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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의 시대 사계절 만화가 열전 3
박건웅 지음 / 사계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04



‘삽질’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 삽질의 시대

 박건웅 글·그림

 사계절 펴냄, 2012.4.10.



  나무를 심으려면 삽질을 해야 합니다. 구덩이를 깊게 파야 하지요. 삽차를 부르면 나무심기도 스윽스윽 곧 끝날 테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제법 품을 들여야 합니다. 삽차를 부르면 이마에 땀 한 방울 안 흘리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구슬땀을 흘려야 합니다. 삽차를 쓰면 손에 흙 한 톨을 안 묻힐 테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나무를 심으면 아이들도 삽질을 하고 싶어서 춤을 춥니다. 저희한테도 삽을 달라고 노래합니다. 그래, 너희도 삽질을 해 보렴, 하고 삽을 건넵니다. 아이들은 서로 좋아서 하하 웃으면서 삽을 들고 영차 땅에 포옥 찍습니다. 무른 땅이라면 제법 박히지만 딱딱한 땅이면 겉만 조금 쫍니다. 오래도록 삽질을 거들지 못하지만 몇 삽을 뜨면서, 아이들도 나무심기를 함께 하는 셈입니다.


  다시 삽을 돌려받은 뒤 아이들한테는 물을 떠오라고 시킵니다. 아이들이 물을 떠오면 구덩이에 물을 붓도록 하고 나무를 심습니다. 흙을 구덩이에 넣습니다. 발로 다집니다. 이제 삽을 씻고 나무를 쓰다듬습니다. 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자, 우리 집에서 즐겁게 살자, 우리 집에서 기쁘게 뿌리를 내리자, 우리 집에서 멋있게 자라자.



- “선생님, 아이 손을 그렇게 잘라도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손 하나 없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10쪽)

- “전염병을 일으키는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바로 촛불을 든 저 마녀입니다!” (28쪽)




  박건웅 님이 빚은 만화책 《삽질의 시대》(사계절,2012)를 펼칩니다. 첫 쪽부터 흠칫 놀랍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만화이니까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빗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어떤 이야기는 굳이 안 빗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이를테면, 아이 손목을 자르고, 아이 눈과 입을 꿰매며, 아이 귀를 자르는 첫 이야기는 ‘빗대는’ 이야기입니다. 더없이 끔찍한 이야기라 할 텐데, 막상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손과 발을 꽁꽁 묶을 뿐 아니라, 눈과 입을 다 막기까지 합니다.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을 꽁꽁 묶지요.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면 취업지옥으로 들들 볶아요. 취업지옥에서 나오면, 도시마다 아파트 전월세 지옥으로 끌어들입니다. 게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는 언제나 교통지옥입니다. 모두 지옥이에요.


  아무개를 믿으면 하늘나라로 가고, 아무개를 안 믿으면 불구덩이로 간다고 하지요. 곰곰이 따지면, 아무개를 믿건 안 믿건 한국 사회는 불구덩이인 꼴입니다. 자유와 권리는 꽁꽁 틀어막힌 채 의무와 책임이라는 굴레만 뒤집어써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 “원래 선진국에서도 다 걸리는 병이라서 조금만 지나면 마 괜찮아질 겁니다.” “당신이 농민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릴 테니 각오하시오!” (48쪽)

- “그래도 평생 동안 저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거참 짜증나네! 선생님은 몇 살까지 사실 거예요?” “네? 글쎄요, 한 70살까지요? 근데 왜 물어 보세요.” “앞으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100년 뒤에나 생기는 거니까, 우리랑 상관없어요. 그건 후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요.” (69∼70쪽)





  만화책 《삽질의 시대》는 어느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 이야기를 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에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쥐’로 빗대는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을 적에 4대강사업 같은 끔찍한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는데, 그분이 대통령이 아닌 때에도 수없이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도 ‘시멘트 막삽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시멘트 막삽질’ 뿌리는 꽤 멉니다. 옛날에는 시골 사내를 나라에서 끌어들여 성곽을 세우고 궁궐을 넓혔습니다. 성곽은 이웃나라한테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만, 성곽쌓기에 끌려간 시골 사내 가운데 수십 해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많고, 성곽쌓기를 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젊을 적에 부역으로 끌려가서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들 ‘백성’한테는 어떤 삶이 있던 셈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곽쌓기에 끌려가지 않으면, 병졸로 끌려갑니다. 이래도 끌려가고 저래도 끌려가면서 고향을 잃어야 하던 ‘백성’이 대단히 많아요.


  일제강점기에는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허덕이고, 탄광에서 굴러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마을마다 고샅을 시멘트로 바꾸고, 흙집도 허물어 시멘트집으로 바꾸며, 지붕은 슬레트(석면)로 바꾸라고 닦달했습니다. 요새는 논도랑도 흙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 ‘화려한 스케일과 선정적인 장면을 보여줘도 개미들은 보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16쪽)

- ‘도시 안에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가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가방끈이 길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가방끈이 더 길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158쪽)





  삶을 가꾸는 삽질은 아름답습니다. 삶을 짓는 삽질은 구슬땀이 피어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돌보는 삽질은 손수 이루는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삶과 동떨어진 삽질은 아픕니다. 삶을 짓밟는 삽질은 이웃을 괴롭힙니다. 삶을 저버리는 삽질은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돈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삽질은 참말 돈이 될까요? 삽질로 돈을 거머쥐는 사람은 참말 즐거울까요? 혼자서 100억이니 1000억이니 1조이니 거머쥔다면, 이녁은 언제나 탱자탱자 신나게 놀면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까요? 돈을 더 많이 끌어모으면 끌어모을수록 오히려 ‘돈으로 둘러싸인 감옥’에 갇히는 꼴은 아닐는지요?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쓰는 삶이 아니고, 아름답게 벌어서 아름답게 나누는 삶이 아니라면, 돈벼락을 맞고 그만 골로 가지는 않을까요?



- ‘어느 날이었다. 학교가 마트로 변해 있었다.’ (180쪽)

- ‘불만이 있어도 사장님이 우리에게 월급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와 보니, 회사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211쪽)





  만화책 《삽질의 시대》은 ‘창작’입니다. 그런데, 글하고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만화가 되다 보니,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한국 사회 이야기’는 그지없이 끔찍하거나 그악스럽게 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도록 하는 사회를 매섭게 꾸짖는데, 이 만화를 아이들한테 섣불리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어른들도 이 만화를 쉬 읽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틀림없는 이야기요, 손가락질받을 만한 잘못을 꾸짖는 만화인데, 숨이 턱 막힙니다.


  책을 덮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거짓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참을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요. 억지스레 그린 만화가 아니라 꾸밈없이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갑갑할까요.


  아무래도 ‘쥐’로 나오는 목숨이 너무 안쓰러워 보입니다. ‘쥐’ 둘레에 달라붙어서 팥고물을 받아먹으려고 하는 목숨이 대단히 불쌍해 보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쥐’는 그렇게 살아서 무엇이 즐겁거나 기쁠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손에 쥔 ‘쥐’한테 이웃이나 동무는 없겠지요. ‘쥐’ 곁에는 모두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로채거나 거머쥐려는 맞잡이만 가득 있겠지요. 홀가분하게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사랑하거나 꿈꿀 만한 어깨동무는 하나도 없겠지요.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노란민들레도 흰민들레도 그저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다 죽입니다.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숨막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이제 부디 막삽질도, 시멘트 막삽질도 그칠 수 있기를 빌어요. 꽃을 심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돌보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손수 조그맣게 집을 지어서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함께 삽질을 하면서 숲을 푸르게 돌보는 삶이 되기를 빌어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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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더 4 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채다인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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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2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이랑 커피

― 커피 한 잔 더 4

 야마카와 나오토 글·그림

 채다인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3.23.



  비가 이틀째 내려 집안이 축축합니다. 방에 불을 넣으면 축축한 기운이 사라집니다. 다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빨래를 못 합니다. 하루하루 쌓이는 빨래를 바라보면서 ‘비가 그쳐야 빨래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틀쯤 또는 사흘쯤 빨래를 못 한들 입을 옷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일 가운데 하나를 며칠쯤 쉬라는 뜻으로 비가 내린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니, 이 비에 맞추어 새봄에 느긋하게 빗소리를 들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염없이 비를 바라봅니다. 복닥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옆에 끼고 비를 바라봅니다. 비를 바라보면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마루에 서거나 앉아서 마당을 바라보노라면, 요즈음은 처마 밑이 부산스럽습니다. 올해 봄에도 기쁘게 찾아온 제비가 알을 낳아서 새끼를 깠어요. 제비는 비가 오든 말든 새끼를 먹으느라 그야말로 부산스럽습니다. 아주 빠른 날갯짓으로 휙휙 둥지를 드나들고, 날갯짓처럼 빠른 소릿결로 신나게 노래를 합니다. 제비끼리 주고받는 말일 텐데, 제비끼리 주고받는 말은 내 귀에 온통 노래로 들립니다. 지이찍찍 지이찍찍 지이지이지이지이째째째째째째째째 하면서 재미난 가락으로 들립니다.


  어미 제비와 새끼 제비가 있으니 처마 밑은 제비똥으로 소복하지요. 처마 밑에 둔 자전거는 덮개를 씌웁니다. 제비똥이 떨어지면 하루나 이틀쯤 모아서 굳힌 뒤 흙으로 옮깁니다. 제비똥도 고마운 거름입니다. 제비똥을 치운 자리는 빗물로 씻습니다. 



- “이대로 열심히 하라고. 지금은 남이 하는 말은 듣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걸 그리면 돼.” (33쪽)

- “행복의 여신이라는 거네. 사사하라 씨랑 결혼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겠구나.” ‘하세베 씨, 그건 무슨 뜻인가요?’ (44쪽)





  봄비를 맞으며 마당 한쪽에서 풀을 뜯다가 개구리를 봅니다. 올해에도 씩씩하게 깨어난 참개구리는 어른 주먹만 합니다. 겨우내 잘 자고 일어났을 테지요. 우리 집 풀밭을 헤집으면서 먹이를 잡겠지요.


  하늘에는 제비가 있고, 땅에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제비가 아니어도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새가 많습니다. 온갖 숨결이 우리 이웃이 되어 날벌레도 잡고 파리와 모기도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들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밥을 짓다가 온갖 노랫소리에 살짝 귀를 기울입니다. 제비와 들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나도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바야흐로 풀벌레도 깨어날 테니, 이제부터 세 갈래 이웃이 저마다 기운차게 노래를 부를 테고, 이 노래에 맞추어 아이하고 함께 놀이노래를 부르면, 날마다 노래잔치가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하지만 말일세. 젊은데도 병이나 상처나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 왔잖아. 이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46∼47쪽)

- “구급차에도 같이 타 주다니, 정말로 아가씨는 상냥한 마음씀씀이가 있는 아가씨야.” “우흑.” “왜 그러나? 마음씀씀이가 있다니,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라.” (51쪽)





  야마카와 나오토 님이 빚은 만화책 《커피 한 잔 더》(세미콜론,2012) 넷째 권을 읽습니다. 모두 다섯 권으로 마무리짓는 만화책으로, 넷째 권에서는 앞선 세 권처럼 수수하면서 차분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는 사람들 이야기인 터라, 커피 냄새가 나는 이야기요, 커피 한 잔을 늘 곁에 두면서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도드라질 일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없는 투박하면서 수수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 ‘3년 동안 사귀었던 미나코랑 헤어졌다. 덕분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쉬는 날에는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어디에 가든 가지 않든 뭘 먹든 먹지 않든 자유롭다.’ (76쪽)

- ‘(목욕이) 끝나고 밤이 깊으면 파자마나 유카타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96쪽)





  만화책 《커피 한 잔 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커피’를 옆에 낍니다. 이들은 커피와 함께 삶을 누립니다. 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것을 옆에 낍니다. 이를테면, 영화를 낀다든지 책을 낀다든지 공부를 낀다든지 술을 낀다든지 밥을 낍니다.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옆에 끼고 아침을 맞이하며 저녁을 마무리합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면 고양이를 옆에 낄 테고, 개를 좋아하면 개를 옆에 낍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를 늘 옆에 낄 테며, 수다를 좋아하면 수다를 옆에 끼며 살아요.


  어느 것을 좋아하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커피를 옆에 끼는 사람은 숨을 살며시 돌리면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기에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담배를 옆에 끼는 사람은 숨을 가만히 돌리면서 담배 한 개비를 더 물기에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을 해야 즐겁습니다. 가장 좋아할 만하지 않은 일을 한다면 여러모로 힘에 부칩니다. 둘째로 좋아하거나 셋째로 좋아하는 일을 해서는 기쁘기 어렵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가장 사랑스럽게 하루를 맞이해야 바야흐로 웃음꽃이 터지고 노래가 흐릅니다.



- ‘누군가가 들어 줬으면 했다. 나는 정말로 그와의 약속을 지켜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 일에 대해 말할 상대는 없었다.’ (140쪽)

- ‘커피를 내리는 데 30분도 안 걸리니, 10분 일찍 나설 수 있다. 10분 빠르면 풍경이 다르다.’ (199쪽)





  모든 사람이 커피나 차를 마셔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한다면 스스럼없이 커피나 차를 마실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한다면 기꺼이 책을 읽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활짝 웃음지으며 배움길에 나서는 보람을 누릴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걸으면서 내 삶을 짓습니다. 너는 너대로 네 길을 걸으면서 네 삶을 짓습니다.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너는 술을 마실 수 있고,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나 물이나 술이나 차를 마시든 말든, 우리는 모두 바람을 마십니다. 이 지구별에 흐르는 푸른 바람을 함께 마십니다.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 보살피면서 손을 잡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커피잔을 마주 놓고 빙그레 웃습니다.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즐기는 사람은 다른 것을 앞에 놓고 방긋방긋 웃습니다.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이란, 내 마음이 가장 홀가분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가장 홀가분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일입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일이란, 내 마음에서 찾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서 찾는 사랑은, 바로 내 삶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나는 커피는 안 마시지만 ‘커피 만화’는 읽습니다. 이제 마지막 쪽을 덮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제비 노랫소리를 듣고, 밤에는 개구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때로는 밤별이 하늘을 흐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흐르는 노래를 때때로 듣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노래를 사랑하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고, 나도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새 아침을 기다립니다. 4348.4.2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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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7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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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3



다시 책을 파먹으려는 버러지

― 악의 꽃 7

 오시미 슈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 3.25.



  사람들은 ‘벌레’나 ‘버러지’라는 낱말을 서로 깎아내리거나 깔보거나 비아냥거리는 자리에서 흔히 씁니다. “버러지 같은 놈”이나 ‘밥벌레·돈벌레’라고 말해요. 그러나, ‘벌레·버러지’라는 낱말은 ‘책벌레·공부벌레·연습벌레’처럼 쓰면서, 어느 한 가지 일에 푹 파묻히는 사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벌레나 버러지를 바라보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입니다. 첫째, 풀잎과 나뭇잎과 열매를 갉아먹는 녀석입니다. 둘째, 나비로 깨어나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는 님입니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모든 애벌레는 풀잎과 열매를 갉아먹습니다. 꽤 오랫동안 잎사귀와 열매를 갉아먹으면서 몸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야 나비로 깨어날 수 있어요. 그러니, 잎과 열매를 갉아먹는 모습만 바라본다면, 벌레는 사람한테 나쁜 녀석이 됩니다. 잎과 열매를 실컷 갉아먹은 뒤 아름다운 나비로 깨어나서 모든 꽃이 열매를 맺도록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는 나비 모습을 함께 바라본다면, 벌레는 사람한테 반가운 이웃이요 동무가 됩니다.



- “이 마을의 버러지들아! … 죽어! 죽어! 죽어! 이 마을은 지옥이다! 여기서 사는 건 지옥이다! 아무도 듣지 않아! 저 멀리! 산 너머에서 울리는! 그 꽃이 피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아!” (5, 15쪽)

- “나도 버러지다! 버러지들의 시궁창 속에서, 다른 녀석들과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을 뿐, 나야말로 버러지다!” (18∼19쪽)





  오시미 슈조 님이 빚은 만화책 《악의 꽃》(학산문화사,2013) 일곱째 권을 보면, 첫머리에서 “너는 버러지!” 하고 외치면서 “나도 버러지!” 하고 외치는 두 아이가 나옵니다. 두 아이는 더는 ‘살 마음’이 없습니다. 둘레 사람들한테서 아무런 꿈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온몸에 기름을 붓고는 스스로 몸에 불을 당겨서 죽으려고 해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너는 버러지!” 하고 외친 아이들은 “나도 버러지!” 하고 다시 외치면서, 버러지인 이 삶을 끝장내고 싶어 합니다.



- ‘틀렸어, 난. 틀렸어. 아무리, 아무리 애써도, 평범하게도, 그렇다고 튀지도 못하고, 결심했잖아? 전부 다 바꾸기로.’ (72쪽)

- “재밌어 보인다, 너희들. 고민이 없나 봐. 사는 데. 부러워. 난, 모르겠어. 난 그때 죽었어. 전부, 모든 것을 다 잃고.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어, 난. 추하게 숨을 쉬고 있지. 아무 이유도 없는데, 하하. 이건 완전히 좀비야, 좀비. 이봐, 가르쳐 주지 않을래?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그래, 부끄럼 없이 살 수 있을까?” (98∼99쪽)





  만화책에 나오는 말이 아니더라도, 너와 나는 참말 모두 ‘버러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밥버러지입니다. 밥을 먹고 사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밥만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밥과 함께 꿈을 먹어요. 스스로 새롭게 깨어나고 싶은 꿈을 먹습니다.


  다만, 꿈을 먹더라도 하루아침에 이 꿈이 환하게 피어나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립니다. 꿈이 꽃으로 피어날 때를 기다리면서 즐겁게 밥을 먹습니다. 새로운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까지 우리는 모두 밥버러지일 수밖에 없어요. 먹고 또 먹고 다시 먹으면서 몸과 마음을 살찌웁니다. 이 일을 겪고 저 일을 겪으면서 새로운 앞날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아직 밥버러지로만 있지만, 앞으로 저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나비가 되려고 해요. 온통 무지개빛으로 환한 새로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오늘 이곳에서 ‘밥버러지 모습으로 있으면서 쓸모없다 싶은 내 삶’으로 느낀다고 하더라도 주눅들 까닭은 없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밥을 신나게 먹으면 될 뿐입니다. 모든 애벌레가 고치에 들어가는 번데기가 되기 앞서 잎사귀를 잔뜩 먹듯이, 우리는 ‘철이 들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고 치르면서 차츰 자랍니다. 자라고 다시 자라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 ‘헌책방, 이런 곳에 있었던가. 핫! 책이라.’ (105쪽)

- “그런데 버렸어. 다른 책도.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 전부 버렸어. 그 후로, 책은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어. 그런데, 다시 읽어 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방금 들었어.” (115∼116쪽)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아이는 동무하고 함께 목숨을 놓으려고 하던 때부터 ‘죽었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가 함께 죽으려고 하던 그날부터 책은 한 줄도 안 읽었다고 합니다. 모든 책을 버렸고, 모든 마음(자존심이라든지 감정이라든지)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냥 숨을 쉴 뿐,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뜻이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헌책방을 봅니다. 그리고, 헌책방에서 책을 찾아서 읽는 ‘같은 학교 동무’를 만납니다.



- “아주, 재밌었어! 깜짝 놀랐어! 손이 멈추질 않더라! 다음엔 어떻게 될까, 다음엔 어떻게 되지, 하며. 이런 책은 처음 읽어 봐! 나, 중학생 때는 무슨 고행처럼 책을 읽었거든. 〈악의 꽃〉도, 억지로 집어삼키듯 읽었고.” (152∼153쪽)

- “굉장하다. 이거, 이 정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렸어?” “응? 얼마냐니. 저기!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 마!” (183쪽)





  모든 꿈도 사랑도 잃었다고 여기면서 ‘죽은 듯이 살던’ 아이는, 늘 지나다니는 동네 골목에 헌책방이 있는 줄 여태 몰랐다고 합니다. 늘 그 자리에 그 책방이 있었을 테지만, 모든 책을 버리고 멍하니 하루하루 보냈으니, 둘레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제대로 모를밖에 없습니다. 아마 빵집이 어디에 있는지도, 옷집이 어디에 있는지도, 동무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리라 느껴요. ‘사는 뜻’이 마음속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이러다가 오랜만에 책에 눈을 뜹니다. ‘다른 사람한테 책벌레인지 눈에 안 띄면서 책벌레인 동무’를 만납니다.


  새롭게 책에 눈을 뜬 아이는 앞으로 삶을 새롭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이제껏 스스로 온통 시커먼 어둠이요 잿빛이라고만 여기던 아이는 이제부터 삶과 사랑과 꿈을 다시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책은 늘 내가 스스로 읽습니다. 남이 억지로 책을 읽힐 수 없습니다. 즐겁지 않다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즐겁고 기쁠 때에 비로소 책을 읽습니다. 내 삶도 바로 내가 짓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웃어야 삶이 이루어집니다. 스스로 기쁘게 노래해야 꿈과 사랑을 지어요.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아픈 아이들’이 생채기를 씻을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아픈 아이들도 가슴팍에 아로새긴 슬픈 생채기를 고이 씻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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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94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서

― 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6.10.25.



  참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대로 말을 하면 참말이 됩니다. 거짓말은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감추거나 가리거나 고치거나 바꾸어야 비로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참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부드럽게 흐릅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대로 하는 말이니까 참말입니다. 이와 달리 거짓말은 안 부드럽습니다. 거짓말을 하자면 이리 꾸미거나 저리 꾸미기 마련입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 없는 말이 거짓말이니, 이리 막고 저리 고쳐서 꺼내는 거짓말은 그야말로 거칠거나 엉성하기 마련입니다.



- ‘지금 나의 작은 소망, 그것은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부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는 절대 이 말을 할 수 없다.’ (13∼14쪽)

- ‘무서웠다. 날마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1억 엔을 숨긴 서랍 앞에서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나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21쪽)




  거짓말은 자꾸 커집니다. 처음 거짓말을 할 적에는 살짝 고비를 넘기려는 마음이었을는지 모르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고비는 다시 찾아오고, 고비를 다시 넘기려고 하다 보니 더 크게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자꾸자꾸 커지고 고비도 자꾸자꾸 커져요. 이리하여 나중에는 어찌저찌 손을 쓸 길이 없다고 할 만해요.


  참말도 자꾸 커져요. 처음에 참말을 할 적이든 나중에 참말을 할 적이든 다 똑같습니다. 자꾸자꾸 커지는 참말은 커지면 커질수록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로 퍼지면서, 우리 마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도록 북돋웁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참말을 하는 사람은 참말이 북돋우는 기운을 받아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서로서로 ‘커지는 것’은 똑같은데, 거짓말은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고, 참말은 우리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 “왜 그랬어?” “아키야마 씨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 비정상이야. 보통 사람은, 눈치를 챈다고. 두세 시간쯤 지나면, 속았다는 걸.”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미련스러우니 속고 다니는 거지!” (61쪽)

- “알 게 뭐야! 네 아버지가 어떻게 됐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나는 남의 일 같은 건 일절 관심 없으니까!” (72쪽)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빚은 만화책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만화책을 바탕으로 영화와 연속극이 나왔습니다. 만화는 퍽 오랫동안 나오다가 갑작스레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고들 말이 많습니다. 아무튼, 《라이어 게임》은 거짓말처럼(?) 첫 권이 나와서 거짓말처럼(?)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은 너무나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참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면서 저마다 삶을 새롭게 이끌려고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는 만화이니까, 언제나 거짓말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는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고, 저 사람이 하는 거짓말도 생각해야 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다르게 하는 거짓말을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그만, 이 만화를 그리는 분도 이녁 삶에서 거짓말만 가득 넘치고야 말 수 있습니다.



- ‘울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뭣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내 편을 들어 주니까.’ (85쪽)

- “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시면 안 돼요? 이 작전의 의도를. 아키야마 씨는 작전이라고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하는 말이라곤 그냥 선생님의 집을 감시하는 것뿐. 솔직히 저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무의미, 하다? 사기꾼이 즐겨쓰는 수단 중 하나는, ‘상대를 이상한 심리 상태로 만들어서 속인다’라는 거야.” (96∼97쪽)




  거짓말은 삶을 살리지 못합니다. 거짓말로는 삶을 살릴 수 없습니다. 봄인데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겨울인데 겨울이 아닌 봄이라고 거짓말을 어떻게 될까요. 풀씨도 나무씨도 모두 죽겠지요. 풀씨와 나무씨가 모두 죽으면,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모두 죽고 말아요. 철에 맞추어 제대로 씨가 새로 트지 못하면, 지구별은 그저 시커먼 죽음더미가 될 뿐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란 없습니다. 착하면 착한 말일 뿐이고, 거짓이면 거짓인 말일 뿐입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말일 뿐이요, 거칠면 거친 말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름답게 들린다고 해서 늘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거칠게 들린다고 해서 안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삶은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닙니다. 삶은 언제나 속사랑이요, 속마음이에요. 그러니까, “라이어 게임”에 휩쓸리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습니다.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한두 번쯤 옆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10억 원이나 100억 원을 손에 거머쥐면 기쁠까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거머쥔다면, 다른 사람도 나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가로챌 수 있어요.



- “후지사와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글쎄, 1억 엔의 빚을 지게 됐으니, 평생을 바쳐 갚든가, 워낙 수상한 단체가 벌인 일이니 뒷세계로 팔려 가든가, 어찌 됐든 앞으로 그 작자의 인생은, 암흑이지.” (169쪽)




  거짓말은 거짓말로 갑니다. 참말은 참말로 갑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갑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오늘 내가 두 손으로 고운 씨앗을 심으면 고운 풀이 돋고 고운 열매를 얻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으려 하는지는 바로 내가 생각합니다. 네가 시켜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네가 이끄는 대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내 뜻에 따라 내 꿈을 심습니다.


  한꺼번에 큰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 생각이라면, 큰돈을 손에 거머쥐는 만큼 내 삶에서 잃는 것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큰돈을 얻으면서 사랑과 꿈을 잃는다면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큰돈을 얻느라 이웃과 동무를 잃는다면 삶이 기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삶이 없이 돈만 두 손에 쥘 적에는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삶과 사랑과 웃음입니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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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이어게임..잘봤죠.
뭐..저런게 있어..했는데 만화가 원작인..드라마는 이중 구조를 가져가던데.
아무튼..선생님의 말로는 슬펐어요.

숲노래 2015-04-17 11:38   좋아요 1 | URL
연속극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원작만화가
끝을 어영부영 갑자기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선생님스토리가 끝이 아니고.몇개의 게임이 더 진행되요.
진짜 라이어게임을 하는 그 뒷 세계랑..아마도 시즌2나올듯..
 
피아노의 숲 25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00



숲바람이 된 피아노 노랫가락

― 피아노의 숲 25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4.16.



  우리 집 아이들이 틈틈이 피아노를 칩니다. 이 아이들은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집에 피아노가 있을 뿐이고, 곧잘 놀이 삼아서 피아노 건반을 누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한테 피아노는 훌륭한 악기입니다. 놀이를 하는 사람한테 피아노는 재미난 놀잇감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납니다.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사랑스러운 가락이 피어납니다.



- ‘멋진 제시부야. 오케스트라의 능력이 확실히 상승했어.’ ‘이찌노세 효과인가?’ (4쪽)

- ‘이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의 자연스러움은 우리 폴란드의 것이라고. 그, 그렇지만 그 이찌노세는 폴란드인도 아닌 주제에.’ (10쪽)





  시골집 마당에 서면 하루 내내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들이 치는 피아노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먼저, 구름을 날리는 바람노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벌과 나비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어요. 풀과 꽃과 나무가 바람 따라 춤을 추면서 들려주는 노래도 있어요.


  모든 몸짓이 노래입니다. 커다란 동백꽃송이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질 적에도 노래입니다. 갓 벌어진 모과꽃송이가 드센 바람을 맞고 가녀리게 떨어지면서 흙바닥을 구르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들고양이가 유채꽃밭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낮잠을 자며 내는 가르랑 소리도 노래입니다.



- ‘나의 피아노는 나만이 칠 수 있어. 레프도 마찬가지. 레프는 레프의 피아노를 치면 돼.’ (33쪽)

- ‘들리니?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어. 강하고, 따스하게. 폴란드의 숲처럼 너를 감쌀 수 있어.’ (42∼43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5)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아마 마지막 권이 될 듯합니다. 《피아노의 숲》은 스물다섯째 권에 이르러, 폴란드에서 열린 피아노잔치 시상식까지 끝납니다. 쇼팽을 기리는 피아노잔치에 맞추어 저마다 갈고닦은 솜씨를 들려주었고, 다 다른 아이들이 들려주는 다 다른 노랫가락은 사람들 가슴에 푸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시상식을 그렸기에 1위도 나오고 2위와 3위도 나옵니다. 순위에 든 아이들은 기뻐하고, 순위에 빠진 아이는 서운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피아노잔치에 설 수 있는 일로도 대견하지요. 무엇보다도, 순위에 들건 안 들건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아름다운 가락을 들려줄 수 있는 손길입니다. 노랫가락 하나로 기쁜 웃음을 자아내는 손길이에요.


  《피아노의 숲》에서 주인공을 맡은 이찌노세 카이는 ‘숲이 들려주는 푸른 바람’을 언제나 가슴에 담고 피아노를 쳤기 때문에, 일본에서뿐 아니라 폴란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한테 새로운 숨결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 “소리를, 소리를 소중히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무카이 씨의 피아노한테 배웠어요.” (95쪽)

- “저는 당신이 훌륭한 음악가이자, 동시에 젊은 음악가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드문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단지 당신이 어째서 그리 허둥대는 건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참가자들의 피아노에 진지하게 마주하면, 해답은 절로 나오는 건데.” (144∼145쪽)





  피아노잔치에 나선 아이들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모진 아픔을 삭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시린 생채기를 달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따사로이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푼 꿈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이든 모두 애틋합니다. 이야기에는 점수나 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피아노잔치에서 매기는 점수나 순위란 그저 시늉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숲을 이루는 나무 사이에는 아무런 점수나 순위가 없거든요.


  소나무가 1위이거나 참나무가 1위이지 않습니다. 대나무와 배롱나무가 순위를 다투지 않습니다. 탱자나무와 모과나무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매화나무와 벚나무가 다툴 일이 없고, 콩배나무와 가시나무가 싸울 까닭이 없어요. 모두 아름다운 나무이고, 모두 어우러져서 푸른 숲을 이룹니다.



- ‘에밀리아! 나의, 나의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나 봐! 겨우 알았어.’ (76쪽)

- “음악은 정말 굉장하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고! 역시 순위 같은 건 중요치 않아. 신경은 쓰이지만.” (175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이찌노세 카이가 주인공이니까, 피아노잔치에서 1위를 한다고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이가 피아노잔치에서 1위를 할 만한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숲 피아노’입니다. 카이는 제 피아노 노랫가락에 ‘숲바람’을 싣습니다. 숲바람이란 숲에서 태어난 바람입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지구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바람을 마셔요. 나라와 고장마다 ‘밥’은 달라서, 어느 나라에서는 쌀을 즐겨먹고 어느 나라에서는 밀을 즐겨먹습니다. 유럽과 남미와 아시아에서 저마다 누리는 밥이 다릅니다. 고장마다 물맛도 다르고 말투도 달라요. 그런데, 어느 나라에 있든 똑같은 대목은 있어요. 바로 ‘바람’입니다. 바람은 지구별을 두루 돌아요. 바람은 어느 한 곳에 멈추거나 고이지 않습니다. 늘 흐르지요.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바로 ‘바람 같은 노랫가락’입니다. 숲에서는 숲바람이 되고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이 되며 들에서는 들바람이 되는 노랫가락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랑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고, 풀벌레와 동무하면서 풀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나라와 겨레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기쁘게 어깨동무하도록 북돋우는 바람입니다. 나이를 내려놓고, 학력도 내려놓으며, 재산도 모조리 내려놓으면서 따스롭고 너그러이 어우러지는 바람이에요. 이 바람맛을 본다면, 누구라도 ‘바람 피아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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