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통을 처마 밑으로



  지난해에 오줌통을 마루 아닌 처마 밑으로 옮기려 했으나 잘 안 되었다. 엊그제까지 오줌통은 마루 한쪽에 놓았다. 이제 이 오줌통은 섬돌 옆 처마 밑에 둔다. 이틀째인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섬돌로 내려선 뒤 처마 밑에 있는 오줌통에 똥이랑 오줌을 잘 눈다. 시골집이니 뒷간은 마땅히 집안에 없다. 마당 한쪽에 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잘 컸다. 새벽이든 밤이든 씩씩하게 바깥에서 쉬를 눈다.


  아이들도 곧 알 테지. 깜깜한 밤이나 희뿌윰한 새벽에 마당으로 내려서서 쉬를 누면, 바람맛이 다르고 바람결이 새로운 줄 느낄 테지. 마루를 한결 넓게 쓸 수 있겠네. 마루에 있는 자질구레한 짐도 마저 치워야겠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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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인형을 보며



  큰아이가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오려서 만든 종이인형이 밥상 귀퉁이에 앉아서 조용히 쉰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밥을 먹을 무렵 큰아이가 밥상에 함께 올려놓았구나. 밥을 다 먹고 난 뒤 큰아이는 다른 놀이에 빠져들면서 종이인형을 잊었네.


  큰아이는 처음에는 종이에 그림을 그린 인형으로 놀았고, 다음에는 가위로 오렸으며, 이제는 팔다리와 허리를 접어서 논다. 큰아이는 앞으로 종이인형을 어떤 모양으로 새롭게 만들까? 큰아이가 이제껏 만든 종이인형이 수북하게 많다. 오리고 만들고 새로 그리고 또 오리면서 날마다 멋진 인형 동무들이 태어난다. 4347.9.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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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가슴



  어쩐지 가슴이 많이 갑갑하다. 생각을 기울이고 다시 기울인다. 남이 나를 갑갑하게 하는가, 내가 나를 괴롭게 하는가.


  어떤 이는 밀양이나 강정에서 갑갑하다고 느낀다. 어떤 이는 공장에서 갑갑하다고 느낀다. 어떤 이는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에서 갑갑하다고 느낀다. 어떤 이들은 ㅈㅈㄷ신문을 들추면서 갑갑하다고 느낀다. 요즈음 참 많은 이들은 세월호에서 갑갑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이는 시골 논밭에서 갑갑하다고 느끼며, 어떤 이는 한국말을 놓고 갑갑하다고 느낀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엉터리로 쓰는 줄 느끼지 못하는 얼거리가 갑갑하다. 나는 참말 이 대목이 갑갑하다. 살며시 눈을 감고 마당에 선다. 후박나무 밑에 서서 생각에 잠긴다. 곰곰이 헤아리고 보니,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고 한국말을 알맞게 쓰려 하지 않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익히 보면서 내가 이 길로 왔다고 느낀다.


  일제강점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엉터리가 되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탓도 있지만, 이 하나뿐이겠는가. 사람을 신분과 계급으로 나누어 어마어마하게 짓밟은 조선 사회 탓도 아주 크다. 조선이라고 하는 ‘임금님 권력 봉건 정치’가 무너질 즈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양반 문서’를 사겠다고 법석댄 꼴을 돌아본다. 얼마나 괴롭고 아팠으면 양반 문서 따위를 돈으로 사서 끔찍한 푸대접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런데, 양반 문서를 산대서 신분과 계급이 사라질까? 양반 문서를 못 사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은, 이런 문서를 안 사고 버티는 사람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지난날 한겨레가 양반 문서를 사들이려고 악다구니였듯이 오늘날 한국은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려고 악을 쓴다. 이뿐인가. 돈을 더 많이 거머쥐려고 용을 쓴다. 이러는 동안 스스로 삶을 가꾸는 길하고 아주 동떨어진다. 삶이 아닌 신분이나 계급만 바라보니, 삶이 아닌 돈만 바라보니, 삶이 아닌 겉치레만 바라보니, 우리는 스스로 넋을 잃거나 잊는다.


  삶은 생각으로 짓는다. 생각은 말로 짓는다. 그러니, 스스로 말을 올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생각을 올바로 짓지 못할 테니, 삶을 올바로 짓지 못하리라 느낀다. 내가 한국말을 살피면서 한국말을 올바로 다스리려고 하는 일을 하는 까닭은 바로 이 대목에 있다고 느낀다.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슬기롭게 짓고 싶기에 내 삶을 짓는 바탕이 되는 생각을 슬기롭게 가누고 싶다. 생각을 슬기롭게 가누고 싶으니 말부터 슬기롭게 다스리고 싶다. 나부터 말과 넋과 생각과 삶을 즐겁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럽게 지으면서, 내 이웃과 동무도 이녁 말과 넋과 생각과 삶을 이녁 나름대로 즐겁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럽게 지을 수 있기를 꿈꾼다. 4347.9.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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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노들마루 (2014.9.25.)



  두 가지 이름을 그리기로 하면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말을 읊는다. 하나는 우리 집에 찾아온 셋째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도서관이 앞으로 나아갈 곳을 헤아리는 이름이다. 어떤 이름을 누구한테 붙일는지는 모른다. 다만, 먼저 나한테 떠오른 이름 하나를 적는다. 이 이름을 다른 곳에서 누군가 쓸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도 이 이름을 그려서 즐겁게 쓸 수 있다. ‘노들’은 어느 마을 이름이고, ‘마루’는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이름이다. ‘미루’라는 이름도 어쩐지 마음이 끌렸는데, ‘노들’하고 어울리자면 ‘마루’가 한결 낫구나 싶다. 숲을 이루는 깊은 멧자루가 함께 있는 ‘노들마루’를 꿈꾸어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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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어렴풋하게 본



  어릴 적에 어머니 모습이 어떠했는지 가만히 떠올린다. 날마다 끼니를 챙겨서 차리는 어머니는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 어떻게 쉬셨는지 가만히 헤아린다. 어머니는 두 다리 뻗고 등허리를 바닥에 붙일 때까지 쉬는 일이 없이 지내신다.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면 참 힘드시겠네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몸이 얼마나 힘든 노릇인지 헤아리거나 짚지는 못했다.


  오늘 나는 어머니가 예전에 서던 그 자리에 서서 밥을 짓는다. 졸립건 힘들건 고단하건 바쁘건 아무튼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동안 온힘을 기울여서 짓는다.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면 내 마음은 슬그머니 조용히 눕고 싶다. 날마다 문득문득 돌아본다. 어릴 적에 본 어머니 모습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아마 그무렵 어머니는 오늘 나보다 훨씬 고단하면서 등허리가 결렸을 테지.


  어머니가 일하실 적에 뒤에서 어깨를 곧잘 주무르곤 했는데, 어머니 어깨는 늘 딱딱했다. 내 어깨는 어떠한가. 내 어깨도 딱딱한가.


  밥상에 모두 다 차려도 수저는 잘 안 놓는다. 아마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버릇이지 싶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혼자 다 차리셔도 수저만큼은 안 놓으시곤 했다. 아버지가 물으면 “깜빡했지요.” 하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일부러 그러시지는 않았을까. 함께 밥 먹는 한집 사람이라면 수저쯤은 스스로 놓으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수저 놓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늘 알뜰히 챙겨서 올리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밥상에 수저를 안 놓으면 나도 수저를 안 놓고 가만히 지켜본다. 오늘 아침에 큰아이가 나한테 묻는다. “수저 어디 있어요?” “수저는 네가 좀 놓으면 안 될까?” “네.” 큰아이한테 말하고 나서 조금 더 부드러우면서 재미나게 말하면 한결 나았을 텐데 하고 깨닫는다. ‘밥은 아버지가 차렸으니 수저는 네가 놓으렴’이라든지 ‘응, 네가 수저를 놓으면 되겠네’쯤 말한다면 내 마음도 훨씬 따사로울 수 있으리라.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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