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본 은행알
시외버스를 타고 일산 시내에서 서울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은행나무를 본다. 은행나무가 참 잘 자랐구나. 밤에도 등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텐데 씩씩하게 잘 크는구나. 가지를 뻗고 잎을 돋우며 열매를 맺네. 간판을 가릴 만큼 푸르게 우거지네.
그래, 간판쯤 얼마든지 가리렴. 그래, 건물도 높다란 아파트도 모조리 가리렴. 네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렴. 사람들이 에어컨에 기대지 말고 네 곁에서 잎바람을 마시고 풀바람을 머금도록 해 주렴. 삶을 밝히는 싱그러운 빛을 네 곁에서 누리도록 해 주렴.
사람들이 알아보건 안 알아보건 은행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안 쳐다보건 은행알은 굵게 맺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나무들이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니, 이 도시에서 온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