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말 좀 생각합시다 77


 첫코


  뜨개질을 하는 분이라면 뜨개질에서 ‘첫코’가 얼마나 큰가를 잘 압니다. 삽을 쥐어 일하는 분이라면 삽일에서 ‘첫삽’이 참 대수로운 줄 알아요. 길을 나서는 사람이라면 모든 마실길에 ‘첫길’이나 ‘첫걸음’이 큰 자리를 차지하는 줄 압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기 입에서 터져나올 ‘첫말’을 기쁘게 기다립니다. 즐겁게 밥을 지은 사람이라면 밥자리에서 ‘첫술’을 얼마나 맛나게 뜨려나 조마조마 지켜봅니다.


  모든 일을 처음 하는 자리라면 ‘처음’이라 하면 되는데, 우리 삶자리마다 처음을 가리키는 낱말이 수두룩히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이런 말마디는 꾸준히 늘어날 만하지 싶어요. 글쓰기를 좋아하면 ‘첫글’을, 이야기를 좋아하면 ‘첫마디’를, 겉모습을 따지면 ‘첫모습’을, 냇가 바닷가 샘가 우물가를 좋아하면 ‘첫물’을,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하기를 바라면 ‘첫손’ 같은 말이 퍼뜩 떠오를 테고, 이런 말은 차츰차츰 널리 씁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첫말을 어떻게 여느냐가 참으로 대수롭습니다. 첫느낌을 잘 살릴 첫발을 잘 떼어야지요. 요즈막에 ‘셰어(share)’라는 영어를 앞에 붙여 ‘셰어하우스’나 ‘셰어푸드’ 같은 말을 쓰는 분이 제법 있고, 이런 말씨는 차츰 퍼져 ‘셰어메이트’ 같은 말도 쓰더군요. 아마 ‘셰어페스티벌’ 같은 말도 생기겠구나 싶어요. 그런데 왜 ‘셰어’라는 영어를 끌어들여야 할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나누는 자리라면, 나누는 일이라면, 나누는 마음이라면, 나누며 함께 기쁘려는 뜻이라면, ‘나눔·나누다’ 같은 말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나눔 한 마디로 처음을 연다면 ‘나눔집’입니다. ‘나눔밥’이 될 테고, ‘나눔잔치’를 엽니다. 나누는 일이나 잔치를 함께하는 벗이라면 ‘나눔벗’이에요.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은 ‘나눔이’일 테고, 나눔마을·나눔마당·나눔옷·나눔책·나눔자리·나눔놀이·나눔일·나눔돈……처럼 새롭게 나누는 마음과 뜻를 한 올 두 올 풀어내어 이야기를 엮을 만합니다. 첫코를 잘 꿰어 다음코가 이쁘고, 첫말이 고와 다음말이 곱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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