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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밭에서 노는 아이들 (도서관일기 2012.6.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아이들이 낮잠을 거르면서 더 개구지게 놀고 싶어 한다고 느끼기에, 두 아이 모두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을 논둑길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막바로 서재도서관으로 갈 수 있지만,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으니, 천천히 논둑길을 돈다.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옛 흥양초등학교 자리는 논 한가운데이다. 1960년대 어느 날, 이곳에 작은학교를 세우려 했을 적에, 시골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땅뙈기를 조금씩 내놓고 품을 함께 들여 학교 터를 닦고 운동장을 마련하며 건물을 올렸겠지. 나무를 심고 아이들을 돌봤겠지. 학교 둘레로는 온통 논이니,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 어버이와 이웃 어르신들 일 매무새를 언제나 바라보았겠지. 흙일로 바쁜 철에는 학교 교사 또한 마을 일손을 거들지 않았을까. 관사에서든 학교에서든 뻔히 둘레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밖에 없는데, 가만히 구경만 할 수는 없었으리라 본다.


  둘째 아이가 씩씩하게 걷고 달릴 수 있을 무렵에는 이곳 운동장까지 우리가 쓸 수 있을까. 아직 건물 반쪽만 겨우 쓸 수 있으니 무척 아쉽다. 운동장과 빈터까지 우리가 쓸 수 있다면, 이 좋은 흙밭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구르고 뒹굴며 흙놀이를 할 텐데. 아이들은 이 너른 흙땅에서 나무를 타고 나무를 돌보며 나무와 하나가 될 텐데.


  오늘은 오늘 누릴 수 있는 만큼 누리자고 생각하며 책 갈무리를 바삐 한다. 자질구레해 보이는 것을 치운다. 틈틈이 바닥을 새로 닦는다. 나무바닥 자리는 걸레로 닦기만 해도 되는데, 돌바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인다. 곧 둘째가 걸어다닐 테니 덜 걱정스럽지만, 어디에서든 맨발로 폭삭 앉아 책을 누릴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는데.


  아버지가 이러거나 말거나 두 아이는 서로서로 좇고 쫓기면서 논다. 이곳에서 뛰고 저곳에서 긴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춘다.


  좋다. 따로 어떤 굴레나 틀에 아이들을 집어넣어 이것을 배우고 저것을 외우라 시키지 않을 수 있으니 좋다. 아이들이 부를 노래는 어버이가 먼저 즐겁게 익힌 다음 함께 부르면 좋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는 어버이가 먼저 즐겁게 건사한 다음 서로 누리면 좋다. 어버이가 일하는 데가 아이들이 노는 데가 될 때에 아름답고, 어버이가 살아가는 곳이 아이들이 똑같이 살아가는 곳이 되면서 고향이라는 이름이 붙으리라.


  두 시간 남짓 책밭에서 놀던 아이들을 다시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웃마을 한 바퀴 빙 도는데, 모두 스르르 잠든다. 집에 닿아 한 아이씩 살포시 안아 잠자리에 누인다. 오래도록 새근새근 꿈나라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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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진을 붙인다 (도서관일기 2012.6.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 안쪽 곳곳에는 시멘트못 박힌 데가 있다. 예전에 초등학교로 있을 적, 교사들은 벽에 못을 박아 이것저것 걸어 놓은 듯하다. 이 못을 뽑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그대로 두어 내 사진틀을 걸기도 한다. 이제 책꽂이와 책을 얼추 갈무리했다고 여겨, 오늘부터는 책꽂이 벽이나 교실 벽 빈터에 사진과 포스터를 붙이기로 한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팔월 무렵에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끔 자질구레한 것은 골마루 끝자락에 몰아서 쌓고, 커다란 책꽂이로 가릴까 싶기도 하다. 아직 교실을 통째로 쓰지 못하니 자질구레한 짐이나 종이상자 쌓을 데가 마땅하지는 않다. 그러나, 슬기롭게 생각하면 자질구레한 짐이나 종이상자도 어떤 그림이 되도록 할 수 있겠지.


  골마루 바닥도 걸레로 조금 닦는다. 건물 바깥벽에 알림판을 어떻게 붙이면 좋을까 헤아려 본다. 간판집에 맡겨야 할는지, 내가 손수 만들어 붙이면 좋을는지 생각해 보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짐이 없도록 치운다. 비질을 한다. 햇살이 골고루 들어오니 따로 등불을 안 켜도 된다. 저녁에는 어두워지지만, 시골 저녁은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 때이니 그닥 걱정스럽지 않다. 모자란 시설은 모자란 시설대로 건사하자. 날마다 조금씩 예쁘게 꾸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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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6-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을 다 사신 거겠죠. 진짜 대단하십니다. 미래에 좋은 기록물과 자료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해요.

된장님이 사시는 마을엔 아이들이 많은가요? 된장님께서 이 폐교를 사용하실 정도면 거의 없을 것 같은데..저 책들이 많은 아이들이 저 도서관에서 읽고 떠들고 웃었으면 좋겠네요.

숲노래 2012-06-14 19:12   좋아요 0 | URL
종이책이 시중에 사라지더라도 우리 집과 마을에는 있으니 좋은 이야기를 오래오래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주 마땅한지 모르지만, 우리 시골마을에는 아이가 우리 집에만 있어요. 옆이나 옆옆 마을에도 아이는 없고, 면에 가면 있답니다 ^^;;;;;;

앞으로 좋은 분들이 우리 시골로 귀촌을 하러 찾아오시겠지요~

카스피 2012-06-1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시네요.저 많은 책을 다 모으시다니 말이죠.갑자기 예전에 된장님이 서울에 사시면서 숨책등에서 박스로 책을 사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숲노래 2012-06-15 13:35   좋아요 0 | URL
책이야 시간이 지나면 차츰 늘어나는걸요.
앞으로는 더 늘어날 테고요~
 


 송림공부방 소식지와 둘째 아이 (도서관일기 2012.6.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 넷째 교실을 갈무리하면서 내 오래된 물건과 예전 신문글과 여러 가지 물건을 들여다본다. 다른 세 교실은 내 책들로 꾸미고, 넷째 교실은 내 물건과 묵은 신문과 온갖 자질구레하다 싶은 물건으로 꾸민다. 어찌 보면 참 자질구레하달 수 있는데, 이 자질구레한 짐을 이제껏 끌어안고 용케 살았다. 짧으면 서너 해짜리 자질구레한 물건이요, 길면 스무 해가 넘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다. 어느 물건은 내 국민학생 때 것이니까 서른 해를 묵었고, 어느 물건은 내 아버지 것이니까 마흔 해를 묵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스무 살 즈음 된다면, 이즈막에 건사한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그무렵에는 스무 해나 묵은 어떤 이야기가 되겠지. 스무 해 뒤에는 내 아버지 물건은 우리 아이들한테 예순 해 묵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될 테고.


  그런데 이런저런 자질구레하다는 물건은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냥 쓰레기이다. 따로 건사해서 상자에 담아, 살림집 옮길 때마다 낑낑대며 지고 날랐으니 쓰레기 아닌 어떤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은 어느 해묵은 상자에서 인천 송림동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송림공부방’ 소식지 하나 나온다. 〈솔밭아이들〉이라 이름붙은 이 소식지를 낸 공부방은 2012년에도 그대로 살았을까. 1988년이나 1989년에 공부방 교사가 등사판으로 만들어 나누던 소식지였을 텐데, 어떻게 이 소식지가 내 자질구레한 물건 사이에 깃들 수 있었을까. 일손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본다. ‘4332.4.18.해.창영동 아벨서점’이라 적은 글월이 있다. 곧, 내가 이 소식지를 4332년, 이른바 1999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장만했다는 소리인데, 아마 이 공부방에 아이를 보낸 어느 집에서 이런저런 책과 함께 이 소식지를 묶어 밖에 내놓아 헌 물건으로 버렸다가 이래저래 흐르고 흘러 헌책방까지 들어왔겠지. 신문이나 잡지와 함께 묶여 폐휴지로 버려졌을 작은 소식지인데, 이런 작은 소식지 하나 알뜰히 건사해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꽂아 주었기에, 나는 이 작은 소식지를 고마우면서 즐겁게 돈 몇 푼 치러 장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식지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면서 인천과 인천 송림동과 인천 송림동 송림공부방을 떠올릴 누군가한테 좋으면서 애틋하고 그리우면서 반가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스밀 수 있겠지.


  한참 소식지를 들여다보다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기에 골마루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가 뚜벅뚜벅 어설피 걸음을 옮긴다. “아버지, 보라가 걸어요.” 하고 첫째 아이가 말한다. 돌날에는 그토록 걸어 보라 해더 안 걷더니, 돌을 지나고부터 제법 씩씩하게 여러 걸음 뗀다. 그래, 신나게 걸으렴. 씩씩하게 걸으렴. 머잖아 뛰고 달리면서 네 누나하고 훨훨 하늘도 날아다니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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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실 사진과 석류꽃 몽우리 (도서관일기 2012.6.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멧딸을 따며 놀다가 둘째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둘째 아이가 잠든 김에 수레를 끌고 도서관까지 가기로 한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은 채 깊이 잠들었고, 아주 살짝 도서관 넷째 칸 갈무리를 해 본다. 몇 해째 상자에만 박힌 채 햇볕을 쬐지 못하던 여러 가지를 들춘다. 내가 고등학생 적 모은 최진실 님 사진 여러 장 나온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들어간 대학교에서 오려모은 박재동 님 그림판도 몇 장 보인다. 다섯 학기를 다닌 대학교 학보가 여러 장 나오고, 이무렵 내 밥벌이를 하며 지낸 신문사지국에서 돌리며 드문드문 모은 신문이 나온다. 1995년에 1995년치 신문을 모으며 ‘이 신문이 언제쯤 낡은 신문이 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금세 낡은 신문이 되겠지.’ 하고 여겼는데, 몇 해 흐르면 벌써 스무 해나 묵은 신문이 된다. 헌책방에서 그러모은 1970년대 〈이대학보〉가 보이고, 197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꽤 재미나구나 싶다. 아무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그야말로 바지런히 오려모으거나 통으로 갈무리하던 신문꾸러미를 그냥저냥 꽂기도 하고 반듯이 눕히기도 한다.


  수레에서 자는 둘째한테 자꾸 모기가 달라붙는다. 도서관 갈무리는 그만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첫째 아이는 마을 이웃집 석류나무 밑으로 들어간다. 떨어진 석류꽃을 줍겠단다. 몽우리에서 봉오리로 맺지 못하고 만 누런 석류꽃을 본다. 아이는 석류나무 옆 감나무에서 흙땅으로 떨어진 감꽃을 두 손 가득 주워서 보여준다.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도서관이니까 책이 있어야 할 테고, 이런저런 낡은 신문이 있어도 좋겠지. 그런데, 이런 책 저런 신문 못지않게, 나무가 있고 풀이 자라며 꽃이 피어야 도서관다우리라 느낀다. 아무래도 가장 좋다 싶은 도서관은 숲이 아닐까.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도서관은 어린이가 아닐까.

 

 

 

 

 

 

 

 

 

 

 

(석류꽃 몽우리 사진은 다른 글에서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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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개구리 (도서관일기 2012.6.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치우면서 책꽂이 자리를 잡기로 한다. 어쨌든 바닥을 쓸고 책꽂이를 놓는다. 마지막 칸에 남은 걸상은 한쪽 벽에 높이 쌓는다. 내 것으로 사들인 옛 학교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옛 학교가 문을 닫으며 남긴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해서 한쪽 벽에 쌓는다.


  먼지를 잔뜩 마시며 일한다. 오늘은 아이들 안 데리고 와서 혼자 일하는데, 외려 잘 한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까지 이 먼지를 마시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며칠쯤 혼자 먼지를 실컷 마시며 치우고 나면, 이제 아이들이 와서 뒹굴거나 기어다녀도 이럭저럭 괜찮을 만큼 될 테지.


  면내 철물점에서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랑 낫을 장만했다. 학교 나무를 우리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지만, 등나무 가지와 덩쿨이 너무 뒤죽박죽 뻗기에, 때때로 이 가지를 치고 잘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조금씩 치우기로 하니, 이제 어느 만큼 꼴을 잡는다 하겠지. 올여름이 다 갈 무렵이면 사람들을 부를 만큼 갈무리 마칠 수 있을까. 오늘은 책꽂이며 이것저것 사진으로 찍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 시간 즈음 쉴새없이 일하다가 땀에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무렵, 빗물 새는 벽 한쪽에 조그마한 푸른개구리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다. 그래, 네 모습은 사진으로 찍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만 스스로 알아챌 수 있다.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때에만 책 한 줄 내 삶으로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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