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왕 징검다리 동화 19
이정록 지음, 노인경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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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73


 

그림에 담는 아름다운 빛깔

― 미술왕

 이정록 글

 노인경 그림

 한겨레아이들 펴냄, 2014.11.21.



  《플란다스의 개》라는 작품을 보면, 여기에 나오는 시골 머스마가 숯이나 나뭇가지나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가 곧잘 흐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없이 할아버지하고 살림을 꾸리는 시골 머스마는 몹시 가난합니다. 연필을 장만할 돈조차 모자라고, 물감이나 종이는 아예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골 머스마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아주 멋지고 아름답게 그림을 그립니다. 비록 손바닥으로 슥슥 문지르면 지워지지만, 비가 오면 사라지지만, 언제나 마음에 깊이 남도록 사랑스러운 숨결을 그림에 담습니다.


  가난한 시골 머스마는 여러 빛깔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끝끝내 ‘까망’ 한 가지 빛깔만 써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물감이든 크레파스이든 한 번도 손에 쥐지 못합니다. 비록 온갖 빛깔을 손에 쥔 적이 없이 ‘까망’ 한 가지로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도, 손을 놀려서 그림을 빚을 적에는 가장 맑으면서 포근하고 고운 넋이 됩니다. 애틋한 동무를 그릴 적에도, 늘 길벗이 되는 개를 그릴 적에도, 할아버지를 그릴 적에도, 이 아이 마음에는 깊고 너른 사랑이 흐릅니다. 온갖 무지개빛이 춤추는 다른 아이들 그림에서는 엿볼 수 없는 꿈과 아름다움이지만, 그저 ‘까망’ 한 가지 빛깔로 빚은 그림일 뿐인데, 이 그림에서 따스함과 사랑스러움이 우렁차게 터져나옵니다.



.. “형이 쓰던 거라서 미안하구나. 아람 밤톨을 많이 모아서 가을에는 새 걸 사 주마.” 하지만 아기 다람쥐 토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말했지요. “괜찮아요. 엄마 닮아서 저는 그림을 잘 그리잖아요.” ..  (8쪽)



  여러 빛깔을 쓰기에 눈부신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빛깔을 쓰기 안 눈부신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붓이든 연필이든 크레파스이든 나뭇가지이든, 그러니까 무엇을 쥐든, 손에 따스하고 넉넉한 숨결로 사랑을 그릴 수 있을 적에 눈부신 그림이 됩니다.


  학교나 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배워야 그림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워야 그림을 잘 그리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기쁘게 웃으면서 그림을 그릴 때에 잘 그립니다.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는 꿈을 그릴 때에 잘 그려요. 숲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돌보는 고운 넋을 보여줄 때에 ‘그림 참 좋구나!’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 크레파스를 도시용과 시골용으로 나눠 주세요. 시골용에는 초록색을, 도시용에는 회색을 세 개씩 더 넣어 주세요 ..  (23쪽)



  이정록 님이 글을 쓰고 노인경 님이 그림을 담은 어린이책 《미술왕》(한겨레아이들,2014)을 읽습니다. 어느 숲마을에 ‘크레파스 장사를 하는 여우’가 있고, 이 숲마을에서는 ‘크레파스 장사에만 눈이 먼 여우가 그림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숲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그림대회’에 나가기를 좋아하지만 그림대회는 그림을 즐기는 대회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크레파스 공장 여우 사장’은 크레파스를 더 많이 팔려는 데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가녀린 숲아이를 괴롭히거나 윽박지릅니다.


  숲마을 다람쥐 토리는 ‘그림대회’가 아닌 ‘그림잔치’를 꿈꿉니다. 1등을 겨루는 대회가 아닌, 모두 노래하고 웃고 즐기면서 어우러지는 잔치를 꿈꿉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마을을 가꿀 수 있는 그림잔치가 되기를 바라요.



.. 토리가 떡갈나무 우듬지에 올라 소리쳤어요. “우리가 ‘숲 마을 미술 잔치’를 열자!” 그 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모두 토리 곁으로 몰려들었어요. 토리를 따라 하면서요. “우리가 직접 ‘숲 마을 미술 잔치’를 열자!” ..  (33쪽)



  그림에 담는 아름다운 빛깔은 무지개빛이 아닙니다. 그림에 담는 아름다운 빛깔은 사랑입니다. 그림에 담는 아름다운 빛깔은 알록달록이 아닙니다. 그림에 담는 아름다운 빛깔은 꿈입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나 돌멩이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에 대고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서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림을 그립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함께 꿈을 꾸면서 이루고 싶은 아름다운 보금자리나 마을이나 나라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 “우리들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한 번도 함박눈을 못 봤어요. 친구들에게 물어 보니까 함박눈은 포근하고 아름다운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꽃송이로 물침대를 만들었습니다. 물 위 꽃잎 침대에 앉으면 아름답고 편안하거든요. 그러니까, 함박눈은 겨울에 피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62쪽)



  어린이책 《미술왕》에 나오는 다람쥐 토리는 ‘시골빛’이나 ‘숲빛’을 곱다라니 담을 수 있는 크레파스를 꿈꿉니다. 잿빛이나 까망보다 풀빛이나 노랑이나 파랑으로 온누리를 환하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잿빛과 까망을 덜 쓰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요. 낮에는 무지개빛이지만 밤에는 잿빛이나 까망입니다. 낮을 그릴 적에는 무지개빛이 될 테지만, 밤을 그릴 적에는 잿빛이나 까망입니다. 이와 달리, 낮을 잿빛이나 까망으로 그리면서도 얼마든지 따사롭고 보드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밤을 무지개빛으로 그리면서도 참으로 멋스럽고 기쁜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크레파스 상자나 물감 상자를 보면 ‘어느 한 가지 빛깔’을 더 많이 넣지 않습니다. 모든 빛깔을 골고루 담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르게 아름답고, 온누리 모든 빛깔도 골고루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4347.1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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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3
알레산드로 가티 지음,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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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72


 

‘돈벌기’인가 ‘삶짓기’인가

―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알레산드로 가티 글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4.10.10.



  돈을 버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일 뿐입니다. ‘돈벌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돈벌기는 그예 돈벌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돈벌기를 하는 어떤 사람은 ‘나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쁠까요? 아닙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쁘지 않고 ‘나쁘다고 할 만한 짓’을 하기 때문에 나쁩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을 두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놓고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게 돈을 벌 노릇이요, 사랑스럽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착하게 돈을 벌 노릇이고, 사이좋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이웃을 아끼면서 돈을 벌 노릇이요, 지구별을 가꾸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숲을 푸르게 돌보면서 돈을 벌 노릇이고,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사랑이 자라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나눌 돈이 태어납니다. 사랑스러운 삶일 적에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고, 사랑스러운 노래로 사랑스레 나눌 돈을 얻습니다.



.. 드디어 꼬마 페그의 머릿속이 완벽하게 정리됐다. 원래부터 민트 할아버지를 찾으러 도시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바보 같은 버스들이 여름 동안 내내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정말 실망이 컸다.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투덜이가 있으니 어쩌면 어마어마할지도 모르는 대모험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 “아클레토르페 씨요? 그 사람이 누구죠” “네, 저랑 함께 도시에 가고 있어요. 지금 저기 앉아 있잖아요.” 꼬마 페그가 아클레토르페 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그냥 곰인형이잖아요!” 단추 눈 경찰이 흘끔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33, 55쪽)



  ‘더 많은 돈을 남기기’가 아니라 ‘즐겁게 살기’가 꿈이고 삶이라면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커다란 회사를 꾸릴 적이든, 마을에 조그마한 가게를 꾸릴 적이든, 언제나 같습니다. 더 많은 돈을 남기면 더 많은 돈은 어디에 쓸까요? 다시 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쓸까요? 더 많은 돈을 더 많이 모으면, 이렇게 더 많이 모은 돈은 더욱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쓰면 될까요?


  돈을 가지려 한다면, 1억이든 1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가질 수 있습니다. 가지려 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100억이나 100조를 가져서 무엇을 할 만할까 생각해 보셔요. 이렇게 돈을 모으고 나서야 꿈을 키울 수 있는지, 아니면 오늘부터 내 꿈을 지어서 누리려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돈을 버는 동안에도 누릴 수 있는 꿈을 생각해 보셔요. 그저 돈만 모으거나 버는 나날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도 언제나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꿈’이 되도록 삶을 지어 보셔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워서 날마다 누리는 사람이 나중에 돈을 모은 뒤에도 꿈을 펼치거나 이룹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돈을 모으고 나서도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는 채 다시 돈만 더 키우거나 불리고 맙니다.



.. 고속도로 갓길에서 보는 풍경은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와는 달리 아주 처량했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도랑 옆에 무심하게 자란 기다란 풀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진흙이 잔뜩 묻고 먼지까지 뒤집어써서 누렇게 된 데다가 주위에는 버려진 잡지, 빈병 등 갖가지 쓰레기들이 함께 나뒹굴었다 … 그랬다. 사실은 먹구름이 낀 게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지붕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꼬마 페그는 자세히 보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붕에 덮인 건 아니었다.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은 거대한 고가도로와 철길이었다 ..  (47, 79쪽)



  알레산드로 가티 님이 글을 쓰고, 줄리아 사그라몰라 님이 그림을 넣은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책속물고기,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쁜 회사’가 나오고 ‘우유를 팔지 않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나쁜 회사’에 ‘우유를 파는 일’이란 나쁜 짓이 될 테니 이렇게 안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나쁜 회사’는 왜 나쁠까요? 무엇이 나쁠까요? 어떻게 나쁠까요?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를 읽으면, 나쁜 회사라고 하는 곳이 무엇이 어떻게 왜 나쁜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짓을 하기에 나쁘다고 할 만한지 하나도 밝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유 회사’가 저지르는 나쁜 짓은 아이들이 알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나쁜 짓’까지는 몰라도 되고, ‘나쁜 회사’에 따지러 간 할아버지를 찾아나서는 ‘모험’만 들려주는 줄거리가 아이들한테 한결 재미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시골마을에서 젖소를 돌보는 씩씩한 가시내가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는 어린이입니다만, 할아버지가 만든 멋진 ‘자동차(그렇지만 몹시 느리게 달리는)’를 몰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도시로 찾아갑니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할아버지를 찾아내어 시골마을로 돌아옵니다. ‘나쁜 회사’가 어떤 나쁜 짓을 하는지 나중에 밝힌다고도 하는데 ‘신문에 나오는 한 줄짜리 글’로 두루뭉술하게 적을 뿐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씩씩한 가시내’가 움직이는 흐름에 맞추어 모험 이야기를 잘 풀어냅니다. 다만, 이 작품을 큰 틀에서 이끄는 ‘나쁜 회사’가 어떻게 왜 얼마나 나쁜가 하는 대목은 하나도 안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푸는 눈길을 둘로 나누어서, 다른 한쪽에는 ‘나쁜 회사다운 나쁜 모습’을 찬찬히 밝힐 수 있어야, 시골 가시내가 누리는 모험 이야기가 더욱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이 아쉽습니다. 나쁜 회사 때문에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도시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가 나오는데, 정작 어떤 대목에서 무엇을 하느라 ‘도시에 있는 우유 회사’가 나쁜지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작품을 읽을 아이들도 책을 덮으면서 살짝 김이 샐 만하거든요.



.. “다른 길이 있어. 그런데 옷이 조금 더럽혀질 거야.” “그런 건 걱정 마. 나보고 ‘웅덩이랑 아주 친한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 … “계단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런데 부탁이 있어, 나도 함께 데려가 줘. 그리고 너희 농장에 나를 숨겨 줘.” 꼬마 페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카일의 제안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  (118∼119, 124쪽)



  한국에서 적잖은 ‘우유 회사’가 나쁜 짓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적잖은 우유 회사는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지난날 저지른 나쁜 짓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방사능 분유’가 있습니다. 소련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핵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동유럽과 서유럽 하늘을 덮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유럽과 서유럽에서는 퍽 오랫동안 ‘유럽에서 나온 우유’를 사고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젖소가 짠 젖에서 끔찍하도록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왔거든요. 이때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방사능 우유’를 ‘방사능 분유’로 가공해서 한국에 매우 싸디싼 값으로 팔았습니다. 이러한 ‘방사능 분유’가 한국에서 아주 많이 팔렸습니다.


  돈만 생각했기에, 돈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돈이 아닌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나쁜 짓’이 불거집니다. 지난날에는 그런 나쁜 짓을 누가 알아채느냐 했을 테지만, 나쁜 짓은 열 해 뒤이건 스무 해 뒤이건 서른 해 뒤이건, 때로는 이백 해나 삼백 해 뒤이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도 나중에 환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도 열 해 뒤나 스무 해 뒤나 이백 해 뒤나 삼백 해 뒤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삶을 지어야지요. 어떤 삶을 지어야 할까요. 아름답고 사랑스레 삶을 지어야지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은 무엇일까요. 나와 네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꾸는 길이지요.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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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1318 문고 1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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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0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아요

―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미리암 프레슬리 글

 유혜자 옮김

 사계절 펴냄, 1997.3.2.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가 알고 싶다면 아이들과 지내면 됩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지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여 학교로 보낸 뒤, 낮이나 저녁에 다시 아이들을 만나서 공부를 시키다가 저녁에 밥을 먹이고 재우는 나날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복닥이면서 모든 일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아이들이 저마다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어버이는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에 맡깁니다. 아이들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에 그만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채 학교에 맡길 뿐입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가르치지 못하는 오늘날 얼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일구어 물려주지 못하는 오늘날 틀거리입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입시지식을 배웁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물려받을까요? 입시지옥을 물려받습니다.



.. “네 엄마한테는 아주 힘든 고비가 많았어. 그런데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한 거야.” 도대체 그것이 무슨 고비였는지 이모는 내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고통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면 왜 날 그렇게 학대한 거죠?” … 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걸음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그 아저씨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어머니를 한번 생각해 봐요! 평생 아저씨를 씻기고 먹였을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분명히 입맛도 아주 까다로운 아들이었을 거예요.” ..  (15. 25쪽)



  사랑을 가르칠 수 있어야 비로소 ‘학교’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비로소 ‘배움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라는 곳을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을 길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의무교육이 된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을 길들이기만 합니다. 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이 저마다 꿈과 사랑을 물려받아서 키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등과 중등과 고등 모두 입시지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학 교육조차 삶과 등집니다. 대학 교육에서 사랑이나 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시사람만 낳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속품이나 톱니바퀴를 만드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기르는 학교여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합니다. 꿈을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학교여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소시지 한 조각 줄까?” 주인 여자가 물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것을 제일 좋아하지?” 주인 여자가 다시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그냥 아무거나 주지 않는 걸까? 주인 여자가 날 놀리려는 걸까? 소시지를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 기숙사에서는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조심하지 않으면 돈이나 사탕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수채물감이라든가 편지지처럼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없는 물건들도 그렇게 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연필에 각자 표시해 두곤 한다. 또 어떤 것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게 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벳의 인형이나 내 담요 같은 것들이다. 남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뭘 하겠는가 ..  (30∼31, 95쪽)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넣지 않으면 벌금을 물립니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는 학교에서는 몽땅 대학바라기 입시지도만 해요. 시골에서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거나 회사에 보내려고만 해요. 이런 학교에 아이를 안 넣겠다고 하면 법에 따라 벌금을 물려요.


  오늘날 같은 학교는 폭력입니다. 교과서를 척 펼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지 않으면 ‘문제 아이’나 ‘낙오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니, 이런 오늘날 학교는 폭력입니다. 게다가, 얼마 앞서까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두들겨패거나 거친 말로 짓밟았습니다. 참말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돈을 거두는 세무소’ 노릇을 했습니다. 고작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방위성금과 새마을운동과 동원행사 소모품 구실을 했습니다. 웅변대회와 충효작문 따위로 아이들을 꽁꽁 틀어막은 학교입니다. 1970년대까지는 교실마다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고, 1980년대에는 전두환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습니다. 북녘에서 김일성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킨다고 뭐라 할 일이 없습니다. 남녘도 똑같으니까요.


  아이들은 왜 머리카락을 기르면 안 될까요. 어른들은 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회사나 공장을 다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똑같은 옷을 맞춰서 입고 똑같은 신발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똑같은 서양옷을 갖춰 입어야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똑같은 틀에 갇히고, 학교를 마친 뒤 회사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판박이에 소모품밖에 안 되는 사회입니다.



.. 나도 도마뱀이 되어 따뜻한 돌 위에 누워 햇빛을 쬐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더구나 숲 속의 빈 터 같은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모든 것이 싫었다. 방도 기숙사도 싫었고, 특히 엘리자벳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꾹 참아 오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 애는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단지 자기는 부모가 있고 가끔 소포를 받는다는 것 때문에? 나보다 반 뼘쯤 더 크다는 이유 때문에? ..  (116, 143쪽)



  미리암 프레슬리 님이 쓴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사계절,1997)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만 아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모질게 때리기만 할 뿐 ‘한 번’도 사랑한 일이 없어 탁아시설에 온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덤덤히 말합니다. 참말 어머니한테서 사랑받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참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럴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학대만 받았으니, 학대는 알아도 사랑은 모릅니다. 학대만 받았기에 누가 저를 괴롭히려고 하면, 이러한 짓도 ‘학대’인 줄 곧바로 깨닫습니다. 다만, 누가 저를 따순 눈길로 바라보거나 따순 손길을 내밀면 어쩔 줄 모릅니다. 이것이 ‘사랑’인 줄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 “너네 엄마가 너한테 잘해 준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다고?” 레나가 못 믿겠다는 투로 물었다. 그걸 왜 자꾸만 물어 보는 걸까? 나는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아무한테도 잘 대해 주지 않았지. 내 생각에 엄마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로우 이모까지도. 자기 친언니인데도 말이야. 이모한테는 특히 더 못되게 굴었어. 이제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셨던 모양이구나.” … 나는 사감을 바라보았다. 사감이 언제나 기숙사에만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생각났다. 내가 오기 훨씬 전에 이곳에 온 사감은 내가 떠나고 나도 언젠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감은 절대 떠나지 않으리라. 절대로. 해마다 있던 아이들이 떠나고,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이 오지만 사감은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 ..  (160∼161, 183쪽)



  평화를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화를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를 모르니 전쟁무기와 군대를 갖추어서 ‘평화를 지키자’고 바보스러운 말을 내뱉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으로 가는 길이고, 군대도 전쟁으로 가는 길입니다. 더욱이 군대는 독재정치와 맞닿습니다. 지구별 모든 독재정치는 군대를 앞세워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이요, 군대는 독재입니다. 경찰도 군대와 마찬가지예요. 군대와 경찰을 거느리는 나라는 독재로 사람들을 짓밟는 얼거리입니다.


  평등을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등을 모릅니다. 그래서, 평등을 모르니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푸대접을 합니다.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계급과 등급을 짭니다. 돈이 있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있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똑똑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대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할 뿐이고, 슬기로운 사람이 슬기로울 뿐입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꿈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 곧이어 시골길이 나왔다. 창밖으로 들판과 초원이 스쳐 지나갔고, 감자를 캐고 있는 아낙들과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도 보였다. 그렇게 많은 농부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도 전에는 미처 몰랐다 … 제대로 곰곰이 생각을 모으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던 로우 이모의 말은 틀린 말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본 것들은 전혀 모르던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 나는 우어반 사감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로우 이모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통화가 길었다. 우어반 사감은 열심히 듣다가 간간이 웃었다. 로우 이모가 웃을 때 안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침내 통화를 끝낸 우어반 사감이 말햇다. “좋아, 가도 돼. 친구 한 명도 함께 갈 수 있지. 그 친구가 누구인지 내가 한번 맞혀 볼까?” ..  (211, 234쪽)



  걸상이 넓을 때에 함께 앉지 않습니다.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좁은 걸상에도 함께 앉거든요.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아예 걸상을 치우고 땅바닥이나 풀밭에 함께 앉거나 드러눕습니다. 함께 앉기 싫으니 혼자 앉습니다. 함께 앉을 생각이 없으니 아예 걸상을 없애고 모두 서야 하는 얼거리로 만듭니다.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는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 하나를 들려주고, 꿈 하나를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두 사람이 얼마나 즐겁게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좁은 걸상에 함께 앉아요. 좁은 걸상에 함께 앉고 보면, ‘좁은 걸상’이 아니라 ‘그냥 걸상’인 줄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시나브로 ‘함께 누리는 즐거운 사랑’인 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 웃을 때에 즐겁습니다. 함께 즐거울 때에 노래가 흐릅니다. 함께 노래할 적에 오늘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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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 - 일본 문학 다림세계문학 20
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이경옥 옮김, 이토 치즈루 그림 / 다림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9



어른과 아이가 함께 지을 삶

―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

 후쿠다 다카히로 글

 이토 치즈루 그림

 이경옥 옮김

 다림 펴냄, 2008.3.6.



  아이들 사이에서 잠들 적에 아이들은 으레 따사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살가운 손길로 내 가슴을 토닥입니다. 종달새처럼 종알종알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내가 이 아이들한테 종달새처럼 노래를 들려주면서 지냈기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까, 아니면 내가 종달새처럼 노래를 들려주지 않았어도 아이들 마음은 언제나 노래와 같을까 하고.


  낮에 읍내에 다녀옵니다. 오늘은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고 나 혼자 다녀옵니다. 아이들은 이동안 집에서 도란도란 재미있게 놀면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고마우면서 예쁜지 모릅니다. 요 며칠 동안 아이들이 “꼬기 밥 먹고 싶어.”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돼지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닭고기이든 물고기이든, 어떤 고기라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온 뒤, 곧바로 고기를 볶습니다. 먼저 감자와 고구와와 당근과 배추를 자박자박 볶습니다. 이러고 나서 고기를 얹어서 함께 볶고, 곧이어 양배추와 감을 잘게 썰어서 섞은 뒤, 고깃국물이 밸 즈음 밥을 풀어서 따뜻하게 익힙니다.


  자, 맛있게 먹자. 넉넉하게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 가요코 선생님의 수화는 물결처럼 아름답다. 선생님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마저 잊곤 한다. 듣지 못하는 나보다도 몇 배는 자연스럽다 … 5학년 때는 여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6학년이 되자마자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다. 말을 잘하는 아이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등부 전교생을 모두 합쳐도 여덟 명밖에 되지 않는 이 농아 학교에 있는 것보다 일반 학교로 전학 가는 편이 그 아이에게는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  (10, 13쪽)



  겨울을 앞둔 가을바람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그러나 해가 높이 뜨는 낮에는 제법 따스합니다. 낮에는 평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높은 하늘과 예쁜 구름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몽글몽글 단단해지는 동백나무 꽃망울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한겨울에도 몇 아이는 붉은 꽃송이를 터뜨릴 테고, 곧 다가올 겨울이 지나면 새봄에 다시금 멋진 꽃잔치를 베풀 테지요.


  우리 집 동백나무는 해마다 키가 자랍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도 해마다 키가 자랍니다. 해마다 그늘을 넓히고, 해마다 가지를 뻗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나무를 지켜보면서 즐겁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결을 바라볼 수 있기에 마음 한 자락이 넉넉합니다. 앞으로 이 나무가 자라고 더 자라면 그야말로 멋진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새롭게 아이를 낳을 무렵에는 참으로 푸르게 우거진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 우리 나무와 함께 푸른 숨결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자.



.. 언니는 말없이 다가와 불쑥 어깨부터 두드린다. 그리고 내가 불평하면 늘 빠르게 뭐라고 대답한 뒤 되풀이해 주지 않고 가 버린다. 빠르게 말하면 내가 못 알아본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 텔레비전에서는 처음 보는 여자 가수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금발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한 드레스. 엄마와 언니의 눈길이 텔레비전으로 옮겨 갔다. 어떤 가수일까?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저 가수들은 나와는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  (31, 36쪽)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멋진 누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베트남이든, 라오스이든 필리핀이든,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터전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따사로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늑한 삶터를 일구어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고속도로나 골프장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푸르게 우거진 숲과 들과 멧골이야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과 산업개발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른 꿈과 따순 사랑이야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입시지옥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참다운 배움과 착한 가르침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지 싶습니다.


  후쿠다 다카히로 님이 글을 쓰고, 이토 치즈루 님이 그림을 넣은 청소년문학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다림,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꼭 이 책에 붙은 이름이 아니어도, 우리가 살림을 꾸리면서 삶을 짓는 이곳은 참으로 멋진 자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멋진 넋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슬기로우면서 해사한 숨결입니다.



..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이렇게까지 단어 공부를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농아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많은 단어들을 외우게 하려고 한다. 고헤이는 벌써부터 싫증을 냈고 나도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농아 학교에서는 다른 일반 초등학생들처럼 느긋하게 공부를 할 수 없는 걸까 … “가요코 선생님보다 몇 배나 빨라. 가요코 선생님은 늘 우리들 쪽을 보고 말씀하시지만 일반 학교 선생님들은 그렇지가 않아. 칠판에 글을 쓰면서 말씀하시거나 다른 곳을 보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어.” ..  (75, 80쪽)



  아스라한 옛날에, 이 나라 옛사람은 나라를 세워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나라를 세웠으면 이녁이 세운 나라를 아름답게 가꿀 노릇일 텐데, 서로 더 너른 땅을 누리려는 마음을 품고 다툼질을 일삼았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나 가야를 떠올려 보셔요. 왜 이들 나라는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고, 왜 자꾸 전쟁을 벌이면서 이웃나라 땅을 거머쥐려고 했을까요. 왜 서로 돕지 않고, 왜 서로 아끼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고구려는 만주로 뻗고 또 뻗으면서 다른 이웃나라를 짓밟기까지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고구려 영토 확장’이라 말하지만, 이는 ‘식민지 넓히기’와 똑같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으로 쳐들어오는 짓은 나쁘고, 고구려가 만주로 쳐들어간 짓은 좋다고 함부로 말해도 될까요? 칼이나 총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밟는 짓은 누가 해도 얄궂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곳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않고,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고 또 만들면서 이웃나라를 넘보는 짓은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 내가 그곳에 있는데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내 어깨 너머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엄마의 말이 끝나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건 나인데. 더운데도 땀도 닦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찬 보리차도 마시지 않고 쭉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엄마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내내 여기에 서서 엄마가 내게 말하기를 꼼짝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 나는 뒤를 돌면서 언니가 들고 있던 유리컵을 그대로 집어던졌다. 컵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거칠게 부서졌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크게 질렀다. 결코 말이 되지 않는,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소리를 몸을 구부려 가면서 질러댔다 ..  (118∼119쪽)



  예부터 어느 나라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예부터 어느 나라이든 스스로 흙을 가꾸고 숲을 이루면 ‘자급자족’이 됩니다. 애써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야 ‘밥을 얻’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아서 종으로 부려야 ‘옷을 얻’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가 평화를 부릅니다. 싸움은 싸움을 부릅니다. 사랑은 사랑을 부릅니다.


  아이들한테 칼싸움을 가르치고 칼놀이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칼싸움과 칼놀이를 물려받아 ‘싸울아비’가 됩니다. 아이들한테 호미질을 가르치고 그림그리기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사랑과 꿈으로 보금자리를 짓는 슬기로운 넋을 가꿀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누구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어른인 나부터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할머니가 직접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편안히 쉴 곳이 없다면 만들면 돼. 네가 바란다면 이 세상 어디든 네 마음에 드는 곳이 될 수 있을 거야. 단념하지 말 것. 꿈을 버리지 말 것. 자신을 믿을 것.’ ..  (171쪽)



  청소년문학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에 나오는 아이는 ‘소리를 거의 못 듣’습니다. 소리를 못 듣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이 아이한테 너그럽지 못합니다. 이 아이가 너무 괴롭도록 들볶습니다. 이 아이가 너무 외롭도록 다그칩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휘둘리게 밀어넣으면 누가 즐거울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굳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서 삶을 스스로 일구도록 가르칠 노릇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손수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삶을 손수 짓고, 사랑과 꿈을 함께 손수 짓도록 이끌 때에 아름다운 나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슬기롭게 지을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태어난 이 지구별은 아름다운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기쁘게 꿈을 꾸면서 가꿀 사랑스러운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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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7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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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1



역사는 책이 아닌 삶에서 읽자

―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13.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짓습니다. 예부터 제비는 이 나라 골골샅샅 어디이든 찾아가서 집을 지었습니다. 남녘 제주섬부터 완도와 광주와 대전과 수원을 지나 서울을 거치고 평양과 해주와 의주를 가로질러 연길까지 제비는 힘차게 날갯짓하면서 날아갑니다. 경제개발이나 새마을운동을 나라에서 부르짖기 앞서까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제비집은 아주 흔했어요. 어쩌면 참새보다 더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새가 제비였다고 할 만합니다. 제비와 얽힌 옛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경제개발이나 새마을운동을 나라에서 부르짖으면서 차츰 제비가 도시에서 사라집니다. 처마 있는 집에 깃드는 제비인데, 도시에 짓는 건물은 처마가 없기 일쑤입니다. 제비가 ‘처마 없는 집’을 깨닫고 다른 ‘처마 있는 집’에 집을 지으면 좋으련만, 제비는 참으로 고지식합니다. 예전에 집을 짓던 자리로 꼬박꼬박 돌아와서 집을 지어요.


  나는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까지 인천에서 지냈어요. 인천에서 1980년대 끝무렵을 마지막으로 제비를 더 보지 못했는데,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학교 건물 벽에 집을 짓는 제비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제비 한살이를 학교에서 배운 뒤,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이곳에 학교가 서기 앞서 여느 살림집이 있었을 테고, 제비는 바로 ‘옛날 여느 살림집’에 집을 지은 어미 제비 숨결을 그리면서 찾아온 셈이에요. 그러니, 제비는 고지식하게 옛집 자리에 둥지를 틀고 싶어요.



.. 삼백산업은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가공해서 판매했어. 그래서 삼백산업은 나날이 번창했지만 국내의 밀 농업과 목화 재배는 갈수록 쇠퇴했단다 … 정부는 미국의 원조로 들여온 밀과 원당을 가공 시설을 많이 갖춘 자본가(기업)에게 먼저 나누어 주었어. 그 때문에 자본가들은 싼 가격으로 원료를 독점할 수 있었지 ..  (17, 19쪽)



  제비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철새도 예전에 머물던 곳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철새뿐 아니라 물고기도 알을 낳은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알을 낳아요. 이를 가리켜 ‘본능’이라고 하지만, 이보다는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그리운 곳’이기 때문에 돌아가지 싶습니다. 기쁘게 태어난 곳에서 아기(새끼)를 낳고 싶은 마음이라고 느껴요. 아무 곳에서나 아기를 낳지 않고, 가장 따스하면서 즐겁고 사랑스러운 자리를 찾아서 새로운 목숨을 낳고 싶은 꿈이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마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사는 장대를 장만해서 제비집을 허뭅니다. 여느 살림집에서는 똥이 떨어진다면서 허뭅니다. 제비는 꿋꿋하게 다시 집을 짓지만, 사람들은 다시 장대를 써서 제비집을 허뭅니다.


  이리하여 제비는 새끼를 못 낳습니다. 새끼를 겨우 낳았어도 집이 허물어지면서 알도 깨지고 어린 새끼도 죽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성장’과 ‘새마을운동’을 내세워 수많은 제비를 죽음 구렁텅이로 내몰았어요. 게다가, 새마을운동이 몰아치던 때부터 시골에 농약이 엄청나게 퍼졌어요. 시골사람은 농약이 엄청난 보배라도 되는듯이 여겼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젊은이와 어린이가 죄다 도시로 떠나 ‘도시 빈민’으로 지내면서 ‘공장 노동자’로 바뀌어요. 경제성장을 앞세운 ‘공장 정책’을 내세우는 이 나라는 시골사람을 도시에 있는 공장으로 데리고 와서 아주 낮은 품삯으로 굴렸습니다. 이러니, 시골에는 풀을 먹을 사람이 없고, 풀을 뜯길 아이가 없으며, 풀을 먹고 자랄 소도 돼지도 닭도 염소도 모두 자취를 감추어요. 더군다나,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소고기랑 돼지고기를 잔뜩 사들이지요. 시골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은 그만 폭삭 주저앉아요. 논밭을 일구기에도 벅찬데다가 젊은이는 죄다 도시로 떠났지요, 여기에 소와 돼지를 키우는 보람도 없지요, 그러니, 시골자락에서 돋는 아름다운 풀을 죄 ‘잡풀’로 여겨 농약으로 때려죽이는 새마을운동에 길들고 맙니다.



.. 오늘날 무·배추·고추 씨앗의 50%는 다국적 기업이 공급하고, 양파·당근·토마토의 씨앗은 일본산이 80% 이상 차지한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토종 씨앗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아. 토종 씨앗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1970∼80년대에 사라졌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토종 볍씨 대신 일본에서 가져온 볍씨를 심으라고 강요했어 … 컬러TV의 등장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단다. 흑백 화면만 보아 왔던 사람들은 컬러TV의 화려한 색깔에 매료됐어. 거실이나 안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갔고,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참인 양 믿었지 ..  (49, 82쪽)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도 역사를 가르칩니다. 역사책에는 ‘새마을운동’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무엇이고, 새마을운동 때문에 시골과 도시가 어떻게 달라져야 했으며, 우리 삶이 얼마나 일그러졌는가까지 다루지 않아요.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조리 떠나 늙은이만 남은 시골에서는 비료와 농약에 길든 ‘화학기계농’으로 바뀝니다.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늙은이는 농협빚을 얻어 기계를 들이거나 빌리지만, 거친 곳에서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농기계는 곧 슬거나 망가져요. 곡식과 남새와 열매는 아주 싸게 농협에서 사들이면서, 시골사람한테 농약과 비료를 파는 농협이고, 농기계와 기름까지 비싸게 파는 농협이에요. 이러는 동안, 논에 살던 뜸부기는 거의 다 죽고 사라집니다. 〈오빠 생각〉이라는 노래에만 〈뜸부기〉 이름이 남을 뿐, 이제 한국 시골에서 뜸부기라는 아주 흔하던 들새를 만날 길이 없습니다. 뻐꾸기도 꾀꼬리도 후투티도, 시골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어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기 어렵고, 다슬기를 줍기 어렵습니다. 밤에 논배미에서 반딧불이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골짜기마다 4대강사업을 앞세운 시멘트 토목사업이 가시촉수를 뻗은 탓에, 돌을 들어 가재를 줍는 일마저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역사책에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역사학자는 이러한 데까지 알지 못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역사학자는 옛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책을 쓸 뿐이니, 우리 삶과 얽힌 이야기를 역사로 마주할 줄 모르고,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가르칠 줄 모릅니다.



.. 공무원들의 근무복은 1996년에 사라졌지. 공무원을 중심으로 시행됐던 근무복은 그 옷을 입은 모든 공무원을 국가에 충성하는 단순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어. 근무복은 자유롭고 싶은 개개인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하나의 색과 생각만을 강요하는 수단이었던 셈이야. 곧 간소복은 교복과 비슷한 역할을 한 거지. 교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성을 추구했지만 미성년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어 … 개인이 자기 머리카락을 짧게 깎든 길게 기르든 이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개인의 자유권에 속해. 장발이 무슨 전염병도 아닌데 질서유지를 이유로 이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발상은 통제의 시대로 불리는 1970년대 정권의 의식 수준이었지 ..  (97, 100쪽)



  이임하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제도권 교과서에서 벗어나 ‘문화’로 역사를 읽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앙 집권 통제’로 얼룩진 교과서를 내려놓고 ‘문화’에서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지식이 아닌 문화를 건드립니다. 위에서 억누르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가꾼 문화를 돌아봅니다. 정부에서 억지로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입시지식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오순도순 조그맣게 일군 문화를 바라봅니다.


  역사란 무엇일까요. 역사책에 적히면 역사일까요? 역사학자가 말하면 역사일까요? 대학교 역사학과를 다니면서 논문을 쓰면 역사일까요? 중앙정부에서 밝히는 자료가 역사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역사일까요?


  한국 문화를 밝히는 이들은 으레 ‘궁중 음식’을 놓고 ‘한국 음식 문화’라고 말합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궁중 음식도 ‘한국 음식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아주 조그마한 갈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역사에서 ‘궁중 사람’은 한줌조차 안 될 만큼 아주 적거든요.


  ‘한국 음식 문화’를 말하려면, 이 나라를 이룬 거의 모든 사람이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에서 누린 ‘밥’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궁중 음식만 가짓수가 많지 않아요. 여느 살림집 여느 밥도 가짓수가 많아요. 게다가, 여느 살림집은 철마다 온갖 나물을 밥으로 삼습니다. 궁중에서는 사람들이 바친 몇 가지 물고기와 뭍고기만 다루지만,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에서는 온갖 물고기를 두루 잡아서 먹고, 온갖 뭍짐승을 잡아서 고기로 익혀서 먹어요. 궁중에서도 메뚜기나 개구리를 주전부리로 올렸을까요? 갓 낚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살을 저며 먹거나 찌개를 끓여서 즐기는 궁중 음식이 있을까요? 갓 낚은 물고기는 궁중까지 갈 수도 없습니다.



.. 1958년 초등학교 운영비의 75%가 사친회비였지. 공식적으로 내는 수업료와 사친회비 이외에도 무수한 잡부금이 있었어 … 나라의 국방비 예산은 50%를 넘었지만 교육비는 10%도 넘지 못했으니 사친회비나 기성회비 또는 잡부금을 걷지 않고는 학교를 운영할 수 없었던 거야 … 사람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을 ‘사상이 이상한 사람’ 또는 간첩이라고 신고했어. 이러한 제도는 이웃은 물론 가족조차 항상 의심하게 하는 관성을 갖게 했고 이성적인 판단과 공개 토론을 불가능하게 했지. 국민의 생활을 감시하는 최종판은 바로 주민등록증의 발급이란다 ..  (158, 159, 234∼235쪽)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우리 문화’를 굵직굵직하게 다룹니다. 우리 문화를 하나하나 짚자면 참으로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초등학교 운영비’ 이야기를 놓고도 우리는 책 몇 권을 쓸 만큼 이야기가 넘칩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책에 안 실려요.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도 역사책으로 쓰려고 하면 두툼한 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두환이 긁어모은 평화의댐 성금과 현대사’라든지 ‘박정희가 긁어모은 방위성금과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현대사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는 ‘평화의댐 성금’을 얼마나 냈을까요? 우리는 ‘방위성금’을 얼마나 냈을까요? 이러한 자료나 통계가 남았을까요? 교육부나 정부는 이러한 자료나 통계를 공개할까요?


  우리는 ‘위문편지’를 얼마나 많이 써야 했을까요? 초·중·고등학생한테 위문편지를 쓰도록 시키면서 편지종이는 얼마나 많이 팔아치우고, 우표장사는 또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학교에서 온갖 숙제를 내주면서 학교 앞 문방구는 ‘과제물 장사’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불량식품 만드는 공장’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고, 이러한 ‘경제 규모’는 어떻게 살필 만할까요?



.. 농촌 빈곤의 원인은 오히려 농업과 농민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공업 중심의 성장 제일주의에 있었지. 그런데도 농민들의 나태한 생활 태도와 정신 자세만을 강조했어. 새마을운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농촌의 낙후한 빈곤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렸던 거야 ..  (237쪽)



  역사는 책이 아닌 삶에서 읽습니다. 책에 적힌 역사는 ‘참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 거짓이기 일쑤입니다. 사람들 눈을 속이면서, 사람들 머리에 엉뚱한 정보와 숫자가 가득 차도록 길들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대통령이 내놓는 말이라든지 외교 정책은 역사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록’이라고 느낍니다. 대통령이 남긴 기록이라든지, 정부가 다른 나라와 맺은 기록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듬고 가꾼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어야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발자국을 남긴다고 해서 모두 역사로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발자국은 모두 발자국인걸요. 이 발자국 가운데 ‘역사’로 남길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고르거나 뽑을 수 없습니다. ‘역사’로 남길 이야기란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삶과 사랑을 아름답게 짓도록 이끄는 이야기여야지 싶어요.


  조선 무렵 임금 이름이나 오늘날 대통령 이름은 그야말로 ‘기록’입니다. 경제개발 숫자나 새마을운동 같은 일도 한낱 ‘기록’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삶을 짓고 역사를 새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손수 삶을 가꾸면서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이러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가 되리라 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참답게 역사로 나아갈 노릇이고, 슬기롭게 삶을 읽을 노릇이며, 아름답게 사랑을 가꾸어 이야기를 아로새길 노릇입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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