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 라디오에서 만나보기를 했습니다.

오는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아침 여덟 시에 나올 듯합니다.

저는 듣지 못하지만,

들을 수 있는 분들은 즐겁게 들어 주셔요~


http://www.ifm.kr/program/book/

토요일 아침에 못 들어도

다시듣기를 할 수 있나 봐요.

FM 90.7 인 듯합니다~


미리 쓴 대답인데

녹음할 적에는

이 대답과 많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


라디오 책방

― 일흔여덟 번째 :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 거리



녹음 :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14시

방송 :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08시


진   행 : 이영철 보도국장 / PD : 김유리 / 작가 : 김유리, 황지선

출연자 :  최종규 저자 

질문내용 : (사전 질문 내용은 방송 흐름과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영철] 먼저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어떤 책인지 청취자 분들에게 소개를 해 주시죠.  

[최종규] 책이름처럼 ‘책’과 ‘빛’과 ‘숲’이라고 할 수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과 빛과 숲은 서로 다른 낱말이라고 여길 만하면서 서로 같은 낱말입니다. 책이기에 빛이고, 빛이기에 숲이며, 숲이기에 책이에요. 헌책방 한 곳이 있어서 마을에 푸른 숨결이 흐르고, 헌책방 한 곳 두 곳 모여서 거리나 골목을 이루면, 이곳은 고장이나 고을, 이를테면 도시를 살리는 숲이요 빛이면서 책이 된다는 이야기를 담는다고 할 수 있어요.




[이영철] 책을 쓰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소중한 추억을 독자들과 공유해야겠다 결심한 계기라든지)

[최종규] 헌책방이라는 곳에 처음 눈을 뜨던 열여덟 살에 생각했어요. 내가 즐기는 이 책처럼 나도 앞으로 어떤 책을 하나 써서 내 이웃들과 나눌 때가 온다면, 어느 책보다 ‘헌책방’을 말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헌책방 가운데 나한테 처음으로 다가온 ‘아벨서점’을 이야기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열여덟 살에는 어렴풋하게 꿈처럼 생각씨앗을 심었고, 헌책방 단골로 다섯 해를 지나고 열 해를 지나면서 이러한 생각이 솔솔 피어나서 뭉게구름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헌책방 〈아벨서점〉 단골로 스물세 해가 된 올해에 이 책은 소나기처럼 제 고향마을에 선물처럼 내놓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영철] ‘책빛숲’ 이라는 책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건가요? 

[최종규] ‘헌책방’이라는 곳은 그저 헌책방이에요. 그런데, 헌책방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거나 느끼지 못하는 분이 생각보다 참 많아요. 저로서는 아주 많이 놀랐어요. 왜 헌책방을 헌책방으로 바라보지 못할까요? 왜 책을 책으로 바라보지 못할까요? 오늘 나온 책도 오늘 누군가 읽고 나서 헌책방에 내놓으면 바로 ‘헌책’이 돼요. 지난해에 나온 책도 아직 아무도 안 읽었으면 ‘새책’이에요. 스무 해 앞서 나온 책도 오늘 내가 읽기 앞서까지는 그냥 ‘새책’이에요. 내가 읽고 나면 모든 책은 ‘헌책’이 되고, 새책이 헌책으로 겉모습을 바꾸면서 비로소 ‘책’으로 거듭나요. 책으로 거듭난 이야기는 우리 삶을 살찌우는 빛을 담지요. 그리고, 이 빛이란, 삶을 살찌우는 빛이란, 지구별을 푸르게 이루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나누어 주는 나무가 우거진 숲과 같아요. 그러니, 책과 빛과 숲은 한 낱말이면서 다른 낱말이고, 헌책방을 밝히는 세 가지 낱말인 셈이에요.




[이영철] 처음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방문하게 된 것은 언제였습니까? 당시 얘기를 들려주세요.

[최종규] 열여덟 살인 고등학교 2학년에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눈을 떴어요. 그렇지만, 그곳을 처음 간 때는 여덟아홉 살 무렵이지 싶어요. 다만, 어릴 적에는 동무들하고 놀던 놀이터 가운데 하나로 여겼을 테고, 제대로 책을 알아보는 헌책방거리로 찾아간 때는 열여덟 살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1994년 대입시험부터 연합고사가 사라지고 본고사와 수능시험이 처음 생기면서, 저는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독일말로 제2외국어 본고사를 치러야 하는 딱 둘’뿐인 학생이었어요. 그 고등학교에서는 딱 둘만 치를 본고사 시험 과목을 가르칠 수 없다면서, 정규과목에 있는 독일말 수업을 아예 안 했어요.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입시지옥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할 만한데, 그 때문에 독일말을 배우려고 인천 주안에 있는 한샘학원을 다녀야 했고, 학원에서 독일말을 배울 적에 쓸 교재를 찾으려고 〈아벨서점〉 문을 두드렸어요.




[이영철] 열여덟 살부터 이십년이 넘게 헌책방 거리를 드나드셨어요. 아무래도 무언가 좋았으니까 그렇게 오랜 기간을 함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배다리 헌책방을 드나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최종규] 저는 국민학생 적에는 하루 내내 놀았어요.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놀았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1학년 때부터 밤 열 시까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시키며 입시수험생으로 만들어요. 고등학교에서는 밤 열한 시까지 이렇게 돌아야 했어요. 그때에는 학교에 도서관이란 곳이 없었고, 교과서와 참고서 아니면 ‘책’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교과서와 참고서는 책이 아니고 교과서와 참고서잖아요? 저는 참다운 ‘책’을 읽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책에 배고픈 제 마음을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그득 채워 주었어요. 고3 수험생이던 때에도 주마다 두 차례씩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몰래 빠져나와서 헌책방거리가 문을 닫을 때까지, 짧으면 너덧 시간 길면 여덟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 않고 오직 책만 읽었어요. 헌책방에서는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고, 여덟 시간 동안 책만 읽어도 나무라지 않아요. 저는 헌책방에서 읽은 책을 늘 셈을 해서 장만했어요. 즐겁게 읽은 책이니 다시 읽으려고요. 공공도서관에서조차 느긋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환경이었지만, 헌책방은 더없이 아름다운 책쉼터였다고 느꼈어요.




[이영철] 그동안 책방을 운영해 온 분들도 잘 아시겠어요. 요즘은 워낙 작은 서점을 찾아보기 힘드니.. 어떤 사람들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을까? 궁금해 할 청취자 여러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 남는 분이나 청취자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종규] 처음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를 헤아릴 적에, 헌책방처럼 책이 책대로 드리우면서 아름답게 흐르는 터전은 없다고 느꼈어요. 요즈음은 예쁜 북카페가 곳곳에 생기는데, 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북카페는 거의 없었다 할 만해요. 헌책방은 예전부터 요즈음까지도 ‘북카페’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 헌책방이든, 커피 한 잔쯤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거든요. 머그잔이나 클래식 노래가 흐르지는 않지만, 종이잔에 담은 1회용 커피를 홀짝이면서 책을 누리는 아주 재미난 곳이었어요. 북카페가 달리 북카페가 아닐 테니까요. 《책빛숲》에서 다루는 〈아벨서점〉이라든지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모두 자그마한 책방이에요. 교보문고라든지 영풍문고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주 작아요. 그런데, 책방은 크기로 따질 수 없어요. 어떤 책을 품느냐로 따져요. 크기가 작고, 몇 만 권에 이르는 책만 건사한 헌책방이라 하더라도, 몇 시간 동안 책누리를 즐길 수 있다면, 이곳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빛을 만날 수 있어요. 어느 헌책방이든 다 좋아요. 작든 크든 좋아요. 알려진 곳이든 안 알려진 곳이든 좋아요. 늘 가까이 두면서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우리한테 아름다운 책을 베풀어 줍니다.




[이영철] 저자께서 국어사전을 만드는데 배다리의 헌책방에서 나눈 이야기, 추억 들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책에 실린 관련 에피소드를 몇 가지 들려주신다면?

[최종규] 저는 처음부터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통역과 번역 일을 하고 싶어서, 한국외대에 들어가서 네덜란드말을 배우려 했어요. 그런데 1994년 그무렵에는 학과에 네덜란드말 사전조차 제대로 없고, 교재도 복사한 책이었어요. 외국말을 익힐 적에 사전이 없으니 참 아리송했는데, 여러 헌책방을 살펴서 네덜란드말 사전을 세 권 찾아냈고, 네덜란드에서 나온 문학책과 동화책도 여러 권 만났어요. 외국말을 익힐 적에는 외국말뿐 아니라 한국말도 함께 익혀야 해요. 외국말을 한국말로 제대로 옮겨야 하니까요. 그래서, 외국말을 배우면서 한국말도 제대로 새롭게 익히려고 여러 대학교 국문과에서 쓰는 교재와 책을 모두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었고, 이렇게 읽다가 ‘한국말 공부가 참 재미있네.’ 하고 느꼈어요. 이러다 보니 한국말과 얽힌 책과 사전을 자꾸 찾아서 읽는 삶이 되었고, 대학교에서는 도무지 빛이나 꿈이 안 보이는구나 싶어 그만두고 나니, 저한테 남은 것은 ‘외국말 공부’가 아니라 ‘한국말 공부’였어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헌책방은 제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넌지시 밝혀서 시나브로 알려주는 밑돌 구실을 했구나 싶어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얽힌 이야기 가운데에는, 오늘도 그곳을 씩씩하게 지키는 〈삼성서림〉 할배 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고 2∼3이던 때에 자꾸 저한테 술을 먹으라고 술잔을 내미셔요. 그때 제 둘레 동무들은 다 술을 마셨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어요. 헌책방 한쪽에서 양주동 님이 쓴 《고가연구》를 찾아서 읽으면서 한손으로는 손사래를 쳤어요. 나중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참 뒤에 〈삼성서림〉 할배가 건넨 술잔을 받았습니다.




[이영철] 현재 배다리 책방거리는 어떻습니까? 예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최종규] 지난 2006년 겨울에 배다리에 크나큰 일이 터졌어요. 이른바 ‘배다리 산업도로 사건’이에요. 인천시에서 배다리를 가로지르는 너비 7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왕복 16차선으로 뚫으려고 했어요. 참 무서운 개발 계획인데요, 배다리에 산업도로를 놓으면서 그 마을을 통째로 들어내어 한쪽은 아파트 다른 한쪽은 쇼핑센터로 만들려고 했대요. 2020년 인천 재개발계획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천시는 이러한 내막을 숨기고 몰래 밑공사를 했고, 송현동 주공아파트 밑에 작은 터널 두 곳을 20억을 들여 몰래 파기까지 했어요. 배다리는 헌책방이 줄어들면서 어려웠다기보다, 이런 갑작스럽고 끔찍한 막개발 때문에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을 맞닥뜨린 뒤 똘똘 뭉쳐서 다섯 해를 싸운 끝에 ‘배다리 산업도로 백지화’를 얻었고, 이제 2014년 ‘세계 책의 해’에서 인천이 주빈국이 된다고 하잖아요? ‘책의 해’에서 인천이 무엇으로 책을 말할 수 있을까요? 바로 책방거리이고, 배다리 헌책방거리예요. 작은 동네 작은 헌책방 사람들이 작은 힘으로 작은 책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나날이 비로소 ‘책의 해’로 꽃피울 수 있구나 하고 느껴요. 예전과 견주어 달라진 모습이라면, 이제 헌책방거리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아름답고 값진 ‘책 문화유산’일는 대목을 사람들이 천천히 알거나 느낀다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영철] 아벨서점이 금토일에만 문을 연다고 하던데요. 그만큼 평일에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찾는 사람이 적다고요..  그 얘기는 곧 인천시민들의 관심이 적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바라는 점이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최종규] 헌책방 〈아벨서점〉은 칠월까지만 금·토·일 사흘만 열기로 했어요. 그만큼 배다리를 찾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벨서점〉 책방지기 분들이 그동안 책방 일과 배다리 지키기와 책문화 돌보기 같은 여러 일을 하면서 몸이 많이 힘드셔요. 아픈 곳투성이예요. 그렇다고 책방을 닫을 수도 없고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파 쓰러지면 책방도 죽고 사람도 죽어요. 그래서 내린 생각이, 몇 달 동안 몸을 쉬고 달래는 ‘안식일’이라고 할까요, 몇 달쯤 사흘만 책방을 열고 나흘은 몸이 힘을 되찾도록 쉬자는 뜻이에요. 이렇게 몇 달쯤 몸을 되살리고 나면 다시 씩씩하게 일하시면서 책손님한테 아름다운 빛을 베풀 수 있으리라 생각하셔요. 다만, 인터넷책방이 커지면서 매장책방으로 찾아오는 발걸음은 많이 줄었어요. 인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엇비슷해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안타깝게도 인천이 전국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도시’예요. 바로 옆에 서울이 있는 탓이 몹시 크기는 할 테지만, 인천시가 스스로 우뚝 서는 아름다운 삶터로 거듭난다면,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새롭게 북적일 테고, 배다리뿐 아니라 인천 곳곳에 작은 책방과 북카페가 차츰 늘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영철] 저자께서는 현재 국어사전 만드는 일과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운영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최종규] 저는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2007년부터 열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읽고 갈무리한 책으로 내 서재이면서 개인도서관이 될 곳을 열었습니다. 2007년에 배다리에서 이 도서관을 처음 열었어요. 배다리 산업도로 계획에 반대하는 힘을 모으려고 배다리에서 열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 아이와 함께 앞으로 살아갈 터를 헤아리다가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로 자리를 옮겼어요. 앞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외국말 공부를 그만두고 저한테 남은 한국말 공부를 그대로 이었고, 이렇게 이은 한국말 공부는 1999년에 들어간 보리 출판사에서 처음 빛을 보았어요. 보리 출판사에 들어갈 때 이곳 대표인 윤구병 님이 저한테 ‘새 국어사전 편집자’를 맡길 생각이었다고 하시더군요. 2001년에 보리 출판사가 국어사전을 전담할 출판사를 토박이 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따로 열었을 적에 제가 편집장이면서 자료조사원으로 일했어요. 《보리 국어사전》 1대 편집장이었지요. 이 일을 하다가 2003년 8월에 이오덕 님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이오덕 님하고 아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뒤 선생님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누군가 맡아야 했어요. 저는 토박이 출판사에서 새로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이오덕 님을 기리는 글을 다섯 꼭지 썼어요. 그런데 이 추모글이 원고지로 치면 600장을 웃돌았어요. 엄청난 글을 썼지요. 이 글을 이오덕 님 유족이 보았고, 이런 인연으로 2003년 9월부터는 충북 충주로 삶터를 옮겨 2007년 2월까지 이오덕 님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어요. 2013년에 나온 《이오덕 일기》도 이때에 제가 찾아내어 정리해서 비로소 나올 수 있던 책이에요. 그리고 저는 곁님을 만나 아이 둘을 낳았는데, 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이 아이한테 참으로 새로운 말을 제대로 알려주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동안 배운 모든 슬기를 모아서 아주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올해 3월에 선보였는데, 이 책이 한국말사전을 새로 만드는 실마리예요. 앞으로 일고여덟 살 어린이가 읽을 ‘첫 한국말사전’을 만들 생각이고, 우리 아이가 자라는 흐름에 맞추어 차근차근 새로운 사전을 만들려고 해요.




[이영철]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의 소개도 해 주시죠. 

[최종규] 2007년에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서 도서관을 열기로 했을 때에, 어떤 주제로 도서관을 삼을까 한참 생각했어요. 그냥 도서관이 아닌 전문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가장 도움이 될 도서관은 어떤 주제일까 하고 생각했고, 곰곰이 살피니 사람들이 사진기는 한 대쯤 다 갖추지만, 정작 사진책은 안 사고 안 읽는다고 깨달았어요. 사진책으로 전문 도서관이 되자고, 사진을 말하고 사진책을 알려주며 사진길을 걸을 적에 어떤 책을 이웃으로 삼아서 마음을 살찌우면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 하고 보여주는 도서관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는 사진책이 중심이면서, 사진을 살찌우는 그림책과 만화책과 어린이책과 문학책과 인문책과 환경책과 갖가지 국어사전 자료 들을 골고루 갖춘 곳입니다.




[이영철] 출간 후 소감이랄까요? 책을 마무리하고 아쉬웠던 부분이나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해 주시고 인터뷰 맺겠습니다.  

[최종규] 숲속여우비 출판사에서 책을 예쁘게 만들어 주셨어요. 아주 적은 돈으로 무척 아름답게 책을 빛내었습니다. 아마 큰 출판사에서 이 책을 만들었으면 사진을 넉넉히 넣고, 줄간격도 넉넉히 하면서 만들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아직 한국 출판문화에서는 큰 출판사가 작은 마을책방을 눈여겨보는 마음결을 갖추기 힘들지 않나 하고 느껴요. 영국에 있는 헤이온와이라든지 일본에 있는 책방이라든지 세계 여러 나라 멋진 도서관을 다루는 책은 곧잘 큰 출판사에서 나오잖아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있는 작은 책방이나 헌책방 이야기는 어떤 출판사에서도 다루려 하지 않아요. 왜 우리는 우리한테 있는 빛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할까요? 이 실마리를 푸는 열쇠로 《책빛숲》이 길동무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책빛숲》을 징검돌로 삼아서, 앞으로 한국에서 조용히 빛나는 작고 예쁜 헌책방 이야기를 이와 같이 고운 책으로 선보여서 이야기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빕니다. 인천에 있는 헌책방거리를 비롯해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 대전 원동 헌책방거리, 전주 홍지서림 책방거리, 광주 계림동 헌책방거리, 대구 시청 둘레 헌책방거리, 그리고 마을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책방을 지키는 분들한테 구수한 밥 한 그릇 같은 책이 되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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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9. 함께 있으니



  함께 있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마을에 함께 있으니 마을빛을 찬찬히 살피다가 사진 한 장 찍습니다. 함께 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기에 아이들 눈빛과 몸빛을 가만히 헤아리다가 사진 한 장 찍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시골에서 숲에 깃들건 도시 한복판 아파트에서 지내건 언제나 숲빛과 집빛과 삶빛을 누리는 동안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든지 함께 있을 때에 찍습니다.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더라도 늘 같습니다. 함께 있을 때에 찍습니다. 함께 있는 이웃을 찍습니다. 함께 있으면서 같은 바람을 마시고 같은 햇볕을 쬐는 숨결을 찍습니다.


  누군가를 더 잘 안다고 여기기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어느 곳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잘 아는 사람’이나 ‘잘 아는 곳’이나 ‘잘 아는 것’을 찍지 않습니다. 내 마음으로 스며들어 따사로운 빛이 흐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을 거쳐 마음자리로 곱게 깃드는 이야기를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바로 이때야!’ 하고 알아차리면서 찍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사진은 바로 이때에 찍습니다. 함께 있으면서 즐거운 빛이 흐르는 어느 한때를 ‘바로 이때야!’ 하고 느끼면서 찍습니다. 모델을 앞에 세우고 찍을 적에도 그렇지요.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찍기에 사진이 되지 않아요. 모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마음으로 느껴야 비로소 사진기를 손에 쥐고, 내 마음으로 젖어드는 느낌이 ‘생각이라는 꽃’으로 그림이 되어 나타날 때에 단추를 눌러 찰칵 찍습니다. 정물사진이든 풍경사진이든 모두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멋들어진다 싶은 모습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찍는대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내 마음에 이야기꽃이 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엮고 싶은 내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나서 활짝 터질 무렵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있으니 찍는 사진은, 함께 바라보면서 함께 웃는 사진이 됩니다. 함께 찍고 함께 읽으며 함께 나눕니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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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나들이



  인천에 있는 경인방송으로 나들이를 한다. 경인방송에서 들려주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 나가기로 한다. 전남 고흥에서 인천은 아주 멀다. 마침 아이들과 일산으로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니 인천에 살짝 들른다. 방송국 녹음을 한달음에 마친다. 들려줄 말을 들려준다는 생각이었으니 녹음이 엇나가거나 늘어지거나 길어질 일이 없다. 술술 물이 흐르듯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나오니, 아이들은 방송국 피디 언니하고 논다. 아버지가 앉던 자리에 저희들은 서서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 너희는 방송국 첫 나들이를 이렇게 즐기는구나. 그러고 보니, 방송국에서는 너희가 아무리 쿵쿵 뛰어도 소리가 안 퍼지기도 하는구나.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도 방송국처럼 단단하거나 야무지게 지으면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고단한 일이 없을 텐데. 아파트를 짓는다 하더라도 백 해나 이백 해쯤 거뜬할 만큼 지으면 예쁠 텐데. 마침 방송국에는, 노래하는 박완규 님이 현장방송 중계를 한다. 아이들은 박완규가 누구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다른 배우가 연기자도 모른다. 누구나 똑같은 어른이다. 아이들한테는 누구나 똑같은 아저씨이거나 아주머니이다. 방송국에서 잘 놀다가 돌아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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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가방 따뜻한책 3
김형준 지음, 김경진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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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8



나는 너를 사랑하지

― 찢어진 가방

 김형준 글

 김경진 그림

 어린이아현 펴냄, 2012.8.10.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면 책을 읽습니다. 이 책과 저 책을 읽기도 하고, 어느 책 한 가지만 애틋하게 여겨 수없이 되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책이 헐거나 다쳐도 똑같이 읽습니다. 어른들도 그래요. 어른들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책을 알뜰히 읽습니다. 종이가 낡거나 삭아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빳빳한 책이건 묵은 책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어머니한테서 물려받거나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책을 즐겁게 ‘알맹이’를 읽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다가 넘어집니다. 무릎이 까지거나 손바닥이 벗겨집니다. 때로는 이마를 찧기도 하고 군데군데 생채기가 납니다. 아이들은 다쳐도 똑같이 아이들입니다. 얼굴이 말끔해도 아이요, 얼굴이 생채기투성이라든지, 개구지게 바깥에서 뛰노느라 온통 새까맣게 탔어도 똑같이 아이입니다.


  내 이웃과 동무는 언제나 내 이웃과 동무입니다. 이녁이 가난하건 가멸차건 늘 같습니다. 돈이 있대서 더 나은 이웃이 아니요, 돈이 없대서 덜 좋은 이웃이 아닙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반가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 쭈구리, 짱구, 삐주기, 등딱지, 통크니. 주인이 가진 가방들의 이름이에요. 주인은 가방에 이름 짓기를 좋아했어요 ..  (2쪽)





  양말을 기웁니다. 옷가지를 기웁니다. 가방을 기웁니다. 즐겁게 입는 옷을 즐겁게 기웁니다. 무릎에 난 구멍을 때웁니다. 덜렁거리는 끈을 기우지요.


  오래 쓴 손닦개는 많이 헙니다. 많이 헌 손닦개는 이제 걸레로 씁니다. 손과 낯과 몸을 닦던 손닦개는 방바닥을 훔치는 걸레로 살아갑니다. 손닦개일 적에도 늘 내 손에 닿고 걸레일 적에도 언제나 내 손으로 만집니다.


  이가 빠져도 접시는 접시입니다. 이가 나가도 물잔은 물잔입니다. 이가 빠진 접시를 언제 어떤 마음으로 장만했는지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밥상에서 떨어뜨려 모서리가 깨진 종기에 된장을 담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우리 식구와 얼마나 오랜 나날 함께 지냈느냐.


  함께 살아오면서 이야기가 스밉니다. 함께 지낸 나날에 따라 이야기가 깃듭니다. 살림살이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름살마다 이야기가 있어요. 손금에도 이야기가 서려요. 스스로 꿈으로 품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나누던 이야기가 흐릅니다.



.. 주인 언니의 ‘버리라’는 말에 예쁘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하지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괜찮아, 꿰매 쓰면 되지 뭐.” ..  (11쪽)




  김형준 님이 글을 쓰고 김경진 님이 그림을 그린 《찢어진 가방》(어린이아현,2012)을 읽습니다. 어느 가방이든 처음부터 찢어진 가방은 없습니다. 어느 가방이든, 찢어지거나 안 찢어지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뜰히 아끼면서 들고 다니면 사랑스러운 가방입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다루거나 굴리면 슬픈 가방입니다. 생김새가 멀끔해야 사랑스러운 가방이 아닙니다. 값나거나 비싸야 사랑스러운 가방이 아닙니다. 값이 나간다면 값이 나가는 가방일 뿐이고, 비싸다면 비싼 가방일 뿐이에요.



.. “여기가 쓰레기통인 줄 아나?” “들켰다간 바로 버려질걸.” “주인이 찾으려고나 하겠어? 아무도 새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을 거야.” 예쁘니는 못된 말만 해대는 핑크들을 보면서 자기가 무시하던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아, 다시 볼 수 있을까?” ..  (24쪽)



  우리 집 일곱 살 아이가 스티커 한 장을 놓고 동생하고 다툽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이웃 언니가 큰아이한테 준 스티커라며 큰아이는 몹시 아낍니다. 네 살 작은아이는 누나가 혼자 갖고 노는 스티커를 저도 만지면서 같이 놀고 싶습니다. 작은아이한테는 ‘그냥 스티커’이고, 큰아이한테는 ‘같이 논 예쁜 언니가 선물한 스티커’입니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알까요. 작은아이가 입은 웬만한 옷은 누나한테서 물려받았습니다. 작은아이가 꿰는 신 가운데에도 누나한테서 물려받은 신이 제법 있습니다. 큰아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웃 언니나 오빠한테서 물려받은 옷과 신이 꽤 많습니다. 두고두고 여러 아이들이 사랑스레 누린 기운이 깃든 옷을 찬찬히 물려받고 물려줍니다. 오래오래 여러 어버이들이 사랑스레 돌본 넋이 담긴 옷을 하나둘 물려받고 물려줍니다.


  새 것을 선물할 적에는 새 것이기에 반갑습니다. 쓰던 것, 이른바 헌 것을 선물할 적에는 손길을 탄 것이기에 즐겁습니다. 새 것을 선물하면, 이제부터 하나씩 새로 엮을 이야기가 있습니다. 쓰던 것을 선물하면,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일군 이야기에 내가 새롭게 이야기를 보탭니다.




.. 경찰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어요. “가방이 찢어졌는데도 찾으러 오셨네요.” 주인이 대답했지요. “그럼요! 제 가방이니까요.” ..  (31쪽)



  지구별이 흐릅니다. 해마다 풀이 돋고 꽃이 피며 씨앗이 맺습니다. 나무가 해마다 자랍니다. 지구별은 해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데, 새로운 봄에 피어나는 꽃과 풀은 모두 ‘헌 땅’에서 ‘헌 흙’을 거름으로 삼아서 자랍니다. 사람들이 남새를 일구면서 밭에 내는 거름은 모두 ‘헌 숨결’이라 할 만합니다. 헌 숨결을 받은 씨앗들이 새롭게 자라지요.


  가만히 헤아리자면, 새 것과 헌 것은 따로 없습니다. 새 것은 언제나 헌 것이 되고, 헌 것은 늘 새 것으로 거듭납니다. 내 손길을 받으면 새롭습니다. 내 눈길을 받으면 새삼스럽습니다. 내 마음길을 받으면 사랑스럽고, 내 꿈길을 받으면 아름답습니다.


  밥그릇도 젓가락도 헌 것이 아닙니다. 늘 쓰는 애틋한 것입니다. 집도 옷도 헌 것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살면서 살가운 보금자리가 되고 살뜰한 살림살이가 됩니다. 빗자루도 바구니도 밥상도 선풍기도 모두 우리 곁에서 오순도순 지내는 벗님이고 동무입니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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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 은행알



  시외버스를 타고 일산 시내에서 서울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은행나무를 본다. 은행나무가 참 잘 자랐구나. 밤에도 등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텐데 씩씩하게 잘 크는구나. 가지를 뻗고 잎을 돋우며 열매를 맺네. 간판을 가릴 만큼 푸르게 우거지네.


  그래, 간판쯤 얼마든지 가리렴. 그래, 건물도 높다란 아파트도 모조리 가리렴. 네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렴. 사람들이 에어컨에 기대지 말고 네 곁에서 잎바람을 마시고 풀바람을 머금도록 해 주렴. 삶을 밝히는 싱그러운 빛을 네 곁에서 누리도록 해 주렴.


  사람들이 알아보건 안 알아보건 은행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안 쳐다보건 은행알은 굵게 맺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나무들이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니, 이 도시에서 온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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