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값은 얼마인가?



  두 아이가 바라 마지 않던 바이올린을 두 대 장만한다. 두 아이 이빨을 고치려고 일산에 있는 어린이치과에 들러서 이틀을 쉬고는 아이들 이모와 어울려 놀다가, 문득 ‘바이올린 악기점’ 푯말이 보여, 아무 생각이 없이 찾아가 보았다. 어딘가 스쳐 지나갈 적에 바이올린을 보기는 보았을 테지만, 막상 눈앞에 가까이 두고 바이올린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은 없다고 느낀다. 구경이라도 해야겠다고, 악기 값이 얼마쯤 되는지 말을 여쭈어야 한다고 느낀다.


  악기점 앞에 선다. 아이들은 바이올린을 알아챈다. “어,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이야! 보라야, 저기 봐, 바이올린이야!” 일곱 살 아이가 네 살 동생을 불러 바이올린 앞에 선다. 누나처럼 바이올린을 알아본 네 살 아이는 누나랑 함께 “바이올린! 바이올린!” 하고 노래를 부른다.


  얘들아, 악기 값을 아직 여쭙지도 않았는데 노래부터 부르니? 곁님은 아이들 노래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리코더 값을 여쭙는다. 작은 리코더 하나 1만 원, 소금 하나도 1만 원, 이렇게 두 개를 장만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서 바이올린 값을 여쭌다. 어른이 쓸 악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쓸 악기라고 말하니, 그러면 새 것으로 하지 말고 헌 것으로 하면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쓸 작은 바이올린으로 헌 것은 9만 원이면 된다고 하는데, 두 아이한테 두 개를 한다면 1만 원을 에누리해 주겠다고 한다.


  아직 마음이 서지 않은 채 악기점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바이올린 한 대를 장만하자면 30∼40만 원은 가볍게 들여야 하지 않느냐 하고 지레 생각하던 일을 떠올린다. ‘그만 한 값은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며 생각을 다잡는다. 바이올린 두 대에 17만 원이면 무척 눅은 값이겠다고 느낀다. 그래, 이 바이올린을 우리 집으로 가지고 갈까 하고 생각하는데, 악기점 아주머니가 예비 줄과 새 활을 덤으로 주시겠다고 한다. 악보책까지 하나 덤으로 받는다. 여러모로 선물을 잔뜩 받는다. 악보받침대까지 둘 장만한다. 곁님과 나는 손이 넷이지만, 이 모두를 들기에는 벅차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아이들이 제 바이올린은 저희가 들겠다고 나선다. 아이들은 참말 저희 바이올린을 들고 한 시간 넘게 씩씩하게 걸어다닌다. 지치고 힘든 티를 보이면서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고 다부지게 걷는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바이올린 값은 얼마인가? 바이올린 한 대를 아이한테 장만해 주면서 어버이는 돈을 얼마쯤 썼는가? 바이올린이라든지 다른 악기를 장만해서 아이한테 선물하는 돈은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거나 살찌우는가?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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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노는 아이들은



  열흘에 걸친 바깥마실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거리낄 일이 없다. 피아노를 치든 바이올린을 켜든, 또는 온 기운을 쏟아 노래를 부르든, 아랑곳할 일이 없다.


  아이들이 꺼내는 소리는 모두 노래가 된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새가 들려주는 노래하고 섞인다. 바람이 나뭇잎과 풀잎을 살랑이며 들려주는 노래하고 어우러진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고루고루 퍼진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다가 다시 아이 몸으로 스며든다.


  시골집에서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노래와 하나가 되는 삶이다. 지난날에는 시골과 도시가 따로 있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노래와 하나가 되는 삶을 늘 누렸다. 그러나, 이제 시골과 도시를 금을 긋듯이 가르는 사회가 되었고, 시골에서도 읍내와 면소재지와 두멧시골을 금으로 가르기에, 아이들은 어디에서라도 느긋하지 못하다. 시골 아이라 하더라도 면소재지나 읍내에서는 자동차 때문에 고단하다. 도시 아이 가운데에는 자동차 등쌀에 시달리지 않고 놀 수 있는 아이가 있기도 하다.


  도시에 있느냐 시골에 있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다. 어떤 삶을 누리고, 어떤 빛을 먹으며, 어떤 꿈을 꿀 수 있느냐를 보아야 한다. 우리 보금자리, 우리 시골집에서 노는, 우리 아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즐겁게 노래하는 빛을 누리기를 빈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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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산들보라 첫 머리깎기



  네살배기 산들보라가 처음으로 머리를 깎는다.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는 어떤 느낌일까? 나는 산들보라 몸짓과 눈길과 얼굴빛을 가만히 살펴본다. 산들보라는 머리를 깎는 내내 움직이지 않는다. 곧잘 빙그레 웃고, 가끔 뚱한 모습이다가, 이내 모두 잊은 느낌이다.


  보라네 누나인 사름벼리는 몇 살에 처음으로 머리를 깎았더라? 다섯 살 적에는 틀림없이 한 번 깎았는데, 이에 앞서 한 번 깎았는지 안 깎았는지 헷갈린다. 아무래도 한 번 더 깎은 적 있지 싶다. 그런데, 사름벼리 누나는 머리를 깎을 적에 몸이 잔뜩 얼어붙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름벼리가 머리를 깎도록 할 적에 곁님과 내가 제대로 마음을 추슬러 주거나 이끌지 못했다. 산들보라와 머리를 깎으러 마실을 할 적에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아이도 이러한 기운을 잘 알고 느끼겠지. 사름벼리 머리를 깎을 적에는 나도 좀 굳은 몸짓이었다면, 산들보라 머리를 깎을 적에는 가만히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는 몸짓이 된다. 4347.6.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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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단추 꿰기’를 쳐다보지 않던 네살배기 작은아이가 며칠 앞서부터 제 어머니 옷에 있는 단추를 제가 꿰거나 풀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아직 하나도 못 한다. 차근차근 손을 놀리며 놀다 보면 곧 ‘단추’를 아이 스스로 ‘내 것’으로 삼으리라.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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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숲이 우거지고 푸른 바람이 불며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는 별빛이 늘 잔치를 벌이는 시골에 보금자리를 두어 살아가니 얼마나 즐거운가요.

  도시에서 살기에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습니다. 비록 숲이나 냇물이나 골짜기나 바다가 없다 하더라도 마음 가득 따사롭게 마주하는 눈빛이라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숲집을 누립니다.

  우리는 숲집을 누립니다. 나무와 풀과 꽃이 있는 부동산을 누리지 않습니다. 나한테 있는 돈으로 지구별을 통째로 사들여야 숲이나 바다나 꽃을 누리지 않아요.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적에 비로소 삶을 누립니다.

  시외버스는 도시를 벗어나고 더 벗어나며 자꾸 벗어납니다. 우리 시골집과 가까울수록 시외버스에서 우리 집 풀내음을 맡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탄 시외버스에 탄 다른 분들이 시외버스에서는 냄새가 안 좋아 머리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아, 그렇지요. 참말 나도 얼마 앞서까지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달리 말해요. 나는 내가 누리고픈 냄새를 맡아요. 나는 내가 보고픈 빛을 봐요. 나는 내가 먹고픈 밥을 기쁘게 차려서 먹습니다. 돌아갈 시골집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시골빛이 사랑스럽습니다.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살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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