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배고파요



  아침에 일어난 두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버지, 배고파요.” 어느새 두 아이한테 아버지는 ‘밥돌이’가 된다. 그래, 너희는 아버지가 있어야 밥을 먹지. 어젯밤에 불린 누런쌀을 헹군 뒤 냄비에 불을 넣는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된장국을 끓이려 한다. 그런 뒤 무엇을 더 해 볼까.


  어제 월요일(7.7)에는 일산에 가야 했다. 어제 치과 진료 예약이 있었다. 일요일에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 우리는 몸이 고단해 쉬느라 월요일 치과 진료 예약을 미루기로 했다. 금요일에 맞추어 간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이 생기면서 수요일, 바로 이튿날에 고흥집에서 길을 나서야 할 듯하다. 나는 오늘 마감글을 여러 꼭지 바지런히 써야 하고,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며,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다.


  아이들아, 우리 아침 맛있게 먹자. 그리고, 아버지가 바쁜 일을 추스르고 챙기느라 너희와 함께 못 놀 수 있지만, 배부른 몸으로 씩씩하고 재미나며 개구지게 뛰놀기를 빌어. 그러고 나서 하룻밤 기쁘게 잔 뒤,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자.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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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다섯 차례 누고


  네 살 작은아이가 아침부터 똥을 다섯 차례 눈다. 처음 눈 똥과 셋째 눈 똥은 꽤 많다. 둘째와 넷째로 눈 똥은 적었고, 다섯째로 눈 똥은 묽다. 손님이 여럿 찾아와서 여러 날 그야말로 신나게 잠까지 좇으면서 놀더니, 천천히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손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는 천천히 놀고, 천천히 먹다가, 천천히 하품을 하고는 혼자 잠자리로 걸어가서 이불을 스스로 덮고 눕는다. 자면서 왼쪽에 장난감 자동차를 놓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아이만 하던 때부터 열 살 언저리까지, 또는 그 뒤로도 잠자리에 장난감을 놓았지 싶다. 꿈에서도 이 장난감하고 함께 놀고 싶다고 생각했지 싶다.

  일곱 살 큰아이는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더 누지는 않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논다. 가볍게 먹고, 가볍게 말하며, 가볍게 노래한다. 큰아이도 곧 작은아이 곁에 눕겠지. 아버지는 곧 작은아이 곁에 누울 생각이다. 큰아이도 더 버티지 말고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어 여러 날 마음껏 움직인 몸을 넉넉하게 쉬어 주기를 빈다.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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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 찢어진 왼팔



  내 오른손은 사마귀로 뒤덮였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내 왼팔은 손목 언저리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죽 찢어진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몇 학년 무렵인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학교 이학년이나 삼학년 무렵이었지 싶습니다. 그때 동무들은 서로 ‘담력 내기’를 곧잘 했습니다. 그무렵 살던 동네는 5층짜리 아파트가 열다섯 동이 모인 공동주택단지였는데, 모래밭 놀이터가 두 군데 있었고,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공동난방을 하면서 나오는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굴뚝이 둘 있었어요. 아파트 지킴이 할배가 알아채면 무섭게 다그치며 나무라지만, 우리들은 5층 아파트보다 더 높이 솟은 굴뚝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몰래 올라가면서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전기를 넣으려면 변압기인지 전압기가 있어야 했으니, 이 시설이 놀이터 구석에 있었고, 쇠가시그물로 높게 울타리를 쳤어요. 그런데, 이 쇠가시그물 맨 위쪽은 5센티미터쯤 판이 놓였습니다. 쇠울타리를 버티는 판이었겠지요. 이 판 둘레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이 잔뜩 있었는데, 동무들 사이에서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위쪽 5센미터밖에 안 되는 좁다란 판을 걷는 ‘담력 내기’를 하곤 했어요. 거의 모두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놀이터 모래밭으로 펄쩍 뛰어내렸는데, 나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어!” 하고 외쳤어요.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솟았을까요. 동무들은 “그럼 해 봐!” 하고 소리쳤고, “얼마든지 하지!” 하면서 척척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좁은 판을 천천히 한 걸음씩 떼면서 걸었습니다. 아주 많이 걸었어요. 동무들은 모두 입을 헤 벌리며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주 많이 걷다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그만 미끄러졌어요. 미끄러지면서 몸이 흔들렸고, 몸이 흔들리면서 모래밭으로 쿵 떨어졌는데, 쿵 떨어지면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에 왼팔이 깊고 길게 찢겼습니다.


  떨어지면서 거의 넋을 잃었지 싶어요.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고 느꼈어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떠한 모습도 보지 못했어요. 그저 내 둘레로 동무들과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울고 소리치는 모습만 멍하니 보았어요. 그 다음에는 우리 형이 어머니한테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소리와 모습을 멍하니 보았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드러누운 모습을 보았어요.


  나는 이때 일이 아주 커다랗게 아로새겨졌기에 국민학교 높은학년에서도 중·고등학생 때에도, 나중에도 어머니와 형한테 이 얘기를 하곤 하는데, 아무도 이때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더러 거짓말을 지어서 한다고 말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이무렵부터 나는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바라보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몰라요. 내 몸에서 아픈 데를 느끼지 못하면서 나를 보았으니,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보았겠지요.


  그동안 잊던 한 가지가 얼마 앞서 생각났는데, 어머니는 나더러 내 왼팔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내 왼팔이 너무 길고 깊게 찢어져서 도무지 꿰맬 수 없다 했어요. 나이가 어려 마취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은 “거기 쳐다보지 마. 다 괜찮아. 다 나아.”였지 싶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는 깊이 잠들었고, 병원에서 나와 학교를 다시 다닐 적에도 왼팔을 쳐다보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자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살았어요.


  이렇게 한참 지내다가 왼팔이 찢어졌다는 생각까지 잊던 어느 때, 내 왼팔을 문득 보았는데, 감쪽같이 생채기가 사라졌습니다. 딱히 왼팔에 무엇을 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머니가 날마다 소독만 해 주었겠지요. 오십 센티미터 남짓 찢어졌을 텐데, 이 생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생채기는 왜 나한테 왔다가 사라졌을까요.


  내 왼팔이 찢어졌다가 아문 지 서른 해쯤 됩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어딘가를 다칠 적에, 피가 나거나 찢어지거나 할 적에, 아이들한테 늘 말합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나아. 그러니 그냥 놀아.”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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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아끼는 아이들


  마실을 다니면 아이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훨씬 잘 달린다. 작은아이는 으레 큰아이 꽁무니를 좇기 마련인데, 이렇게 작은아이가 뒤를 좇지만, 뒤를 좇으면서 다리에 힘이 붙는다. 큰아이는 혼자 저만치 앞서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동생한테 마주 달린다. 동생을 기다리기도 하고, 동생과 오락가락하면서 놀곤 한다.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바라본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마주한다. 작은아이는 큰아이한테 기댄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받아 준다. 어버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받아 주고, 아이는 어버이를 마주하면서 기댄다. 4347.7.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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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헌책방 책숲 (2013.8.12.)



  헌책방 아주머니한테 그림을 한 장 그려서 드리기로 한다. 헌책방은 어떤 곳일까. 헌책방은 도시에 있는 숲집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모든 책은 나무로 만들고, 모든 나무는 숲에 있으며, 나무로 짠 책꽂이에 나무로 만든 책을 두면서 나무가 자라는 숲을 지키는 길을 밝히는 데가 책방이니까. 그래서, 나무를 보여주는 나뭇잎을 그리고, 별비가 내리며 반짝반짝 곱게 빛나는 아름다운 하늘빛을 담아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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