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701 | 5702 | 57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홍이 이야기
박건웅 글.그림, 이승민 원작 / 새만화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1



평화롭던 마을에 찾아온 살인기계

― 홍이 이야기

 이승민 글

 박건웅 그림

 새만화책 펴냄, 2008.4.3.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즐겁게 놀았습니다. 학교라는 이름도 없었고, 사회라는 이름이나 정치와 경제나 문화라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이라든지 국회의원 같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임금님 이름을 몰라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한자를 몰라도 모두 마을을 이루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중국을 섬기지 않아도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은 사랑스레 손을 맞잡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임금님이라는 사람과 신하라는 사람은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이를테면 고구려라든지 백제라든지 신라라든지 가야라든지 부여와 같은. 그리고, 임금님이나 신하라는 사람은 시골에서 흙을 일구던 사람을 그러모아서 칼과 창을 손에 들려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칩니다. 그동안 고개 너머 이웃이나 냇물 너머 이웃이던 사람을 칼이나 창으로 죽여야 합니다.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던 마을이었지만, 정치가 서고 경제를 말하며 문화를 읊는 사회가 나타나면서, 그만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금이 쩍쩍 갈라집니다.



- 마을 사람들은 밭을 갈다가도, 김을 매다가도,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오름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대나무 막대기가 내려져 있거나 긴 나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팽개치고 황급히 어디론가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 숨곤 했다. 그러면 노랑개나 검은개 들이 텅 빈 마을로 들어와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노인들을 끌어내서 화풀이를 하고, 이 집 저 집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숨어 있던 사람들을 찾으면 그 중 몇몇을 트럭에 실어, 읍내 쪽으로 돌아가곤 했다. (11∼12쪽)





  대통령은 왜 있어야 할까요? 임금님은 왜 있어야 하나요? 정치는 왜 있어야 할까요? 경제와 문화와 교육은 왜 있어야 하나요?


  병원이 없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다스렸습니다. 청소부가 없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집과 마을을 정갈하게 돌보았습니다. 판사나 변호사가 없어도 사람들은 슬기롭게 일을 맺고 풀었습니다. 교사나 교수가 없어도 사람들은 아이들을 똑똑하게 가르쳤습니다. 지식인이나 작가나 기자가 없어도 집집마다 알콩달콩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이웃과 동무가 어찌 지내는가를 잘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이 있고, 정치꾼이나 행정 관료나 공무원이 있습니다. 군대와 경찰이 있습니다. 지식인과 전문가가 있습니다. 교사와 교수가 많습니다.


  그러면 물어 볼게요. 대통령이 있어서 나라가 바로서나요? 공무원이나 관료가 있어서 사회가 바르거나 아름다운가요? 군대와 경찰이 있어서 나라가 평화롭나요? 지식인과 전문가가 있어서 슬기롭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가요? 교사와 교수가 있어 저마다 즐겁게 가르치거나 배우는가요?



- 군인들은 움직이는 것엔 총을 쏘고,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불을 붙였다. (26쪽)





  이승민 님이 글을 쓰고 박건웅 님이 그림을 그린 《홍이 이야기》(새만화책,2008)를 읽습니다. 1940년대 끝무렵에 제주섬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단출하면서 굵은 빛깔로 찬찬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무렵 군대와 경찰은 무슨 짓을 했을까요? 오늘날 군대와 경찰은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제주섬에 짓는다는 해군기지는 무엇일까요? 평화를 지키려는 군대인가요? 평화를 지키겠다는 군대, 그러니까 군부대는 평화롭게 터를 닦거나 짓는가요?


  평화롭던 마을에 찾아온 살인기계인 군대와 경찰이리라 느낍니다. 아름답던 마을을 짓밟는 살인노예인 군대와 경찰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마을을 까부수는 살인병기인 군대와 경찰이라고 느낍니다.



- 금빛 나팔에 끈적한 피가 묻어 있었다. 홍이는 나팔을 불어 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가슴에 구멍이 생겨, 자꾸만 바람이,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32쪽)





  민주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정치란 무엇이고 평등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삶입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삶이면서 사랑이고 평화입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하게 가로막는 제도권이 춤을 추면, 사람들은 삶을 잃고 생각을 잃으며 사랑을 잃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셔요. 사랑도 생각도 삶도 모두 어지러이 흩어집니다. 오늘날 정치나 경제나 문화를 보셔요. 얼마나 끔찍하게 서로를 따돌리거나 짓밟는가요. 어깨동무를 하는 정치나 경제나 문화가 있는가요? 저마다 1등을 하겠다면서 아귀다툼입니다.


  홍이는 동생과 함께 총에 맞아서 죽습니다. 죽은 홍이는 슬픈 넋이 되어 바람처럼 골골샅샅 떠돕니다. 부디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랑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람처럼 흐릅니다. 아무쪼록 이 나라에 아름다운 꿈이 숨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람처럼 노래합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총놀이 4 - 물총주머니에 손가락을



  물총을 주머니랑 손잡이랑 뜯어서 놓는다. 두 아이는 물주머니를 붙여서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직직 쏘는 놀이보다,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서 휘휘 돌리거나 물을 입에 머금고 뱉는 놀이를 한결 재미있어 한다. 산들보라는 물주머니에 손가락을 하나 꿰고는 아주 즐거워 한다. 손가락에 물주머니를 꿰고 마당을 빙빙 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름벼리는 늘 잘 걷는다



  일곱 살 사름벼리와 걷는 길이 즐겁다. 사름벼리는 여섯 살에도 다섯 살에도 아주 야무지게 잘 걸었다. 네 살 적에도 얼마나 똘망똘망 잘 걸었는지 모른다. 가파른 비알도 잘 오르고 제법 거친 멧자락도 잘 탔다. 돌쟁이 무렵에는 제 키만 한 높다란 계단조차 척척 오르내리기까지 했다.


  사름벼리를 볼 적마다 이 씩씩이 예쁜이 멋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스스로 일구어서 걸어갈까 하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걷겠지. 사랑스레 걷겠지. 즐겁게 걷겠지. 나도 아이와 함께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즐겁게 이 길을 걸어야지.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 배롱꽃 책읽기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우리 마을 어귀 배롱나무에도 꽃이 천천히 핀다. 다른 데에서는 팔월에도 배롱꽃이 피었기에 올해 우리 마을 배롱나무는 꽃이 안 피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이제 피는구나. 참말 필 만한 때가 되니까 피겠지. 올해에는 여름 내내 비가 너무 잦았기에 배롱꽃이 좀 늦을 수 있다. 비가 잦고 구름도 많이 낀 여름이었기에, 비 없고 햇볕 쨍쨍 내리쬐는 가을에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릴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새파란 하늘에 짙붉은 배롱꽃이 하늘하늘 춤추면서 곱다. 아이들과 배롱나무 밑에 서서 한참 하늘바라기를 한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헌책방은 ‘지저분하다’는 잘못된 생각



  헌책방은 책먼지 때문에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도 모르고 둘도 모른다. 그러면, 도서관은 안 지저분할까?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도서관 책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놓는가? 도서관은 책꽂이를 얼마나 자주 닦으면서 먼지를 털거나 없애는가? 한편, 새책방은 안 지저분할까? 새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치고 면장갑을 안 끼는 사람은 없다. 새책을 다루면서 면장갑을 안 끼면, 책을 나르다가 날카로운 책등이나 책종이에 긁혀서 피가 나기 일쑤이다.


  새로 나온 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새책에서 나오는 먼지는 하얗다. 외려 헌책에는 새책보다 먼지가 적다. 왜 그런가 하면, 새책을 누군가 사서 읽으면, 이동안 책먼지가 천천히 날아간다. 한 번 읽은 책은 아예 안 읽은 책과 견주면 먼지가 적다. 두 번 읽은 책은 한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세 번 읽은 책은 두 번 읽은 책보다 먼지가 적다.


  헌책방에 있는 책에 왜 먼지가 있다고 여길까?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에는 왜 먼지가 많이 묻는다고 여길까?


  책이 흐르는 모습을 살펴야 한다. 헌책방에서는 출판사한테 연락해서 책을 받지 않는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내놓을 때에 헌책이 되어 헌책방에 책이 들어간다. 그러니,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책을 지저분하게 팽개치듯이 두다가 내놓으면, 이런 책은 하나같이 지저분하다. 새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정갈하게 건사한 뒤 내놓으면, 이런 책은 아주 깨끗하면서 먼지를 찾아보기도 매우 어렵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한국에서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건사하거나 다루지 않는 탓에, 헌책방에 들어오는 헌책이 지저분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헌책방을 탓할 일이 아니라,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매무새’를 탓할 일이다. 잘 보라. 헌책방에 책을 내놓는 사람들은 으레 어떻게 하는가?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고 들추지 않은 책을 그냥 묶거나 상자에 담아서 헌책방에 가져간다.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면서 ‘집에 고이 모시느라 그동안 쌓인 먼지’를 알뜰히 닦아서 가져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헌책방 일꾼은 모두 안다. 책먼지를 닦고 가져오는 책인지, 집에 팽개친 뒤 ‘처분’하려고 가져오는 책인지 척 보면 안다. 책먼지를 닦고 고이 가져오는 책은, 책손 스스로 정갈하게 묶거나 상자에 담는다. 책먼지를 안 닦고 팽개친 책을 헌책방에 팔려고 가져오는 이들은 아무렇게 묶거나 아무렇게나 담는다. 책을 팔려고 가져온 사람 스스로 보기에도 ‘책먼지가 지저분해 보이’니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다룬다.


  자, 그러면 헌책방 일꾼은 이 책을 어떻게 받을까? 책을 하나하나 알뜰히 닦고 곱게 건사해서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더 값을 치러서 사들여’ 준다. 책을 아무렇게나 더럽힌 채 마구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헌책방 일꾼은 ‘똑같은 책이라 해도 그냥 싸게 값을 매겨서 사들인’다.


  새책을 쌓아 놓는 창고에 가 본 사람이 드물리라. 출판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배본소나 도매상에 가 본 일이 드물겠지. 배본소나 도매상에 갈 수 있다면, 가 보기를 바란다. 배본소 일꾼이 날마다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새책 먼지’를 마시면서 기관지를 앓는지 들여다보라. 도매상에도 얼마나 책먼지가 많이 날리는지 살펴보라. 새책을 다루는 창고는 책먼지 때문에 모두 면장갑에 입가리개를 한다. 이렇게 안 하면 숨이 막히고 코가 막히며 눈이 냅다.


  헌책방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잘못 보는 사람이다. 책을 알뜰히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정갈하고, 책을 마구 다루는 사람은 언제나 지저분할 뿐이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701 | 5702 | 57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