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3: 1960 ~ 1976
반 토시오, 테즈카 프로덕션, 아사히 신문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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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83



‘만화 그리는 하느님’은 어떤 꿈을 꾸었나

―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3, 1960∼1976

 반 토시오·테즈카 프로덕션·아사히신문사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11000원



  아이들은 만화책을 좋아합니다. 어른도 만화책을 좋아하지요. 아이들은 만화책에서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자그마한 아이가 커다란 어른을 한주먹으로 누르기도 하고, 가볍게 뛰었는데 구름을 뚫고 달이나 토성까지 닿기도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는 사이에 몸을 잊으면서 아득한 꿈나라를 누비고, 언제 어디에서나 새랑 노래하고 나비하고 춤추는 기쁜 놀이를 누려요.


  만화가 아니라면 이러한 꿈이나 놀이나 사랑을 맛볼 수 없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사회에서는 꿈도 놀이도 사랑도 뒤로 처지거나 짓눌리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성장이나 개발만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없애지 않으려는 어른이 너무 많은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거나 신나게 꿈꾸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학위논문을 위해 우렁이 정자의 스케치 등을 그렸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나라 의과대학 연구실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1961년 1월 29일에 학위를 땁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의학박사가 된 것입니다. (11쪽)


“테즈카 선생님은 드디어 애니메이션을 시작하셨구나.” “선생님의 꿈이었으니까.” “개인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선생님의 애니메이션에는 흥미가 가지만 말이야.” (19쪽)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학산문화사,2013)는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 삶을 돌아보는 만화책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이 땅을 떠난 지 스물 몇 해가 흐른 요즈음, 테즈카 오사무 님이 어떤 만화를 어떻게 그렸는가를 만화로 되짚어요.


  테즈카 오사무 님 곁에서 만화를 도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녁한테서 원고를 받으려고 며칠 동안 밤새워 기다리던 출판사 편집자들이 이야기를 거듭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손수 쓴 글에서도 이야기를 따옵니다.


  그러면, 일본뿐 아니라 지구에서 ‘만화를 그린 하느님(만화의 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테즈카 오사무 님은 왜 만화를 그렸을까요? 스스로 기쁨이 넘쳐흘렀기에 만화를 그렸습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으면서 전쟁 소용돌이를 일으켰어도 총검을 버리고 펜대를 쥐면서 화장실 벽에다가 만화를 그렸지요. 의학 공부를 하다가 만화를 그렸으며, 끝내 의사로 가는 길을 그만두고 만화가로 가는 길을 걸었어요.



‘만화영화에 그만큼의 수고와 품질을 논하는 것은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우선 인건비가 들고, 제작 기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개봉하면 ‘뭐야, 어린이 만화잖아’라며 어른들은 비웃는다.’ (34쪽)


“아야미 씨, 내일 방송은 취소하죠! 이런 일은 계속 해 나갈 수 없어요!” “방송을 취소한다고 하면, ‘매주 TV 애니메이션 따위 역시 불가능하잖아!’ 이런 소리를 들을 거예요. 그리고 더 이상 스폰서도 붙잡지 못하고, 누구도 TV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56쪽)



  스스로 아이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만화를 그리려 한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는 가슴에 늘 품은 꿈이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책으로 빚는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로 빚는 만화’입니다. 이리하여, 첫째 꿈인 ‘책으로 빚는 만화’를 엄청나게 그리면서 돈도 엄청나게 모으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씩씩하게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립니다. 누가 도와줘서 차리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아니라 ‘만화를 그려서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붓는’ 애니메이션 회사이지요.


  만화를 그리면 ‘돈을 쓸 일이 없다’고 하기에, 그림삯을 차곡차곡 모아서 건물을 짓고 일꾼(애니메이터)을 둡니다. 한때 400∼500 사람에 이르는 일꾼이 있었다는데, 이들은 모두 테즈카 오사무라는 ‘만화 하느님’이 빚은 만화에서 얻는 그림삯으로 만화영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만화책을 잇달아 선보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만화영화를 빚으려고 온힘을 쏟습니다. 애써 마무리지은 만화영화도 어디에선가 빈틈이 보이면 모두 버리고 새로 빚기로 합니다. 이런 손길하고 땀방울이 모여서 〈아톰〉이 만화영화로 태어났고, 이 만화영화 하나는 일본뿐 아니라 지구별 만화영화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고 합니다.



시험에 합격한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은 3개월 정도 걸리는 양성 기간에 들어갑니다. 양성을 위한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미술대학 애니메이션과라든가 전문학교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현장의 빡빡한 일정을 완화하려면 인재를 늘릴 수밖에 없다, 신인 육성에는 선배들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76쪽)


만들면 팔린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제작된 조악한 작품의 범람이 돼서 시청자가 TV 애니메이션에 고개를 돌리게 하지는 않을까.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테즈카 오사무는 급격한 붐의 일그러진 일면을 경계했습니다. (94쪽)



  죽는 날까지 펜대를 놓지 않고 잠을 미루면서 만화를 그린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는 그림삯(돈)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새로운 이야깃감을 생각해 내려고 하는 삶이었고, 새로운 만화책을 선보여 아이들한테 꿈하고 사랑 두 가지를 들려주려고 하는 넋이었습니다. 언제나 마감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면서 만화를 그리면서도 ‘새로운 연재’를 자꾸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고 싶은 만화가 자꾸자꾸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이야기도 그리고 저런 삶도 그리며 그런 노래도 만화로 그리고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놀고 싶어요. 어제 하던 놀이를 오늘도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어 누리고 싶습니다. 오늘 밤이 저물어 잠자리에 들 때에는, 어제오늘 누린 놀이에다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누리고픈 놀이를 꿈으로 그리지요.


  꿈이 있기에 한길을 걷고, 꿈을 새로 가꾸며 다시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는 셈입니다. 꿈을 돌아보면서 기운을 차리고, 꿈을 되새기면서 언제나 즐거이 거듭나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앞의 말처럼 소년만화에 집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무렵 소년만화에는 나가이 고 씨의 〈파렴치 학원〉이 등장하였고, 성교육을 다시 재점검하자는 사회 풍조도 있어서 귀엽게 살짝 야한 묘사는 소년만화에서 극히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만화가들은 종래 소년만화의 성에 대한 터부를 확실히 무너뜨렸습니다. 1955년 전후의 악서추방운동을 겪은 만화가는 이것 때문에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139쪽)



  다른 수많은 만화가하고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서 무척 크게 다른 대목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로 ‘소년만화를 그리는 테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에서는 ‘귀엽게 살짝 야한 묘사’가 조금도 없습니다. ‘안 귀엽게 제법 야한 묘사’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구태여 이런 기법까지 끌어들여서 인기나 지지도를 얻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고, 아이들이 꿈이나 사랑을 생각하도록 온힘을 쏟는 이야기를 만화로 빚고 싶은 테즈카 오사무 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를 제쳐두고, 제게는 그리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166쪽)


데즈카 오사누는 1976년부터는 대형 출판사 만화상의 심사위원직을 전부 사임했습니다. 이유는 심사하는 것보다는 심사받는 쪽에 서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게도 다른 작가들처럼 만화상을 받을 정도의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정열 같은 것이 있다. 만화가는 연령을 불문하고 신인도 경력이 있는 사람도 다 함께 뒤엉켜서 작품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181쪽)



  어떤 만화가 재미있을까요? 재미있게 빚은 만화가 재미있습니다. 어떤 만화가 ‘귀엽게 살짝 야할’까요? 이런 마음으로 이런 기법을 쓰면 만화가 이러하겠지요. 어떤 만화가 즐거울까요? 즐거운 꿈을 즐겁게 그리는 만화가 즐겁습니다. 그러면, 어떤 만화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슴에 담고서 이야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실으려고 온힘을 쏟는 만화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만화책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는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님한테 바치는 책이라 할 수 있으면서, 만화를 그린 하느님이라 할 테즈카 오사무 님 발자국을 돌아보는 책이 되고, 만화책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만화는 어떻게 그리는가?’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만화를 그리려는 뜻을 품은 젊은이한테 ‘만화를 그리는 마음과 몸짓과 넋’을 어떻게 다스릴 때에 오래도록 기쁜 숨결이 되어 만화를 그릴 수 있느냐를 알려주는 길잡이책이기도 합니다. 4348.12.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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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11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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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81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주저앉는다
― 악의 꽃 11
 오시미 수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0.25. 4500원


  어느 아이든 처음에는 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밤을 무서워하는 까닭은 어른들이 아이한테 ‘밤이 무섭다’는 얘기를 들려주거나, ‘밤이 무섭다’고 하는 줄거리가 깃든 책이나 영화나 무언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밤이 무서운 줄 모르던 티없던 아기가 ‘밤이 무섭다’고 배우면, 이제는 밤에는 집에 틀어박혀서 바깥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삶으로 지내야 할까요?

  아니면, 온누리에는 ‘낮만 있다’는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온누리에 낮만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아이한테 낮만 보여주면 될까요? 아이는 낮에만 움직이도록 하면 될까요?

  그러면, 낮은 얼마나 어떻게 낮이고, 밤은 얼마나 어떻게 밤일까요? 낮하고 밤은 저마다 어떤 구실을 할까요? 밤은 왜 있고, 낮은 어떻게 있을까요? 눈으로 보는 사람하고 눈으로 못 보는 사람한테 낮이나 밤은 무엇일까요?


“사와는 그냥 놔줬으면 좋겠구나. 그 아이, 지금 아주 평온해. 나와 둘이서. 그러니. 미안하다.” “그래도, 잠깐만 얘기할 수 없을까요?” (14∼16쪽)

“아빠는? 그 후로 넌, 어떻게 살아온 거야?” “까먹었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딴 거.” (27∼28쪽)


  오시미 수조 님 만화책 《악의 꽃》(학산문화사,2014) 열한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열한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악의 꽃》 열한째 권은 마지막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고장으로 떠난 어버이는 ‘이녁 아이한테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든 덮으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한 해가 흐르고 세 해가 지나며 열 해가 간다면 옛일은 아물거나 잊히리라 여기지요. 그러나,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요. 어릴 적에 마음에 아로새긴 이야기나 일이나 생각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아이는 스스로 일어서려고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맞서려고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떠난 고장으로 혼자서 돌아가려 합니다. 이때에 아이 곁에서 동무 하나가 함께 가기로 해요. 두 아이는 옛 아이를 찾으려고 옛 고장으로 가고, 세 아이는 한자리에 모여서 마음속에 맺힌 앙금이 무엇인지 똑똑히 새삼스레 마주합니다.

  아이는 일어서야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아이는 ‘되든 안 되든’ 스스로 일어나서 씩씩하게 한 걸음을 새로 내딛어야 합니다.


“그때 왜 날 떠밀었어?” (37쪽)


  《악의 꽃》에 나오는 아이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동무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느낍니다. 예전에 살던 고장에서는 늘 답답하고 까마득하면서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마음을 터놓을 사이로 지낼 만한 동무가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는 새로운 고장에서 살다가 ‘이렇게 환하고 밝은 곳이 다 있네’ 하고 느꼈고, 이러면서 이 아이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깊은 어둠을 어떻게든 또렷이 마주하면서 풀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살고 싶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이 될 수 없는 줄 깨닫습니다. 무척 아프고 힘든 줄 알지만, 무척 아프고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꿋꿋하게 맞서야 하는 줄도 알아요.


“잘됐네. 그렇게 모두들 자기가 갈 길을 선택하는 거지.” “그럼, 나카무라, 넌?” (47쪽)

“나카무라, 난 아무것도 잡을 수 없어.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도, 닿았다 생각하면 어느새 멀어져 가. 도달했다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돼. 그래서, 그래도, 난 기뻐. 네가 사라지지 않아서.” (65∼67쪽)


  시간이 흐르면 다 아문다고 하지만, 이는 어느 모로 맞으면서 어느 모로 틀립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 다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만, 그냥 딱지가 얹을 뿐이지, 생채기는 사라지지 않거든요. 생채기를 기쁜 웃음으로 다스리려는지, 아니면 생채기를 느낄 적마다 슬픈 눈물로 다시 아파할는지, 이 대목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고 늙어서 죽는 날까지 그저 아프고 또 아프기를 바란다면 생채기 앞에서 고개를 홱 돌리면 돼요.

  그렇지만, 아이가 앞으로 다시는 아프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생채기 앞에서 똑똑히 마주서야 합니다. 다친 자리는 제대로 다스려야 낫지, 다친 자리를 안 쳐다보고 고개를 돌린 대서 나을 수 없습니다. 아픈 자리는 ‘아프구나’ 하고 느끼면서 다독여야 찬찬히 낫지, 아픈 자리를 안 쳐다보고 눈을 감는 대서 안 아플 수 있지 않습니다.


“아, 그거 나도 읽었어. 그런데 내 머리론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 “아, 나도 중학교 때 읽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책처럼 재미있어.” “헤에, 그런가? 그런데 중학생이 《악의 꽃》을? 빠르네.” “아니, 빠르고 늦고는 상관없지 않나?” (100∼101쪽)

“아니, 적어도 난, 재밌어, 네 소설. 상 받으면 좋겠다.” “응, 뭐, 전에 쓴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건 최고였어.” (115쪽)


  스스로 일어서려 하기에 일어섭니다. 스스로 등돌리려 하기에 등돌립니다. 스스로 맞서려 하기에 맞섭니다. 스스로 바보스러우려 하기에 바보스럽습니다. 스스로 사랑스러우려 하기에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꿈을 꾸려 하기에 꿈을 꿉니다. 스스로 걸으려 하기에 한 발짝씩 내딛습니다. 스스로 노래하려 하기에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아이답게 새로운 숨결로 꿈꾸고 노래하는 삶을 지을 수 있어야 아이로 웃을 수 있어요. 아픔도 눈물도 언제나 웃음으로 삭히면서 고이 노래할 수 있는 나날일 적에 아이가 맑고 튼튼히 자라요. 넘어진 뒤에 일어나야 다친 데가 낫습니다. 넘어졌대서 그냥 넘어진 채 울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될 테지요.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두 아이, 또 세 아이는, 그리고 여러 아이는,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비로소 새로운 숨결을 마십니다. 열 살에는 열 살대로 삶을 바라보았고, 열두 살에는 열두 살대로 삶을 바라보았으며, 열여섯 살에는 열여섯 살대로 삶을 바라보다가, 스무 살과 서른 살에는 또 이 나이대로 새로운 눈길로 새로운 숨결을 마시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어서 피울 꽃이란 무엇인가를 그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게 ‘삶을 똑바로 마주하’는 동안 하나씩 슬기롭게 깨닫습니다. 4348.1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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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1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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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80



함께 지어서 부르는 노래

― 순백의 소리 11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9.25. 4800원



  목소리가 곱기에 노래를 곱게 부르지는 않습니다. 목소리가 곱더라도 노랫가락을 살피지 않으면 고운 노래가 흐르지 못합니다. 노랫가락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살펴서 목소리를 가만히 얹을 적에 비로소 고운 노래가 흐릅니다.


  소리를 잘 내기에 노래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리에 마음을 얹기에 노래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이야기를 실으며 노래에 두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꿈이랑 사랑을 담으며 노래에 세 발짝 다가섭니다. 소리에 삶을 여미며 노래에 네 발짝 다가섭니다.


  그냥 태어나는 노래란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빚는 숨결일 때에 노래가 태어납니다. 전문가 몇 사람이 꾸미기에 노래가 태어나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노래를 빚습니다.



“우승과 입상의 차이는, 사실 종이 한 장밖에 안 돼. 네 실력은 충분하니까, 그 약간의 차이를 대회에서 극복해야지.” (3쪽)


“분명한 건 말이지, 그걸 극복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거야.” (18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5) 열한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을 이끄는 주인공 아이가 샤미센으로 ‘다른 이 노래에 반주하기’를 합니다. 이제껏 ‘반주로 샤미센 켜기’는 한 적이 없던 아이였지만, 일본 전통 술집에서 ‘샤미센 반주자’로 일하면서, 이 악기로 켜서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익혔고, 이 소리를 바탕으로 스스로도 새로 거듭나려 합니다. 이러면서 노래꾼한테도 노래를 스스로 거듭나게 하는 길을 북돋아 주지요.



“난 노래하는 게 좋아. 그 마음을 끌어내 줄래?” “마니 씨, 지는 마니 씨의 노래도 목소리도 가락도 좋습니더. 그러니까, 그 개성을 죽이지 않아예. 살릴 깁니더! 반주는 도핑같이 몸에 나쁜 기 아이라, 양분입니더.” (37∼38쪽)


“카미키 세이류는 노래꾼을 봐 가며 연주해. 노래꾼보다 눈에 띄려 하지 않으니까, 노래꾼의 실력이 딸리면 자기도 힘을 발휘하지 않는단 말이야.” (75쪽)



  노랫가락은 함께 지어서 부릅니다. 나 혼자서 지어서 부르는 노래란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짓기는 하되,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결이 되기에 내 목에서 새로운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이제껏 살면서 나를 둘러싼 해님이랑 바람이랑 빗물이랑 눈송이랑 흙이랑 풀이랑 나무랑 벌레랑 …… 이 모두를 가만히 얼싸안는 손길이 되기에 새로운 노랫가락이 시나브로 샘솟아요.


  모든 것이 노랫가락 하나로 모입니다. 모든 것을 노랫가락 하나로 모읍니다. 오늘 하루 누리는 삶도 노랫가락 하나로 모으고, 어제까지 살아온 발자국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노랫가락 하나에 담습니다.



‘노래와 샤미센의 가락이 딱 맞아떨어져, ‘마음’이라는 단 한 개의 단어가, 20초가 넘는 현란하게 빛나는 소리가 되었다.’ (115쪽)


“사와무라 씨도 마츠고로 씨 소리를 듣고 컸다 아이가.” (178쪽)



  바람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은 노래를 부를 적에 바람소리를 싣습니다. 물결이나 구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은 물결이랑 구름이 들려준 소리를 이녁 노래에 싣지요. 자동차나 승강기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면 이러한 소리를 노래에 싣습니다. 따사로운 품으로 따사롭게 돌본 어버이 품을 누린 사람은 이러한 결을 노래에 싣고, 차갑거나 매몰찬 손짓을 받아야 한 사람은 이러한 삶대로 이러한 결을 노래에 실어요.


  더 낫거나 바보스레 떨어지는 노래는 없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고, 저런 노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있고, 저런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가꾼 삶결을 노랫결로 가꿉니다. 저마다 일군 꿈결을 노랫결로 가다듬습니다.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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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의 나라 3 - 애장판,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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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8



외계인과 초능력,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

― 칠석의 나라 3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6.25. 9000원



  가을을 맞이하면 나무마다 잎을 하나둘 떨굽니다. 겨울을 앞두면 나무마다 잎을 우수수 떨구고, 네 철 푸른 나무도 틈틈이 가랑잎을 떨구어요. 한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구어 앙상한 나무가 많은데, 이렇게 나무가 떨군 나뭇잎은 어느새 삭아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나무는 햇볕이랑 바람이랑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흙을 먹으면서 잎을 내놓지요. 그리고 이 잎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요. 흙에는 지렁이를 비롯해 수많은 풀벌레가 있기에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습니다. 풀벌레 주검도, 숲짐승 주검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흙이 되어요.



“아니, 저, 다들 어떤 길로 가려나 싶어서.” “그야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겠죠, 뭐.” “그것뿐이야?” (8쪽)


“마루카미 고을에 사는 작자들은 옛날부터, 마음속으로는 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결국은 자신을 옭아매어 좁은 산골짝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28쪽)



  흙으로 바뀐 나뭇잎은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죽고 남은 껍데기도 흙으로 모습을 바꿀 뿐,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먼먼 옛날부터 우리 몸이 흙을 이루고, 또 우리는 흙에서 밥을 얻으며, 다시 흙에 똥이랑 오줌을 돌려주고, 새삼스레 몸을 흙으로 보내고, 다시 이 흙에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칠석의 나라》(학산문화사,2014)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칠석의 나라》는 어느 마을에 옛날부터 내려온 두 가지 ‘숨은 힘’을 쓰는 사람들 삶을 보여줍니다. 두 가지 힘 가운데 하나는 “보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쓰는 힘”입니다. 여기에서 “보는 힘”은 이곳이 아닌 다른 저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힘입니다. “쓰는 힘”은 이곳하고 저곳 사이를 이으면서 이곳에 있는 것을 감쪽같이 없애는 힘이에요.



“뭐랄까, 세상이 너무 넓어졌어요. 사회생활의, 흔히 놓치기 쉬운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며 노력이며 생각들이, 담겨 있는지 깨달아 버렸다고나 할까.” (52쪽)


“이대로 물러나면 다인 줄 알아!” “아냐, 우린 도망갈 필요도 없어. 단지, 그 사람은, 마음속의 응어리와 담판을 짓고 싶댔어.” (70쪽)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보는 힘”이든 “쓰는 힘”이든 이러한 힘을 타고난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힘을 타고난 이들은 언제나 두려움에 휩싸인 채 삽니다. 이러한 힘 때문에 몸이 달라지니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러한 힘이 없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도 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요.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은 손을 움직여서 기운을 일으킵니다. 동그란 구슬처럼 생긴 기운을 일으켜서 이 기운을 날리는데, 이 기운이 날아가면 이 구슬이 지나간 자리가 모두 사라져요. 마치 폭탄 같은데, 어떤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않고 싹둑 자르거나 도리듯이 없애 버려요.


  이리하여 이 “쓰는 힘”은 예부터 마을을 군대한테서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몰래 죽이는 데에 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쓰는 힘”을 다루는 사람은 이 힘을 다루어 손을 놀릴 적마다 몸에서 구슬 같은 것이 튀어나오면서 커지고, 어느덧 새(까치라 할는지 외계인이라 할는지)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뀝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분명, 그다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4쪽)


“부모 형제의 죽음, 연인의 죽음, 자식의 죽음, 여러 죽음과의 만남이 있지만, 하지만 그건 모두 ‘창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창?” “정말 슬픈 것은 아아, 자신의 죽음, 자기만 그곳에서 없어지는 자기 혼자만 ‘창 밖’으로.” “창 밖!” (167쪽)


‘그래도,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죽어도, 별 같은 점이 되어 혼자 오도카니 있을 텐데도, 누군가가 있어요. 은하수 저편에.’ (170∼171쪽)



  만화책에서 나오는 두 가지 힘을 다루는 사람은 오늘날 사회에서는 ‘초능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초능력을 쓰는 사람을 바라보는 ‘초능력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무서워합니다. 초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회를 어지럽히리라 여기고, 초능력으로 사회를 뒤집어엎을는지 모른다고 여겨요.


  그러면, “보는 힘”이나 “쓰는 힘”이 있는 이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거나 뒤집으려는 뜻이 있을까요? 외진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뒤엎어서 새로운 임금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있을까요?



“쓸 곳은 모르지만 딱히 곤란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것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208쪽)


“지금부터 천 년 정도 전, 상공에 나타난 ‘까치’들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곳은 팔백만 신들의 나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이나 그 모습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야말로 ‘신’의 것이었겠지. 적어도 거역할 자는 없었어.” (246쪽)



  만화책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초능력을 쓰는 사람’은 먼 옛날에 지구별을 찾아온 외계인이 남겨 놓은 씨앗이라고 합니다. 엉성하거나 어수룩하게 사는 지구별 사람들을 가엾게 여긴 어느 외계인이 이 작은 마을에 내려와서 ‘어떤 힘’을 몇몇 사람한테 남겨 주었고, 이 힘이 찬찬히 대물림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외진 작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다는데, 이 제사란 하늘을 기리는 몸짓이라기보다 ‘먼 옛날에 우리를 도와준 외계인’한테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다’고 알리는 몸짓이면서 ‘부디 다시 이곳으로 찾아와서, 우리를 그대가 있는 그 별(외계)로 데려가 달라’는 몸짓이라고 해요. 이 지구별에서 겪거나 치러야 하는 고달프고 아프며 괴로운 일이 너무 많기에, 고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삶터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비는 제사(칠석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보는 힘”이 있는 사람이 보는 모습은 바로 그 외계별 세계라 할 테고,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이 구슬을 다루어 무엇이든 싹둑 자르듯이 없애는 재주란, 이곳(이 지구별)에 있는 무엇이든 저곳(외계별)으로 보내는 수수께끼 같은 힘이라고 여긴다고 할까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저승이건 이승이건 상관없단 말이야! 이 세상이 어떤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 됐어요.” “다들, 다들 이 세상의 넓이를 너무 몰라! 넓고,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에이,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세상 일들을 TV로 대충 보고 아는 체하지 마! 그런 건 다 가짜라구!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주 작은 곳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 실패나 새 출발이 모여 있어.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의 백 배 천 배는 넓다구! 그에 비하면 무서운 꿈도, 보이지 않는 사슬도, 요란한 초능력도 작은 거야! 겨우 일부라구! 그런 것에다 목숨을 왜 맡겨!” (299∼301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꿈을 찾지 못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려 할 만합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머나먼 길을 떠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라는 별에서 아무런 꿈을 찾지 못한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이 지구별에서 어느 곳에 가든 전쟁이 그치지 않고, 불평등과 반민주와 독재와 그악한 몸짓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이 지구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아름다운 지구별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힘이 센 나라이든 힘이 여린 나라이든 하나같이 전쟁무기 키우는 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바보짓을 그치지 않는다면, 따돌림과 푸대접이 자꾸 불거지기만 한다면,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빈 껍데기 같은 허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는 꿈은 너무 부질없거나 덧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를 어떻게 떠날까요? 우주선을 만들어서 우주선을 타야 할까요? 지구를 떠난다면 어느 별로 가야 할까요? 사람이 살 만한 다른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별 문명으로 드넓은 우주에서 새로운 별을 찾아낼 수 이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구를 떠나서 새로운 별을 찾는 길을 열 만할까요, 아니면 씩씩하고 당찬 마음이 되면서 이 지구별을 새롭게 가꾸자는 뜻을 펼칠 만할까요? 아니면 그냥그냥 이 지구별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면 될까요?


  만화책에서만 흐르는 외계인과 우주 이야기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이 지구에서 우주를 더 너르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키울 노릇이요, 무엇보다 이 지구별이 지구사람한테도 외계사람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이 되도록 가꿀 노릇이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스려야지 싶어요. 삶을 밝히는 길은 남(외계인이나 어떤 권력자)이 아닌 바로 내가 스스로 갈고닦기 때문입니다. 4348.11.3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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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특고 아이들 5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7



남다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 강특고 아이들 5

 김민희 글·그림

 서울문화사 펴냄, 2009.7.31. 4000원



  김민희 님이 빚은 만화책 《강특고 아이들》(서울문화사)은 2007년에 첫째 권이 나오고, 2010년에 일곱째 권이 나오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강특고’는 서울 강남이 아닌 강원도에 있는 ‘특고’이고, ‘특고’에서 ‘특’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가 아니라 ‘특별한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입니다.


  ‘강특고’ 아이들이 펼치는 남다른 재주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흔히 ‘초능력’이라고 일컫는 재주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모이는 아이들이 쓰는 남다른 재주는 여느 사람들이 좀처럼 받아들여 주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여느 사회에서 여느 사람들이 받아들여 주지 못하다 보니 강원도 깊은 멧골에 숨듯이 있는 강특고로 모인다고도 할 만합니다.



‘도시는 너무 시끄러워. 인상이 절로 써지는걸. 외롭다. 고등학교 때는 모두에게서 사랑받았는데.’ (31쪽)


“새랑 쥐가 불쌍해! 나 정말 채식주의자가 될 거야!” “앞으로 야채 반찬 먹기 글렀네.” “그럼, 세나 피부가 좋아진 건 새랑 쥐를 먹어서 그런가? 그럼 나도 새나 쥐를 먹어 볼까! 내 피부!” (37쪽)



  중학교는 고등학교로 가는 징검돌이라 하고, 초등학교는 중학교로 가는 징검돌이라 합니다. 고등학교는 대학교로 가는 징검돌이거나 사회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는 징검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든, 대학교까지 더 다녀서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를 마친 뒤 집에서 놀거나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집에서 놀면 미움이나 손가락질을 받지요. 일자리를 얻지 않는 아이들을 가리켜 ‘흰손’이라는 뜻으로 ‘백수’라고도 합니다.


  강특고를 다닌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로 간 몇 안 되는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은 ‘소리를 아주 잘 듣’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몹시 괴롭지요. 온갖 자질구레한 소리가 다 들리니까요. 더군다나 강특고에서는 저마다 ‘남다른 재주’가 있기는 하지만 이 남다른 재주 때문에 여느 사회에서는 이웃하고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들이 모였어요. 다시 말하자면, 강특고 아이들은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스히 헤아리면서 즐겁게 지낼 만한 이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귀엽다고 한 소리는 내게 한 게 아니구나. 어째서 그런 걸까. 그 동물들도 다 나인데.’ (58쪽)


“지문이가 내 인간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호숙이(멧짐승인 범)는 귀엽지만 이 몸(사람으로 바뀐 몸)은 늙은이니까.” (61쪽)



  만화책 《강특고 아이들》은 어렵거나 골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남다른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깊은 멧골에서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웃음이 터질 만한 이야기가 흐르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이야기가 흘러요.


  어느 모로 본다면 ‘초능력이 있는 녀석들이 참 바보스럽게 구네’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보스럽게 굴거나 노는 모습은 ‘초능력이 있다는 사람’뿐 아니라 ‘초능력이 없다는 사람’도 매한가지예요. 그냥 사람으로서 누구나 보여주는 모습이니까요. 강특고 아이들한테는 남다르다는 재주가 하나씩 있을 뿐이거든요.


  그리고, 강특고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남다른 재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바느질 솜씨가 좋다든지, 걸음이 빠르다든지, 노래를 잘 부른다든지, 된장국을 잘 끓인다든지, 밥물을 잘 맞춘다든지, 비질이나 걸레질을 잘 한다든지, 심부름을 잘 한다든지, 저마다 즐겁게 누리는 솜씨나 재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저 잘 노는’ 모습으로도 재미있으면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공기놀이를 잘 할 수 있고, 저 아이는 딱지치기를 잘 할 수 있으며, 그 아이는 연날리기를 잘 할 수 있어요.



‘이상하네, 싫지가 않아. 여전히 좋아! 정말 좋아하면 겉모습은 상관없나 봐.’ (80쪽)


“선배, 뭘 믿고 새로 변신 안 하셨어요? 제가 없었음 떨어져 죽었어요!” “변신하면 옷 찢어질까 봐!” (86쪽)



  아이들은 남달라서 남달리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남다르지 않아서 수수하게(남다르지 않게) 사랑스럽습니다. 말솜씨가 없든 글재주가 없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말솜씨가 없는 아이는 말솜씨가 없는 대로 사랑스럽습니다. 글재주가 없는 아이는 글재주가 없는 대로 사랑스러워요. 개구진 장난을 즐기는 아이는 개구진 장난을 즐기는 대로 사랑스럽고, 말썽꾸러기라는 아이는 말썽꾸러기 모습이 사랑스럽지요.


  나는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면서 이 대목을 늘 느낍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쉬지 않고 놉니다. 지칠 줄 모르는 기운이 솟아서 끝없이 놀고 또 놀고 새롭게 놉니다. 때때로 두 아이가 놀이를 그치고 얌전히 있을 때가 있는데, 문득 낮잠이 오거나 살짝 힘이 들 때입니다. 한 아이라도 낮잠이 들면 집안이 아주 고요해요. 마치 사람이 안 사는 집 같습니다. 이때에 이런 기운을 느끼면서 새삼스레 돌아보지요. 참말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기에 아이들이요, 무슨 놀이가 되든 실컷 누릴 수 있어야 아이다운 숨결을 북돋우는구나 싶어요.



‘동물로 변신 못하는 나는 아무 힘이 없구나. 이런 건 싫어. 힘을 되찾으려면 손을 놓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 하지만 손을 놓고 싶지 않아.’ (111쪽)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토끼 중에 날 골라 이름을 붙여 줬지. 민수랑 지내면서 난 정말 오래 살고 싶어졌어. 즐거운 게 뭔지, 슬픈 게 뭔지, 괴로운 게 뭔지,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어서 … 나, 능력을 잃어가나 봐. 몇 년 전부터 늙어가는 게 느껴져.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지금처럼 민수가 힘들어 하면, 그게 나에게도 느껴져서, 너무 아파.” (148, 149쪽)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배웁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삶을 배우고, 집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놀면서도 삶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려고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졸업장을 따려고 학교에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졸업장을 선물하려고 아이를 학교에 넣을 까닭은 없습니다. 대학교를 잘 보내 주는 학교라든지 일자리를 잘 얻게 이끄는 학교에 아이들을 넣지는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을 가꾸도록 이끄는 학교를 다닐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이러면서 다 다른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좋아하고 아끼는 숨결을 따스히 북돋아 주어야지요. 대학교나 취업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떠밀지 말고,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이야기를 배우도록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으니,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려 하든 일자리를 얻으려 하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안 가도 됩니다. 아이들은 몇 해쯤 일자리 없이 집에서 쉬어도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꿈을 찾아서, 이 꿈을 사랑스레 이루려는 뜻에서 태어납니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스물다섯 살쯤에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대학생이 되어도 좋고,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쳐도 좋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도 좋고, 집에서 집살림을 도우면서 지내도 좋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흙을 가꾸어도 좋고, 도시 한복판에서 텃밭을 가꾸어도 좋아요.


  남다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대목을 재미나게 보여주는 《강특고 아이들》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이 나라 모든 학교가 ‘강특고’만큼은 아니어도, 멧자락 하나쯤 끼거나 냇물이나 골짜기를 옆에 끼면서 있으면 무척 좋으리라고. 아이들이 버스나 전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다니기보다, 들길이나 숲길이나 냇길을 거닐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리라고. 교과서보다는 사랑을 배우고, 시험공부보다는 꿈을 그릴 수 있으면 더없이 아름다운 학교가 되리라고.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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