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3
알레산드로 가티 지음,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72


 

‘돈벌기’인가 ‘삶짓기’인가

―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알레산드로 가티 글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4.10.10.



  돈을 버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일 뿐입니다. ‘돈벌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돈벌기는 그예 돈벌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돈벌기를 하는 어떤 사람은 ‘나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쁠까요? 아닙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쁘지 않고 ‘나쁘다고 할 만한 짓’을 하기 때문에 나쁩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을 두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놓고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게 돈을 벌 노릇이요, 사랑스럽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착하게 돈을 벌 노릇이고, 사이좋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이웃을 아끼면서 돈을 벌 노릇이요, 지구별을 가꾸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숲을 푸르게 돌보면서 돈을 벌 노릇이고,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사랑이 자라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나눌 돈이 태어납니다. 사랑스러운 삶일 적에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고, 사랑스러운 노래로 사랑스레 나눌 돈을 얻습니다.



.. 드디어 꼬마 페그의 머릿속이 완벽하게 정리됐다. 원래부터 민트 할아버지를 찾으러 도시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바보 같은 버스들이 여름 동안 내내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정말 실망이 컸다.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투덜이가 있으니 어쩌면 어마어마할지도 모르는 대모험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 “아클레토르페 씨요? 그 사람이 누구죠” “네, 저랑 함께 도시에 가고 있어요. 지금 저기 앉아 있잖아요.” 꼬마 페그가 아클레토르페 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그냥 곰인형이잖아요!” 단추 눈 경찰이 흘끔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33, 55쪽)



  ‘더 많은 돈을 남기기’가 아니라 ‘즐겁게 살기’가 꿈이고 삶이라면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커다란 회사를 꾸릴 적이든, 마을에 조그마한 가게를 꾸릴 적이든, 언제나 같습니다. 더 많은 돈을 남기면 더 많은 돈은 어디에 쓸까요? 다시 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쓸까요? 더 많은 돈을 더 많이 모으면, 이렇게 더 많이 모은 돈은 더욱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쓰면 될까요?


  돈을 가지려 한다면, 1억이든 1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가질 수 있습니다. 가지려 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100억이나 100조를 가져서 무엇을 할 만할까 생각해 보셔요. 이렇게 돈을 모으고 나서야 꿈을 키울 수 있는지, 아니면 오늘부터 내 꿈을 지어서 누리려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돈을 버는 동안에도 누릴 수 있는 꿈을 생각해 보셔요. 그저 돈만 모으거나 버는 나날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도 언제나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꿈’이 되도록 삶을 지어 보셔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워서 날마다 누리는 사람이 나중에 돈을 모은 뒤에도 꿈을 펼치거나 이룹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돈을 모으고 나서도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는 채 다시 돈만 더 키우거나 불리고 맙니다.



.. 고속도로 갓길에서 보는 풍경은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와는 달리 아주 처량했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도랑 옆에 무심하게 자란 기다란 풀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진흙이 잔뜩 묻고 먼지까지 뒤집어써서 누렇게 된 데다가 주위에는 버려진 잡지, 빈병 등 갖가지 쓰레기들이 함께 나뒹굴었다 … 그랬다. 사실은 먹구름이 낀 게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지붕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꼬마 페그는 자세히 보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붕에 덮인 건 아니었다.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은 거대한 고가도로와 철길이었다 ..  (47, 79쪽)



  알레산드로 가티 님이 글을 쓰고, 줄리아 사그라몰라 님이 그림을 넣은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책속물고기,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쁜 회사’가 나오고 ‘우유를 팔지 않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나쁜 회사’에 ‘우유를 파는 일’이란 나쁜 짓이 될 테니 이렇게 안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나쁜 회사’는 왜 나쁠까요? 무엇이 나쁠까요? 어떻게 나쁠까요?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를 읽으면, 나쁜 회사라고 하는 곳이 무엇이 어떻게 왜 나쁜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짓을 하기에 나쁘다고 할 만한지 하나도 밝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유 회사’가 저지르는 나쁜 짓은 아이들이 알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나쁜 짓’까지는 몰라도 되고, ‘나쁜 회사’에 따지러 간 할아버지를 찾아나서는 ‘모험’만 들려주는 줄거리가 아이들한테 한결 재미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시골마을에서 젖소를 돌보는 씩씩한 가시내가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는 어린이입니다만, 할아버지가 만든 멋진 ‘자동차(그렇지만 몹시 느리게 달리는)’를 몰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도시로 찾아갑니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할아버지를 찾아내어 시골마을로 돌아옵니다. ‘나쁜 회사’가 어떤 나쁜 짓을 하는지 나중에 밝힌다고도 하는데 ‘신문에 나오는 한 줄짜리 글’로 두루뭉술하게 적을 뿐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씩씩한 가시내’가 움직이는 흐름에 맞추어 모험 이야기를 잘 풀어냅니다. 다만, 이 작품을 큰 틀에서 이끄는 ‘나쁜 회사’가 어떻게 왜 얼마나 나쁜가 하는 대목은 하나도 안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푸는 눈길을 둘로 나누어서, 다른 한쪽에는 ‘나쁜 회사다운 나쁜 모습’을 찬찬히 밝힐 수 있어야, 시골 가시내가 누리는 모험 이야기가 더욱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이 아쉽습니다. 나쁜 회사 때문에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도시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가 나오는데, 정작 어떤 대목에서 무엇을 하느라 ‘도시에 있는 우유 회사’가 나쁜지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작품을 읽을 아이들도 책을 덮으면서 살짝 김이 샐 만하거든요.



.. “다른 길이 있어. 그런데 옷이 조금 더럽혀질 거야.” “그런 건 걱정 마. 나보고 ‘웅덩이랑 아주 친한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 … “계단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런데 부탁이 있어, 나도 함께 데려가 줘. 그리고 너희 농장에 나를 숨겨 줘.” 꼬마 페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카일의 제안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  (118∼119, 124쪽)



  한국에서 적잖은 ‘우유 회사’가 나쁜 짓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적잖은 우유 회사는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지난날 저지른 나쁜 짓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방사능 분유’가 있습니다. 소련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핵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동유럽과 서유럽 하늘을 덮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유럽과 서유럽에서는 퍽 오랫동안 ‘유럽에서 나온 우유’를 사고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젖소가 짠 젖에서 끔찍하도록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왔거든요. 이때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방사능 우유’를 ‘방사능 분유’로 가공해서 한국에 매우 싸디싼 값으로 팔았습니다. 이러한 ‘방사능 분유’가 한국에서 아주 많이 팔렸습니다.


  돈만 생각했기에, 돈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돈이 아닌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나쁜 짓’이 불거집니다. 지난날에는 그런 나쁜 짓을 누가 알아채느냐 했을 테지만, 나쁜 짓은 열 해 뒤이건 스무 해 뒤이건 서른 해 뒤이건, 때로는 이백 해나 삼백 해 뒤이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도 나중에 환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도 열 해 뒤나 스무 해 뒤나 이백 해 뒤나 삼백 해 뒤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삶을 지어야지요. 어떤 삶을 지어야 할까요. 아름답고 사랑스레 삶을 지어야지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은 무엇일까요. 나와 네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꾸는 길이지요.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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