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기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릴 적에 부엌에 책 한 권씩 놓는다. 밥을 끓이는 사이에 빈틈이 생기면서 손이 마르면 한두 쪽이라도 펼칠 생각이다. 때로는 느긋하게 예닐곱 쪽을 읽을 때가 있으나, 웬만하면 한 쪽조차 못 건드리기 일쑤이다. 아무튼, 책 한 권을 늘 부엌에 놓고서 손이 비는 틈을 헤아린다. 그런데 손이 비면 손이 젖기 일쑤요, 손이 마르면 손을 쉴 틈이 없곤 하다.


  어디를 가든 사진기를 꼭 챙긴다. 사진을 반드시 찍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떤 사진이 나한테 찾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아직 나한테 낯설거나 새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처음부터 ‘이 모습을 찍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내가 가만히 마음을 열고 기다리거나 마주하는 모습을 찍기도 한다.


  삶이 흐르기에 이야기가 흐른다. 삶이 흐르도록 지켜보면서 가꾸기에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가꾼다. 밥을 다 차려서 먹이고 난 뒤 한숨을 돌리면 느긋하게 책을 펼칠 수 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쳤어도 사진 찍을 생각은 안 하고 봄꽃과 봄바람과 봄새를 마주한다. 책에 싣지 못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사진에 담지 못하는 삶자락은 얼마나 넓은가.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