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걸어간 길
이충렬 지음 / 산처럼 / 2018년 5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9.
인문책시렁 361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이충렬
산처럼
2018.5.5.
우리는 누구를 아름답다거나 안 아름답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이라면 ‘아름아이’라 할 테고, 어른이라면 ‘아름어른’이라 할 테지요. 꽃이라면 ‘아름꽃’이요, 비라면 ‘아름비’일 테고요. ‘아름’은 ‘아름드리’로 엿보듯 “두 팔을 활짝 벌려서 넉넉하고 따스하게 안는” 결을 나타냅니다. 아무나 안지는 않되, 아무 거리낌도 스스럼도 없이 안는 ‘아름’입니다.
많이 팔거나 널리 팔기에 ‘아름책’이지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거나 팔리지 않았어도, 사랑으로 짓고 여밀 뿐 아니라 사랑을 들려주고 심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아름책’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도 이와 같아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권정생 할배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줄거리를 짭니다. 숱한 분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는데, 막상 권정생 할배는 이런 말을 꽤 거북하게 여겼습니다. 아니, 거북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정생 할배처럼 앓거나 아프지 않은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거든요. 권정생 할배처럼 걸어다니거나 시골버스를 타는 살림이 아닌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니까요. 권정생 할배처럼 손으로 천천히 글을 쓰되 언제나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 눈길·눈높이로 이야기를 여미려 하지 않는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니까 말이지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읽으면, “그즈음 창작과비평사에서는 권정생의 작품을 모아 단독 동화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168쪽)”고 적지만, 옳지 않습니다. 박정희 총칼나라가 서슬퍼런 한복판인 그즈음, 이오덕 님은 누구보다 어린이가 푸른꿈과 참사랑을 품도록 어린이책이 알차게 나와야 한다고 외쳤고, 창작과비평사에서 ‘아동문고’를 내놓기를 바란다면서 밑틀을 짜고 글님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창작과비평사는 시큰둥하고 심드렁했습니다. 자꾸자꾸 찾아가서 얘기하고 달랜 끝에 비로소 책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이러면서 이오덕 님이 권정생 님 동화책도 창비아동문고에 들어가도록 말을 넣고 ‘설득’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이오덕이 명예퇴직을 했다. 교사에서 시작해 교감, 교장까지 42년 인생을 바친 교직이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교육행정을 지나치게 간섭하자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오덕은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했고, 그때부터 아동문학 발전을 위한 활동과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246쪽)”고 적는데, 안 맞습니다. 이미 이오덕 님은 박정희·전두환 총칼나라에 걸쳐서 ‘민주화운동’을 온몸으로 했고, 이 몸짓을 못마땅하게 여긴 두 우두머리는 이오덕 님을 내내 못살게 굴었습니다. 1986년에는 전두환과 교육부가 아주 막바지로 괴롭혀서 ‘불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나 하나만 괴롭히면 견디겠지만, 우리 학교 모든 교사와 아이들을 괴롭히기에 내가 그만두는 길밖에 없구나” 하고 느끼면서 눈물로 떠나야 했습니다.
권정생을 말하려면 이오덕을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이오덕을 말하려면 권정생을 꼭 말해야 합니다. 둘은 따로 뗄 수 없이 한마음과 한사랑으로 한누리를 일구는 작은 시골지기로 살아가려는 마음지기였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권정생이 남긴 책과 글과 발자국’만 너무 좇으면서, ‘권정생하고 뗄 수 없는 마음지기 이오덕’을 너무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읽습니다.
권정생·이오덕 두 분은 결(성격)은 다르지만 씨(성품)는 같습니다. 다르면서 같기에 그토록 오랜 나날을 어울리고 얘기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을 따로 그리려 하더라도, 권정생 님은 ‘개구쟁이 권정생’으로 그려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이오덕 님은 ‘얌전한 이오덕’으로 그려야 알맞을 테고요. 개구쟁이하고 얌전이가 문득 만난 첫날부터 마음지기인 줄 알아보고서 오랜 길을 천천히 함께 거닐었다고 여겨야 알맞다고 느껴요.
이제 두 분 모두 떠나고 없는 마당이기에, 이승에 없는 두 분을 추켜세우는 일은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결과 마음씨와 삶결과 삶씨를 다시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도 여럿 낳아서 시끌벅적하게 뛰놀고 싶던 권정생이고, 멧숲에서 고즈넉히 멧새랑 동무하면서 고요히 숲살림을 품고 싶던 이오덕입니다. 둘 사이를 오롯이 사랑으로 바라보고 마주할 적에라야, 비로소 두 사람이 우리한테 남긴 글씨와 말씨와 빛씨를 찬찬히 읽을 만하지 않을까요?
ㅅㄴㄹ
그는 자신의 의사를 따라 준 동생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아플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에도 감사했다. 이제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지 않아도 되었다. (25쪽)
권정생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자신의 글을 동화라기보다 그냥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써 나갔다. (35쪽)
이오덕은 서슬 퍼런 시대에 전쟁을 반대하는 주제의 동화를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82쪽)
이오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입으며 집에 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원고지 한 권을 꺼내 여기에다 단편동화 한 편을 쓴 뒤 보내 달라고 말했다. 주머니에 있던 돈도 원고지 사는 데 보태라며 그에게 건넸다. 권정생은 펄쩍 뛰며 사양했지만 이오덕은 억지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권정생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려 했지만 이오덕이 한사코 못 나오게 했다. (108쪽)
7월 말, 이오덕은 서울에 갔다. 세종문화사 측에서는 8월 10일까지 책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약속을 너무 많이 어겨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빨리 좀 부탁한다는 말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오덕은 세종문화사에서 나와 권정생이 편지에다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고 했던 잡지사들을 방문했다. 깜빡 잊었다, 사무 처리가 잘못되었다며 그 자리에서 준 곳이 있는가 하면, 조만간 보내겠다는 곳도 있었다. 이오덕은 허탈했다. 그리고 3000원, 4000원짜리 소액환이 든 봉투가 언제 올까 매일매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을 권정생의 삶이 너무 측은했다. (127쪽)
+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충렬, 산처럼, 2018)
그의 작품에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담겨 있다
→ 그분 글에는 붓넋이 불타오른다
→ 그분은 북받치는 넋으로 글을 썼다
7쪽
배달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글을 쓴 문학청년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 나르는 일을 하면서도 힘껏 글을 쓴 글벌레 나날이 있다
→ 나름이로 일하면서도 바지런히 글을 쓴 푸른글꽃 무렵이 있다
8쪽
그날 밤부터 노숙露宿을 하면서
→ 그날 밤부터 길에서 자며
→ 그날 밤부터 이슬잠으로
28쪽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토종개뿐 아니라
→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마을개뿐 아니라
→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뿐 아니라
71쪽
방천防川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 둑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 물둑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71쪽
한 달 후면 과월호가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지난책이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묵은책이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예전책이 되어 묻히지만
73쪽
자신의 시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권정생에게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 노래로 들려주려는 뜻을 잘 읽은 권정생이 반가워 말을 이어갔다
→ 노래로 밝히려는 속내를 잘 짚은 권정생이 반가워 더 이야기했다
104쪽
가끔씩 보내 주는 돈으로
→ 가끔 보내 주는 돈으로
126쪽
책을 압수당한 적도 있다고 말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다
→ 책을 빼앗긴 적도 있다고 말하며 함께 울었다
→ 책을 빼앗긴 적도 있다고 말하며 아픔을 나누었다
144쪽
존재론적 슬픔 속에서 만난 인연
→ 타고난 슬픔으로 만난 끈
→ 처음부터 슬프게 만난 사이
150쪽
막상 이사를 오니 그리움보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그를 감쌌다
→ 막상 옮겨 오니 그립기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 막상 새터로 가니 그립기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150쪽
괴짜라고 한 말이 자신이 생각한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르다고 한 말이 저가 생각한 뜻과는 다른 줄 깨달았다
→ 뜬금없다고 한 말이 제 생각과는 다른 줄 깨달았다
156쪽
전통 문화가 파괴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 삶길이 망가진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 살림꽃이 무너진 꼴도 많이 봤습니다
167쪽
산상수훈 첫 번째 복음이 바로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 번째인 이유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멧숲말씀 첫째가 바로 ‘가난한 기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째인 까닭이 사람한테 가장 빛나는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멧빛말씀 첫째가 바로 ‘가난한 노래’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째인 까닭이 사람한테 가장 눈부신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17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29/pimg_705175124458597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