산들거리는
버들잎 살랑이는 샘가.
풀잎이 속삭이는 춤사위.

 


4346.1.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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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가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들도 듣기 좋습니다. 아이들이 듣기 좋은 소리는 나도 듣기 좋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아이들도 들으며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소리는 나도 들으며 좋아할 만합니다.


  사랑을 담아 부르는 소리는 따스합니다. 꿈을 담아 부르는 노랫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를 담아 읊는 싯말 한 대목 두 대목은 달콤합니다. 여섯 살 아이가 한글과 숫자를 익히려고 놀이 삼아 ㄱㄴㄷ을 읽습니다. 123을 읽습니다. 곁에서 세 살 아이가 누나 목소리를 흉내냅니다. 혀가 짧은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혀가 짧은 소리를 저희 나름대로 굴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풀잎을 건드립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흐릅니다. 바람이 불며 햇살내음 퍼뜨리고, 꽃내음 흩뿌립니다. 봄날 피어나는 크고작은 꽃이 바람결 따라 나긋나긋 춤을 춥니다. 일찌감치 깨어난 봄나비 한 마리 밭자락을 맴돕니다.


  온누리 밝힐 수 있는 소리에는 사랑이 감돕니다. 온누리 감쌀 수 있는 소리에는 꿈이 서립니다. 즐겁게 웃는 소리로 지구별에 사랑을 부릅니다. 반갑게 노래하는 소리로 숲에 푸른 싹 틔웁니다.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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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공주님 크레용 그림책 29
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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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0

 


고운 생각으로 빚은 고운 삶
― 내가 진짜 공주님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2001.9.1./8500원

 


  밥을 맛나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밥을 맛나게 차리면 됩니다. 밥을 맛없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골을 부리며 밥을 차리면 됩니다. 정갈하게 거름을 삭혀 논밭에 뿌리고 푸성귀와 곡식을 알뜰살뜰 돌보면, 석 달 뒤에 아름다운 열매를 얻습니다. 풀약을 치며 풀을 잡느라 부산스러우면, 풀약을 치면서 숨이 갑갑하고, 열매를 거둘 때에도 풀약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움직이고, 삶이 움직이는 대로 나한테 돌아옵니다. 풀약을 안 치면 벌레가 꼬인다지만,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다시 겨울이 찾아들 때까지 벌레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비가 봄을 맞이해 따순 나라로 찾아오듯, 이제 벌레도 기지개를 켜며 새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곧, 벌레 걱정으로 풀약 칠 일은 없습니다. 벌레는 벌레대로 살되, 사람은 사람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논둑이고 밭둑에, 숲이나 들에, 벌레들 먹을 맛난 풀이 없으면, 논밭 푸성귀와 곡식을 갉아먹을밖에 없습니다. 논밭에 한 가지 곡식이나 푸성귀나 나무만 심어 돌보면, 온갖 병치레가 찾아들밖에 없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풀이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해야 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나무가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할 때에 병치레가 찾아들지 않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풀약을 친들 벌레가 사라지지 않거든요. 풀약을 치더라도 ‘곡식이나 푸성귀 아닌 풀’은 이내 다시 돋거든요. 즐겁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고, 아름답게 어울릴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 마리는 늘 공주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  (2쪽)

 


  고운 생각이 고운 삶을 빚습니다. 미운 생각이 미운 삶을 빚습니다. 착한 생각이 착한 삶을 빚습니다. 궂은 생각이 궂은 삶을 빚습니다.


  서울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갑니다. 시골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는 시골로 갑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대학교 졸업장 거머쥐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애써서 대학교에 가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내 삶 손수 짓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힘써서 시골살이 밑터를 닦습니다.


  아이들을 하루 내내 돌보며 즐겁게 웃거나 떠들거나 노래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책을 뒤지든 스스로 어린 날 놀던 모습을 되새기든 하면서 아이들과 신나게 얼크러집니다. 아이들과 하루 동안 어떻게 지내야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교나 학원에 보냅니다.


  맑은 생각이 맑은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맑게 가다듬을 때에 스스로 삶을 맑게 보듬습니다. 환한 생각이 환한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환하게 추스를 적에 스스로 삶을 환하게 밝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짝꿍을 사귀고 싶다고요? 네, 아주 쉬워요. 언제나 좋은 생각을 하면 돼요. 내 생각을 언제나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그득그득 채우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내 삶은 차츰 좋은 결로 거듭나고, 바야흐로 온통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넘실거릴 무렵, ‘내가 사귀고 싶은 짝꿍한테서 느낄 좋은 기운’을 바로 나 스스로 갖춥니다. 이리하여, 좋은 삶으로 거듭난 나한테 좋은 짝꿍이 저절로 찾아옵니다.


.. 진실을 알아내는 공부도 아주 중요하지요. 겉모습은 화려하고 멋있지만 속마음은 나쁜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왕자님이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가요?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 수 있는지 시험해 보면 되지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알쏭달쏭한 문제들을 많이 공부해야 해요 ..  (19쪽)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결로 삶을 움직입니다. 첫째, 마음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이 바뀝니다.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가꾸면, 내 삶은 시나브로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흐드러지는 무지개빛이 됩니다.


  둘째, 몸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바지런히 땀흘리며 흙을 일구듯, 몸으로 삶을 빛내는 길이 있습니다. 땀에서 보람을 찾고, 구리빛 살결에서 보람을 누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몸으로만 삶을 움직이다가 옷치레·밥치레·집치레에 끄달릴 수 있어요. 마음 아닌 몸으로만 느끼려 할 때에는,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마음은 사랑을 나누면서 밝게 웃습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을 때에 몸 또한 사랑스레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꽃 선물합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일굴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꿈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흐르는 꿈이 아닙니다. 사랑은 책으로 배우지 못합니다. 상담교사나 심리학자가 마음을 다스려 주지 못합니다. 사랑은 손짓 발짓 또는 돈짓으로 거머쥐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드라운 산들바람 같은 마음씨앗 뿌리면서 나눕니다. 마음은 정갈히 쓰다듬는 손길처럼, 새롭게 돋는 풀잎처럼, 아침에 드리우는 햇살처럼, 아주 천천히 알맞게 넉넉히 누구한테나 이어지는 꿈타래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함께 생각해요. 내 고운 살붙이하고 하루를 어떻게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어여쁜 아이들하고 하루를 어떻게 즐기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반가운 이웃하고 하루를 어떻게 빛내고 싶은지 생각해요.


.. 마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깃털 달린 펜으로 이렇게 썼어요. “우리 집 공주님.” ..  (30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크레용하우스,2001)을 읽습니다.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에 나오는 가시내는 공주님이 되고 싶습니다. 늘 공주님 되겠다고 꿈을 꿉니다. 다만, 공주님이 되고 싶을 뿐, 공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고, 공주님은 무엇을 하며, 공주님은 삶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는가 또한 몰라요.


  그래서, 그림책 가시내는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갑니다.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배웁니다. 이쁘장한 치마 펑퍼짐하게 입고 아무 일 안 하는 공주님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으며 사랑을 나누는 공주님이 되는 길을 걸어요. 오랜 나날 알뜰살뜰 ‘공주님 되기 공부’를 한 가시내는 이제 모든 시험을 거쳐 ‘진짜 공주님’이 됩니다. 진짜 공주님이 되었기에, 가시내는 ‘어떤 공주님’이 되겠느냐 하고 이녁 이름을 손수 쓸 수 있습니다. 왜, 공주 참 많잖아요. 백설공주, 인어공주, 평강공주, 엄지공주, ……처럼 온갖 공주가 있어요.


  자, 수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면 즐거울까요. 나는 이 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어 내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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