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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의 나라 3 - 애장판,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78
외계인과 초능력,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
― 칠석의 나라 3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6.25. 9000원
가을을 맞이하면 나무마다 잎을 하나둘 떨굽니다. 겨울을 앞두면 나무마다 잎을 우수수 떨구고, 네 철 푸른 나무도 틈틈이 가랑잎을 떨구어요. 한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구어 앙상한 나무가 많은데, 이렇게 나무가 떨군 나뭇잎은 어느새 삭아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나무는 햇볕이랑 바람이랑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흙을 먹으면서 잎을 내놓지요. 그리고 이 잎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요. 흙에는 지렁이를 비롯해 수많은 풀벌레가 있기에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습니다. 풀벌레 주검도, 숲짐승 주검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흙이 되어요.
“아니, 저, 다들 어떤 길로 가려나 싶어서.” “그야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겠죠, 뭐.” “그것뿐이야?” (8쪽)
“마루카미 고을에 사는 작자들은 옛날부터, 마음속으로는 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결국은 자신을 옭아매어 좁은 산골짝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28쪽)
흙으로 바뀐 나뭇잎은 모습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죽고 남은 껍데기도 흙으로 모습을 바꿀 뿐,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먼먼 옛날부터 우리 몸이 흙을 이루고, 또 우리는 흙에서 밥을 얻으며, 다시 흙에 똥이랑 오줌을 돌려주고, 새삼스레 몸을 흙으로 보내고, 다시 이 흙에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칠석의 나라》(학산문화사,2014) 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칠석의 나라》는 어느 마을에 옛날부터 내려온 두 가지 ‘숨은 힘’을 쓰는 사람들 삶을 보여줍니다. 두 가지 힘 가운데 하나는 “보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쓰는 힘”입니다. 여기에서 “보는 힘”은 이곳이 아닌 다른 저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힘입니다. “쓰는 힘”은 이곳하고 저곳 사이를 이으면서 이곳에 있는 것을 감쪽같이 없애는 힘이에요.
“뭐랄까, 세상이 너무 넓어졌어요. 사회생활의, 흔히 놓치기 쉬운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며 노력이며 생각들이, 담겨 있는지 깨달아 버렸다고나 할까.” (52쪽)
“이대로 물러나면 다인 줄 알아!” “아냐, 우린 도망갈 필요도 없어. 단지, 그 사람은, 마음속의 응어리와 담판을 짓고 싶댔어.” (70쪽)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보는 힘”이든 “쓰는 힘”이든 이러한 힘을 타고난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힘을 타고난 이들은 언제나 두려움에 휩싸인 채 삽니다. 이러한 힘 때문에 몸이 달라지니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러한 힘이 없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도 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요.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은 손을 움직여서 기운을 일으킵니다. 동그란 구슬처럼 생긴 기운을 일으켜서 이 기운을 날리는데, 이 기운이 날아가면 이 구슬이 지나간 자리가 모두 사라져요. 마치 폭탄 같은데, 어떤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않고 싹둑 자르거나 도리듯이 없애 버려요.
이리하여 이 “쓰는 힘”은 예부터 마을을 군대한테서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몰래 죽이는 데에 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쓰는 힘”을 다루는 사람은 이 힘을 다루어 손을 놀릴 적마다 몸에서 구슬 같은 것이 튀어나오면서 커지고, 어느덧 새(까치라 할는지 외계인이라 할는지)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뀝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분명, 그다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4쪽)
“부모 형제의 죽음, 연인의 죽음, 자식의 죽음, 여러 죽음과의 만남이 있지만, 하지만 그건 모두 ‘창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창?” “정말 슬픈 것은 아아, 자신의 죽음, 자기만 그곳에서 없어지는 자기 혼자만 ‘창 밖’으로.” “창 밖!” (167쪽)
‘그래도,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죽어도, 별 같은 점이 되어 혼자 오도카니 있을 텐데도, 누군가가 있어요. 은하수 저편에.’ (170∼171쪽)
만화책에서 나오는 두 가지 힘을 다루는 사람은 오늘날 사회에서는 ‘초능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초능력을 쓰는 사람을 바라보는 ‘초능력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무서워합니다. 초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회를 어지럽히리라 여기고, 초능력으로 사회를 뒤집어엎을는지 모른다고 여겨요.
그러면, “보는 힘”이나 “쓰는 힘”이 있는 이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거나 뒤집으려는 뜻이 있을까요? 외진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뒤엎어서 새로운 임금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있을까요?
“쓸 곳은 모르지만 딱히 곤란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것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208쪽)
“지금부터 천 년 정도 전, 상공에 나타난 ‘까치’들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곳은 팔백만 신들의 나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이나 그 모습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야말로 ‘신’의 것이었겠지. 적어도 거역할 자는 없었어.” (246쪽)
만화책 《칠석의 나라》에 나오는 ‘초능력을 쓰는 사람’은 먼 옛날에 지구별을 찾아온 외계인이 남겨 놓은 씨앗이라고 합니다. 엉성하거나 어수룩하게 사는 지구별 사람들을 가엾게 여긴 어느 외계인이 이 작은 마을에 내려와서 ‘어떤 힘’을 몇몇 사람한테 남겨 주었고, 이 힘이 찬찬히 대물림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해요. 외진 작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다는데, 이 제사란 하늘을 기리는 몸짓이라기보다 ‘먼 옛날에 우리를 도와준 외계인’한테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다’고 알리는 몸짓이면서 ‘부디 다시 이곳으로 찾아와서, 우리를 그대가 있는 그 별(외계)로 데려가 달라’는 몸짓이라고 해요. 이 지구별에서 겪거나 치러야 하는 고달프고 아프며 괴로운 일이 너무 많기에, 고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삶터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비는 제사(칠석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보는 힘”이 있는 사람이 보는 모습은 바로 그 외계별 세계라 할 테고, “쓰는 힘”이 있는 사람이 구슬을 다루어 무엇이든 싹둑 자르듯이 없애는 재주란, 이곳(이 지구별)에 있는 무엇이든 저곳(외계별)으로 보내는 수수께끼 같은 힘이라고 여긴다고 할까요.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저승이건 이승이건 상관없단 말이야! 이 세상이 어떤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 됐어요.” “다들, 다들 이 세상의 넓이를 너무 몰라! 넓고,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에이,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세상 일들을 TV로 대충 보고 아는 체하지 마! 그런 건 다 가짜라구!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주 작은 곳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 실패나 새 출발이 모여 있어.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의 백 배 천 배는 넓다구! 그에 비하면 무서운 꿈도, 보이지 않는 사슬도, 요란한 초능력도 작은 거야! 겨우 일부라구! 그런 것에다 목숨을 왜 맡겨!” (299∼301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꿈을 찾지 못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려 할 만합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머나먼 길을 떠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라는 별에서 아무런 꿈을 찾지 못한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이 지구별에서 어느 곳에 가든 전쟁이 그치지 않고, 불평등과 반민주와 독재와 그악한 몸짓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이 지구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아름다운 지구별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힘이 센 나라이든 힘이 여린 나라이든 하나같이 전쟁무기 키우는 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바보짓을 그치지 않는다면, 따돌림과 푸대접이 자꾸 불거지기만 한다면, 신분하고 계급을 가르는 빈 껍데기 같은 허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는 꿈은 너무 부질없거나 덧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를 어떻게 떠날까요? 우주선을 만들어서 우주선을 타야 할까요? 지구를 떠난다면 어느 별로 가야 할까요? 사람이 살 만한 다른 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별 문명으로 드넓은 우주에서 새로운 별을 찾아낼 수 이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구를 떠나서 새로운 별을 찾는 길을 열 만할까요, 아니면 씩씩하고 당찬 마음이 되면서 이 지구별을 새롭게 가꾸자는 뜻을 펼칠 만할까요? 아니면 그냥그냥 이 지구별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면 될까요?
만화책에서만 흐르는 외계인과 우주 이야기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이 지구에서 우주를 더 너르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키울 노릇이요, 무엇보다 이 지구별이 지구사람한테도 외계사람한테도 아름다운 터전이 되도록 가꿀 노릇이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스려야지 싶어요. 삶을 밝히는 길은 남(외계인이나 어떤 권력자)이 아닌 바로 내가 스스로 갈고닦기 때문입니다. 4348.11.3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