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7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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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1



역사는 책이 아닌 삶에서 읽자

―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13.



  제비는 처마 밑에 집을 짓습니다. 예부터 제비는 이 나라 골골샅샅 어디이든 찾아가서 집을 지었습니다. 남녘 제주섬부터 완도와 광주와 대전과 수원을 지나 서울을 거치고 평양과 해주와 의주를 가로질러 연길까지 제비는 힘차게 날갯짓하면서 날아갑니다. 경제개발이나 새마을운동을 나라에서 부르짖기 앞서까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제비집은 아주 흔했어요. 어쩌면 참새보다 더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새가 제비였다고 할 만합니다. 제비와 얽힌 옛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경제개발이나 새마을운동을 나라에서 부르짖으면서 차츰 제비가 도시에서 사라집니다. 처마 있는 집에 깃드는 제비인데, 도시에 짓는 건물은 처마가 없기 일쑤입니다. 제비가 ‘처마 없는 집’을 깨닫고 다른 ‘처마 있는 집’에 집을 지으면 좋으련만, 제비는 참으로 고지식합니다. 예전에 집을 짓던 자리로 꼬박꼬박 돌아와서 집을 지어요.


  나는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까지 인천에서 지냈어요. 인천에서 1980년대 끝무렵을 마지막으로 제비를 더 보지 못했는데,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학교 건물 벽에 집을 짓는 제비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제비 한살이를 학교에서 배운 뒤,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이곳에 학교가 서기 앞서 여느 살림집이 있었을 테고, 제비는 바로 ‘옛날 여느 살림집’에 집을 지은 어미 제비 숨결을 그리면서 찾아온 셈이에요. 그러니, 제비는 고지식하게 옛집 자리에 둥지를 틀고 싶어요.



.. 삼백산업은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가공해서 판매했어. 그래서 삼백산업은 나날이 번창했지만 국내의 밀 농업과 목화 재배는 갈수록 쇠퇴했단다 … 정부는 미국의 원조로 들여온 밀과 원당을 가공 시설을 많이 갖춘 자본가(기업)에게 먼저 나누어 주었어. 그 때문에 자본가들은 싼 가격으로 원료를 독점할 수 있었지 ..  (17, 19쪽)



  제비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철새도 예전에 머물던 곳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철새뿐 아니라 물고기도 알을 낳은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알을 낳아요. 이를 가리켜 ‘본능’이라고 하지만, 이보다는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그리운 곳’이기 때문에 돌아가지 싶습니다. 기쁘게 태어난 곳에서 아기(새끼)를 낳고 싶은 마음이라고 느껴요. 아무 곳에서나 아기를 낳지 않고, 가장 따스하면서 즐겁고 사랑스러운 자리를 찾아서 새로운 목숨을 낳고 싶은 꿈이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마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사는 장대를 장만해서 제비집을 허뭅니다. 여느 살림집에서는 똥이 떨어진다면서 허뭅니다. 제비는 꿋꿋하게 다시 집을 짓지만, 사람들은 다시 장대를 써서 제비집을 허뭅니다.


  이리하여 제비는 새끼를 못 낳습니다. 새끼를 겨우 낳았어도 집이 허물어지면서 알도 깨지고 어린 새끼도 죽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성장’과 ‘새마을운동’을 내세워 수많은 제비를 죽음 구렁텅이로 내몰았어요. 게다가, 새마을운동이 몰아치던 때부터 시골에 농약이 엄청나게 퍼졌어요. 시골사람은 농약이 엄청난 보배라도 되는듯이 여겼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젊은이와 어린이가 죄다 도시로 떠나 ‘도시 빈민’으로 지내면서 ‘공장 노동자’로 바뀌어요. 경제성장을 앞세운 ‘공장 정책’을 내세우는 이 나라는 시골사람을 도시에 있는 공장으로 데리고 와서 아주 낮은 품삯으로 굴렸습니다. 이러니, 시골에는 풀을 먹을 사람이 없고, 풀을 뜯길 아이가 없으며, 풀을 먹고 자랄 소도 돼지도 닭도 염소도 모두 자취를 감추어요. 더군다나,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소고기랑 돼지고기를 잔뜩 사들이지요. 시골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은 그만 폭삭 주저앉아요. 논밭을 일구기에도 벅찬데다가 젊은이는 죄다 도시로 떠났지요, 여기에 소와 돼지를 키우는 보람도 없지요, 그러니, 시골자락에서 돋는 아름다운 풀을 죄 ‘잡풀’로 여겨 농약으로 때려죽이는 새마을운동에 길들고 맙니다.



.. 오늘날 무·배추·고추 씨앗의 50%는 다국적 기업이 공급하고, 양파·당근·토마토의 씨앗은 일본산이 80% 이상 차지한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토종 씨앗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아. 토종 씨앗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1970∼80년대에 사라졌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토종 볍씨 대신 일본에서 가져온 볍씨를 심으라고 강요했어 … 컬러TV의 등장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단다. 흑백 화면만 보아 왔던 사람들은 컬러TV의 화려한 색깔에 매료됐어. 거실이나 안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갔고,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참인 양 믿었지 ..  (49, 82쪽)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도 역사를 가르칩니다. 역사책에는 ‘새마을운동’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무엇이고, 새마을운동 때문에 시골과 도시가 어떻게 달라져야 했으며, 우리 삶이 얼마나 일그러졌는가까지 다루지 않아요.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조리 떠나 늙은이만 남은 시골에서는 비료와 농약에 길든 ‘화학기계농’으로 바뀝니다.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늙은이는 농협빚을 얻어 기계를 들이거나 빌리지만, 거친 곳에서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농기계는 곧 슬거나 망가져요. 곡식과 남새와 열매는 아주 싸게 농협에서 사들이면서, 시골사람한테 농약과 비료를 파는 농협이고, 농기계와 기름까지 비싸게 파는 농협이에요. 이러는 동안, 논에 살던 뜸부기는 거의 다 죽고 사라집니다. 〈오빠 생각〉이라는 노래에만 〈뜸부기〉 이름이 남을 뿐, 이제 한국 시골에서 뜸부기라는 아주 흔하던 들새를 만날 길이 없습니다. 뻐꾸기도 꾀꼬리도 후투티도, 시골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어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기 어렵고, 다슬기를 줍기 어렵습니다. 밤에 논배미에서 반딧불이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골짜기마다 4대강사업을 앞세운 시멘트 토목사업이 가시촉수를 뻗은 탓에, 돌을 들어 가재를 줍는 일마저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역사책에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역사학자는 이러한 데까지 알지 못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역사학자는 옛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책을 쓸 뿐이니, 우리 삶과 얽힌 이야기를 역사로 마주할 줄 모르고,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가르칠 줄 모릅니다.



.. 공무원들의 근무복은 1996년에 사라졌지. 공무원을 중심으로 시행됐던 근무복은 그 옷을 입은 모든 공무원을 국가에 충성하는 단순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어. 근무복은 자유롭고 싶은 개개인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하나의 색과 생각만을 강요하는 수단이었던 셈이야. 곧 간소복은 교복과 비슷한 역할을 한 거지. 교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성을 추구했지만 미성년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어 … 개인이 자기 머리카락을 짧게 깎든 길게 기르든 이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개인의 자유권에 속해. 장발이 무슨 전염병도 아닌데 질서유지를 이유로 이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발상은 통제의 시대로 불리는 1970년대 정권의 의식 수준이었지 ..  (97, 100쪽)



  이임하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제도권 교과서에서 벗어나 ‘문화’로 역사를 읽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앙 집권 통제’로 얼룩진 교과서를 내려놓고 ‘문화’에서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지식이 아닌 문화를 건드립니다. 위에서 억누르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가꾼 문화를 돌아봅니다. 정부에서 억지로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입시지식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오순도순 조그맣게 일군 문화를 바라봅니다.


  역사란 무엇일까요. 역사책에 적히면 역사일까요? 역사학자가 말하면 역사일까요? 대학교 역사학과를 다니면서 논문을 쓰면 역사일까요? 중앙정부에서 밝히는 자료가 역사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역사일까요?


  한국 문화를 밝히는 이들은 으레 ‘궁중 음식’을 놓고 ‘한국 음식 문화’라고 말합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궁중 음식도 ‘한국 음식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아주 조그마한 갈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역사에서 ‘궁중 사람’은 한줌조차 안 될 만큼 아주 적거든요.


  ‘한국 음식 문화’를 말하려면, 이 나라를 이룬 거의 모든 사람이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에서 누린 ‘밥’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궁중 음식만 가짓수가 많지 않아요. 여느 살림집 여느 밥도 가짓수가 많아요. 게다가, 여느 살림집은 철마다 온갖 나물을 밥으로 삼습니다. 궁중에서는 사람들이 바친 몇 가지 물고기와 뭍고기만 다루지만,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에서는 온갖 물고기를 두루 잡아서 먹고, 온갖 뭍짐승을 잡아서 고기로 익혀서 먹어요. 궁중에서도 메뚜기나 개구리를 주전부리로 올렸을까요? 갓 낚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살을 저며 먹거나 찌개를 끓여서 즐기는 궁중 음식이 있을까요? 갓 낚은 물고기는 궁중까지 갈 수도 없습니다.



.. 1958년 초등학교 운영비의 75%가 사친회비였지. 공식적으로 내는 수업료와 사친회비 이외에도 무수한 잡부금이 있었어 … 나라의 국방비 예산은 50%를 넘었지만 교육비는 10%도 넘지 못했으니 사친회비나 기성회비 또는 잡부금을 걷지 않고는 학교를 운영할 수 없었던 거야 … 사람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을 ‘사상이 이상한 사람’ 또는 간첩이라고 신고했어. 이러한 제도는 이웃은 물론 가족조차 항상 의심하게 하는 관성을 갖게 했고 이성적인 판단과 공개 토론을 불가능하게 했지. 국민의 생활을 감시하는 최종판은 바로 주민등록증의 발급이란다 ..  (158, 159, 234∼235쪽)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우리 문화’를 굵직굵직하게 다룹니다. 우리 문화를 하나하나 짚자면 참으로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초등학교 운영비’ 이야기를 놓고도 우리는 책 몇 권을 쓸 만큼 이야기가 넘칩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책에 안 실려요.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도 역사책으로 쓰려고 하면 두툼한 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두환이 긁어모은 평화의댐 성금과 현대사’라든지 ‘박정희가 긁어모은 방위성금과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현대사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는 ‘평화의댐 성금’을 얼마나 냈을까요? 우리는 ‘방위성금’을 얼마나 냈을까요? 이러한 자료나 통계가 남았을까요? 교육부나 정부는 이러한 자료나 통계를 공개할까요?


  우리는 ‘위문편지’를 얼마나 많이 써야 했을까요? 초·중·고등학생한테 위문편지를 쓰도록 시키면서 편지종이는 얼마나 많이 팔아치우고, 우표장사는 또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학교에서 온갖 숙제를 내주면서 학교 앞 문방구는 ‘과제물 장사’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불량식품 만드는 공장’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고, 이러한 ‘경제 규모’는 어떻게 살필 만할까요?



.. 농촌 빈곤의 원인은 오히려 농업과 농민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공업 중심의 성장 제일주의에 있었지. 그런데도 농민들의 나태한 생활 태도와 정신 자세만을 강조했어. 새마을운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농촌의 낙후한 빈곤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렸던 거야 ..  (237쪽)



  역사는 책이 아닌 삶에서 읽습니다. 책에 적힌 역사는 ‘참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 거짓이기 일쑤입니다. 사람들 눈을 속이면서, 사람들 머리에 엉뚱한 정보와 숫자가 가득 차도록 길들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대통령이 내놓는 말이라든지 외교 정책은 역사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록’이라고 느낍니다. 대통령이 남긴 기록이라든지, 정부가 다른 나라와 맺은 기록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듬고 가꾼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어야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발자국을 남긴다고 해서 모두 역사로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발자국은 모두 발자국인걸요. 이 발자국 가운데 ‘역사’로 남길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고르거나 뽑을 수 없습니다. ‘역사’로 남길 이야기란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삶과 사랑을 아름답게 짓도록 이끄는 이야기여야지 싶어요.


  조선 무렵 임금 이름이나 오늘날 대통령 이름은 그야말로 ‘기록’입니다. 경제개발 숫자나 새마을운동 같은 일도 한낱 ‘기록’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삶을 짓고 역사를 새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손수 삶을 가꾸면서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이러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가 되리라 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참답게 역사로 나아갈 노릇이고, 슬기롭게 삶을 읽을 노릇이며, 아름답게 사랑을 가꾸어 이야기를 아로새길 노릇입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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