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 나한테 찾아오는 사진


  내가 사진으로 찍을 모습은 늘 나한테 찾아옵니다. 내가 찍지 않을 모습은 나한테 찾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사진기를 곁에 둡니다. 곁에 사진기가 있어야 나한테 찾아오는 모습을 바로 그때에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진기가 오늘 이곳에 없어도 돼요. 왜냐하면 나는 사진기라는 기계로 옮기기 앞서 내 두 눈을 거쳐 마음자리에 먼저 담거든요.

  나는 늘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찍고 나면, 내가 찍은 모습은 가볍게 사뿐사뿐 보드라이 흘러서 지나갑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사진을 한 장 더 찍으며, 이 모습은 곧 조용히 지나가며, 이윽고 조용히 지나갑니다.

  굳이 이것저것 다 찍으려 하지 않아도 돼요. 애써 수없이 찍어야 하지 않아요. 천천히 기다립니다. 오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넉넉히 느낄 수 있으면 사진이 태어납니다. 오늘 한 장, 이튿날 두 장, 다음날 석 장을 찍습니다. 4347.5.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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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별꽃 뜯기


  쇠별꽃을 뜯는다. 여러 날 바깥밥을 먹어야 하면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도록 풀을 찾아 뜯는다. 풀은 스스로 양념을 하지 않는다. 풀 먹는 짐승은 풀에 소금을 치거나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는다. 사람도 풀을 풀 그대로 먹을 적에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빛을 받아들인다.

  버무리거나 볶거나 데쳐도 맛나다고 본다. 그리고 날풀을 날풀대로 먹거나 들풀을 들풀대로 먹거나 멧풀을 멧풀대로 먹으면서 바람과 햇볕과 빗물과 흙하고 지구별 이야기를 골고루 먹는다. 아이들한테 쇠별꽃을 준다. 아이들은 쇠별꽃 먹으며 쇠별꽃이 된다. 이웃한테 쇠별꽃을 내민다. 서로 뫼별꽃이 된다. 4347.5.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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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가랑잎을 주우면
갓 진 잎은 짙푸르고
예전에 진 잎은 누렇고
오래된 잎은 까맣게 바스라져
날마다
새 빛이 되는 모습을
두 눈에 고스란히
담습니다.


4347.5.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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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힘이란


  살아가는 힘이란 무엇일까. 갓난쟁이가 있으면 이 아이를 보며 웃고 울며 기운이 난다. 살붙이나 곁님이 있으면 이들을 보며 새로 기운이 난다. 이 힘은 무엇일까. 이 힘은 어디에서 샘솟을까. 뜻이 맞고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이웃과 있으니 저녁이 무척 재미있다. 소쩍새 노래를 듣는다. 미리내까지 보면 더없이 예쁠 텐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미리내는 고흥과 몇 군데 시골서만 보기로 하자. 어여쁜 사람이 나누어 주는 기운을 먹고, 나도 내 기운을 주자. 4347.5.30.쇠.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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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돌이 마음


  네 식구가 함께 강화섬에 왔습니다. 어느덧 네 해째 네 식구 마실을 맞이합니다. 작은아이는 시골서 태어났고, 작은아이는 늘 시골서 나들이를 나옵니다. 큰아이는 네 살이 되는 해에 시골로 보금지리로 옮겼는데 이를 떠올릴까요.

  도시와 가까운 시골이어도 도시마실은 어디나 멉니다. 먼 만큼 힘과 품과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도 반가운 살붙이와 이웃을 만나려고 씩씩하게 다니지요. 엊그제에 온 강화섬도 시골입니다. 시골이기에 별을 보고 개구리 노래와 멧새 노래가 하루 내내 휘감아요.

  바람을 마시며 눈을 살며시 감아요. 물을 마시며 곰곰이 혀끝에 물을 머금어요. 깜깜하게 어둠이 드리우고, 큰아이부터 잠듭니다. 고요합니다. 삼십 분쯤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시골 밤노래를 가득 마십니다. 나는 시골돌이입니다. 4347.5.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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