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볼 책

 

  서울마실을 하니 새삼스럽도록 ‘서울에 사람들 참말 많고마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참말로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합니다. 겨우 입에서 이 말을 안 터뜨리고 속으로 삭입니다. ‘아따 요로코롬 사람이 많으니 서울이 덥지’ 같은 생각도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뒤따를 즈음 생각을 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마실을 ‘수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오지 않았거든요. 내 할 일이 있어서 이 할 일을 즐겁게 하려고 왔어요. 전철에서 버스에서 길에서 문득 서서 눈을 감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다스려 봅니다. 다시 눈을 뜨고 수첩을 꺼내어 몇 마디를 적습니다. “바라볼 곳. 바라볼 것. 바라볼 님. 바라볼 집. 바라볼 길. 바라볼 넋. 바라볼 책.” 눈앞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자동차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면서 ‘구경놀이(관전평)’를 하겠느냐고 속으로 묻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가방에 챙긴 책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마음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곁에서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아야지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꿈과 파랗디파랗게 부는 바람을 바라보아야지요. 2016.8.3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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