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서재는



  우리 집 서재는 두 갈래 책으로 가꿉니다. 첫째, 읽은 책입니다. 둘째, 읽을 책입니다. 제가 장만하는 모든 책은 처음에 책집에 마실을 가서 찬찬히 읽어 봅니다. 어느 만큼 읽어 보고서 ‘더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적에 장만합니다. 그러니 어느 만큼 줄거리를 모르고서 장만하는 책은 없는데, 열 해나 스무 해쯤 흐르면, 때로는 서른 해쯤 훌쩍 지나가고 나면, 그만 줄거리를 까맣게 잊곤 합니다. 비록 서른 해 앞서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읽은 책” 아닌 “읽을 책”이 되고 말더군요. 누가 우리 책숲집에 있는 책을 보면서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나요?”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렇게 많은 책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이 책을 장만할 적에는 다 읽으면서 샀어도 이제 줄거리를 잊은 책도 많아서, 이 책은 앞으로 새로 읽을 책이라고 여깁니다. 오늘 아침이나 엊저녁에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제가 이 자리에서 다시 손에 쥐면 늘 ‘새로 읽을 책’이에요. 그러니, 서재라는 곳은, 앞으로 새롭게 읽으면서 마음에 기쁨을 심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책입니다. 우리 집 서재는 온통 씨앗입니다. 마음씨앗이지요. 숲이 푸르게 우거지도록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씨앗이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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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도서관



  책이 곁에 있으면, 때와 곳을 가로질러서 삶을 새로 돌아보며 배울 수 있도록 이끄는 길을 누립니다. 도서관에 두는 책이라면, 그때그때 갓 나온 책을 사람들이 손쉽게 빌려서 보도록 하는 몫보다는, 삶을 새롭게 배워서 즐겁고 슬기롭게 눈을 뜨고 마음을 가꾸는 길을 밝히는 터전이 되면 좋으리라 봅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꾸준히 장만해서 ‘오래된 책 곁에 나란히 두면’ 좋습니다. 빌려가는 사람이 적은 책이란, 도서관지기가 책손한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서 그만 기다리다 지쳐서 먼지를 먹는 책입니다. 신문기자도 서평가도 ‘오래된 아름다운 책’을 다루거나 말하지 못합니다. 신문기자나 서평가는 보도자료를 받아서 고작 ‘갓 나온 책’을 다루거나 말할 뿐입니다. 도서관지기나 책손으로서는 갓 나온 책 아닌 오래된 아름다운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보도자료도 소개글도 없는 책’이란 무엇인가 갸웃갸웃하면서 살며시 손을 뻗어 보기를 바랍니다. 오랜 나날을 살아내며 이야기를 품은 책으로 다가서 보기를 바랍니다. 갓 나온 책이라서 더 새롭지 않습니다. 오래된 책이라서 낡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알차거나 아름답기에 새로운 책입니다. 겉종이가 낡거나 바랬어도, 속에 담은 줄거리가 알차거나 아름답기에 두고두고 새로워 우리 마음에 빛줄기가 되는 책이고, 이러한 책을 건사하는 쉼터이자 만남터이자 우물터이자 이야기터가 바로 도서관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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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알아볼까요



아름다운 책을 언제 알아볼까요, 하고 묻는 이웃님이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기를 바라신다면, 언젠가는 알아볼 수 있어요. 다만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내지 마셔요. 서두르면 끝내 못 알아보고요, 조바심을 내면 그만 지쳐서 등을 돌리고 말아요. 모든 아름다운 책은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난 삶에서 아름답게 뜬 눈으로 알아본답니다.” 값진 책도, 좋은 책도, 훌륭한 책도, 뜻있는 책도 다 같습니다. 때가 이르면 다 알아보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때가 이르러 다 알아볼 즈음에는 새 수수께끼를 하나 내어 보셔요. 아름다운 바람을, 아름다운 구름을, 아름다운 꽃을, 아름다운 흙을, 아름다운 나무를, 아름다운 냇물을, 아름다운 풀벌레를, 아름다운 멧새 노랫가락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 보셔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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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를 스스로 알기



  보일러를 스스로 아는 길은 여럿일 텐데, 저는 여러 길 가운데 손수 보일러를 장만해서 집에 붙이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지난주에는 순환펌프가 맡은 일을 조금 더 깊게 배웠고, 오늘은 순환펌프에서 콘덴서라고 하는 작은 전자장치가 하는 일을 조금 더 넓게 배웁니다. 이 배움길을 걸으면서 돌아봅니다. 어릴 적에 누가 저한테 보일러 배관이나 손질이나 새로놓기를 가르친 적이 있는가 하고요. 아이 손힘으로는 보일러를 놓거나 손질하기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아귀힘이 부쩍 세지는 날을 맞이해요. 어릴 적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는지 모르겠지요. 콘덴서 다음으로는 또 무엇을 배우려나 헤아려 봅니다. 조금 더 깊고 넓게 배우면, 아마 스스로 난로를 뚝딱뚝딱하는 길까지 배우려나 하고 어림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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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휘트니〉를 보겠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간 휘트니 휘스턴(Whitney Houston) 님 삶자락을 보여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 없으니 디브이디로 나와서 팔 때까지 기다리면 언젠가 이 영화를 볼 수 있겠지요. 휘트니는 노래를 부를 적에 즐거웠을까요? 노래를 부를 적에는 이 별을 잊고 다른 별에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을까요? 이 땅에 들어와서 비를 실컷 뿌려 주었으면 싶은 태풍이 고흥을 살며시 스쳐서 지나가는 듯한 아침에 휘트니 노래를 가만히 되듣습니다. 이녁은 태풍 같았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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