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 - [할인행사]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만남 (콘택트)

Contact, 1997



  우리는 왜 살아갈까? 우리는 왜 새롭게 태어나서 아기가 되고 어린이가 되었다가 푸름이를 지나 젊은이가 되고는, 저마다 짝을 짓거나 짝을 안 지으면서 ‘어른’이 될까?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구별 사람을 뺀 사람들, 그러니까 다른 별 사람, 다시 말하자면 ‘외계인’이나 ‘우주인’을 언제부터 보았고, 언제부터 생각했으며, 언제부터 이야기했을까?


  영화 〈콘택트(Contact)〉를 보면서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Contact’라는 영어를 써서 이름을 붙였을 테지만,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영화이름을 달아야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렇다. 한국 영화감독이 한국말로 지은 영화이름을 미국이나 영국에서 ‘한국말 그대로’ 쓸까?


  영화를 보는 내내 〈Contact〉라는 영화는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느낀다. 맨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아이를 낳고, 이 아이가 영화 주인공이다. 아이 어머니는 일찍 죽는다. 그 뒤 아이 아버지와 아이가 늘 한집에서 즐겁게 삶을 만나고 꿈을 만나면서 지낸다. 이러다가 아버지가 일찌감치 숨을 거둔다. 영화 주인공 아이가 아홉 살에 죽는다. 이에 앞서부터 영화 주인공 아이는 ‘죽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늘 생각했는데, 아버지까지 일찍 죽은 뒤부터 ‘두 어버이를 만날’ 길을 생각한다. 이동안, 영화 주인공 아이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만날 뜻이나 빛이나 까닭이 없다. 마음을 살리거나 밝히는 빛이 없는 다른 사람은 ‘만날’ 만한 일이 없다. 문득 한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한 사람을 ‘마주치’는데, 이녁하고 ‘만날’ 만한 사이인지 아직 모르기에 그냥 지나친다.


  영화 주인공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치거나 스치거나 만난다. 그리고, 드디어, 어릴 적부터 꿈꾸던 ‘다른 별 숨결’을 만난다. 그 뒤, 권력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고, 이름값을 드높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과학자(지식인)와 종교지도자를 만난다. 맨 마지막으로는 참말 코앞에서 ‘다른 별 숨결’을 만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오직 한 가지를 묻고 이야기한다. ‘참’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빛’이란 무엇인가? 영화 주인공은 빛덩어리를 지나면서 빛물결을 누린다. 이때에 영화 주인공은 스스로 과학자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시인’이 되려 한다. 삶을 밝히는 빛을 사랑할 때에는 과학자나 지식인이나 학자가 아닌 ‘시인’이 되어야 하는 줄 깨닫는다. 열여덟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똥오줌도 누지 않으며, 그저 삶을 밝히는 빛을 사랑하는 흐름에 선 이녁 모습을 깨달으면서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러니, 이 영화는 ‘만남’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낀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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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4) 중中 37 : 기르는 중이야


“머리, 전에 봤을 때보다 많이 길었네.” “응. 기르는 중이야.”

《호즈미/조은하 옮김-결혼식 전날》(애니북스,2013) 40쪽


 기르는 중이야

→ 길러

→ 기르지

→ 기르니까

→ 기르게 두니까

 …



  ‘中’을 넣은 “기르는 중이야”는 현재진행형 꼴로 쓰는 번역 말투라 할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한자 ‘中’을 넣어 이런 말투를 곧잘 쓰고, 이를 잘못 옮기는 이들은 “기르고 있어”처럼 ‘있다’를 넣기도 합니다. ‘있다’는 한국말이지만, “-하고 있다”와 같은 말투도 한국 말투가 아닌 번역 말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말투가 사람들 입에 아주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이런 말투를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물지 싶어요. 여느 어버이도, 여느 교사도, 여느 작가도 이런 말투를 씻어내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고작 너덧 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마저 이런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를 씁니다.


  책을 안 읽고 방송을 안 본다면 이러한 말투에 덜 물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을 안 읽히고 텔레비전을 안 보여주는 어버이나 어른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한국 말투를 올바르게 추스르거나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숱한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맙니다.


  내 말투를 바르게 바라보고, 내 말투를 올곧게 느끼며, 내 말투를 사랑스레 쓸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4347.7.2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머리, 예전에 봤을 때보다 많이 길었네.” “응, 기르니까.”


‘전(前)에’는 ‘예전에’로 다듬습니다. ‘예전’은 한국말이고, ‘前’은 한자말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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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에어컨 책읽기



  시골에서도 군내버스는 에어컨을 켠다. 시골에서만큼 군내버스가 에어컨을 안 켜고 창문을 열도록 하면 얼마나 시원하랴 싶지만, 막상 버스 일꾼이나 마을 할배나 할매는 창문바람을 바라지 않는다. 늙은 할매는 창문을 열 기운이 없기도 하고, 모처럼 버스를 탔으니 에어컨을 쐬어야 한다고 여기시는구나 싶기도 하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까지 군내버스를 20분 동안 달리다 보면 으슬으슬 춥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면 20분이 아닌 한 시간을 쐬어도 춥다는 생각이 안 들고 시원하기만 하다. 그래, 나무그늘에 앉아서 풀바람을 쐬면 하루 내내 시원하다. 지하철이나 전철이나 기차에서 흐르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때로는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을 지내야 하면 찬기운을 잔뜩 먹은 나머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괴롭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자가용을 몰며 에어컨을 늘 쐬는 사람들은 몸이 아플밖에 없다. 자가용이 아닌 전철이나 버스를 타더라도 으레 에어컨을 쐬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할밖에 없다. 여름이 더운 까닭은 숲이 사라지고 나무가 우거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흙으로 된 땅에서 풀이 싱그럽게 자라면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면 더위가 으르렁거리지 못한다. 흙을 몰아내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불러들이는 한편, 숲과 나무를 멀리 밀어내기만 한다면, 여름은 자꾸 더울 수밖에 없다. 더운 여름에 풀바람이 아닌 에어컨으로 찬기운만 만들면 ‘더위 식히기’가 아닌 ‘몸 망가뜨리기’가 되리라 느낀다. 게다가, 에어컨이 돌아가면서 지구별까지 아프다. 에어컨을 트는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지구별까지 무너뜨리는 셈이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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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33. 바람이와 자전거 (2014.7.24.)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쓰던 바람이를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 바람을 뺄까 하다가 안 빼고 가져가기로 한다. 어떻게 가져가면 좋을까? 작은아이는 수레에 넣으면 된다. 큰아이는 목에 쓰면 된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바람이를 목에 안고 자전거를 달리는 시골순이’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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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폴짝순이



  고흥집에 놀러온 이모가 이모 집으로 돌아간다. 사름벼리는 이모 손을 꼭 잡고는 놓지 않는다. 이러다가 폴짝 하고 뛴다. 언제나 폴짝폴짝 뛰는 사름벼리는 폴짝순이이다. 마을 어귀 버스터까지 가는 길에 몇 차례나 폴짝폴짝 뛰는지 모른다. 이모가 선물로 준 고운 치마를 입고 땅을 박차고 논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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