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말삶

말 좀 생각합시다 78


 절하루


  저는 열매배움터(중학교)에 들어간 1988년에 영어를 처음 배웠습니다. 그때 배운 낱말 가운데 ‘temple’이 있는데, 영어 낱말책은 ‘사원’으로만 풀이했습니다. 낱말책에 적히기로도 ‘사원’이고, 영어 길잡이가 가르치기로도 ‘사원’이었어요. ‘사원’이란 말을 이때 처음 들었기에 몹시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사원’이란 낱말을 외우면서도 어쩐지 동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닐 즈음 우리 낱말책에서 ‘사원(寺院)’을 찾아보니 “절. 사찰”로 풀이합니다. 무릎을 탁 쳤어요. ‘절’이라 풀이하면 될 영어 ‘temple’을 ‘사원’이라 적은 셈이니까요. 그나저나 ‘사원 = 절. 사찰’이라 나온 낱말책이기에 다시 ‘사찰(寺刹)’을 찾아보는데 “= 절”로 풀이하더군요.


  멍했습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사원·사찰 = 절’인 얼거리예요. 우리말은 절이요, 우리나라 사람은 절이라 말하는데, 막상 낱말책이나 영어 배움책은 절을 ‘절’이라 이야기하지 않는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요즈막에 절집에서 하루를 묵거나 단잠을 누리는 일을 놓고서 ‘템플스테이’라는 영어를 쓰곤 합니다. 우리말 ‘절’도 안 쓰지만, 한자말 ‘사원·사찰’도 안 써요. 나라 곳곳에 늘어나는 마을책집이 있고, 이 마을책집에서는 ‘북스테이’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말은 틀림없이 ‘책’이지만, 책집에서 하루를 묵는 일을 놓고는 우리말 아닌 영어로 이름을 지어서 쓰곤 하더군요.


  절집이나 책집에서 하루를 묵는 살림길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태어나지 않았기에 영어를 받아들여서 쓸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 땅에 걸맞게 마땅한 이름을 새로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말이지요.


  절집에서 절살림을 누리는 길이라면 ‘절살림·절집살림’처럼 수수하게 쓸 만합니다. ‘절빛마실·책빛마실’처럼 절집이나 책집에 마실을 하되 더 깊은 빛을 본다는 느낌을 담아도 돼요. 절살림하고 책살림을 곁에 놓고 달콤한 하루를 누리며 잠도 잔다면 ‘절집단잠·절빛단잠’도 어울려요. 하루를 누린다는 얼개로 ‘절집하루·절하루·책집하루·책하루’나 ‘절하룻밤·절밤·책하룻밤·책밤’이라 할 만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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