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23. 결리는 쓰기



  한 달쯤 잇몸살을 앓고서 잇몸이 새삼스레 튼튼히 바뀐 줄 느낀다. 다른 몸살이 지나갈 적에도 어느새 몸갈이를 마치고서 새길로 접어든다고 느낀다. 자주 앓기에 자주 갈아치운다. 다시 앓으며 다시 갈아입는다. 왜 또 갈아야 하는가 하고 돌아보면, 그만큼 헌몸에서 찌꺼기를 내보내고서 스스로 지을 꿈을 바라보는 길을 걷고 싶은 눈빛이 만나더라.


  아프거나 앓을 적에는 돌봄집(병원·약국)이 아닌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물과 밥을 다 끊고서 드러누울 일이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포근손을 느끼고 누리기에 헌몸을 새몸으로 바꾸게 마련이다. 앓아야 몸을 팔팔 끓여서 때를 벗는다. 애벌레도 풀벌레도 새도 짐승도 다 같다. 풀꽃나무도 같다. 먼저 끓이고, 이윽고 삶는다. 기저귀는 삶아야 똥오줌이나 핏물이 말끔히 빠진다. 모든 숨붙이도 끓이고 삶고서 좍좍 땀을 짜내고서 해바람에 팔랑팔랑 말리기에 말끔히 일어선다.


  “해를 막는 터전(학교·병원·마트)”은 우리 몸을 죽이고 마음도 어느새 죽인다. “해를 닫아건 자리(지하상가·지하철·지하집)”도 우리 몸마음을 갉는다. 그런데 우리는 해를 등진다. 게다가 쇳덩이를 몰고(자가운전)과 까만눈(선글라스)까지 하며 더더욱 스스로 갉는다.


  해바람에 가볍게 맨살을 드러내며 걷는 사람은 스스로 튼튼하다. 걷기는 하되 온몸을 둘둘 감싸는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 괴롭히는 셈이다. 모든 돌봄집(병원·약국)은 ‘씻기(완치)’가 아닌 ‘낮추기(완화 및 지속)’을 노리고서 길들인다. 종이(졸업장)를 땄는데 종이(자격증)을 또 따려고 하면서 삶을 헤프게 내버린다. 이제 요리학원은 그만 다니고 집에서 밥차림에 나설 때이지 않은가. ‘대화법’은 안 배워도 된다. 스스로 이웃하고 말을 섞으며 그때그때 다른 말결을 느끼고 익히면 된다. 이야기를 해야 마음을 이으면서 말빛을 가꾼다. 아이를 돌보려면 아이를 낳으면 된다. 육아책을 만 자락쯤 읽는들 하나도 이바지하지 않는다.


  글은 “우리 삶을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몸으로 느껴서 우리 손으로 쓰기”이다. ‘글쓰기길(문장작법)’은 아예 없다. “배운 대로 안 쓰면 되는 글쓰기”이다. “살아왔고 살아가는 대로 쓰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글쓰기”를 누구나 스스로 이룬다.


  그만 배우고서 쓰자. 아니, 삶을 날마다 배우고 익히면서 쓰자. 책으로는 그만 배우고, 강의·수업은 몽땅 걷어치우자, 모임을 꾸려서 우리 삶을 함께 이야기하다가 문득 을고 웃으면서 쓰자. “온누리 모든 글쓰기 강좌와 책”이 뻥(대국민시기극)인 줄 알아채는 이웃님이 늘기를 빈다.


  남이 예쁘게 보아주기를 바라는 글은 다 눈속임이다. 내가 나를 오직 사랑눈으로 바라보며 쓰는 글만 사랑이기에 아름답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