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1.16. 글살림



  어제는 내내 짙구름이라면, 밤새 조금씩 개면서 오늘 아침은 가볍게 물결구름이다. 파랗게 트는 하늘이 맑게 바뀐다. 논두렁을 거닐며 옆마을로 간다. 큰아이가 일찍 일어나서 배웅을 한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지는 하루일 테지만, 마음으로는 하나이다. 두 아이하고 곁님은 저마다 바라보고 바라는 그림을 속으로 띄우면서 나한테 띄운다. 나는 천천히 걷고 오가며 바깥일을 보는 길을 추슬러서 우리 보금숲으로 보낸다.


  똑같이 짜맞춘 잿집에 깃들기에 글결이나 말결이 똑같지 않다. 시골집에 깃들어 마당에서 일하기에 다 다르게 살림을 일구지 않는다. 서울에서 내내 살아도, 굉주나 부산이나 인천에 살아도, 구미나 나주나 청주에 살아도, 스스로 그리는 마음대로 이 하루가 흐르면서 말이 태어난다.


  싸우면서 미워하더니 어느새 서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안 나쁘지만 참 좁아서 서로 좇고 쫓는다. 사랑하며 그리면 시나브로 새싹이 트면서 눈과 귀와 마음을 열기에 이제부터 살림길로 접어든다.


  ‘좋은밥 좋은집 좋은일 좋은말’, 이렇게 따지니 좋은책을 찾아나서려 하거나 읽거나 알리는데, 좋은책이란 좁은책이다. 좋은책 많이 읽고서 좋은말 많이 하는 사람치고, 안 좁은 사람이 없더라. 너도 나도 좋은책과 좋은일과 좋은말이 아니라, 사랑말을 나누면서 살림길을 짓는 살림꾼으로 설 노릇이다.


  글살림이란 사랑살림일 적에 다 다르게 즐거이 빛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나 이웃한테 한국문학을 아예 읽지 말라고 한다. 겉치레와 허울로 꾸미는 문학은 굳이 읽지 말라고, 아이들하고 이웃들 스스로 오늘쓰기에 하루쓰기에 살림쓰기에 사랑쓰기를 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오늘과 하루와 살림과 사랑을 써서 서로 나누면 아름답다. 이렇게 내가 나를 쓰면, 아름책과 살림책과 사랑책과 숲책을 알아보게 마련이다.


  책을 읽기 앞서 열 해쯤 소꿉을 놀고 살림을 하면서 마음과 몸을 가꾸자. 글을 쓰기 앞서 새로 열 해쯤 숲을 품고서 풀꽃나무랑 속삭이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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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59 그만두다



  쉰 살에 이른 나한테 어느 분이 묻는다. “어릴 적에 어떻게 보내셨어요?” 나는 어린날을 늘 떠올리지만 늘 생각조차 않는다. 앞뒤 어긋난 말 같지만, 늘 두 가지를 나란히 한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모레는 늘 같기에, 오늘을 바라볼 적에 늘 모레가 나타나면서 어제가 피어난다. 어릴 적에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렸는지 바로 되새기면서, 오늘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리는지 곧장 생각하고, 이동안 모레에 무엇을 하며 놀거나 일하거나 꿈을 그리는지 어느새 눈앞에서 하나둘 본다. “저는 어린날에 늘 얻어맞으면서 살았어요. 막말(욕)도 오지게 들었어요. 어린날에 대여섯 해쯤 몹쓸짓(성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어린날에는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늘 감돌았어요. 날마다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하고 울지 않았어요. 모든 때, 그러니까 1분 1초 모든 때에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일 적마다 둘레에서 ‘그럼 내가 널 죽여 줄까?’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둘레에는 온갖 깨비(귀신)가 늘 도사려요. 우리가 스스로 엉큼하거나 어둡게 스스로 죽일 적에는 바로 이 깨비가 속삭이면서 홀리려고 하지요. 깨비가 나를 죽여 주겠다고 할 적마다 ‘아냐! 난 죽을 수 없어! 난 죽지 않겠어!’ 하고 외쳤고, 이때마다 깨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또는 차가운 낯빛으로 사라졌어요. 워낙 날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얻어맞고 막말에 시달리는 나날이었는데, 열다섯 살에 이르러 드디어 이런 굴레를 스스로 떨치는데, 열다섯 살까지 굴레살이를 하면서도 ‘굴레’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집 안팎에서 저를 모질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 적마다 ‘내 몸은 내가 아니야. 내 몸은 내가 입은 그릇이야. 그런데 너희가 이 그릇을 아무리 들볶고 괴롭히고 장난을 치더라도 그릇은 다치지 않아. 너희는 껍데기를 만지작거릴 뿐이거든.’ 하고 여기면서 지나갔어요. 견디지 않았습니다. 버티거나 참지 않았어요. 어린날에는 ‘유체이탈’이란 말을 몰랐는데요, 어린날에 시달리고 들볶이는 동안 ‘몸벗기(유체이탈)’를 했어요. 날마다 뻔질나게 했습니다. 얻어맞거나 막말을 듣거나 몹쓸짓에 시달릴 적마다, 제 넋은 몸을 벗어났어요. 저를 괴롭히는 이들 머리 위로 붕 떠올랐어요. 그들은 제 넋이 몸에서 나와 하늘에 붕 뜬 줄 하나도 모르더군요. 저는 하늘에 뜬 채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곰곰이 지켜보았어요. 제가 아무리 맞아도 그닥 대꾸도 없으니, 또 멀쩡하게 웃고 뛰놀면서 사라지니, 이튿날에도 또 괴롭히기 일쑤이지만, 언제나 몸벗기를 하면서 어린날을 보냈어요. 저는 어린날에 책을 조금 읽기는 했지만, 책을 읽을 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집안일을 돕고 심부름을 하고,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에서 쏟아붓는 무시무시한 짐더미(숙제폭탄)를 붙잡고 울었어요. 밤새워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짐더미를 쏟아붓고는, 짐더미를 다 못 했다면서 길잡이(교사)란 놈들이 몽둥이에 따귀에 발길질을 일삼았답니다. 제 어린날은 이렇습니다.” 겉몸을 휘젓거나 괴롭히는 이들은 아마 사랑받은 일이 없다고 여기리라 본다. 그들한테는 떡 하나를 더 주어야 옳다고 느낀다. 예부터 미운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 말은, 사랑받지 못 한 이웃과 아이가 “넌 늘 사랑받는 삶이요 숨결이란다” 같은 이야기를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배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조그마한 손길을 나타낸다고 본다. 미운아이를 손가락질하거나 때리거나 굶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 싸움(전쟁)이다. 싸움은 나쁘지 않지만, 싸움만 일삼거나 싸움으로만 치닫는다면, 그들뿐 아니라 우리부터 사랑을 잊고 잃는다. 아마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참답게 배우고 슬기롭게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씨앗을 품으려고 ‘어린날’을 보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죽고 싶다’는 마음을 그만두자마자 오직 꿈으로 걸어가는 밤길을 보았고, 밤이란 어두운 때가 아닌, 밤이란 별빛으로 밝고 아름다운 사랑길인 줄 알아차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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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4 처마 2024.9.14.



  처마가 없는 집이 부쩍 늘었기에 ‘처마’라는 말소리를 들은 바 없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골목집이나 시골집에서 지낸 적이 없으면 더더구나 ‘처마’를 알 길이 없다. ‘초리’처럼 지붕 끝이 살며시 나온 곳인 처마요, 집을 이루는 곳에서 처음인 길로 여길 처마이다. 처마에 붙여서 ‘처마종’이다. 처마종은 바람이 불면 살살 춤을 추면서 소리를 낸다. 처마에 붙인 작은 쇠라서 ‘처마쇠’이고, 꽃이나 새나 물고기 모습으로 꾸며서 ‘처마꽃·처마새·처마물고기’이다. 처마끝에서 모이며 떨어지는 물이니 ‘처맛물’이다. 처마를 모르는 탓에 ‘낙숫물(落水-)’ 같은 겹말을 잘못 쓰는 분이 제법 있다. 한자말 ‘낙수 = 떨물·떨어지는 물’이기에, ‘낙수 + 물’처럼 쓸 수 없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처마에 부딪히고 모이면서 떨어진다. 처마 밑에 서면 비를 긋는다. 제비는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다. 참새는 아예 처마 둘레에 구멍을 내어 서까래에 둥지를 엮곤 한다. 이제는 굳이 한집(한겨레집)을 지어서 살아야 하지 않으니, 처마가 없는 집에서 살며 처마를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처마를 조금 내기에 집채가 아늑하다. 처마가 빗물을 튕겨 주기에 집채가 고스란하다. 큰고장에 가득한 ‘아파트·빌라’에는 처마가 아예 없다시피 하기에 바깥담은 늘 눈비에 닳고 햇볕에 삭는다. 집에 처마를 놓으면서 오래오래 건사하는 셈이다. 집에 처마가 있기에 누구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거나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볍게 쉴 만하다. 처마가 있으니 작은새도 깃들어 노래를 베푼다. 살림자리에서 쓰는 이름 하나가 사라질 뿐일까? 살림을 하는 뜻이 나란히 잊히면서 살림 한켠이 사르르 닳거나 삭아서 사라지는 셈이지 않을까? 처마를 낸 오랜 골목집이나 시골집은 두온해(200년)도 닷온해(500년)도 너끈하지만, 다른 집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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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3 이름 2024.9.16.



  우리한테는 ‘이름’이 있지만, 곳곳에서 ‘성명(姓名)’처럼 한자를 쓰라고 밀었다. “여기에 손으로 사인(sign)을 하세요”나 “이곳에 수기(手記)로 서명(署名)하세요” 같은 겹말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인·서명’은 ‘이름’을 가리키면서 ‘손으로·스스로’ 하는 몸짓을 담는다. ‘수기 = 손으로 적다’요, ‘서명 = 이름을 적다’이다. 곰곰이 짚자면 처음부터 ‘이름’이라는 낱말과 ‘손으로·스스로’라는 낱말을 쓰면 된다. 우리말로 쉽게 쓴다면 겹말로 잘못 쓸 일이 없고, 어린이부터 알아들을 만하다. 이름을 ‘이름’이라 하지 않다 보니, ‘딴이름·다른이름’을 한자로 ‘별명(別名)’처럼 엮는다. 글을 쓸 적에 붙이는 이름인 ‘글이름·붓이름’을 굳이 한자로 ‘필명(筆名)’처럼 여민다. 이리하여 오늘날처럼 누리집이 새로 뻗는 곳에서는 영어를 끌어들여 ‘아이디(ID)·닉네임(nickname)’을 쓰거나 다른 한자말 ‘계정(計定)’을 쓰기까지 한다. 옛사람은 ‘덧이름’을 ‘호(號)’처럼 한자로 적어야 멋스럽다고 여겼다. 멋스럽게 부르고 싶다면 ‘멋이름’이라 하면 될 텐데, 그만 ‘예명(藝名)’처럼 한자말로 해야 멋지다고 여기기도 한다. 서로 이르는(이야기하는) 소리이기에 ‘이름’이다. 서로 마음으로 이르려고(다가서려고) 하기에 ‘이름’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새롭게 일어난다. 이름을 들려주고 듣는 사이에 뜻을 잇는다. 이름이란 바로 ‘나’이고 ‘너’이다. 이름을 알아가는 동안 이곳에 있는 너랑 나는 새삼스레 어울리면서 한빛을 이룬다. 우리가 쓰는 이름에는 이제부터 일구려는 길이 깃든다. 지난날 임금은 사람들을 다 다른 이름이 아닌 ‘백성(百姓)’ 같은 한자말로 뭉뚱그렸다. 오늘날은 ‘국민(國民)·민중(民衆)·대중(大衆)’으로 뭉뚱그리는데, 우리 이름을 찾아야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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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찰칵이 숨지다 (2023.9.15.)

― 인천 〈모갈1호〉



  찰칵이는 불쑥 숨을 거둡니다. 얼핏설핏 어긋나려나 싶으면 몇날쯤 버티다가 까무룩 잠들어요. 1998년부터 찰칵길을 걸었으니 여태 숱한 찰칵이를 떠나보냈습니다. 누가 훔치기도 했고, 더는 일할 수 없다며 멈추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숨을 거두니 아찔합니다. 책집으로 마실을 왔는데 책집에서 찍지 못 한다면 멀리 길을 나선 보람이 없어요.


  그렇지만 1998년까지는 찰칵 안 찍었다는 뜻입니다. 1998년 무렵까지는 오직 글로만 책집마실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글로 모자라다 싶으면 손으로 길그림을 여미었어요. 찰칵 안 찍어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이 글로 적으면 넉넉하리라 여겼습니다.


  책집을 빛꽃으로 옮기자는 마음은 1998년 가을에 싹틉니다. 찰칵이를 거느린 분치고 책집을 책집답게 옮기거나 담거나 그리는 사람을 못 봤어요. 얼마나 책을 안 읽거나 미워하면 책집을 이처럼 엉터리로 엉성하게 마구 찍나 싶었습니다.


  책집마실을 글로 쓰려는 마음도 매한가지입니다. 숱한 글꾼이 막상 온나라 여러 마을책집에서 고맙게 책을 만나면서도 정작 책집노래라 일컬을 만한 글을 아무도 안 쓴다고 느꼈어요.


  글바치가 책집 이야기를 글로 쓸 일이 없으리라 느껴서 스스로 쓰기로 합니다. 빛꽃바치가 책집 살림결을 찰칵 찍을 일이 없구나 싶어서 스스로 찍기로 합니다. 남이 해주기를 바랄 수 없어요. 바라는 사람이 스스로 할 일입니다.


  남이 해주지 않습니다.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이 나라를 아름답게 돌보지 않습니다. 바로 네가 돌보고 내가 보살펴요. 조촐히 보금자리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 스스로 온누리를 사랑하고 푸른별을 살피면서 들숲바다를 토닥입니다.


  주섬주섬 책을 살피다가 기운이 살짝 빠집니다. 눈으로만 담자고 생각하면서도 찰칵찰칵할 수 없다는 마음에 책을 더 들여다보지 못 하고 맙니다.


  이제 이러면 안 되겠다고, 찰칵이를 미리 여럿 장만해 놓고서 그때그때 갈마들면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살림돈이 모자라더라도 미리 장만해 놓을 노릇입니다. 찍어야 할 적에 찍지 못 한다면, 모두 걸리거나 막히니까요.


  인천 배다리 〈모갈1호〉 책시렁에 쪼그려앉아서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갑작스레 숨이 멎는 찰칵이는 제가 얼른 바로세울 매무새 하나를 따끔하게 가르치는 셈이라고 봅니다. 지난겨울에 셈틀이 멎은 일로도 못 배웠느냐고 나무라는 셈입니다. 기지개를 켜고, 등허리를 폅니다. 다시 일어서서 걷습니다.


ㅅㄴㄹ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오세영, 문학사상사, 1982.12.27.첫/1984.6.30.중판)

《풀빛시선 1 黃土》(김지하, 풀빛, 1970.12.10.첫/1984.7.15.재판)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최승호, 세계사, 1993.3.15.)

《불가사의한 새 펭귄》(존 스파크스·토니 소파/김재후 옮김, 한길사, 199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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