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30. 근사하게 보이더라도
《어린이 시 지도》라는 책을 놓고도 틀림없이 예전에 느낌글을 썼을 테지만, 워낙 까마득한 때라서 글을 찾아내기는 어려워서, 새로 한 꼭지를 쓰려고 합니다. 자리맡에 놓고서 새삼스레 들추는 터라 바로 긁어서 띄웁니다.
이래저래 본다면, ‘오늘 이럭저럭 넉넉히 지내는 분’은 ‘여러모로 그럴듯(근사)해 보이는 모습’으로 여러 배움자리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도 배움자리에 나오기까지 하루하루 뒹굴며 일한 발걸음이 있어요. 뒹굴며 일한 발걸음이 없더라도 배움자리에 나와서 새롭게 듣고 조금씩 담벼락을 허물 수 있고요.
가난자리에 있는 분은 배움자리에 나설 틈이 없다시피 하지만, 제가 여태까지 가난자리에 깃들며 살아오며 돌아보노라니, 가난자리는 늘 살림자리이면서 배움자리라서, 굳이 따로 배우러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가멸자리(부유층·중산층)에 있는 분도 가멸자리가 언제나 새롭게 배움자리일 텐데, 가멸자리를 배움자리로 느끼거나 여기거나 받아들이지 못 하는 나머지, 따로 배움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여겨요. 그리고 가멸자리에 있는 분이 배움자리에 나오기 때문에 ‘새책집’이 돌아가고 ‘헌책집’이 굴러갑니다. 가멸자리에 있는 분이 ‘제법 비싼책’을 덥석덥석 사주기 때문에, 이렇게 사준 책을 나중에 가볍게 내놓기 때문에, ‘제법 비싸면서 값진 책’이 헌책집을 거쳐서 숱한 사람들 손을 돌고돌 수 있어요. 그리고 가난자리 사람들은 ‘제법 비싸면서 값진 책’을 건사하더라도 배고픈 나머지 이 책을 팔아야 하기 일쑤이고, 이렇게 되파는 ‘제법 비싸면서 값진 책’은 또다른 ‘가난자리 글벌레 손바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늘 걸어다닙니다만, 쇳덩이(자동차)를 모는 분을 미워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는 쇳덩이를 장만할 밑돈이 없고, 쇳덩이를 굴릴 기름값이나 달삯(보험료 및 세금)이 없기도 하지만, 나중에 밑돈과 기름값을 넉넉히 벌더라도 구태여 쇳덩이를 몰 마음이 아예 없습니다. 걸어다녀야 길에서 걸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걸어다니다가 시골버스와 시외버스를 기다리기에 이동안 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과 글뿐 아니라 바람과 구름을 읽으며 새와 별과 비를 바라보고 받아들입니다.
저한테 돈이 넉넉해서 쇳덩이를 몬다면, 저는 아마 책도 글도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돈도 제법 있는 가멸자리 여러 이웃님이 애써서 배움자리로 나오려 한다면, 기꺼이 맞이하고 반기면서 어깨동무할 새길도 헤아릴 만하다고 느껴요. 가난자리 이웃이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이 하나 있고, 가난자리와 가멸자리 이웃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길이 둘 있어요. 우리는 두 길을 함께 바라보고 나아갈 적에 비로소 ‘사랑’을 찾고 깨닫는다고 느낍니다. 어느 한켠에만 머물 적에는 그만 ‘고인물·고인마음’으로 치달으면서 꼬장꼬장한 꼰대로 곤두박을 친다고도 느낍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가멸자리이든 가난자리이든 똑같이 안 읽습니다. 책이 없이도 배우는 사람은, 가난자리이든 가멸자리이든 늘 새롭게 배웁니다. 어느 가난자리 아이들은 어버이가 참하고 착하더라도 구렁텅이에 빠지고, 어느 가멸자리 아이들은 어버이가 엉터리에 엉망진창이더라도 아름길로 들어서요. 거꾸로 어느 가난자리 아이들은 어버이가 엉성하고 모자라더라도 아름길을 새롭게 열고, 어느 가멸자리 아이들은 어버이가 참하고 착하더라도 진구렁에서 허덕입니다.
저는 안철수 씨나 트럼프 씨를 믿지(지지하지) 않습니다만, 두 사람은 눈여겨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곁님과 아이들이 보이거든요. 안철수 씨는 이녁 곁님하고 함께 딸아이를 아름답고 참하고 사랑스레 돌보았다고 느낍니다. 트럼프 씨는 이녁 곁님하고 함께 숱한 딸아들을 아름답고 참하고 사랑스레 보살폈다고 느껴요. 벼슬(정치)을 하는 사람 가운데 안철수 씨하고 트럼프 씨처럼 딸아들하고 오순도순 지내면서 함께 이야기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바꾸거나 고치는 이는 거의 없거나 찾아보기 드물다고 느낍니다. 안철수·트럼프가 어떤 길을 가든, 두 사람이 아이들과 곁님하고 어떻게 어울리면서 이녁 보금자리부터 돌보고 사랑으로 짓는지 눈여겨보고서 배울 대목이 있다고 느껴요. 이들은 처음부터 돈있는 집이 아니었는데, 둘은 저마다 다르게 엄청나다 싶은 돈을 손에 쥐기도 했는데, 돈이 없던 때와 돈이 있던 때가 그리 안 다르다고 느낍니다.
모쪼록 느긋느긋 바라보고 오늘 하루를 배우는 걸음길이시기를 바라요. 우리는 늘 새롭게 사랑을 배우려고 이 별에 태어났거든요. 우리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그저 ‘온님’으로 서로 어울리려고 이 별에서 삶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착한 사람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닌 착한길입니다. 참한 사람은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아닌 참날개입니다. 사랑을 짓는 사람은 왼켠도 오른켠도 아닌 사랑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는 너무 큰 대목은 바로 사랑이라고 느껴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왼오른손을 나란히 쓰면서 빚고 짓고 가꾸고 일구기에 사랑입니다. 왼오른발을 나란히 디디면서 걷고 달리고 뛰어야 비로소 ‘달리기’를 비롯한 모든 몸짓(운동)을 사랑으로 이룹니다. 그래서 모든 ‘래디컬’은 ‘주먹(폭력)’으로 기울더군요.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왼놈이건 오른놈이건 서로 미워하며 주먹싸움만 부추기고 붙인다고 느낍니다.
이오덕·권정생 님뿐 아니라 송건호·리영희 님도, 이소선·마더 존스 님도 왼오른이 아닌 ‘아름길’과 ‘사랑길’만 바라보려고 하는 매무새로 이 터를 갈아엎고 갈고닦으려고 했다고 느껴요. 한쪽만 보면서 붙들 적에는 절름발이(파행·레임덕)가 될 테지요. 절름발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절뚝이는 다리에 마음을 빼앗기느라, 막상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별소리도 빗소리도 바닷소리도 숲소리도 다 못 듣고 만다는 뜻입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