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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ㅣ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평점 :
-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쓴이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시모음은 예나 이제나 썩 널리 읽히지 못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다룬 책보다는 많이 읽힙니다. 우리 말을 알맞고 올바르게 쓰도록 이끌어 주는 책보다도 많이 읽히고요. 시모음이 널리 읽히지 않는다는 말은 `그럭저럭 읽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넉넉하고 푸진 마음으로 살뜰히 읽지는 못한다'는 소리일 테지요.
시가 제대로 안 읽히는 까닭은 여럿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뽑아 보겠습니다. 첫째, 시쟁이들이 저희끼리만 쑥덕거리는 시만 나불거린다. 뭐, 알아먹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어려운 모습을 빗대어 써 제끼니, 누가 이런 시를 읽겠습니까. 게다가 시 쓰는 분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며 부대끼는 현실은 웬만해서는 안 다룹니다. 사회 일에 너무 어둡습니다. 시를 즐겁게 쓰지 못해요. 웃음이 나는 시, 눈물이 나는 시, 가슴이 찡하는 시, 머리를 내리칠 만큼 깨우치는 시는 못 씁니다. 글감이 고작 사랑 타령, 자연 타령입니다. 사랑도 사랑 나름이고 자연도 자연 나름인데, 둘 모두 우리가 가멸차게 부대끼는 이 땅, 이 터전, 이 사람, 이 나라와는 사뭇 동떨어진 타령이기 일쑤입니다. 둘째, 사람들 삶이 시를 읽기 어렵도록 팍팍하고 돈만 밝힌다. 돈바라기, 이름바라기, 힘바라기로 흐르는 이 사회는 다른 책도 제대로 안 읽힙니다만 시모음은 더더욱 안 읽힙니다. `그런 거(시모음)야, 한갓지게 놀고먹는 사람들이나 쓰고 읽는 거지' 하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을 다스리며 머리를 일깨우고 머리를 보듬는 책 가운데 맨 첫머리를 연다고 할 만한 시와 자꾸 멀어지는 사회 얼개입니다. 학교교육도 그렇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부모도 그래요. 부모가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누구나 시를 즐길 수 있어야 해요.
놀이동산 가자며
매달리는 아이
억지로 떼어놓고
특근하던 날
갑갑한 마음 통했던 걸까
박형이 가져온 소주 한 병
점심시간 동료들 불러모아
작업장 구석에 쪼그리고 마시는
깡소주 한 잔 꿀맛이다
낮술 한 잔에
붉다거리 빛깔 좋은데
관리자들 볼세라
속이 찌리찌리하다 〈특근하던 날〉
공장에서 일하는 정은호 님은 자기가 일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을 있는 그대로 시로 담아냅니다. 말을 너무 줄인 듯한 느낌도 들고(좀더 길게 써도 좋은데 너무 짧게 쓴), 말을 너무 늘인 듯한 느낌도 들어(좀더 짧게 쓰면 좋은데 몇 마디 늘어진) 몇 대목에서는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는 가운데 `시를 쓴 사람이 느끼고 바라보며 나누려는 마음'을 즐길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시를 쓴 사람 삶은 없이 책상머리에서 펜대로만 굴린 느낌과 생각은 썩 내키지 않아요. 괜히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읽기에도 팍팍하고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참으로 좋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작품마다 `아, 이 시는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지' 하는 느낌이 들어야 더 좋다고 믿습니다.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 시를 읽으며 나도 시를 내 삶을 시로 담고 싶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고 믿습니다. 정은호 님 시를 읽으면, `나도 시를 쓰고 싶구나.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도 느끼고 나도 시로 펼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