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나름



  참 멋지구나 싶은 이야기를 넌지시 담은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읽고서 느낌글을 써 봅니다. 줄거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도 멋지고, 그림책에 흐르는 아이들 낯빛이 바뀌는 모습도 멋지며, 아이들이 어른하고 다르게 씩씩하면서 고운 마음결을 드러내는 몸짓도 멋지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처럼 이 그림책에서 이러한 숨결을 느끼거나 배우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똑같은 책 하나’에서 느끼거나 배우겠지요. 또는 아무것도 안 느낄 수 있고, 어느 것도 못 배울 수 있어요.


  거꾸로 생각해도 이와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느 책을 놓고서 무척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좋다고 여길 수 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좋다고 여기는 책에서 어떤 멋짐도 아름다움도 좋음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책을 네가 반드시 좋다고 느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좋다고 느끼는 책을 내가 꼭 좋다고 느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제대로 바라보고 즐겁게 마주하며 사랑으로 삭일 수 있으면 됩니다.


  배우려고 책을 읽습니다.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살림을 배우려고 나한테 맞춤한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사랑하려고 책을 읽습니다. 아직 찬찬히 사랑하지 못하는 삶을 되새기면서 내가 스스로 지을 사랑을 헤아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꿈꾸려고 책을 읽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나아갈 이 길을 씩씩하게 걸으려고 즐겁게 노래할 책을 살피며 읽습니다. 2016.9.1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남들이 뭐라 읽든

 

  어제 책방에서 새롭게 만난 그림책을 놓고 곧 느낌글을 쓸 생각입니다. 이 그림책을 시골집으로 잘 들고 가서 우리 아이들하고 읽은 뒤에 글을 쓰려 하는데, 먼저 짤막하게 몇 줄로 느낌을 적어 보았어요. 이러다가 다른 분들이 이 그림책을 놓고 쓴 느낌글을 문득 살폈는데, ‘좋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별점을 꾹꾹 눌러서 주지 않은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니 왜? 아니 이 그림책 좋다면서 왜 별점은 깎지?’ 이러다가 다시 생각했어요. ‘남들이 뭐라 읽든, 또 남들이 뭐라 말하든, 내가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이면 넉넉하지 않니? 남들이 신나게 추천한대서 우리 아이들한테 읽을 책이 아니잖아? 나부터 먼저 즐겁게 읽고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그저 즐겁게 아이들한테 선물할 수 있는 책이잖아?’ 2016.8.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라볼 책

 

  서울마실을 하니 새삼스럽도록 ‘서울에 사람들 참말 많고마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참말로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합니다. 겨우 입에서 이 말을 안 터뜨리고 속으로 삭입니다. ‘아따 요로코롬 사람이 많으니 서울이 덥지’ 같은 생각도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뒤따를 즈음 생각을 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마실을 ‘수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오지 않았거든요. 내 할 일이 있어서 이 할 일을 즐겁게 하려고 왔어요. 전철에서 버스에서 길에서 문득 서서 눈을 감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다스려 봅니다. 다시 눈을 뜨고 수첩을 꺼내어 몇 마디를 적습니다. “바라볼 곳. 바라볼 것. 바라볼 님. 바라볼 집. 바라볼 길. 바라볼 넋. 바라볼 책.” 눈앞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자동차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면서 ‘구경놀이(관전평)’를 하겠느냐고 속으로 묻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가방에 챙긴 책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마음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곁에서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꿈과 파랗디파랗게 부는 바람을 바라보아야지요. 2016.8.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꿈을 그릴 수 있는 살림



  틈틈이 꿈그림을 그려서 책상맡에 놓거나 부엌이나 마루에 붙입니다. 꿈그림을 그린 지는 이제 서너 해쯤 됩니다. 그동안 꿈그림을 딱히 안 그리며 살았습니다. 꿈그림을 새롭게 그리다가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꿈그림이란 내가 스스로 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담은 그림입니다. 내가 늘 생각하고 내가 언제나 되새기면서 즐겁게 나아가고 싶은 길이 바로 꿈입니다. 꿈그림이야말로 가장 먼저 그려서 책상맡에 붙일 그림일 테지요. 그렇지만 막상 꿈그림을 그려서 붙이자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어요.


  학교에서는 급훈이나 교훈이라는 글씨를 교실마다 붙여요. 이런 급훈이나 교훈으로 적히는 글씨는 ‘나쁜 글’은 없어요. 다만 가슴에 와닿기 어려운 글이기 일쑤예요. “하면 된다” 같은 글씨는 참으로 훌륭한 글씨이기는 하되 ‘뭘’ 하면 되는가를 밝히지 않아요. 또 ‘누가’ 하면 된다거나 ‘언제’ ‘어디에서’ ‘왜’ 하면 되는가도 밝히지 않아요.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사회에서 늘 길들여지는 굴레는 바로 “하면 된다” 같은 급훈이나 교훈이지 싶습니다. 말은 틀림없이 좋지만 알맹이가 없어요. “하면 된다”는 말처럼 참말 무엇이든 하게 이끌어 내요. 그렇지만 스스로 꿈을 그리면서 한 삶이 아니라 그저 밀어붙이는 얼거리로 “하면 된다”이기에 어떤 일을 해내고 나더라도 보람이 없어요.


  그냥 그림이 아니라 꿈그림을 그립니다. 추상화도 초상도 아닌 꿈그림을 그립니다. 예술도 문화도 아닌 꿈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을 마음으로 고이 담으면서 꿈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책 한 권을 읽을 적에 ‘더 많은 책’을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한 권을 발판 삼아서 즐거운 살림을 짓는 슬기를 가다듬겠다는 생각이 될 때에 참으로 즐겁습니다. ‘남들이 다 읽는 책’이나 ‘잘 팔리는 책’이 아닌 ‘사랑으로 읽어서 사랑을 지피는 책’을 두 손에 쥐고서 활짝 웃는 몸짓이 되려 합니다. 2016.8.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읽고 쉬고 읽고 쉬고



  고흥에서 서울로 오는 시외버스에서 책을 한 권 읽은 뒤 머리를 등받이에 폭 기대어서 눈을 감고 쉽니다. 머리에 들어온 이야기를 곰곰이 삭이고 나서 새로운 책을 한 권 꺼내어 새롭게 읽습니다. 새롭게 꺼낸 책을 다 읽고서 새삼스레 머리를 등받이에 폭 기대어서 눈을 감고 쉽니다. 이렇게 네 차례쯤 하며 책 네 권을 읽습니다. 고흥부터 서울까지 네 시간이 훨씬 넘는 널널한 마실길이거든요. 어제 하루 이처럼 책을 읽었다면, 오늘 하루도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버스길에 책 네 권쯤, 또는 대여섯 권까지도 느긋하게 읽을 테지요. 이러고 나서 우리 보금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아이들하고 어떤 놀이를 새롭게 지으면서 활짝 웃을까 하고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2016.7.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