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소리



  책을 읽는 소리가 울린다. 책순이가 책을 읽으니 책돌이가 가만히 귀여겨듣는다. 책순이가 책을 읽으니 온 집안에 맑은 소리가 퍼진다. 아이가 글을 읽는 소리는 고운 가락이 얹히면서 나긋나긋 퍼진다. 아이가 새롭게 눈을 뜨면서 글을 읽는 소리는 푸른 숨결이 깃들면서 고르게 흩어진다.


  노래를 하듯이 글을 읽는다. 노래를 부르면서 책을 읽는다.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삶을 그린다. 사랑스러운 꿈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꿈을 헤아린다. 어떤 책을 읽을까? 아주 마땅하지. 아이와 함께 아름다운 삶을 나누면서,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스러운 꿈을 짓는 이야기로 엮은 책을 읽어야지. 4348.4.26.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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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이녁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은 이녁 이웃이 지은 삶을 손에 쥔다. 책을 장만하는 사람은 이녁 이웃이 나누어 주는 사랑을 기쁘게 얻는다. 책을 건사하면서 아끼는 사람은 이녁 이웃한테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을 함께 쐰다. 책을 즐겁게 읽고 나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람은 이녁이 짓는 하루에 웃음꽃을 피운다.


  바로 내가 책을 읽는다. 바로 내 손에 책을 쥐어 읽는다. 바로 내가 씩씩하게 책방마실을 한다. 바로 내 손길이 묻은 책 하나가 우리 집에 곱게 있다. 4348.4.2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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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면서 읽는다



  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도마질을 할 적에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손에 물이 묻는 부엌일을 모두 마친 뒤, 이제 국물 간만 보아도 되면 드디어 손에 책을 쥘 만합니다. 밥내음을 느끼고 국내음을 맡으면서 책을 한 줄 두 줄 읽습니다.


  밥과 국이 거의 다 될 무렵, 입에서 저절로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책을 석 줄 넉 줄 읽습니다. 이제 밥과 국이 다 됩니다. 살짝 뜸을 들이면서 춤을 춥니다. 발바닥을 구르고, 부엌에서 콩콩 뜁니다. 밥을 다 짓고 나서도 손에는 책이 있고, 책을 손에 쥔 채 폴짝폴짝 춤을 추면서 다섯 줄 여섯 줄 읽습니다.


  혼자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가면, 버스나 전철에서뿐 아니라 길에서도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이렇게 하면 둘레에서 흐르는 모든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소리가 가뭇없이 사라져요. 나부터 스스로 즐겁고 내 둘레로도 기쁜 기운을 퍼뜨릴 수 있구나 싶어서, 손에 책을 쥐며 걷는 일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4348.4.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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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책



  사람들이 거친 말을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마음이 거치니까 거친 말이 나옵니다. 남이 아닌 나를 돌아볼 적에도, 내가 스스로 마음이 거칠 적에는 참으로 거친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말을 내가 스스로 바라보면서 ‘어쩜 나는 내 마음을 이렇게 거칠게 망가뜨렸을까’ 하고 뉘우칩니다. 흘러나온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흘러나온 말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앞으로는 ‘거친 말을 하는 내’가 아니라 ‘사랑을 담아서 말을 하는 내’가 되자고 다짐합니다. 이제부터 ‘사랑스러운 말’로 ‘거친 말’을 따사롭게 품자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만 시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오직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책’이 아니라 ‘대학입시 문제집’을 풀어야 합니다. 누구나 잘 알듯이, 그러나 모르는 사람도 많을 텐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커다란 새책방에서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한 ‘책’은 참고서와 문제집입니다. 그나마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에서도 ‘학습 참고 도서’가 대단히 많습니다. 게다가 문학책에서마저 ‘입시 대비 문학 가려 읽기’ 같은 책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은 나날이 거칠어집니다. 사람들이 나날이 거친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거친 마음이 될까요? 사회가 거칠고 교육과 학교가 거칠며 정치나 경제도 거칠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문화와 예술조차 매우 거칠어요. 여기저기 다 거칩니다. 부드럽거나 사랑스럽거나 따뜻한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학교나 경제나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영화와 만화에서도 폭력과 배신과 미움과 싸움으로 줄거리를 이끄는 작품이 아주 많아요. 툭하면 총싸움이요, 걸핏하면 거친 말이 흐르는 문학이요 영화이며 학교와 마을과 사회입니다.


  입시지옥을 없앤다고 해서 이 모두를 바로잡을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입시지옥이 아닌 ‘삶교육’과 ‘사랑교육’이라면, 사람들이 거칠게 말해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아름다운 정치와 사회와 문화라면, 사람들이 굳이 ‘거친 마음’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겠지요. 군대와 전쟁무기를 굳이 만들지도 거느리지도 않는다면, 사람들이 서로 거친 몸짓으로 맞설 일도 없겠지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면, 너뿐 아니라 내가 함께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고 늘 느낍니다. 내가 아직 누군가하고 이야기를 나눌 만하지 않다면 ‘네 탓’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내 탓’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즐거우면서 기쁘게 새로 태어나려는 마음이라면 참말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스레 주고받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마음이나 몸짓이 아직 아니라고 느낍니다. 입시지옥에 길들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그예 입시지옥에 밀어넣기만 합니다. 아이들을 여느 학교에 넣는 일조차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모는 셈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책’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책일 때에 마음이 자랍니다. 마음이 자라는 사람이 부드러우면서 따뜻합니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말을,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말을 할 테지요.


  제 삶을 잃고, 제 말을 잃고, 제 넋을 잃고, 제 길을 잃고, 제 꿈을 잃으니, 제 사랑과 제 마음을 함께 잃는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사랑스럽게 가다듬거나 갈고닦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앞으로도 거칠거나 막된 말만 불거지리라 느낍니다. 4348.4.1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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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진기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릴 적에 부엌에 책 한 권씩 놓는다. 밥을 끓이는 사이에 빈틈이 생기면서 손이 마르면 한두 쪽이라도 펼칠 생각이다. 때로는 느긋하게 예닐곱 쪽을 읽을 때가 있으나, 웬만하면 한 쪽조차 못 건드리기 일쑤이다. 아무튼, 책 한 권을 늘 부엌에 놓고서 손이 비는 틈을 헤아린다. 그런데 손이 비면 손이 젖기 일쑤요, 손이 마르면 손을 쉴 틈이 없곤 하다.


  어디를 가든 사진기를 꼭 챙긴다. 사진을 반드시 찍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떤 사진이 나한테 찾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아직 나한테 낯설거나 새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처음부터 ‘이 모습을 찍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내가 가만히 마음을 열고 기다리거나 마주하는 모습을 찍기도 한다.


  삶이 흐르기에 이야기가 흐른다. 삶이 흐르도록 지켜보면서 가꾸기에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가꾼다. 밥을 다 차려서 먹이고 난 뒤 한숨을 돌리면 느긋하게 책을 펼칠 수 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쳤어도 사진 찍을 생각은 안 하고 봄꽃과 봄바람과 봄새를 마주한다. 책에 싣지 못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사진에 담지 못하는 삶자락은 얼마나 넓은가.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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