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9.

책하루, 책과 사귀다 70 일본책



책을 이웃하고 나누고 싶어 느낌글을 처음 쓰기로 마음먹은 때는 1991년이고, 푸른배움터(고등학교) 첫걸음(1학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책’은 되도록 적게 얘기하려고 애썼다면, 그무렵부터 “책이라면 그저 아름다운 책을 이야기할 뿐, 이 나라 책도 옆나라 책도 먼먼 나라 책도 가릴 까닭이 없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고자란 분이 쓴 책이 갈수록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거나 돈·이름·힘을 거머쥐는 윗자리에 올라서려는 낌새가 짙어, 못마땅한 책이 많기도 했습니다. 제가 쓴 책도 아니지만, 2006년에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널리 알리려고 애쓰니, “뭔 일본놈 책이 좋다고 그렇게 알려?” 하면서 핀잔하는 이웃이 많았습니다. 2021년에 《곁책》을 써냈는데, “이 책에 일본책을 많이 다루셨는데, 왜지요?” 하고 묻는 이웃이 많습니다. “누가 쓰고 그렸는가를 살피거나 따지지 말고, 줄거리·이야기에 사랑이 흐르는가를 헤아려 보셔요. 우리는 겉모습·이름으로 아름길이나 아름책을 읽지 않아요. 오직 사랑이란 눈으로 사랑을 찾아나설 뿐입니다.” 이웃나라 아름책을 읽고 알리면서 이 말을 보탭니다. “앞으로는 저 스스로 아름책을 쓰려고요. 이웃님도 아름책을 함께 써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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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9 술배



  저를 처음 보는 어린이가 “왜 남자가 머리가 길어?”, “남자야? 여자야?”, “선생님은 주량 어떻게 돼요? 우리 엄마는 맥주 되게 좋아하는데.”, “와, 알통맨이다! 알통맨이야! 선생님 알통 어떻게 키웠어요?” 하고 묻더군요. 집에서 어버이가 늘 보이거나 말하는 결에 따라 어린이 생각이 고스란히 자랍니다. 어린이는 왜 머리카락에 따라 순이돌이(남녀)를 가를까요? 집에서 어버이가 그렇게 사람을 가르거든요. 설거지나 빨래를 하는 사내를 처음 보는 어린이도 “왜 남자가 설거지를 해?”, “왜 남자가 빨래를 해?” 하고 묻습니다. 스무 살이 되도록 부엌칼을 쥔 적이 없거나 밥을 차린 적이 없는 젊은이를 만나고, 짝이 있고 아이를 낳았으되 서른 살이 넘도록 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훔친 적이 없는 분도 만나는데, 이러한 삶길에 서면 어린이는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배울까요? 걸어다닌 적이 없고, 골목놀이를 한 적이 없고, 아름다운 그림꽃책(만화책)을 쥔 적이 없고, 풀꽃하고 말을 섞은 적이 없고, 맨발로 풀밭을 거닌 적이 없고, 빗물을 혀로 받아서 먹은 적이 없는 어린이는 무엇을 물어보고 생각할 만할까요? 술배(주량)를 묻는 아이한테 빙그레 웃으며 “즐기고 싶은 만큼만 마셔.” 하고 얘기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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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8 천천히



  빨리 읽어치우는 마음과 숨결과 손길이 있으니, 더 빠르게 더 많이 뚝딱거리는 나라가 서는구나 싶습니다. 천천히 읽어내는 마음과 숨결과 손길이 있기에, 차곡차곡 가면서 찬찬히 누리고 채울 줄 아는 알찬 길로 나아가지 싶어요. 더 빠르기에 나쁘거나 더 천천하기에 좋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때로는 회오리바람이 싱싱 불듯 더 빠르게 갈 자리도 있겠지요. 때로는 바람 한 줄기 없구나 싶도록 조용하듯 더 아늑하면서 고요하게 이룰 터도 있을 테고요. 온누리는 아마 꿈그림대로만 안 갈는지 모릅니다. 꿈그림보다는 돈그림·힘그림·이름그림을 쳐다보는 어른이 많고, 오늘날 숱한 배움터(학교)는 아이를 돈·힘·이름에 길들이려 하더군요. 그렇지만 꿈그림을 헤아리면서 사랑그림을 바라고 살림그림을 짓는 분이 곳곳에서 조그맣게 씨앗 한 톨을 심는다고 느껴요. 푸른별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바로 씨앗지기가 곳곳에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그림이 없는 터에 꿈그림이 자라도록 찬찬히 가꾸고 싶기에 씨앗을 심고서 느긋이 기다리고 지켜봐요. 씨앗 곁에서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즐겨요. 꿈을 그리는 마음을 고이 건사하는 하루라면, 누구나 스스로 노래하면서 사랑을 즐겁게 심고 가꾸어 꽃을 피우고 새 씨앗을 둘레에 나누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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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67 멋



  낱말책은 이 낱말을 저 낱말로 풀어내는 책입니다. 낱말책은 멋을 부리지 못합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하다 싶은 길을 갑니다. 더 멋스럽다는 낱말을 올리지 않고, 안 멋스럽다면서 자르지 않아요. 모든 말을 수수하게 바라보면서 다룹니다. 어느 낱말을 돋보이도록 멋부린 뜻풀이나 보기글을 붙이지 못해요. 모든 낱말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며 값어치가 있기에, 모든 낱말을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건사해요. 우리 살림자리도 말꽃짓기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다스린다면 외려 멋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멋을 안 부려야 오히려 멋스럽지 싶어요. 꾸미면 꾸밈결일 뿐입니다. 치레하면 치레일 뿐이에요. 삶과 살림과 사랑이라는 숨결을 수수하게 담아내기에 그저 삶과 살림과 사랑이면서 시나브로 멋이 피어납니다. 글멋을 부릴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옮기는 글이면 넉넉합니다. 글치레를 할 일이 없습니다. 살림을 담는 글이면 즐겁습니다. 멋을 부리려 하기에 멋이 사라진다는 대목을 읽는다면, 맛깔나는 글이기를 바라면서 자꾸 꾸미려 들기에 맛깔나는 길하고는 도리어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투박하게 짓는 살림이 참으로 맛깔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누리고 짓고 가꾸는 삶을 그저 즐겁게 수수하면서 투박한 눈빛으로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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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52 힘들게 사네



  웬만한 어른조차 제 등짐을 못 듭니다. 엄청 무겁다고 할 만한 등짐에 사잇짐까지 여럿 겹쳐 들고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런 저를 두고 “힘들게 사네요”나 “고행하시네요” 하고 말하는 분이 있어 “저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즐겁게 이 길을 걸어요.” 하고 말합니다. 즐기는 하루가 모이고 살림하며 노래하니 삶이 사랑으로 나아가거든요. “자가용 좀 몰면 안 힘들 텐데” 하고 묻는 분한테 “저는 글을 쓰고 읽는 길을 가기로 했기에 손잡이를 안 쥐기로 했습니다. 손잡이를 쥐고서 어떻게 글을 쓰고 읽나요?” 하고 말하지요. “무거운 책을 짊어지느라 책을 못 읽지 않나요?” 하고 되묻기에 “전 이 등짐을 짊어지고 걸어다니면서도 글꾸러미(수첩)를 펴서 글을 쓰고 한 손에 책을 쥐어요. 걸으면서도 얼마든지 쓰고 읽어요.” 하고 보탭니다. 몸소 이고 지고 다니면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먼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누구나 스스로 이고 지며 살았어요. 아기는 어버이가 폭 감싸안을 적에 사랑스러운 기운을 느껴요. 종이꾸러미인 책도 똑같습니다. 두 손에 쥐고 펼 적에 책은 우리한테서 사랑빛을 받아서 반짝거려요. 손에 쥘 책을 등짐으로 이고 지며 집으로 나릅니다. 제 온사랑을 종이꾸러미한테 살며시 베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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