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풀뿌리가 희망이다
KYC.시민의신문 엮음 / 시금치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이름 :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
- 엮은이 : 한국청년연합회, 시민의신문
- 펴낸곳 : 시금치(2005.2.1.)
- 책값 : 6000원

 `도시에서도 숨쉴 구멍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닷가마을 인천(흔히 인천을 도시라고만 말하는 분이 많지만, 적잖은 사람은 `도시' 인천이 아닌 `바닷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고 살았습니다. 도시라기보다는 시골 읍내 만한 바닷가라고 할까요?)에서 태어나 자란 뒤 서울에 와서 꼭 열 해를 살며 이 물음을 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물음을 품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서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시골로 살림을 옮겼어요. 하지만 시골에서는 책방 나들이가 어려워 틈틈이 서울에 가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서울에서도 조금은 변두리라 할 만한 동네책방에 새책을 주문해서 받아 보고 있습니다. 저한테 시골살이가 어렵다면 오로지 이 하나, 가붓한 마음으로 나들이를 떠나서 느긋하게 즐길 만한 책방이 없다는 문제 하나가 있습니다.


.. 올해는 일단 많이 모임을 더 늘려가는 것이 목표지만, 더 나아가 지역 교육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서 나름대로의 실천을 벌일 계획도 이씨는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쓸만한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것. 제대로 된 도서관은 없는데도 주거지역 바로 옆에 골프장이 들어선단다. 물론, 바로 이들 주부모임이 골프장 반대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  〈24쪽〉


 사람은 자기 삶터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가는 삶터가 사람을 만듭니다. 스스로 자기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는 분들은 둘레가 어떻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곧게 자기 길을 걷겠지만, 이런 분들도 훨씬 나은 삶터에서 산다면 더욱 훌륭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겠지요. 게다가 아주 많은 사람들은 삶터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 삶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어설피 삶터를 바꾸려 하다가 크게 화풀이를 입기도 하고요(수많은 자연 재앙과 날씨 달라짐 들).

 이래서 저는 한 사람이라도 더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자기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골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서울 같은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좀더 있으면 하고픈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겠지요. 책도 더 많이 살 수 있고요. 하지만 책 10권 살 수 있는 돈을 벌든 11권 살 수 있는 돈을 벌든, 또 100권 살 수 있는 돈을 벌든 다를 것이란 한 가지입니다. 자기가 산 책을 얼마나 즐겁게 속깊이 읽고 받아들여서 실천을 하느냐. 책을 아무리 많이 살 수 있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도루묵이에요. 꽝입니다. 시골살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좀 더 벌어서 논밭을 더 많이 살 수 있으면 무엇하나요? 좀더 편의시설 많이 갖춘 집을 지으면 무엇하나요? 자기가 깃들 삶터(시골)에 마음을 붙이면서 자연 삶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시골살이는 할 수 없습니다.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에서 말하는 `희망찾기'는 도시에서도 `시골살이'를 하는 듯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더 누리면서 쓰려는 몸가짐이 아니라 `다시 쓰고 아껴 쓰고 함께 나누어 쓸' 줄 아는 몸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성적과 시험점수에 매인 채 일류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가 남을 밟고 올라서는 제도권입시교육에 매이는 도시 삶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나누면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자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먹을거리든 입을거리든 쓸거리든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 쓰기'가 아닌 `다 함께 쓰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우러져서 도시에서도 `희망공동체'를 찾거나 만들게 됩니다. 그래, 도시에서도 시골살이를 하듯 나누고 함께하는 마음이라면 희망을 찾기는 찾겠지요. 하지만 `스스로 만들지' 못하거나 않는 가운데 `쓰는 희망'만을 말한다면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은 `쓰기만 하는 희망'이니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하겠지만, 차츰차츰 `만드는 희망'으로도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도시와 시골로 나눌 것도 없이 `사람 삶터'가 되는 `희망공동체'가 될 테지요. "풀뿌리가 희망이다" 하는 작은이름을 붙인 이 책은 아직은 `도시 속'에서 찾는 희망이지만, 앞으로는 도시와 시골을 넘어선 희망을 찾으려는 첫걸음을 보여주는 책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나귀님님의 "자연을 지키는 것과, 자연에서 살아가는 것.."

지율 스님은 어떤 흔들림없이 튼튼한 생각과 철학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비구니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고 보아야 좋지 싶습니다. 아직 튼튼한 생각과 철학이 없지만, 차츰차츰 자기 생각과 철학을 가다듬어 나가는 가운데 `고속철도와 자연과 우리 삶'이라는 화두를 보았고, 그 화두를 보았기에 자기 길을 거기에 맞추었겠지요. 자기 화두를 풀 실마리를 어렵사리 대화로 정부와 타협을 했지만, 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꾸 약속을 깼고, 이에 크게 실망하고 아무 힘도 없게 된 지율 스님으로서는 어쩌면 집권자가 바라는 대로 `죽어' 주려고 몸을 숨긴 채 기나긴 단식을 했겠구나 싶습니다. 지율 스님은 청와대와 정부기간원이 보호대상자로 점찍고 뒷간엔 언제 가고 뭘 하고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까지 하나하나 감시를 받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이런 형편이었을 때 웬델 베리란 분은 그 나름대로 다른 풀이법을 찾았을 테지요. 사람과 자연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사람은 사람 나름대로 자연을 쓰면 좋지만, `사람 나름대로 쓰는 것이 아닌 문제' 앞에서는 무언가 움직임을 보일 수 있겠지요. 폭력저항이든 비폭력저항이든지요. 간디든 말콤엑스든 킹 목사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나귀님님의 "투박하지만 진실한 누군가의 목소리.."

이 책은 번역을 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저는 영 알맞지 않고 어렵게 들리는 말을 너무 많이 쓴 대목이 거슬렸는데, 나귀 님한테는 `번역을 잘못한' 곳이 보이는군요. 문득 <나에게 텔레비전은 필요없다>, <나에게 핸드폰은 필요없다>, <나에게 자동차는 필요없다>... 같은 책이름(이런 책은 없지만)이 떠오릅니다. 흐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망은 있다 - 평화로운 녹색의 미래를 위하여
페트라 켈리 지음, 이수영 옮김 / 달팽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희망은 있다
- 글쓴이 : 페트라 켈리
- 펴낸곳 : 달팽이(2004.11.25.)
- 책값 : 8000원


 페트라 켈리는 우리한테 희망이란 씨앗을 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이가 죽은 까닭을 놓고는 온갖 말이 많은데요, 이미 죽고 없으니 그 일은 어쨌든 잠깐 덮어놓고 그이가 한 일을 돌아보면 좋겠어요. 페트라가 우리한테 희망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 희망은 누구보다도 자기 스스로, 그러니까 페트라 스스로한테 살아가는 큰뜻이자 보람이자 즐거움입니다. 그러니까, 남한테 무엇을 나누어 주는 그런 동정이나 동냥이 아니라 `자기한테 가장 즐겁고 고맙고 반가운 일'을 기꺼이 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나누는 그런 희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비폭력 저항 운동과 운동 단체들은 전세계적으로 두 가지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 하나는 이들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닌 군사적 구조적 폭력에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의 위협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목표나 자신들이 속한 단체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  〈43쪽〉


 페트라는 말과 함께 몸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이가 쓴 글과 그이를 이야기하는 글을 보노라면, 사람들이 페트라를 따르거나 믿거나 함께할 수 있던 까닭은 `그 일이 될는지 안 될는지 몰라'도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기쁘기 때문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해도 하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지요. 우리가 사는 삶터를 지키는 일은 씨앗 하나라도 땅에 심을 수 있게 힘쓰는 일, 씨앗 하나가 땅에 깃들어 자랄 수 있는 땅 한 뼘이라도 지키는 일부터 하면 됩니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물건을 하나 덜 쓰고 자가용을 웬만하면 안 모는 한편 대중교통도 어지간하면 안 타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일부터 이룰 수 있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작은 일을 이루어 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녹색당도 열 수 있고, 녹색당을 믿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으며, 우리가 꿈꾸고 이루려는 참된 삶터, 사람과 자연 목숨붙이가 모두 소중하게 자기 땅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삶터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워낙 어수선하고 지식이니 돈이니 이름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굴러가는 듯 보여서 그런데요, 페트라는 저기 먼 서양 어느 나라 여성 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만히 살피고 느끼면, 바로 우리 어머니가 누이도 누나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바로 페트라 같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말이 아닌 몸으로, 또는 말과 몸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페트라라고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쓴이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시모음은 예나 이제나 썩 널리 읽히지 못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다룬 책보다는 많이 읽힙니다. 우리 말을 알맞고 올바르게 쓰도록 이끌어 주는 책보다도 많이 읽히고요. 시모음이 널리 읽히지 않는다는 말은 `그럭저럭 읽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넉넉하고 푸진 마음으로 살뜰히 읽지는 못한다'는 소리일 테지요.

 시가 제대로 안 읽히는 까닭은 여럿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뽑아 보겠습니다. 첫째, 시쟁이들이 저희끼리만 쑥덕거리는 시만 나불거린다. 뭐, 알아먹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어려운 모습을 빗대어 써 제끼니, 누가 이런 시를 읽겠습니까. 게다가 시 쓰는 분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며 부대끼는 현실은 웬만해서는 안 다룹니다. 사회 일에 너무 어둡습니다. 시를 즐겁게 쓰지 못해요. 웃음이 나는 시, 눈물이 나는 시, 가슴이 찡하는 시, 머리를 내리칠 만큼 깨우치는 시는 못 씁니다. 글감이 고작 사랑 타령, 자연 타령입니다. 사랑도 사랑 나름이고 자연도 자연 나름인데, 둘 모두 우리가 가멸차게 부대끼는 이 땅, 이 터전, 이 사람, 이 나라와는 사뭇 동떨어진 타령이기 일쑤입니다. 둘째, 사람들 삶이 시를 읽기 어렵도록 팍팍하고 돈만 밝힌다. 돈바라기, 이름바라기, 힘바라기로 흐르는 이 사회는 다른 책도 제대로 안 읽힙니다만 시모음은 더더욱 안 읽힙니다. `그런 거(시모음)야, 한갓지게 놀고먹는 사람들이나 쓰고 읽는 거지' 하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을 다스리며 머리를 일깨우고 머리를 보듬는 책 가운데 맨 첫머리를 연다고 할 만한 시와 자꾸 멀어지는 사회 얼개입니다. 학교교육도 그렇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부모도 그래요. 부모가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누구나 시를 즐길 수 있어야 해요.


놀이동산 가자며
매달리는 아이
억지로 떼어놓고
특근하던 날

갑갑한 마음 통했던 걸까
박형이 가져온 소주 한 병

점심시간 동료들 불러모아
작업장 구석에 쪼그리고 마시는
깡소주 한 잔 꿀맛이다

낮술 한 잔에
붉다거리 빛깔 좋은데
관리자들 볼세라
속이 찌리찌리하다  〈특근하던 날〉


 공장에서 일하는 정은호 님은 자기가 일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을 있는 그대로 시로 담아냅니다. 말을 너무 줄인 듯한 느낌도 들고(좀더 길게 써도 좋은데 너무 짧게 쓴), 말을 너무 늘인 듯한 느낌도 들어(좀더 짧게 쓰면 좋은데 몇 마디 늘어진) 몇 대목에서는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는 가운데 `시를 쓴 사람이 느끼고 바라보며 나누려는 마음'을 즐길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시를 쓴 사람 삶은 없이 책상머리에서 펜대로만 굴린 느낌과 생각은 썩 내키지 않아요. 괜히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읽기에도 팍팍하고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참으로 좋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작품마다 `아, 이 시는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지' 하는 느낌이 들어야 더 좋다고 믿습니다.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 시를 읽으며 나도 시를 내 삶을 시로 담고 싶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고 믿습니다. 정은호 님 시를 읽으면, `나도 시를 쓰고 싶구나.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도 느끼고 나도 시로 펼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