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25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00



숲바람이 된 피아노 노랫가락

― 피아노의 숲 25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4.16.



  우리 집 아이들이 틈틈이 피아노를 칩니다. 이 아이들은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집에 피아노가 있을 뿐이고, 곧잘 놀이 삼아서 피아노 건반을 누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한테 피아노는 훌륭한 악기입니다. 놀이를 하는 사람한테 피아노는 재미난 놀잇감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납니다.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사랑스러운 가락이 피어납니다.



- ‘멋진 제시부야. 오케스트라의 능력이 확실히 상승했어.’ ‘이찌노세 효과인가?’ (4쪽)

- ‘이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의 자연스러움은 우리 폴란드의 것이라고. 그, 그렇지만 그 이찌노세는 폴란드인도 아닌 주제에.’ (10쪽)





  시골집 마당에 서면 하루 내내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들이 치는 피아노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먼저, 구름을 날리는 바람노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벌과 나비가 들려주는 노래가 있어요. 풀과 꽃과 나무가 바람 따라 춤을 추면서 들려주는 노래도 있어요.


  모든 몸짓이 노래입니다. 커다란 동백꽃송이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질 적에도 노래입니다. 갓 벌어진 모과꽃송이가 드센 바람을 맞고 가녀리게 떨어지면서 흙바닥을 구르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들고양이가 유채꽃밭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낮잠을 자며 내는 가르랑 소리도 노래입니다.



- ‘나의 피아노는 나만이 칠 수 있어. 레프도 마찬가지. 레프는 레프의 피아노를 치면 돼.’ (33쪽)

- ‘들리니?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어. 강하고, 따스하게. 폴란드의 숲처럼 너를 감쌀 수 있어.’ (42∼43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5)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아마 마지막 권이 될 듯합니다. 《피아노의 숲》은 스물다섯째 권에 이르러, 폴란드에서 열린 피아노잔치 시상식까지 끝납니다. 쇼팽을 기리는 피아노잔치에 맞추어 저마다 갈고닦은 솜씨를 들려주었고, 다 다른 아이들이 들려주는 다 다른 노랫가락은 사람들 가슴에 푸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시상식을 그렸기에 1위도 나오고 2위와 3위도 나옵니다. 순위에 든 아이들은 기뻐하고, 순위에 빠진 아이는 서운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피아노잔치에 설 수 있는 일로도 대견하지요. 무엇보다도, 순위에 들건 안 들건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아름다운 가락을 들려줄 수 있는 손길입니다. 노랫가락 하나로 기쁜 웃음을 자아내는 손길이에요.


  《피아노의 숲》에서 주인공을 맡은 이찌노세 카이는 ‘숲이 들려주는 푸른 바람’을 언제나 가슴에 담고 피아노를 쳤기 때문에, 일본에서뿐 아니라 폴란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한테 새로운 숨결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 “소리를, 소리를 소중히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무카이 씨의 피아노한테 배웠어요.” (95쪽)

- “저는 당신이 훌륭한 음악가이자, 동시에 젊은 음악가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드문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단지 당신이 어째서 그리 허둥대는 건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참가자들의 피아노에 진지하게 마주하면, 해답은 절로 나오는 건데.” (144∼145쪽)





  피아노잔치에 나선 아이들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모진 아픔을 삭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시린 생채기를 달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따사로이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푼 꿈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이든 모두 애틋합니다. 이야기에는 점수나 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피아노잔치에서 매기는 점수나 순위란 그저 시늉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숲을 이루는 나무 사이에는 아무런 점수나 순위가 없거든요.


  소나무가 1위이거나 참나무가 1위이지 않습니다. 대나무와 배롱나무가 순위를 다투지 않습니다. 탱자나무와 모과나무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매화나무와 벚나무가 다툴 일이 없고, 콩배나무와 가시나무가 싸울 까닭이 없어요. 모두 아름다운 나무이고, 모두 어우러져서 푸른 숲을 이룹니다.



- ‘에밀리아! 나의, 나의 피아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나 봐! 겨우 알았어.’ (76쪽)

- “음악은 정말 굉장하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고! 역시 순위 같은 건 중요치 않아. 신경은 쓰이지만.” (175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이찌노세 카이가 주인공이니까, 피아노잔치에서 1위를 한다고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이가 피아노잔치에서 1위를 할 만한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숲 피아노’입니다. 카이는 제 피아노 노랫가락에 ‘숲바람’을 싣습니다. 숲바람이란 숲에서 태어난 바람입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지구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바람을 마셔요. 나라와 고장마다 ‘밥’은 달라서, 어느 나라에서는 쌀을 즐겨먹고 어느 나라에서는 밀을 즐겨먹습니다. 유럽과 남미와 아시아에서 저마다 누리는 밥이 다릅니다. 고장마다 물맛도 다르고 말투도 달라요. 그런데, 어느 나라에 있든 똑같은 대목은 있어요. 바로 ‘바람’입니다. 바람은 지구별을 두루 돌아요. 바람은 어느 한 곳에 멈추거나 고이지 않습니다. 늘 흐르지요.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바로 ‘바람 같은 노랫가락’입니다. 숲에서는 숲바람이 되고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이 되며 들에서는 들바람이 되는 노랫가락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랑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고, 풀벌레와 동무하면서 풀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나라와 겨레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기쁘게 어깨동무하도록 북돋우는 바람입니다. 나이를 내려놓고, 학력도 내려놓으며, 재산도 모조리 내려놓으면서 따스롭고 너그러이 어우러지는 바람이에요. 이 바람맛을 본다면, 누구라도 ‘바람 피아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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